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NEWS
5,000+ Views

괴성·몸부림·유턴…미국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난동 회항'

어제(25일)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덴버 국제공항에서 한 여성의 난동으로 비행기가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프런티어 항공 소속의 이 비행기는 덴버에서 출발해 포클랜드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기내에 탑승한 여성 승객이 난동을 부리면서 이륙도 하지 못하고 활주로에서 회항하면서 운행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인기 동영상>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행기 좌석
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려보네요. 제가 해외를 많이 다니면서 나름의 노하우로 얻은 좌석선택시 팁을 공유해보고자 글을 올려봅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이기에 참고만 하시면 될것같습니다. 우선 해외여행을 계획하실때 여행사를 통하시거나 개인적으로 발권해서 다니시더라도 좌석선택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우선 발권하는 과정에 본인이 탑승하는 항공사의 항공기를 확인해보시는것 부터 시작할게요~ 우선 보잉기종으로는 737,747,777 에어버스는 A320,A330,A340,A380 이렇게 나뉘는걸 아시는 분은 아실겁니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기종이 있지만 대표적인 기종들로만 설명 드리겠습니다 각 항공사에 들어가서 좌석 체크를 해보시면 신형좌석인지 구형좌석인지 확인이 가능 하실겁니다. 밑에 링크 걸어드릴게요~ 대한항공 https://kr.koreanair.com/korea/ko/traveling/fleet-info.html#_ 아시아나항공 http://flyasiana.com/CW/ko/common/pageContent.do?pageId=PC_0173 저 같은 경우는 위 두 항공사 말고도 외항사를 이용할때도 일일히 체크해서 같은돈이면 조금더 편하고 넓게 업그레이된 좌석을 이용합니다. 다만 비즈니스 이상의 좌석은 아무 좌석에 앉으셔도 무방하겠지요~ 위에 들어가 보시면 각 항공기별 장착되어 있는 좌석명이 나오는걸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비행기안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다보면 거의 감옥같은 수준일겁니다. 참고로 샌프란에서 홍콩행비행기를 타고가다 뛰어내리고 싶을정도였으니깐요(15시간40분) 따라서 여러분도 이왕이면 한번 체크하시고 비행기종을 선택해서 여행일정을 계획하시는것도 여행의 일부분으로서 조금더 편하게 다니실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다음은 좌석선택! 이미 많이들 아시겠지만 비상구가 편하다!? 이유는 다리를 필 수 있어서!? 과연 다리만 필 수 있다면 무조건 편할까요? 저도 비상구를 많이 앉져봤지만 그렇게 편한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이유는 갤리나 화장실이 바로 앞에 있어서 시끌시끌? 사람들도 가끔 줄도 길게 늘어서고~ 저는 그렇게 비상구좌석을 선호 하지는 않습니다. 멋모르고 창가 앉으면 구명슬라이드와 함께할 수도. . 하지만 이부분은 미리 알려줍니다 그래서 저는되려....꼬리 부분을 선호 합니다. 보통 이런 좌석 배정을 타보시면 보셨을 겁니다. 3-3-3 혹은 3-4-3 대충 이런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광동체에만 해당되는(복도가2개) 내용입니다. 창가 좌석이 3개! 그러나! 꼬리로 가면 갑자기 2개로 바뀝니다. 380과같은기종은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하지만 이를제외한 대부분의 항공기는 꼬리부분이 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에 좌석배치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위에 사진을 올려놓은 좌석을 보시면 바로 보이실겁니다. 꼬리로 갈수록 좁아지다보니 되려 꼬리맨끝 좌석창가 자리는 창가쪽으로 은근히 넓은 좌석이 나옵니다. 넓이로 따지자면 맨꼬리 끝좌석 바로 앞자리가 조금더 넓지요. 하지만 그공간은 제가 쓸 자리라서 그 뒷자리로 패스~ 맨꼬리 끝 창가좌석에 앉아서 바로 앞좌석 옆으로보면 다리를 쭉피고도 남을만한 공간이 나옵니다. 물론 앞사람에게는 전혀 피해는 없습니다. 그리고 옆으로 기대어 자기도 편합니다. 배개를 2개정도 더 달라고 해서 옆공간에 채워서 기대어 자면 그야말로 비즈니스 부럽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할때는 무조건 이자리에만 앉아서 다녀본 봐(1년10회이상 왕복) 제가 다닐때는 뉴이코노미도 아니었습니다만 굉장히 편했습니다. 한번 속는셈치고 타보시면 이런자리가 있었네? 할겁니다~ ㅎㅎ 제 키가 184인데 불구하고 편했다고 하면 진짜 편했던거이기에~ 꼭 도전을 해보심이~^^ 이 자리의 장단점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1. 좌석창가 쪽으로 공간이 더 나오기에 가방을 놓거나 다리를 쭉피거나 공간활용도가 좋음. 2. 식사가 시작될때 제일먼저 밥을 제공받음. 3. 조금만 빨리 식사를 한다면 승무원들이 배식끝나고 돌아갈때 치워달라고 할 수 있음. 4. 사람들이 정신없이 밥먹을때 유유히 화장실가서 손도씻고 용무도 볼수있다.(가장깨끗할시기) 5. 뒷좌리에 사람이 없기에 그냥 쭉 의자를 뒤로 눕히고 갈 수 있음 6. 비행기 탑승시 제일먼저 태워주기에 가장먼저 탈 수 있는 해택? 늘 탑승권 확인후 기내로 진입 하더라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죠~ 이런 대기 시간을 최소화 하고 후딱들어가서 앉아서 책도 보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게 있음. 그러나 반대로 가장 늦게 타더라도 무방함 짐 올릴 공간이 없다하더라도 승무원들이 알아서 찾아서 올려줍니다. 7.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비행기에서 가장 늦게 내리는게 문제라면 문제죠. 그러나 이제껏 미루어 볼때 비즈니스 아니고서야 짐이 절대 빨리 나오는걸 본적이 없습니다. 저도 가끔 상위클래스를 이용하지만 짐이 저보다 빨리 나온적이 없습니다. 되려 제일 늦게 승객들이 다 내릴때까지 끝까지 앉아서 놀다?가 텅텅빈 기내를 유유히 걸어나와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짐찾는곳으로가면 짐이 터~~억! 빙빙 돌고 있죠..되려 편하더라구요. 굳이 빨리나와서 짐찾는 벨트에 멍하니 수화물 나오는곳만 응시할 필요가 없죠~ 또한 큰공항들 LAX나 SFO 와 같은 세계적을 큰 공항들을 보면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면 추가로 창구를 더 열죠~ 그러다보니 제일 늦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문연곳으로 쏙~! 빈도율은 20프로 내외였습니다. 재수가 좋으면 논스톱으로 나가는거죠~ 8. 둘만 있는 자리기때문에 화장실갈때 익스큐즈할 사람수가 1명뿐 ㅎㅎ 2명보단 1명이 심적 부담이 덜하겠죠. 9. 아무도 찾지 않는 좌석...ㅎㅎㅎ 다만 사전배정할때 이 자리를 누군가 먼저 잡았다면 선수임. ㅎㅎ 단점. 1. 가끔 중국환승 노선이거나 중국행일때 뒷 갤리에서 수다를 떠는데 짜증이 제대로 난다. 그러나 조용히해달라고 승무원에게 요청하면 해산시켜 줍니다 ㅎㅎ 2. 항공사별로 좌석을 배치하는 레그룸 사이즈가 다르기때문에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을 해야한다 잘만 따져보고 선택한다면 비즈니스 클래스 부럽지 않지만 노력없이 무턱대고 선택했다가는 아주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4시간 미만의 비행은 상관없지만 10시간이 넘어가는 비행이라면 위의 노력을 해서라도 탑승한다면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을겁니다. 3. 그래도 옆에 사람이 있기에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는 분이시라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 좋은 좌석이라고 하는곳들은 여러곳에서 소개한바~ 대부분 아실것이라 믿고 저는 제가 발견한 꼬리쪽 창가(복도가 2개인 광동체 기준)만 알려드릴까 합니다~ 처음 올려보는 글이라...따로 사진을 중간에 올리는것도 몰라서 글로만 설명드렸는데 이해가 되셨을까 모르겠네요~ 만약 반응이 좋다면~ 또한 제가 글 작성하며 중간에 사진올리는 법을 알게 된다면 우리나라 항공사와 대표적인 외항사몇개를 선택하여 제가 탑승했던 자리들 위주로 자세히 올려보겠습니다. 또한 왼쪽 창가 오른쪽창가 자리에 따라서 출발도시 혹은 도착도시의 야경이나 전경을 한눈에 볼수있는 확률이 높은 좌석이 있으니 이부분도 알려드려볼까 합니다 살짝 알려드리자면 인천출발은 왼쪽 창가가 좋습니다.(미국,일본,동남아시아)출발 기준~ 이유는 우리나라항공기는 33번이나 34번 활주로로 이륙시(북쪽방향)에는 무조건 터닝을 해야합니다. 왜냐! 쭉가면 평양이니깐요ㅎㅎ 고로 위 도착지로 가려면 남쪽으로 360도 터닝을 해야하기에 왼쪽창가에 앉다 보면 서울,인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맑은날 밤에는 아주 멋집니다. 그러나 유럽노선은 거의 바로 서쪽으로 북한영공을 피해서 가기때문에 다소 안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낮에 탑승시에는 오른쪽 창가면 저~~멀리 북한땅이 잘~~ 보이실겁니다~ 반대로 15번이나 16번 활주로로(남쪽방향) 이륙을 하더라도 왼쪽 창가라면 여전히 서울,인천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세세한 랜드마크는 안보이지만 야경하나는 멋있더라구요~ 15,16번 활주로는 어느 나라로 가던지 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석양이 지는 시간대 비행기를 이용하신다면 더욱이 요즘같은 가을 하늘의 석양을 보시려면 오른쪽 창가로 가신다면 활활타는 하늘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주 난리 납니다 ㅎㅎㅎ 활주로 위치는 공항 다이어그램을 올려두었으니 참고하세요 또한 동여상 링크걸어두었습니다 싱가폴 올때 16번활주로로 이륙시 직접찍은 영상입니다. 