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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고수는 사라졌다?

고수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고수 (高手)

1.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수가 높음. 또는 그런 사람.

2.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
고수란 말 그대로 ‘한 수 위’인 사람입니다.

어떤 일에서 매우 높은 솜씨나 경지를 성취한 사람에게 경외심을 담아 고수라고 부르죠.


특히 우리는 ‘승부’를 겨루는 분야에서 고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둑의 고수’는 자연스럽지만 ‘가야금의 고수’라는 표현은 뭔지 모르게 어색합니다.

승부를 겨루지 않는 분야에는 ‘명인’, ‘달인’ 같은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인지, 뭐니 뭐니 해도 ‘고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무술’인 것 같습니다.

무림 고수들은 그야말로 ‘고수의 대명사’입니다.


이소룡, 황비홍, 엽문, 양로선 등 중국 무술 고수들의 이야기는 영화화 되어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무용담은 전설처럼 우리에게 남아 전해지는데요.


그렇다면 ‘오늘날의 고수’는 누구일까요?

그 질문에는 어쩐지 선뜻 답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동시대의 사람에 대한 평가이기에 조심스럽단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무술 고수라할만한 사람을 떠올리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수들이 숨어야 했던 이유

중국 무술의 역사는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통치자들은 무술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혹여 무술을 익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무술을 익히지 못하게 억압했죠.


특히 중국 대륙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왕조가 중원을 차지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때가 그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면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무예 택견 또한 탄압을 겪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택견이 민족저항의 수단이자 단결의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통무예 말살 정책으로 완전히 명맥이 끊어질 정도로 탄압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조선 말기의 택견꾼 송덕기에 의해 명맥을 이을 수 있었죠.
그래서 청나라 당시 무술인들은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몰래 몰래 무술을 전했고

이것이 바로 ‘문파’의 기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편,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식무기를 들고 밀려온 외세...

이에 맞서기 위해 비밀 결사 단체 ‘의화단’은 전통무예와 전통사상을 기반으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총기의 화력 앞에 맥없이 스러지고 말았죠.

이때 많은 무술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전통 무술에 닥쳐온 고난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있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 기간.


전통 무술의 사제관계는 ‘봉건적인’, ‘전근대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타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모든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신문화를 건설하겠다’라는 혁명이 문화대혁명이거든요.
 특히 66년부터 2~3년에 걸친 ‘홍위병 운동’으로 기존 사찰이라든지 문화재들이 대부분 괴멸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무림 속 문파들도 상당한 피해를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것들은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이후 새로 건설한 것입니다. - 최재용, 명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런 연이은 탄압과 위기를 겪으며 무술의 전통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무술인들은 무술을 포기하거나 중국에서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홍콩과 대만에서 무협이 발달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중국에 남아있던 무술인들은 무술을 후대에 전수하지 못하게 됐고
무술을 포기하거나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 시대 고수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걸까요?
아니면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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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한 그들에게는 
나도 보통사람으로 갚았으나, 지백은 나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국사로 대접해주었기에 나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이오." 
-예양 (춘추 말기 진나라) 죽음을 앞둔 예양의 마지막 소원은 저승에 가서 주군 지백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조양자의 옷을 베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주군에 대한 신의를 지키려는 예양의 신념을 이해한 조양자는 옷을 벗어주고 예양은 옷을 벤 후 자결합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는 ‘협객’의 정신. 이후 많은 이들이 예양의 정신을 높이 사고 최초의 협객으로 인정합니다. “의협, 협객의 행동원리이자 중국의 행동원리” 의협(義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 대해서는 목숨조차 돌보지 않고 충심으로 섬기거나, 목표 혹은 대의(大義)를 이루기 위해 자신뿐 아니라 처자의 목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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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 열국지 사전」, 풍몽룡 저 / 김영문 역, 솔 출판사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을 알아 준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은 협객의 이데올로기이자 지금도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행동양식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우리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지는데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불의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쉬운 게 아닙니다.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협객의 모습이 우리에겐 낯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하겠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고 그를 위해 충절을 지킨 그들의 모습이 한편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 영상으로 더 자세히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9만 살 차이나는 연상연하 커플??
사랑이란 본래 도덕을 논할 수도, 옳고 그름을 나눌 수도 없는 것. (...)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모든 마음을 쏟는 거예요. 남들 앞에서는 사랑하고 뒤에서는 사랑하지 않고,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당칠공자가 쓴, <삼생삼세 십리도화> 중에서 . . . 수많은 신들이 쇠락하고 몇몇 신족만이 평화롭게 사는 가운데, 오만 살의 철부지 신선 백천은 수련을 위해 남장을 하고 ‘사음’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신 묵연의 제자로 들어간다. 사음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경에게 마음을 내어주지만 이내 버림받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겁운을 대신 겪은 후 큰 위기에 빠진 스승 묵연을 돕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사음의 이름을 버리고 원래의 신분 백천으로 돌아가 묵연을 보살피길 칠만여 년. 신선의 기억과 능력을 잃고 속계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외로이 살아가야 하는 또다른 겁운이 백천에게 닥친다. 그러다 천족의 야화를 만나고, 그로부터 ‘소소’라는 이름을 얻어 신선계 최상위 계층인 천족과 속인의 사랑이라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오해와 모략에 휘말린다. 삼백 년 후, 야화는 백천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십사만 살의 상신으로, 그는 오만 살의 천군 태자로. 속인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은 백천에게 야화는 매번 새로이, 하지만 찬란하고 올곧게 구애하고, 둘은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지만 운명은 이들의 사랑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 백천은 십사만 살, 남자 주인공 야화는 오만 살. 둘의 나이 차는 구만 살이다.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하기엔 “연배로는 고모뻘, 연수로는 조상뻘이고”, “오만 살밖에 되지 않은 옥 같은 청년이 십사만 살이나 되는 노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삼생삼세 십리도화』속 시간 설정은 얼핏 보면 호쾌한 중국적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문법에서 벗어난 과감한 도전이다. 시한부 삶이나 짧은 만남 같은 시간적 제약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애절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연애소설 서사라면, 『삼생삼세 십리도화』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신선’이고, 이들은 영원에 가까운 삶을 영위한다. 작가는 무한대로 늘어난 시간 속에 캐릭터를 놓아두고 계속해서 두 주인공을 시험에 들게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시간’이라는 제한이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얼마나 일관되고 진실하게 매달릴 수 있을까? 십사만 살의 나이. 삼생삼세, 세 번의―사음, 소소, 백천―삶 동안 각각 다른 신분으로 살며 산전수전을 겪은 여주인공 백천은 “나에 대한 마음이 아직은 깊지 않을 때 그만두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예요. 이렇게 오래 살면 사랑이라는 것에 덤덤해지고 아무 흥미도 없게 된다는 것을”(268쪽) 이라 건조하게 말하기도 하며 “사랑의 나무가 있다면 내 나무는 몇 만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말라비틀어진 늙은 소철”(266쪽)이라는 둥, “거동도 굼뜬 상늙은이”(346쪽)를 자처한다. 반면 이런 백천의 눈에 고집불통 애송이 같은 야화는 “절절히 사랑하면서 오래 함께하면 좋겠군요”(267쪽)라든가 “당신 한 사람만 사랑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269쪽)라고 일관되게 자신의 사랑을 고수하는 직진남이다. 이러한 야화의 ‘진심’에 꽉 닫혀 있던 건어물녀 백천의 마음은 조금씩 열려가는데…… <출판사 책 소개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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