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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의 대사가 당신의 마음에 꽂히는 이유

‘아, 이거 왜 이렇게 내 이야기냐.’
<또 오해영>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 독자들이 많을 거다. 드라마 속 해영은 자신의 상처를 뚜렷이 드러낸다. 펑펑 울고, 있는 힘껏 슬퍼한 후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직면한다. 그리고 담담히 흘러나오는 나레이션.
해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마음을 후려친다. 드라마 속 명대사를 뽑았다. 당신의 마음이 짠해진 이유를 덧붙였다.

"난 내가, 여기서 좀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 여전히…"

해영은 동명이인 ‘이쁜 오해영’ 때문에 학창시절 늘 비교당하고, 못난이 취급을 받았다. 더 싫은 건, 그 구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오해영의 존재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완벽한 그녀. 왜 하필 이름이 같아서 조용히 살 수 없는 건지.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열등감에 시달린 적이 있을 거다. 세상 다른 사람들 모두 멀쩡히 살고 있고, 당신 혼자만 열등감을 숨기고 있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세상은 한 줌의 ‘잘난 사람’과 대다수의 ‘보통 사람’으로 이뤄지는 반면, 모두의 관심은 그 한줌에게로 쏟아지는 탓에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열등감을 안고 살아간다.
당신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텐데, 열등감이 도사리는 마음 한 켠엔 자신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있다. 그건 논리가 아니다. 나마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쌍해진다는 일종의 주장이다.
과거의 상처를 털어놓던 해영이 도경에게 말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줄 알았는데 걔 옆에만 가면 난 들러리. 근데 만약에,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걔가 된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난 걔가 되길 선택할까? 안 하겠더라고요.”라고. 해영에게 던지는 당신의 응원은 열등감에 맞서는 당신을 향한 응원이다.

"별일 아니라는 말보다, 괜찮을 거란 말보다, 나랑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백배 천배 위로가 된다. 한 대 맞고 잠시 쓰러져 있던 것뿐. 일어나자 해영아."

결혼 전날 사랑했던 남자에게 차이고 방황하는 해영. 고꾸라지게 술을 먹고, 폭식하고, 토하고, 비틀거리며 산다.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악을 쓴다. 그러던 해영에게 불행한 눈빛을 남자 도경이 나타난다.
완벽남 도경은 해영에게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남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리고, ‘네가 겪은 건 별일 맞다고, 나도 같은 상처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마음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이래이래서 당신은 슬프지 않습니다”라는 위로 따위 상처 입은 우리에겐 아무 쓸모가 없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건 상처 입고 옆에 쓰러져 있는 ‘상처 친구’다. ‘나도 너와 같은 상처가 있어’라고 말하는 상처 친구를 통해, 우리는 고통이 나에게만 주어진 유별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여자는 떠난 남자 욕하지 않아요. 자기한테 짜게 군 남자를 욕하지. 짜게 굴지 마요. 누구한테도."

여자에는 두 가지 전남친이 있다. 사랑할 만큼 다 해보고 지쳐 떨어져 나간 전남친. 사랑할 때도 곁을 주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다 이별을 고한 전남친. 모든 게 지난 후에 돌아보면, 내가 사랑받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내게 ‘짜게 군 남자’다. 그냥 떠난 남자는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헤어지길 잘했다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짜게 군 남자는 두고두고 욕을 하게 된다. 제대로 사랑받은 순간이 없는 것 같고, 사랑한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영에게 태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일명 나쁜 새끼. ‘네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어’ 라는 말로 이별을 선언한, 짜도 너무 짜게 군 남자.

"1급수에 사는 물고기와 3급수에 사는 물고기는 서로 만날 일이 없다. 1급수에 사는 이쁜 오해영은 1급수의 남자들을 만났고, 3급수였던 나는 3급수의 남자를 만났다."

해영은 도경의 전 여친이 ‘이쁜 오해영’임을 알게 된다. 지난일이라고 생각했던 열등감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해영은 최근 이별의 이유까지 ‘자신의 부족함’에서 찾아버린다. 내 급이 아닌 남자를 만나서 헤어진 거라고 말이다.
사랑엔 이유가 없다지만, 우리는 속으로 급수를 고려한다. 내 외모와 능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데, 과분한 사람을 만나면 사랑 받으면서도 불안하다. 언젠가 그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더 예쁘고 잘난 여자를 찾아 떠날 것 같다. 이런 열등감은 사랑을 방해하지만, 우리는 평생 그것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냥 보자마자 대뜸 속을 깠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 거."