보시면 동남쪽으로 가다보니 서울쪽으로 턴을 안하지만 미국행은 서울쪽으로 방향을틀기에 야경을 더 잘 보실 수 있답니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 하구요~ 아마 다른분들이나 인터넷상에서 공개된 좋은자리들 많이들 보셔서 아실겁니다. 하지만 이런자리는 처음 들어보셨을거에요~ ㅎㅎ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일뿐 저와 다른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만 한번쯤 이용해보시는것도 나쁜것만은 아닐거에요~~ 이외에더 제가 다녀본 20여개이상의 공항과 100만마일이상 다니면서 느낀 팁들.. 10년정도 외국생활.(미국,호주,캐나다 등) 국제선 국내선 할것 없이 천천히 공유해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은 정보다 싶으면 좋아요 쾅! 별로다 싶어도 쾅! ㅎㅎ 늘 하나라도 더 추억할수 있는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퍼오는 공포썰] 사이비 종교 끝장낸 썰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많이 떨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크네 그릇된 믿음 때문에, 여러모로 뒤가 구린 사이비 종교 하나 때문에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구나. 사람들의 불안도 점점 커져서 마스크 값이 폭등하고, 마트에 생필품도 다 떨어졌다면서. 사실은 이 정도로 공포에 떨 것이 아닌데.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무서운 건 역시나 불필요한 혐오인 걸. 벌써부터 나뉘어서 싸우고 있는 걸 보니 두통이 다 생기더라. (물론 신천지 혐오는 인정ㅋ) 그래서 오늘 가져온 건 (조금 많이 길지만) 우리나라의, 잔인하기로는 비할 바가 없는 한 사이비 종교 이야기야. 정말 어마어마해서 영화화도 된 지라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혹여 지금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가져온 글. 글이 너무 길어서 내가 중간 중간 좀 솎아 냈는데도 여전히 기네. 그래서 중요한 부분은 두꺼운 글로 표시를 했어. 다 읽기 싫은 사람들은 두꺼운 글자만 읽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이 거칠고 강퍅할수록 종교는 힘을 얻는다.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지던 1930년대, 피폐해진 식민지 백성들의 신산한 마음을 뚫고 ‘영생복락’과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 가운데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것이 수백건의 살인과 음행이 드러난 이른바 ‘백백교 사건’. 그 참담한 최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건의 배경에 가난과 무지, 정치적 부자유에 시달린 반도 백성의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5년, 유곤용은 해주에서 가장 큰 한약국 ‘구명당(求命堂)’의 주인이었다. 본디 그의 집안은 온천이 개발되어 전국적인 휴양지로 번성한 신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30여 년 전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재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색이나 주색에 빠진 것도, 투기나 도박에 손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유곤용의 조부는 수시로 땅을 팔고, 빚을 얻었다. 유곤용이 해주로 나올 즈음 유씨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했다. 유곤용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비방으로 약을 처방했는데, 특히 위장병, 임질, 뇌신경질환 치료약 조제에 탁월했다. 10여 년의 관록이 붙은 후 그의 명성은 황해도를 넘어 경기도와 평안도에 뻗쳤다. ‘구명당’은 조선 최초의 한약재 연구소를 설립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이 뻗어가던 유곤용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1933년 임종하기 전, 조부는 유곤용에게 30년간 지켜온 집안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할아비는 장차 너의 부귀와 공명을 위해 근 30년간 백백교를 믿어왔다. 대원님께 의지하여 재물 버리기를 초개와 같이 했다. 그러나 아쉬워 말거라. 할아비가 정성을 다해 교에 바친 재물은 이제 곧 몇 곱절, 몇십 곱절이 되어 네 아비와 네게 돌아올 거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집안이 몰락한 이유는 허망하게도 조부가 백백교라는 신흥종교를 믿은 탓이었다. 조부의 죽음으로 집안의 비극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친 유인호는 조부보다 더 ‘독실한’ 백백교 신도였다. 조부가 죽은 후 부친 유인호는 얼마 남지 않은 가산을 정리해 가솔들을 이끌고 백백교 본부가 있는 서울로 이주했다. 재산 일체는 물론 18세밖에 안 된 딸마저 대원님께 바쳤다. 그 대가로 받은 것이라고는 고작 ‘장로’라는 허울뿐인 직함과 왕십리에 있는 허름한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유곤용은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라고 4년을 두고 설득했지만, 유인호의 30년 믿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교주의 애첩이 된 누이동생 또한 백백교의 열성 신도가 됐다. - 1937년 2월10일, 음력 설을 맞아 유곤용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아버지 유인호의 처소를 찾았다. 4년 만에 부친을 만난 유곤용은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불효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대원님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유인호는 자식의 돌연한 개심이 한편으로는 기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불안했다. 유곤용은 어떠한 곤란한 명령이라도 순종할 터이니 제발 대원님을 승안케 해달라며 거듭 부탁했다. 그제서야 유인호는 자식의 진심을 믿을 수 있었다. 유인호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2월16일 저녁 8시 왕십리 유인호의 자택에서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유곤용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전용해의 애첩이 된 유정전은 오빠 유곤용에게 대원님을 승안할 때 다섯 가지 계율을 명심해서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첫째, 절대로 대원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든 대원님 앞에서 고개를 들면 안 됩니다. 둘째, 대원님을 뵐 때는 몸에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셔야 합니다. 수건 하나 휴지 한 장이라도 주머니에 있으면 안 됩니다. 셋째, 백지장 같은 결백한 마음으로 대원님을 대하셔야만 합니다. 넷째, 대원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만 대답을 여쭙지 오라버니 편에서 무슨 말씀이고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다섯째, 대원님께서 내리시는 분부면 어떠한 것이건 절대 복종을 하셔야만 합니다.” 유곤용은 계율을 지키겠노라 다짐하고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근신했다. 교주 전용해는 약속한 정각에 애첩 유정전과 부하 두 사람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검정색 외투를 걸치고, 고동색 모자를 쓰고, 검정색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겉모양만 보면 영험한 신흥종교 교주라기보다는 흡사 보험회사 두취(頭取·사장)처럼 보였다. 유곤용은 부친과 함께 뜰 아래로 쫓아내려가 공손히 대원님을 영접했다. 방안에 모여 앉은 얼굴과 얼굴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교주 전용해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따지고 보면 자네와 나는 4년 전부터 처남매부지간인데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구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대단히 반갑소.” 간단한 인사말이 있은 후 주연이 벌어졌다. 한잔 두잔 술잔이 거듭됨에 따라 전용해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와 누이동생도 이미 서울에 와 있으니 차라리 그대도 가산 전부를 정리해가지고 서울로 오는 것이 어떠한가?” 조부와 부친처럼 속히 재산을 바치라는 말이었다. 유곤용은 긴장한 어조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말씀이나 사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습니다.” ‘신의 아들’ 대원님의 말씀을 감히 거부하는 것은 백백교 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용해는 격분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럼, 내 명령을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리고 옆에 앉은 유정전을 보고 또 한 번 소리쳤다. “네 오라비 잘났다.” 