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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에 대한 단상

강남역 부근 화장실에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과 지금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지는 조문과 충돌은 우리사회의 슬픈 풍경화입니다. 필연적으로는 표면화될 것이 이제 살인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고 봅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라는 워딩


다른 카드에 어떤 남성분이 조문 문구로서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말이 타당하냐.. 유족을 농락하는 말이 아니냐는 말을 굉장히 공격적으로 한 것을 봤습니다. 댓글로 그 의미를 잠깐 설명했지만 별로 이해할 생각이 없는 상대로 판단되었고.. 빙글에서의 댓글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충분히 겪은 댓글 회의론자이기에 더 대꾸하지 않고 그 카드 알림을 차단해버렸습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라는 말을 처음 접한 순간 저에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여성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 표현이 고인을 능욕하는 표현이라는 배경에는 "왜 고인은 밤늦은 시간에 집에 안들어갔느냐. 살아남은 나는 조신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라는 의식이 깔려있습니다. 여성들을 "성녀/창녀"로 편가르는 고약한 기준이죠. 남성들이 스스로 그런 이분법을 의식하지 않아도 사고의 기저에 본인도 모르는 프레임이 이미 작동하고 있습니다. 보편화된 사고니까요.
조금만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생각해 보세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의미는 여성에게 닥칠수 있는 위험(목숨이 왔다갔다하는)의 편재성을 의미하고 강남역 부근 화장실 희생자가 바로 나였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서늘한 결론을 내포합니다. 고인의 죽음을 능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을 여성 전체가 고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격상된 조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혐오 살인이냐 묻지마 살인이냐


지금도 이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니 남성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사고의 오류는 여성혐오 사건이 되면 그게 곧 남성 전체의 책임이 된다는 확산적 사고에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사건은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맞다고 봅니다. 사건의 팩트를 여성에서 유색인종으로만 한번 대치해 보세요. "평소에 여자가 날 무시했다"를 "평소에 깜둥이* 가 날 무시했다"로.. "앞서 화장실을 이용한 여섯명의 남성이 지나간후 여성을 살해했다"도 남성 대신 백인을, 여성 대신 흑인으로 바꿔보시죠. 이런 사건이 백인 가해자가 저지른 사건이라고 했을 때도 인종차별, 유색인종 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요?

이번 사건이 남성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여성혐오 사건으로 정의된다고 해도 그것이 곧 대한민국 남성 전체의 공동 책임이 된다고 보지 않아요.
저는 비슷한(?) 사건이 하나 떠오릅니다. 약 10년전에 있었던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격 살인사건인데요. 당시에 미국 영주권자였던 조승희가 수십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지요. 제가 비슷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후의 반응입니다. 조승희라는 개인의 살인 사건이 국가적 죄책감으로 확산되어 대통령부터 한인단체 등의 사과가 이어졌는데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권에서는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지나친 집단주의적 문화의 영향에서 일어난 반응, 넌센스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오버한다는 거죠. 저는 이번 사건에서 남성들의 반응도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집단주의적 동질감의 확산으로 생각합니다.

소라넷이던 여성혐오 살인이던 그것은 일부의 문제다.

일전에 소라넷 이슈가 터졌을 때 저는 핵심 범죄자들과 단순히 소라넷 접속경험이 있는 남성들과는 구분하였습니다. 어떤 여자분들은 저보고 명예남성이라고.. 왜 남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느냐고 극딜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마찬가지 전체주의적인 사고라고 봅니다.
이번 사건은 부디 깨어있는 남성들은 여성혐오 살인사건임을 인식하고 앞으로 좀더 나은 세상이 되는 방향을 같이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남성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삶에서 심적 부채감이 줄어드는게 아닙니다.
저는 여성혐오의 정서가 이미 사회에 만연했다고 보고 있고 작금의 논란이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결코 남성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같이 사는게 참 힘든 세상이네요..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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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라서 미친 횡포 묵사발 냈다면 좋았을텐데~ 엉뚱한 설정이지만 죽임당한 현실을 두곤 유구무언 황당무개한 무척 슬픈 사건이죠. 남녀를 두고 굳이 묻는다면 남녀상대를떠나서 기본적 인간존중의 씨가 말라가는듯 합니다. 고인명복 빕니다
여성혐오뿐아니라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혐오증에 대해 생각해볼 일입니다. 난 ○○이 싫다. 그러니 ○○을 없애버려야겠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들이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기인한듯한 이러한정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혜연씨의 글과 포스팅을 좋아해왔습니다 처음 댓글을 다는건 서글픈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사회적으로 여성혐오현상이 만연한건 아닙니다 오히려 감탄과 동경이라면 몰라도요^^, 어느시대 어느사회건 상식을 벗어난 미친 인간이 있고 거기에 큰의미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희망보다 외로움과 상실, 고독과 좌절감이 뒤덮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마음속 그늘이 더 깊어지는 탓이겠지요 "유령에게 사로잡히는 데에는 방이나 집이 필요 없다. 우리의 머리속은 이미 꼬불꼬불한 복도들로 가득차 있다" - 에밀리 디킨슨 - 혜연씨는 편견에 자유로운 사람이라 유령(무엇이든)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잘 없겠지만 더 긍정적이고 밝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어느것이 맞다 틀리다가 아닌 두 문제가 공존하는 것인데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전개로 자꾸만 하나만 강조하고 고집하게 되는 모습으로 비춰져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게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cris95451204 맞아요. ㅇㅇ충이 자꾸만 생겨나고ᆢ 대한민국이 곤충도감이 되가는 중인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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