도경이 왜 좋냐고 묻는 친구에게 해영은 말한다. ‘속을 까 버렸다’고.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결혼 전날 차인 사실을 낯선 도경에게 말한 해영.
친구는 얘기한다. “원래 그래. 내가 비벼도 될 구석이다 싶으면 만난 지 1분도 안 된 남자에게 할 수 있어. 십 년 된 동성 친구보다 한 달 된 남자가 심적으로 더 편해. 그게 남녀 사이야.”라고.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내 상처를 말할 때, 적절한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에게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바라게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남녀는 애초에 다르므로, 완전한 이해를 구하지 않게 된다. 그저 들어주길 바랄 뿐. 내 얘기를 하며 이해받지 못할까, 위로받지 못할까 절절매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래서 ‘비빌 구석’을 이성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만나지 마. 결혼 전날 차버리는 놈, 아니야. 무슨 이유였든 아니야. 만나지 마 접어. 너 혼자 살아도 돼. 뭐하러 만나? 됐어."

"엄마, 나 심심해……"

해영을 매몰차게 버린 태진이 돌아오고, 그녀는 그를 거절하지 못한다. 다시 만나겠다는 말에 해영의 엄마는 화를 낸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해영은 말한다. “엄마, 나 심심해..” 엄마는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는데 왜 심심하냐”며 버럭 하지만, 딸의 허전함을 아는 눈빛이다.
구멍 난 마음을 혼자 매워가야하는 날들. 거짓 위로라 해도 누군가 제발 곁에 있어주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 “심심해”라는 해영의 한 마디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와닿는다.
대학내일 백장미 에디터 bin@univ.me
[대학내일] 20대 라이프 가이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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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심심하다아
사랑같은건 바라지도 않는다
저는 이 대사가 제일ㅎㅎ 이렇게 저렇게 피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만 불행하고 이제 같이 행복하자고
대사보단 나레이션이지만요 ㅎ
한 마디 한 마디가 후벼파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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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에 종영한 '동백꽃 필 무렵'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시청자들의 공감 때문일 것이다. 보기드문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게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그릇에 담아 어색하지 않게 끌고 간 것은 물론이려니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면면은 결국 그들에 맞는 행복을 찾음으로써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회 주인공 동백이가 얘기한 행복론은 우리 모두가 살면서 새겨야 할 금쪽같은 말로 손색이 없다. "행복은 쫒는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해도 되었을 것을..." 죽음을 눈 앞에 둔 어느 누군가의 깊은 한숨이다. 삶의 마지막,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8년간의 호스피스 생활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곁에서 돌보며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기록한 브로니 웨어는 마지막 다섯번째로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것을 꼽았다. 그 만큼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을 맛보며 사는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브로니 웨어가 지난 2012년에 출간한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은전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만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다. 특히 매해 12월, 삶과 죽음을 얘기할 때 어김없이 소환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죽을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는 무엇일까? 1.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로 살기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2.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었는데…. 3.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어야 했는데…. 4. 친구들과 계속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5.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해도 되었을 것을…. 브로니 웨어는 이 책을 쓰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꾸준히 견지하는 가치와 행동 양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일구기 위해서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의식적으로 용기, 희망, 감사, 믿음, 솔직함, 공감 능력, 긍정적인 마음가짐, 건전한 행동, 신뢰, 존재감,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 자기애, 자기 존중감,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브로니 웨어는 두번째 책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를 쓰게 된다. 그녀의 삶에 일어난 52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는 메시지가 있다.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일깨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인생에서 큰 사건을 겪으며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일상 속의 소소한 일들이 인생의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인생이 보내는 메시지를 수신하려면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르침은 종종 아주 작은 사건에서 얻기도 한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생활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알아챌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삶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기쁨이 되고, 권리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52가지 이야기는 누구나 삶의 기력을 찾고, 기쁨을 발견하며, 인생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는 1년 동안 옆에 두고 한 주에 하나씩 총 52가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어도 되지만일주일 단위로 한 가지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경험이 더 유익하기도 하고 더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지나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는 당신의 한 해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의 원서 제목도 직역하면 '변화를 위한 당신의 해' 다. 우리는 우리의 가슴이 원하는 삶을 조각해야 한다.  후회 없는 삶이라는 축복을 얻어야 하며,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즐거움과 놀라움 속에서 살기 위함이라는 점을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행복이 드라마 속 동백이의 대사처럼 쫒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 소소하지만 충분히 있으니 음미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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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제 행복하자. 