일격을 당한 유곤용은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냈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보인 행동은 교주 전용해를 만나 백백교의 악행을 따지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유곤용은 “백백교의 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 얼치기 종교가 어디 있느냐”며 욕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그런 욕설을 처음 듣는 전용해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나이프’를 빼어들고 유곤용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는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었으니 흉악무도한 그들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서가 될 줄이야 악의 천재인 그도 예상치는 못하였을 것이다. 안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청마루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전용해의 수하들이 교주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유곤용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쇄도하는 수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렸다.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전용해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수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유곤용은 위험을 직감했다. 백백교 교도들이 떼지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대문서 왕십리주재소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1930년 소위 ‘금화사건’ 이후 완전히 소탕된 줄 알았던 백백교가 지하로 잠복해 밀교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경찰은 현장으로 수사대를 급파했다. 수사대가 전용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전용해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지만 전용해의 행방을 찾기 위한 신문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백백교는 교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정조를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비밀 유지를 위해 수백명의 교도를 살해, 암매장한 것이었다. 너무나 흉악한 범죄였기에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보도를 전면 금지했다. 경찰은 두 달이 지난 4월13일에야 보도금지를 해제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백백교는 이름만은 종교단체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순전한 사기, 부녀자 능욕, 강도, 살인 등을 거침없이 한 흉악무도한 결사다. 소위 교주된 자와 그 간부가 되는 자들은 우매한 지방 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낚아 재산을 몰수하고, 부녀자의 정조를 함부로 유린한 후, 그 비밀을 막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했다. 교도 중에서 피살된 자가 사백여 명으로 추정되고, 현재 판명된 자만도 158명에 달한다. 전율할 숫자는 세계범죄사상 전무후무한 범죄기록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1937년 4월13일자 호외) 교도의 사체를 파묻은 백백교의 비밀 아지트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전국에 산재한 20여 곳의 비밀 아지트에서 모두 314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살인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버젓이 자행됐다. ‘벽력사’ 문봉조는 신당리 자택에서 교도를 살해한 후 대담하게도 사체를 자전거에 싣고 백주에 종로와 남대문을 가로질러 한강까지 내달렸다. 서울에서 살해당한 교도 수십명이 한강물에 던져지거나 마포, 청량리 일대에 암매장됐다. 양주군의 ‘천원금광사무소’는 교도 살해에 이용된 비밀 아지트 중 대표적인 곳이다. 당시 전 조선은 황금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금광이 들어섰다. 그러한 시기, 깊은 산골에 세운 비밀 아지트는 금광으로 위장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부근을 금은광구로 출원하고 인근 유지와 관리들을 초청해 성대한 개소식까지 거행했다. 수시로 빈 화약을 터뜨렸기에 바로 인근 주민들조차 그곳이 금광을 가장한 ‘도인장(屠人場)’임을 까맣게 몰랐다. 천포금광 일대에서만 40여 구의 사체가 발굴되었다. 죽을 때 비명이 새어나갈까 우려돼서 화약을 함께 터뜨렸다고 한다.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이 된 금광에 금을 숨긴 다음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전용해는 만일을 대비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고, ‘김두선’을 비롯한 16가지 가명을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전용해의 인상착의는 전적으로 체포된 백백교 핵심 간부들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동거하던 애첩들조차 그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본 적이 없어 생김새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2인자 이경득과 교주의 아들 전종기 정도였다. 경찰은 검거에 나선 지 50여 일 만에 양평군 용문산에서 전용해로 추정되는 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 전종기는 코 아랫부분이 산짐승에게 먹혀 없어진 시체를 보자마자 “아이고 아버지!” 하고 대성통곡했다. 양복 주머니에선 전용해가 차고 다니던 시계와 80여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이 나왔다. 부검 결과 전용해의 사망 시각은 2월21일 정오경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주장했고 자신을 믿는 교도들에게 장생불사를 약속했던 전용해는, 유곤용과 다툰 지 닷새 만에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어 신의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백백교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북 영변 태생의 동학도,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은 금강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1900년 천지신령의 도를 체득한 후 세상에 나왔다. 그는 함남 문천군 운림면을 중심으로 인근 사람들에게 도를 전했다. 그를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1912년 강원도 금화군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정식으로 백도교(白道敎)를 개창했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부근 각처에 지부를 두고 포교에 힘써 1915~16년에는 교도가 1만명을 헤아렸다. 1919년, 교주 전정운이 죽자 교세 확장 방법을 둘러싼 간부들의 대립과 부친 유산 분배를 둘러싼 골육간의 싸움으로 교단이 분열된다. 결국 세 아들이 모두 독립해 각자 교단을 하나씩 차렸다. 1923년 5월 전정운의 맏아들 전용수는 간부 이희용을 표면상의 교주로 하여 경성부 도화정에 본부를 둔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했다. 같은 해 7월 둘째아들 용해는 차병간을 표면상의 교주로 내세워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백백교를 창립했다. 셋째아들 용석도 형들에 지지 않고 경성부 도화정에 도화교(桃花敎)를 세웠다. 파죽지세로 뻗어가던 백백교의 교세는 1930년 7월, 10여 년 전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금화군 오성산에 그의 애첩 4명을 산 채로 파묻은 구악이 폭로돼 한풀 꺾인다. - “일제는 가고 새 세상이 온다” 전용해와 표면상 교주인 차병간은 가까스로 검거망을 벗어났다. 그들은 지방을 전전하며 비밀리에 교단을 재건했다. 이후 전용해는 서울에 본부를 마련하고, 지방에 있는 심복 교도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백백교 간부들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을 순회하며 무지몽매하여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다소 자산이 있는 사람들을 은밀히 포섭했다. 백백교에서는 성별에 따라 외우는 주문이 달랐는데, 남자가 외우는 주문은 아래와 같다.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위의 해괴한 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나무위키) “우리 백백교 교주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천위(天位)에 등극할 인물이다. 