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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나이 서른셋…대한민국서 여자로 살아가기 저~엉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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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셋의 기자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다. ▲학창시절엔 난감하고 아찔했던 ‘언어 폭력’을 경험했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성희롱’이라는 또다른 이름의 폭력에도 내몰려 봤다. ▲성과 관련된 문제를 넘어 여성들은 취업과 승진에서도 팍팍한 현실을 살고 있다. ▲그 현실 속에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터졌다. ▲‘혐오’라는 단어를 두고 ‘남과 여’는 팽팽하게 갈등하고 있다. ▲서른 셋 여성 기자인 나는, 오늘 내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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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로 비유되곤 하는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체육시간에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그늘에 잠시 앉아 있었다. 내게 다가온 체육선생님은 “발목이 되게 얇네”라면서 두텁고 검은 두 손으로 내 종아리를 훑어 발목을 감쌌다. 당시까지만 해도 개념에 머물러 있던 ‘성추행’이 현실로 바뀐 계기였다.
여고 시절의 황당했던 경험/ “너 참 맛있게 생겼다”
그 일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이것저것 말을 걸던 택시기사는 대뜸 “너 참 맛있게 생겼다”라고 했다. 당시엔 그 말뜻을 알아듣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는 내게, 나이가 오십이 족히 돼 보이는 기사는 다시 한번 말했다. “너 진짜 맛있게 생겼다.”
그때부터 이런 일들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십대는 군데군데 얼룩진 채 흘렀다. 이십대가 되자, 내가 여자로 살며 겪어야 할 일들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나타났다.
대학에서의 난감했던 경험/ “넌 왜 그리 문란하니”
대학에 들어간 첫해, 내겐 '문란하다'는 딱지가 잠시 붙은 적이 있었다. 새내기 모임에서 술을 많이 마셨고, 다함께 어울려 신나게 논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선배 몇몇(여기엔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이 나를 가리켜 "쟤는 문란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학내 여성인권 모임과 동아리에 흘러 들어갔다. 결국 그 선배들은 자필로 내게 사과문을 써야 했다. 그걸로 난 그들을 용서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내가 남자였어도 문란하다는 말이 나왔을까'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인데 술을 많이 마셨고, 여자인데 취한 채로 놀았기 때문에 내게 '문란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남과 여' 사이의 일이 입에 오르내릴 땐 항상 여자가 안줏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대학에서 어떤 커플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여자애가 낙태를 했다더라"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의 끝엔 "여자애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라는 코멘트가 따라다녔다. 임신이 사실이라고 치자. 섹스도 둘이 했고, 피임에 주의하지 못한 것도 남과 여 둘 모두다. 하지만 여자의 '행실'은 문제였고, 남자는 예외였다.
언론사 면접에서의 이해 못할 경험/ “남자가 커트라인 중에 5명밖에 되지 않더라”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만 여자가 손해 보는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겪게 되는 취업과 실업의 고통도 여자의 몫이 훨씬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남성 고용률은 71.4%였지만 여성 고용률은 49.5%에 그쳤다.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언론사도 취업 시장에서는 예외 없이 하나의 ‘대한민국의 회사’일 뿐이었다. 합숙면접에 갔을 때 모 언론사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필기 점수로 커트라인을 상위 40명으로 잡으니, 그 중 남자가 5명밖에 되지 않더라. 그래서 사장에게 커트라인을 50명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사장이 그냥 원래대로 진행하라고 했다."
이 부장은 자신들의 회사가 이렇게 원칙적인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듯 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애초에 남자를 더 뽑기 위해 커트라인을 변경하자고 제안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마치 "엄마한테 도둑질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하지말래. 우리 엄마 정말 도덕적이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해 이 언론사의 최종합격자 수는 5명. 내 기억으론 그 중 3명은 여자, 2명은 남자가 뽑혔다. 남자는 5대 2의 확률로, 여자는 35대 3의 확률로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잠시 일했던 직장의 아찔한 경험/ “외로운데 손만 잡고 가면 안되겠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그 후 생활은 평탄치 않다. 여성가족부의 ‘2015 성희롱 실태 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추행 가해자의 88%는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 잠시 일했던 직장의 국장은 함께 취재를 나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게 “요즘 너무 외롭다”면서 “손만 잡고 가면 안되겠느냐”고 한 적이 있었다. 그후 나는 그곳을 그만두는 방식으로 사태를 모면했다. ‘왜 더 강력하게 따지고 들지 않았나’하는 후회가 남을 뿐이다.
여성들의 취업 이후 암담한 현실/ ‘임원’이라는 하늘의 별따기
이뿐인가. 대한민국에선 여자가 고위직 임원으로 승진하기도 어렵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월 8일 여성의 날에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여성 고위직은 전체 고위직의 11%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OECD 가입국 29개 나라 중 꼴찌를 기록했다.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주요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들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여기 참석한 45명의 편집, 보도국장 중 여성은 단 2명(4.4%)뿐이었다. 과연 나는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편집장 혹은 국장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될까?
내가 경험한 사례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드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들보다 훨씬 끔찍한 일을 당한 여성들도 적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8월까지 발생한 강력범죄 1만5227건 중 1만3590건(87%)의 피해자가 여성이었다. 이런 수치들을 접할 때마다 ‘내 삶은 이에 비하면 참 양호하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그들은 왜 피해자가 돼야했나’라는 생각에 머리가 새까매진다.
직장 밖의 또다른 공포/ '살아남아야' 하는 두려운 삶
‘강남역 살인사건’ 후 여성들은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두려움 섞인 분노를 머금고 있다. 남자들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여자들의 이런 가정의 끝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로 마무리 된다. 그러면서 SNS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살아남았다’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여성이기 때문에 예고 없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일상화돼버린 지금의 현실이 공포 그 자체다. 여성들에게 이 사회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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