지금 일본의 통치 아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백백교 교주의 통솔 하에 독립이 될 것이다. 그때 각 교도는 헌성금(獻誠金)의 다소와 인물의 능력에 따라 대신, 참의, 도지사, 군수, 경찰서장 등에 임명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큰 전쟁이 날 터이니 교도들은 자산을 팔아가지고 상경하라. 교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반드시 그대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다.” “3년 내 조선에 서른 자 이상의 큰 홍수가 날 것이다. 일반백성은 모두 물에 빠져 죽더라도 헌금한 우리 백백교도는 금강산 피신궁(避身宮)에 들어가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홍수 이후 교주 전용해가 등극하여 천위에 오르면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제수할 것이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백백교 간부들은 정감록의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도령과 소리가 비슷한 교주 ‘전도령’이 후천개벽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 호언했다. 관존민비의 봉건적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겠다는 말로, 투기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불로장생, 부귀영화’라는 말로 입교를 권유했다. 일단 백백교에 입교하면 교주의 명령에 따라 토지, 가옥, 가재도구 일체를 정리해 서울 본부로 올라왔다. 교주는 신입 교도가 가지고 온 현금을 헌납하게 했다. 데리고 온 가솔 중 미모의 처녀가 있으면 ‘시녀’로 바치게 했다. 교주는 앵정정 본부로 불려온 시녀에게 ‘신의 행사’를 빙자해 욕정을 채웠다. ‘믿음이 약해’ 교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여성은 심복 간부에게 넘겨줬다. 간부가 거느린 첩은 모두 이러한 ‘절차’를 거친 여성이었다. 교주는 수십명의 첩을 거느렸다. 7~8명의 첩을 거느린 간부도 있었다. 본부에서 교주와 ‘신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여성은 4~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녀가 들어오면 기존의 시녀 중 ‘믿음이 약한’ 시녀는 양주, 양평 등지의 심산에 사는 심복 교도들의 집으로 보내졌다. 교주는 한 달에 몇 번씩 교도들의 집을 돌며 시녀들과 ‘신의 행사’를 치렀다. 전 재산과 자녀를 교주에게 바친 교도에겐 “오래지 않아 백백교의 천하가 올 터이니 그때까지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교도들은 연천, 양평, 철원, 평강 등 산간벽지 교통이 불편한 외딴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교도들은 화전을 일궈 근근이 연명했다. 교단은 교도들이 근처 부락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았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교도들을 수시로 이주시켰다. 교도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처자 형제를 각각 다른 지방으로 보내 격리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가족의 신변 걱정에 교도들은 차마 딴 마음을 품지 못했다.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산간벽지로 보내져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도 임박한 백백교의 세상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은 교도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고 교단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전용해와 측근 간부는 교단에 불만을 품은 교도를 배교분자로 분류했다. 교주는 배교분자를 비밀 아지트로 데리고 가서 ‘기도’를 올려주었다. ‘기도’는 교도를 살해해 암매장하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성인들이 타살된 후 딸린 어린 아이들은 산 채로 암매장됐다. 범죄 사상 초유의 대사건이었던 만큼 수사와 예심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 살인기록 보유자 문봉조 외 간부 24명은 보안법 위반, 살인, 사체유기, 상해치사, 살인강도, 외설, 사기 공갈, 횡령, 공사문서 위변조 등 10개 죄목으로 공판에 회부됐다. 피고인 24명 중 살인에 관련된 피고인만 18명이다. 살인 수효를 들으면 한층 더 전율을 느끼게 된다. 문봉조가 공범자와 함께 죽인 사람이 49회에 129명, 이경득이 61회에 166명, 길서진이 48회에 169명, 길군옥이 34회에 121명, 이한종이 11회에 35명 등이다. 그 죽인 방법도 참혹하기 짝이 없어 마치 사람 죽이는 것을 병아리나 죽이듯 쉽게 여겼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공소사실 진술에만 1시간이 소요됐다. 재판장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9명의 피고인이 살인 및 사체유기 사실을 부인했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을 앉히고 개별심리에 들어갔다. 재판장은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유곤용의 부친 유인호를 일으켜 세우고 신문에 들어갔다. 장로 유인호는 백백교 30년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재판장: 어째서 백백교를 믿었느냐? 유인호: 대원님을 따르면 불로장생 호의호식 한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이 창설한 백도교에 관계했느냐? 유: 예, 그때부터 믿었습니다. 재: 무슨 동기로? 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백도교를 믿으면 모든 재액을 피할 수 있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이냐? 유: 무식해서 교리는 모릅니다. 재: 헌성금은 얼마나 바쳤느냐? 유: 전재산을 모조리 바쳤습니다. 재: 네 딸을 전용해의 첩으로 준 이유는 무엇이냐? 유: 선생께서 요구하기에 바쳤습니다. (‘동아일보’ 1930년 3월14일자) 이어 벽력사 문봉조에 대한 신문에 들어갔다. 문봉조는 백백교의 행동대장격으로 49회에 걸쳐 129명의 교도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재판장: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인가? 문봉조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머지않아 서양은 불로, 동양은 물로 심판을 받아 인류가 전멸하는데 그 심판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백백교를 믿어야 한다, 심판 때 동해에 영산이 떠오르는데 교도들은 전부 피난해서 거기서 홀로 장생하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신이 사람의 모습을 쓰고 내려온 구주라고 하셨습니다. 재: 헌성금이란 어떤 것인가? 문: 입교한 자는 자기 재산을 팔아 교주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재: 검거 당시까지 얼마나 받았는가? 문: 알 수 없습니다. 재: 전용해가 교도에게 돈을 준 일이 있는가? 문: 생활이 가난하면 얼마간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재: 생활이 곤란한 교도 중에는 교주에게 불평을 품은 교도도 있었겠지? 문: 믿음이 엷은 교도 중에는 혹 불평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 그런 불평분자는 모두 피고인들에게 명령해서 죽이게 했다지. 문: 예, 그랬습니다. 재: 전용해는 교도 중에서 딸이나 누이동생이 있는 사람에게 그 딸과 누이동생을 바치라 해서 첩을 삼았다지? 전부 몇 명이나 되는가? 문: 정확한 명수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앵정정에만 34명 있었습니다. 재: 그래 전용해는 매일 술만 먹고 첩과 음탕한 생활을 해왔다지? 문: 밥보다는 술을 좋아하셔서 매일 ‘월계관’이나 ‘백학’ 한 되쯤씩 자셨습니다. 재: 전용해는 자기 재산은 없이 교도에게서 모은 돈을 물 쓰듯 하여 방탕하고 사치한 생활을 했는가? 문: 예. 재: 그런 음탕한 생활을 하는 전용해를 어떻게 신의 아들이라 믿을 수 있었는가? 문: 지금 생각하니 잘못 믿고 있었습니다. 술 먹은 때는 그렇지만 선생께서 가르치는 말은 모두 훌륭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재: 그래, 아직도 전용해를 신의 아들로 믿는가? 문: 천만에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 어리석어서 속았던 걸 깨달았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문봉조를 비롯한 피고인 전원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고 했지만, 교주를 지칭할 때 꼬박꼬박 경어를 썼다. 오랜 습관 때문인지 뉘우친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백백교의 2인자 이경득은 전용해의 인격을 숭배해서 믿었는지 반역하면 죽이는 것이 두려워 믿었는지 묻는 질문에 정말로 신의 아들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불평을 품고 있을 때마다 교주가 “이 놈 네가 불평을 품고 있구나. 다른 데 가고 싶거든 가거라” 하여 독심술을 가졌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모두 교주가 진짜 ‘신의 아들’인 것으로 믿고 백백교에 귀의했다고 진술했다. 23명의 교도를 살해한 이창문은 백백교만 믿으면 가족의 병도 낫고 또 불로장수하는 줄만 알고 입교했으나 교주가 자칫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알고 무서워 도망까지 해보았지만 교주 밑에 남기고 온 처자의 목숨이 염려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고 말해 재판정을 숙연케 했다. - 1940년 3월15일, 수은주가 영하 7℃까지 떨어지고 연 이틀 눈이 내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314인의 원귀가 내린 저주라 말했다. 때늦은 혹한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제2회 공판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진행됐다. 314건의 살인혐의가 차례로 확인되었다. 재판장: 1930년 8월 둘이서 제2세 교주 우광현을 무주군 설천면 야산에서 목매 죽였는가? 이경득, 길서진: 예. 재: 이유는? 이경득, 길서진: 모릅니다. 대원님께서 죽이라고 해서 죽였을 뿐입니다. 재: 1931년 2월 20세가량의 여자와 그 젖먹이 애를 죽였나? 이경득, 길서진: 예. (중략) 재: 1931년 5월 교주의 첩 문봉례를 죽일 때 업고 가던 젖먹이도 죽였는가? 문봉조 : 문봉례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는 안 죽였습니다. 대원님께서는 애까지 죽이라 하셨지만 이경득이가 “어린애야 무슨 죄가 있느냐?”며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젖 먹다가 어미를 잃은 계집애 처지가 하도 가련해서 집에 데려다가 기르고 있습니다. 재: 문봉례를 죽인 이유는? 문: 처음엔 몰랐습니다만 후에 알고 보니 오빠를 죽인 것을 알까봐 죽이란 것이었습니다. 재: 어째 친형인 문봉진과 그 가족을 죽였는가? 문: 자꾸 서울 오겠다는 걸 말렸지만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상경시켰습니다. 어느 날 대원님께서 먼저 “봉진은 어떤가?” 하시는 태도가 죽이자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형을 안 죽이면 나도 죽겠고 내 가족 친척도 남모르게 죽겠기에 형을 죽였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피고인들은 아녀자는 물론 젖먹이 어린애, 친형까지 대원님의 명이라면 서슴없이 도륙했다. 사흘 후 속개된 제3공판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계속됐다. 심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살인 사실을 한 묶음 두 묶음씩 통틀어 심리했다. 피고인이 부인하면 부인하는 대로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다. 몇 가지 혐의에 대해 부인해도 판결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00건의 살인혐의 중 99건의 혐의를 부인해도 판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살인사건은 1932년 이후 갑자기 증가했다. 그때부터 불평분자 본인만 아니라 한 가족 전부를 몰살해버린 탓이었다. 불평을 가진 자만이 죽은 것도 아니었다. 먹여 살리기에 귀찮다든가 한 장소에 너무 많은 교도가 있어 경찰에 발각될 우려가 있어 죽인 교도도 적지 않았다. 1년은 족히 걸리리라는 예상과 달리 공판은 일주일, 단 4회만에 종결됐다. 검사는 살인과 관련된 18인의 피고인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먼저 피고 가족석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연이어 나이 어린 피고인 몇 명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과오를 뉘우치고 흘리는 눈물인지 목숨이 아까워 흘리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재판장은 가담 정도가 경미한 피고인 4명만 징역 7~15년으로 감형하고 나머지 14명에게 검사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출처] ‘백백교(白白敎) 사건’ 공판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 읽으면서 많이 놀랍지 않아? 지금 '그' 종교의 실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야. 물론 살인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라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약해져 있고, 제대로 된 법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 저렇게 안하무인일 수 있었겠지.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서 나중의 구원을 약속한 후 재산을 다 헌납하게 하고, 가족까지 끌어들이고 여색을 취하는 게 정말이지 어떤 종교와 같지 않아?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주고, 처음부터 순박하면서 재산이 있는 사람을 노리는데다 사바사로 그가 혹할 말로 꼬드기고, 게다가 마음 먹고 빠져나오려고 해도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 있어서 힘든 일인 것 까지. 저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밝혀진 것만) 몇백명을 살인했기 때문에 모두 큰 벌을 받게 되었지만 지금의 종교는 어떨까. 훨씬 더 교묘하게 사회에 파고 들어 있어서 잘 걸러내 질 지도 모르겠네. 부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 아직도 '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한 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해. 그들은 너를 구원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너의 심약한 마음을 부풀려 잡아 먹는 괴물들일 뿐이니까. 참고로 사형을 선고받은 저들에게 실제로 사형이 집행이 됐는지는 몰라.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까. 아.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 일제는 범죄형 두개골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교주인 전용해의 머리를 잘라내서 포르말린에 절여 범죄형 두개골 표본으로 만들었다고 해. 정말 일본은 박제하는 걸 좋아하지 참? 해방 후에는 국과수가 (이유도 모른 채)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에야 화장을 했고. 약한 사람들 마음을 좀먹고 살았던 사이비 교주의 마지막은 이 정도로 비참해야지. 암.
비행기 명당자리 차지하기!!
안녕하세요! My simcafe 입니다. 미국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면 정말 몸과 마음이 지쳐요.ㅠ.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이코노미석을 선택한 모든 백성들의 고충아닐까요ㅜㅜㅜㅜㅜ 저는 비행기 타면 완전 촌스럽게 약간의 멀미를 하는 관계로 비행기 타기전에 약을 먹고 비행하는 내내 잠만잔답니다. 그리고 기내식 먹고 또자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단거리 구간 (국내선이나 일본. 중국정도) 의 경우2-3시간정도는 화장실을 안가도 견딜만 하기때문에 아래를 내려다 볼수있는 창가쪽을 선호해요. 하지만 장거리의 경우 최소 2번이상 화장실을 가게되고 스트레칭도 중간중간해야하고 몸을 움직을 공간도 있는 복도쪽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저는 약을먹고 기절한듯 자는 타입이라.. 옆사람에게 깨워도 괜찮으니 언제든 필요할때 얘기하라고 하죠.ㅎ.ㅎㅎ 좁은공간에 많이사람들이 있는 만큼 위치가 어디인지. 옆좌석에 어떤사람이 탔는지에 따라서도 여행이 즐거울수도. 힘들수도 있는데요! 옆좌석 사람을 고를순 없어도 비행기 명당자리는 우리가 차지해 보자구요- 어디가 비행기 명당자리 일까요?? 왜 명당일까요??? 어떻게 그자리를 차지할까요???? 사진 출처: http://insid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5/2013042501977.html?Dep0=twitter 비행기의 최고 명당자리는 당연 비상구 옆 좌석 (Bulk seat) 이라고 해요. 비상구 공간확보를 위해 좌석이 멀리 떨어져 있어 다리를 뻗을수도 있고 창문가에 앉은 승객이 옆사람 눈치안보고 마음대로 왔다갔다가 할수도 있구요. 하지만 비상구 옆 좌석은 "비상시 비상구를 개방하고, 승무원을 도와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 고 건설교통부 고시에 규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 청력. 시력.언어장에가 없어야 하고 비상구를 열거나 장애물을 제가하거나 비상시 승무원과 승객의 탈출을 도울수 있는 신체 건강한 15세 이상의 승객에게만 배정해요. 하지만 꼭 남자만 가능한건 아니고 여자분들도 앉을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규정에 따를건지 물어보고 동의를 해야만 좌석 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화나 인터넷 예약이 불가능 합니다. 외국 항공사에서는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확인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미리 영어공부를 조금 해놓으시면 좋은 자리 득템에 도움이 될꺼 같네요^^ 영어못하는것도 서러운데... 명당에도 못앉는다니... 내일부터 영어공부???ㅋㅋ 아! 비행기의 모양에 따라 벌크석 창가쪽 안쪽으로 튀어나와 무릎이 닿을만큼 공간이 좁을수도 있고 화장실 앞일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번잡할수 있어요. (자료출처: 한국소비자원) 그 다음은 각 구역별 제일 앞자리 입니다. 화장실이나 승무원들이 기내식이나 다른 준비를 하는 공간인 갤리 (galley) 를 중심으로 3구영 정도로 나누어 지는데 앞사람이 없으니 다리도 뻗고 뒤쪽으로 의자를 젖히는 사람도 없어 편하게 갈수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개개인의 스크린이 있지만 큰 스크린이 앞에 있어서 영화관에 온것처럼 영화를 볼수도 있구요. 하지만 어린 아가들을 위한 요람을 거는 자리라 보통 우선순위는 어린아이와 동반하는 부모님들께 돌아갑니다. 아이들과 그닥 친하지 않으신분들이나 주변이 시끄러우면 잠자기 힘들거나 밝으면 잠을 못자는 분들께는 비추에요. 그리고 같은 비행기라 해도 항공사 마다 기종별로 좌석 위치나 갯수 등이 다르기 때문에 시트구루 (WWW.SEATGURU.COM) 같은 싸이트에서 미리 안내받을수 있어요. 항공사명 (Airline), 항공편명(Flight#),출국일(Date) 를 입력하면 항공기 좌석지도를 볼수있는데 색깔로 좋은좌석/안좋은 좌석들을 구분하여 알려줘요. ↓참고하세요^^ (출처:WWW.SEATGURU.COM) 그럼 좋은 자리를 찾아봤으니 안좋은 자리도 찾아볼까요?? -승객들이 오고가는 화장실 주변은 밤이고 낮이고 시끄럽고 번잡해요. -항공기 엔진의 뒤에 위치한 좌석의 경우 엔진소음이 앞쪽보다 더 크구요. -5열중 가운데 자리는 창가쪽과 복도의 중간이라 풍경도 없고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 비행기에 따라 중간이 4-5좌석정도가 될때가 있는데 성수기에 5열 중간.... 버스라면 그냥 서서가라고 권할정도로 비추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리들도 명당중의 최고명당이 될수도 있으니! 이름하야... 비수기!!!!!!!!!!!!!!!!!!!!!!!!!!!!! 비수기 장거리 비행시 좌석이 통재로 비어있을 경우 3-4자리를 혼자 독차지 할수있어서 누워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항공기내에 자리가 많이 비어있을경우 눈치 샤샤샥 보시고 빨리 자리를 차지하는것도 도움이 될꺼에요.. ㅎㅎㅎ (자료출처: 주부생활) 자~ 대망의 명당자리 차지하는 방법을 공개합니다. ㅎㅎㅎㅎ 우선! 부지런한 새가 애벌레도 많이 먹는법! 비상구 옆자리를 제외한 자리들은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할 수 있도록 온라인 좌석 예약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으니 미리미리 들어가서 예약을 하는게 좋아요. 항공사 홈페이지 혹은 앱 - 사전 좌석배정 서비스 - 예약번호 혹은 회원번호 - 좌석 선택 (대한항공 이코노미석은 출발일 기준 90일 전부터 출발시각 48시간 전까지 좌석 얘약 가능하며 일등석. 비지니스 석은 90일 전부터 24시간 전까지 예약 가능하며 출발 1시간 30분 전가지 탑승수속 못하면 취소된다고 하니 주의 하시고 아시아나는 354일 전부터 국내선은 출발 2시간 전까지 국제선은 3시간 전까지 가능하고 국제선은 항공기 출발 70분, 국내선은 20분 전까지 공항 카운터에서 수속 완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리 예약 했어도 출발 당일 너무 늦게 탑승수속을 하시면 다른 승객에게 그 자리가 돌아갈 수 있으니 당일에도 시간을 넉넉하고 잡고 가시는게 좋겠죠??^^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 하지 못했다면 출발당일 일찍 공항에 나가 남아있는 자리중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를수 있어요- 그리고 최고 명당인 비상구 옆자리는 일찍오는 사람들에게만 내어준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국도심공항 체크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남들보다 일찍 체크인을 할수있는데 당일 새벽 부터 탐승 3시간 전까지 체크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요. - 열심히 부지런 떨어 좋은자리 얻어셔서 장거리 비행에 지쳐 쓰러지지 마세요^^
전생몽(前生夢)
전생몽 꿈에서 나는 뭐 하나 잘할것 없는 (셈은 빠른)그저 곱상하고 귀티나게 생긴 여자아이였고 내 소꿉친구는 살집은 좀 있지만 그것마저 내눈엔 측은하고 귀여운 춤과 노래를 타고난 퇴기(전직기생)의 넷째딸이었어. (겨우 두시간 잔거야?억울억울) 우린 성벽옆으로 개천이 흐르는 성근처에서 움막같은 불법가건물을 이어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도성안 하층민들이었는데 나나 친구나 아버지의 존재가 안느껴졌어.특히 내 친구의 아버지는 어딘가 부역을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것 같았고 실내에 기둥이 너무 많은 우리집의 한쪽벽에는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군관복장에 군모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서 찍은것이었어.황군?(구한말?1930년대?) 흑백사진이고 꿈속의 나는 무심하고 익숙한듯 그것이 벽에 걸린지도 모르는지 휙 지나쳤어. (소녀가 보는것,듣는것,겪는것들만 내가 간접경험할수가 있더라,이젠 꾸다꾸다 이런 패널티로 시작을 하네,속좀 탔어) 도성안 인텔리집안의 소년 (이제 겨우 많이 봐도 14-15쯤 된 검은교복차림)이 나(11살-12살쯤)를 찾아와 사진모델 일을 하면 친삼촌이 돈을 많이 챙겨준다고 했다며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급히 가까운 초대궐같은 가옥엘 들어갔다오며 옷도 하얀스웨터에 진회색바지차림에 자전거를 끌고왔어. 꼬맹이들 난리났네.자전거클락션을 울려보고 패달돌리고 난리북새통인데 어떻게 급히 친구네 세째언니가(권번에 저학급로 출석하는듯한데 다리한쪽이 살짝불편해보였어) 엄마의 경대를 들고나와 급하게 우릴 낮도깨비로 분장시켜줬어.이 언니,우리가 어리다고 너무 막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친구도? 친구는 어디 활성영화같은걸 찍는데 목소리녹음을 뜨기로 했대. 박가분같은 허연분칠갑에 눈도 제대로 못뜨고 거울을 찾아 더듬거리는데 흰스웨트오빠(구한말맞나봐,남자이름도 우리이름도 요상한 일본이름,잘못알아듣겠더라)가 후욱 불어주는데 버섯포자처럼 날리는 분가루들이 판자집에 엉성한 벽들틈사이로 들이운 햇살에 깨(플로아트에서반짝이효과)친것처럼 반짝이는데 내 맘이 다 설레더라.(둘이 풋사랑모드인듯한데 모르는것 같았어) 내가 지금생의 12살, 이렇게 눈부시게 해맑게 웃었던가(이번생보다 바탕은 더 이쁘고 몸집이 작더라,못먹고 자랐나봐) 싶게 정말 예쁘게도 서로 눈맞추고 마주보며 웃더라.반달눈이야,둘다!이햐~ 살인미소가 무려 세트네.무슨 민폐야 그렇게 난 카메라앞에서 이런저런 옷(스튜디오뒤 탈의실,겁나 춥더만 어린것이 고분고분 착하게도 수십벌을 갈아입고,갑질을 모르네.착한건지 어린건지 분리되면 한수 가르쳐주고싶대.현생의 ㅊㅇ가 전생의 ㄹㅎㄲ에게...창시개명?한국사머리아포) 그렇게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친구는 녹음을 마치고 돌아와 친구가 얻어온 꽃떡과 과자같은걸 동네친구,동생들이랑 나눠 먹고있는데 우리엄마(어라,진짜 엄마 닮안...근데 드쎄)가 와서는 내친구의 웃도리를 확 벗기더니 그 주머니에서 지전을 가로채고는 웃외투를 확던져버리곤 중얼거리며 가더라. "기생핏줄 아니랄까봐..." ('엄마!부모디스는 반칙이지!'우리엄마,전생에도 좀 못땠었구나!) 성벽을 끼고 인가쪽으로 내려가는 엄마의 뒤통수에다 "엄마,이모(친구엄마)한테 반 줘야돼!" 훽 돌아보며 "시끄럿!(내가) 그동안 못받은돈이 얼만데,내 이년(친구엄마)을 오늘 기름이라도 비틀어짜 받아내고 말지.어디 어린것들 내돌리며 돈은 돈대로 챙기고(우린 처음해본 일인데,그동안 이런일로 자식팔아 뒷구멍으로 챙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듯,우리는 처음 간거지만 합리적인 의심이긴 해)불쌍한척 행세하고 있었어,불쌍년!" "아니,그래도 ㅁㅇㄲ몫이 거기 반있으니까 엄마가 챙겨줘야돼,알았지?" (우리엄마 전생 걸크러쉬보소,우와!욕이 너무너무 찰져,이 판자촌에서 서열이 되시나보네,지리고!) 엄마가 친구에게 내던지고 간 웃외투를 줏어 걸쳐주며 "좁쌀살돈은 줄꺼야,ㅎㅎ 걱정마!" (시대적 가난인지,업인지... 그래서 우리엄마가 기승전돈돈돈이셨구나.) 빨래터 내려가는 돌계단옆 성벽에 앉아 해지며 제법 쌀쌀한 날씨에 친구랑 어깨동무를 하곤 마주보며 웃다 성밖을 내다보는데 내 눈은 자꾸만 친구의 외투로 곁눈질이 가. '이 촉감,이 재단,이 소재...너무 낯설어.' 이 느낌,아주 어렸을때 내가 어느집에 장식된 유리관안 기모노인형을 만져봤을때의 그 느낌과 흡사한데,얜(친구) 허리에 뭘 이리 둘렀네.그러고보니 좀전에 엄마도 게다를 신었네.우리 엄마는 비녀머리도 아니네.친구언니도 옷차림,언행이... 가재도구들도 많이 낯설어,집구조들도 그냥 판자촌느낌이 아니라 마루형에..여긴 어디야? 왜 움막같은 집안에 화로같은게 중앙에 있었지? 일애니에서 보던 ...설마...?! 놀라 깨버렸어. 생각도 못했어.개화기쯤으로 생각했는데,훌쩍! 놀라깨지말고 현생인연들과 겹치는 얼굴들도 조사해볼껄...아꿉! 엄마는 전생에도 우리 엄마야? 전생패널티 참! 전생엄마도 세상든든했겠어. 보고싶은 엄마♡
1990년대, 영화 주인공처럼
Editor Comment 빨리 변하고 사라지는 요즘, 언제부터인가 옛 추억을 회고하는 것이 트렌드로 다가왔다. 몰라도 그리운 시절, 겪어보지 않았어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시대 1990년대. 왜 우리는 90년대에 열광할까. 7080 시대에 청춘을 보내지도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다. 90년대는 과거이지만,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라고나 할까.그리고 90년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청청패션'.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룩을 추구하던 당시, 거리 곳곳에는 온갖 종류의 데님이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춘의 심볼이라 일컬었던 그때 그 스타일. 그런데 왜인지 지금 봐도 어색함이 없다. 돌고 도는 유행 만큼이나 마치 어제의 우리같은 모습. 이는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청바지, 청청 등 관련 키워드만 떠올려도 수많은 캐릭터가 연상된다. " 그때 그 영화 속 데님 패션 " 🎬 <델마와 루이스> 미국 서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웨스턴 스타일의 데님과 셔츠, 그리고 카우보이 부츠로 완성된 델마 & 루이스의 스타일은 지금 봐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영화 속 패션을 따라 하고 싶을 정도.굳이 과장된 설명 없이 스타일 하나만으로 흘러 가는 영화 흐름은극 초반의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점차 거칠고 강인한 분위기로 변해가는 델마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릴 달린 블라우스에서 검은 해골이 프린트된 티셔츠와 데님을 착용하며 점차 바뀌어 가는 그녀. 이처럼 옷차림을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영화는 패션은 물론 스토리와 색감, 음악까지 모두가 완벽하게 갖춰진 작품이다. #STYLE GUIDE * 브랜드명을 클릭하면 판매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탑 필립 플레인(PHILIPP PLEIN)|98만 원대 팬츠 리바이스(Levi’s)|15만 원대 모자 메종 미쉘(MAISON MICHEL)|69만 원대 부츠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111만 원대 선글라스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32만 원대 🎬 <트레인스포팅> 반항기 가득한 주인공 4명. 마약 중독자 친구들의 삶을 그린 영화인만큼, 제멋대로인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영화는 락시크, 펑크 등 다채로운 스타일을 넘나든다. 청춘을 질주하는 그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반항적인 마스크와 슬림한 체형의 이완 맥그리거는 핏이 타이트한 진에 크롭 티셔츠, 컨버스를 착용하고 거친 매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있으면 더욱 빛을 발하는 가지각색의 스타일. #STYLE GUIDE * 브랜드명을 클릭하면 판매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아우터 폴 스미스(Paul Smith)|222만 원대 탑 팔라스(palace)|15만 원대 팬츠 리바이스(Levi’s)|18만 원대 벨트 구찌(Gucci)|57만 원대 스니커 컨버스(CONVERSE)|9만 원대 🎬 <볼륨을 높여라> 위험하지만 짜릿한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볼륨을 높여라>.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주인공 마이크의 1인 방송이 시작된다. 어른들의 이중성과 폭력에 일침을 가하고 또래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는 그 시대의 DJ 하드 해리. 뾰족한 청춘들의 모습을 흥미롭고 낭만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스토리 뿐 아니라, 음악 그리고 당시 학생들의 패션까지 놓칠 구석이 없다. 특히, 레더 베스트와 청재킷을 레이어드하고 플라워 원피스 위에 착용한 데님재킷은 촌스러운 듯 가장 그 시대를 대변한 패션. #STYLE GUIDE * 브랜드명을 클릭하면 판매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재킷 소울랜드(SOULLAND)|21만 원대 베스트 미스비헤이브(MISBHV)|154만 원대 셔츠 디젤(DIESEL)|28만 원대 팬츠 폴라 스케이트보드(Polar Skateboard)|13만 원대 벨트 디젤(DIESEL)|24만 원대 안경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29만 원대 워커 팀버랜드(Timberland)|15만 원대 🎬 <쇼생크탈출> 핀 스트라이프 셔츠에 헌팅캡, 빈티지한 청재킷과 데님 팬츠를 착용한 이들은 언뜻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워크웨어 스타일이다. 제각각의 개성처럼 데님 롱 재킷과 점프 슈트 등 각기 다른 죄수복 스타일링을 보여줘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 이미 저명한 명작이라 본 적이 있다면, 이번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패션을 곱씹으면서 다시 보자. 패션을 전혀 기대 못한 영화에서 또 다른 세련된 감각을 볼 수 있을 테니. #STYLE GUIDE * 브랜드명을 클릭하면 판매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재킷 비즈빔(Visvim)|232만 원대 셔츠 와이엠씨(YMC)|15만 원대 팬츠 비즈빔(Visvim)|177만 원대 캡 휴먼 메이드(HUMAN MADE)|18만 원대 서스펜더 페버브룩(Favourbrook)|15만 원대 부츠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21만 원대 🎬 <비트> '너 공부 잘하니? 그래 가지고 대학 갈 수 있겠어?' 정우성과 고소영의 앳된 얼굴과 함께 현실적인 대사들로 많은 공감을 샀던 <비트>. 나이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 잘 어울리는 정우성은 영화 내내 청재킷 혹은 청바지로 캐주얼하면서 '꾸안꾸' 스타일의 정석을 보여준다. 데님은 물론 퍼재킷, 타이다이 티셔츠, 히피펌, 코 피어싱 등 13년이 지난 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패션들이 지금 세대들에겐 신선한 충격일까. 장면 하나하나 어색하고 낯설지만 묘한 공통점이 이 영화를 대단히 매력적으로 만든다. #STYLE GUIDE * 브랜드명을 클릭하면 판매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아우터 리바이스(Levi’s)|10만 원대 탑 캘빈클라인(Calvin Klein)|5만 원대 티셔츠 나이키(Nike)|2만 원대 팬츠 리바이스(Levi’s)|8만 원대 스니커 나이키(Nike)|18만 원대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영화 <하치 이야기>가 알려주지 않은 충격적인 결말
1923년 가을, 일본 아키타 현의 한 농장에서 아키타견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924년, 강아지는 도쿄 시부야에 있는 우에노 교수에게 입양되었고, 우에노 교수는 강아지에게 하치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일본 시부야 역 앞에 있는 동상의 그 하치코입니다. 우에노 교수를 무척 좋아했던 하치코는 교수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매일 시부야 역으로 마중을 나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1925년, 우에노 교수가 강의 중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치코는 그 시각에도 우에노 교수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하치코는 우에노 교수를 기다렸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치코는 매일 시부야 역 앞으로 마중 나가 돌아오지 않는 보호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하치코는 역 앞에 앉아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속에 우에노 교수가 섞여 있기를 바랐습니다. 우에노 교수가 죽은 지 7년이 지난 1932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역 앞에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듯 조용히 앉아 있는 하치코의 이야기가 기사에 실렸습니다. 그때부터 하치코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시부야 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하치코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거나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기다린 지 9년째인 1934년, 일본의 모든 교사와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우정에 대해 가르칠 때면 항상 하치코를 예로 들었습니다. 하치코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그해 하치코의 충성을 기리는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935년, 11살인 하치는 암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결국 눈을 감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하치코의 죽음을 다 함께 슬퍼했고, 하치코를 우에노 교수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10년 만의 재회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하치코의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일본 국립과학 박물관에 하치코의 생전 모습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위 사진은 하치코의 실제 가죽을 이용해 만든 박제입니다.  하치코의 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그럼 하치코의 가죽을 벗긴 후 뼈와 몸만 교수 옆에 묻은 것이냐'며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치코를 기리기 위한 당시 그들만의 방법이었을 것'이라며 옹호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하치코를 기리기 위한 그들만의 순수한 의도였을지 아니면 전시를 염두에 둔 행위인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랑하는 존재를 박제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사고방식이 아닌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걸까요? 위 콘텐츠의 풀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클릭해주세요!
가족을 찾아 드립니다 #훈훈
무슨 좀비라도 돌아다니는 줄 알겠어여. 길에 사람이 왤케 없죠?! 그냥 잘 씻고 안씻은 손으론 얼굴 안 만지고 정상적인 생활 하면 - 엄청 가까운 사람이 확진자가 아닌 한은 - 안전하니까 너무 지구 멸망한 것 처럼 그르지마요.. 라고 말해도 다들 무서워하실거니까 훈훈한 이야기 같이 보려고 여요사요가 와ssup맨! 우선 얘부터 보실래여? 아니 인형이 셋이나 있넹? 오딨는지 못 찾겠어 아가야 +_+ 너무 기여운 아가는... 누군가의 개는 아니에여.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랍니다. 이 아이도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버려진 아이. 너무 기엽져 +_+ 근데 어떻게 이르케 깨끗하고 예쁘고 사랑받는 표정을 지을 수가 있냐구여? 그건 바로... 미시시피에 있는 한 호텔의 프로그램 덕분이랍니다! 'Fostering Hope'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미시시피 힐튼호텔 지사 중 한 곳의 로비에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이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호텔의 투숙객들에게 이 개들을 위탁하게 하는 거예여. 이 호텔은 한 달 이상의 장기 투숙객이 대부분이라 가능한 일인거져. 원한다면 누구나, 호텔에 머무는 동안 이 개들을 자신이 묵는 방에 들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여! 연간 8000여마리의 개를 수용할 수 있는 이 곳. 그래서 댕댕이들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기에는 안성맞춤이져. 외로운 강아지들 뿐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필요한 줄도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가족을 찾아 주는 곳 물론 위안에서 끝나는 건 아니구 이르케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가들을 어떻게 두고 떠나겠어여. 지내는 동안 정이 한참 들어 버렸는데 +_+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이 개들의 입양 절차를 밟아 준다구 해여! 실제로 벌써 34마리의 댕댕이들이 함께 머물던 사람들의 집으로 입양되어 갔다고... 물론 호텔에서 생각했을 때 적합한 주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입양을 거부할 수도 있대여. 너무 사랑스러운 서비스 아닌가여 +_+ 물론 여러모로 제대로 된 관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도해 봄직한 일인 것 같아여. 가족을 찾는 댕댕이들에게 맞는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여. 여기가 어딘지 궁금한 분들은 Home2 Suites by Hilton Biloxi North/D'Iberville를 찾아 보시길! 그럼 훈훈한 소식 뿌리고 사요사요는 또 떠납니당 다들 미워하지말고 화내지말고 서로 돕고 사랑합시다..+_+
지극히 개인적인 혼종라면 레시피 TOP 5
Editor Comment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약 74개의 라면을 먹어 세계에서 1인당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이 얼마나 라면에 의존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오죽하면, 저마다 특색 있는 라면 레시피를 하나쯤 갖고 있을 정도니. 그 대표적인 현상은 짜파구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으며 시작된 혼종라면의 열풍은 이제 점차 영역을 넓혀 하나의 문화로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간편하게 섞기만 하면 완성되기 때문에 요리를 못하는 이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혼종라면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혹, 아직도 혼종라면에 도전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에디터가 추천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혼종라면 레시피 TOP 5를 아래에서 눈여겨보길 바란다. TOP 5 - 굴진짬뽕 + 쇠고기 미역국라면 확실한 해장을 원한다면 오뚜기가 만든 굴진짬뽕과 쇠고기 미역국라면을 믹스한 굴미역짬뽕을 추천한다. 레시피는 두 라면의 액체, 건더기 스프를 순서대로 넣은 후 라면을 넣어주면 끝. 진한 사골 국물과 굴 특유의 향이 묘한 조합을 이뤄 바다 내음 가득한 짬뽕 맛을 선사한다. 생굴 또는 매생이를 넣어 만들면 조금 더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으니 참고해 볼 것. TOP 4 - 너구리 + 카레라면 홍대 피시방 알바생이 레시피를 공유하며 화제를 모은 카구리. 깊은 해물 맛에 카레 향을 더한 독특한 국물이 중독성 있어 밥을 말아 먹고 싶게 만든다. 레시피는 끓는 물에 플레이크와 스프를 다음 면을 넣고 5분 정도 끓이면 완성. 이때 너구리 스프는 양을 반으로 줄여 끓이면 된다. 카레맛이 조금 덜 나 아쉽다면 고형 카레 1조각을 넣어주면 찐득한 카레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감칠맛을 더 원한다면 노른자를 살포시 얹어보자. TOP 3 - 간짬뽕 + 스파게티 군대 PX 별미로 유명한 짬파게티. 에디터 역시 군 시절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먹었을 정도로 강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마치 매콤 달콤한 떡꼬치 양념을 연상케하는 소스에 면을 비벼 먹는 느낌이랄까. 레시피는 건더기 스프와 면을 모두 넣어 6분간 끓여준 후 물을 버려준다. 그다음 액체스프와 가루스프를 1:1 비율로 넣어주면 완성.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더하고 싶다면 집에 먹다 남은 치즈를 살짝 녹여 섞어보길. TOP 2 - 틈새라면 + 리얼치즈라면 입안이 얼얼할 정도의 강렬한 매운맛과 부드럽고 고소한 치즈의 만남. 바로, 틈새치즈라면 되시겠다. 조리 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두 라면을 섞어 먹었을 때 기준 물양을 800ml로 꼭 맞춰주는 것. 맵기 조절은 틈새라면의 스프로 조절해주면 된다. 라면을 그릇에 담은 후 리얼치즈라면에 들어있는 치즈 소스를 뿌려주면 완성. 더 강력한 매운맛을 원한다면 청양고추를 슬라이스해 장식으로 얹는다. TOP 1 - 불닭볶음탕면 + 짜파게티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마성의 레시피, 불닭짜파게티탕면. 다른 혼종라면에 비해 레시피가 다소 번거롭지만 맛은 보장한다. 불닭볶음면 대신 붉닭볶음탕면을 고른 이유는 화끈한 국물이 이 레시피의 생명이기 때문. 레시피는 먼저 짜파게티 분말스프와 건더기 그리고 두 면을 모두 넣어주고 끓인다. 면이 끓기 시작하면 불닭볶음탕면의 소스를 반 정도 넣어준 후 채선 파를 얹고 비벼주면 끝. 국물이 면사이로 자박하게 스며들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으니 물양과 불 조절에 유의하자.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