아프지말구 난 드라마 하나에 울고 웃고 행복해하는 쉬운 여자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막 맘주고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데 <또 오해영>만큼은 깊게 미치도록 사랑했다. 앞뒤 안 가리고 발로 차일 정도로. 그렇게 사랑했다. 1. 오해영의 상처에 공감했고, 위로받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가 있었다. 안 좋은 일은 왜 자꾸 겹쳐서 일어나는 지, 일도 사랑도 뭐 하나 맘대로 되는 게 없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술을 퍼마시는 오해영을 보면서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한때의 나보다 더한 상황을 보며 ‘그래도 그때의 나는 살만했었다’라고 위로받았다. 슬픔과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치는 해영이의 발악은 안쓰러웠지만 대견했다. 내게 없던 당당함이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비참하게 차여놓고서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고백하고, 거침없이 들이대는 모습. 혼자 꽃을 사 들고 출근하며 “제가 샀어요. 꽃 들고 출근하면 덜 초라해 보일까 싶어서”라고 말하는 너스레. 어찌 보면 뻔뻔할 수 있는 이런 행동들이 엄청난 용기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해영이는 더욱 대단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응원했다. <또 오해영>을 보는 내내 해영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보았고, 공감했고, 나와 달리 씩씩하게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그녀를 보며 함께 치유받았다. 2. 그래서 박도경은 죽어? 살아? 결말이 궁금해서 멈출 수 없다. 당연히 평범한 로맨스인 줄 알았다. <로맨스가 필요해> 뒤를 잇는 현실 로코를 상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도경이 이상한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미래를. 난데없는 초능력의 등장이라니. 얼토당토않은 판타지 요소를 보며 무리수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게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원동력이 될 줄이야. 극 초반부터 박도경의 환영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실마리였다. 무엇보다 매 회 박도경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고, 단순한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를 넘어 박도경이 죽느냐 사느냐 그 후 어떻게 되느냐까지 이어졌다. 로맨스에 판타지 한 줌이 꽤 큰 반응을 불러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수 이병준과의 상관관계. 왜 두 사람의 죽음이 이어져 있는지. 그 끈은 이제 끝이 난 건지, 여전한건지. 그래서 살아난 이병준이 다시 사망하게 되면 박도경은 어떻게 되는지가 <시그널> 뺨치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3. 전해영도 박수경도 개진상도 모두 사랑스럽다. 드라마를 보면 으레 남녀 주인공만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 오해영>은 달랐다. 모든 등장인물이 눈에 띄었고, 사랑스러웠다. 처음에는 얄밉기만 하던 예쁜 오해영도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애써 웃음 짓는 모습이 짠하기까지 했다. 수경&진상, 훈&안나의 러브스토리는 진지하기만 한 해영&도경 커플과 달리 유쾌했다. 메인 커플만큼이나 드라마에서 기다려지던 러브라인이었다. 태진, 희란, 해영과 도경의 회사 사람들, 도경의 주치의, 도경이 엄마, 장회장까지 모두가 주연이었다. 해영의 부모님은 더욱 특별했다.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울고 떼쓰며 패악질하는 해영에게 공감했다. 집에서만 기세등등해져 바락바락 대드는 꼴이 딱 내 꼴이었다. ‘친년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부모님은 마치 우리 부모님 같았다. 울음을 꾹 참으며 반찬을 싸주는 마음이 딱 그랬다. 4. 로맨스 장면, 짠내나서 더 애틋했다. 분명 해영과 도경의 로맨스인데 어째 둘이 사랑하는 것 보다 싸우고 물고 뜯고 오해하고 미워하는 장면이 훨씬 많이 등장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로맨스 장면은 더욱 간절했고, 소중했나 보다. 대체 둘이 언제쯤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나 그것만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구두 한 켤레 무심하게 현관 앞에 놓는 그 뻔한 장면에 심장이 함부로 나대질 않나, 키스신이라도 나올라치면 아주 난리가 났다. 한참 분위기 좋던 안면도에서 대리기사를 부른 도경을 보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막판에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사랑해줘서 다행이었다. 주변 의식하지 않은 채 사랑하는 마음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게 멋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흐를 것만 같아서 덩달아 행복해졌다. 쓰디쓴 오해 끝에 온 달콤한 로맨스라 더 감사했다. 5. 내 얘긴가? 공감 대사에 잠을 못 이뤘다. “생각해보면 ‘다 줄거야’하고 원 없이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재고, 마음 졸이고, 나만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이제 그런 짓 하지 말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발로 차일 때까지 사랑하자.” 매회 대사들이 가슴에 때려 박혔다. 내 얘긴가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갔고,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 사랑에 지치거나,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거나, 짝사랑에 힘들 때 해영이의 말들이 떠오를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냐, 오해영 없이 나 너무 심심할 것 같다 진짜. 대학내일 김꿀 에디터 hihyo@univ.me [대학내일] 20대 라이프 가이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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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 고산지역의 에베레스트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외에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셰르파’입니다. 셰르파는 흔히 등반가의 짐을 날라주는 단순 보조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1953년 5월 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습니다. 이처럼 히말라야의 위대한 산악인 곁에는 항상 위대한 셰르파가 함께 있었는데 셰르파라는 단어는 짐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네팔 고산 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이름입니다. 셰르파족은 약 500년 전 동부 티베트에서 에베레스트 남부 빙하 계곡으로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아무리 험하고 가파른 곳이라도 그들이 가면 길이 열립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뚫고 개척하는 사람들, 이들의 정신을 ‘패스브레이킹’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패스브레이킹, 무슨 뜻일까요. ‘패스'(Path, 사람들이 지나다녀 생긴 작은 길)와 ‘브레이킹'(Breaking, 깨뜨리다)의 합성어로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내는 개척자를 뜻합니다. 셰르파들은 보통 유명 산악인들의 이름에 가려져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꿋꿋이 험한 길을 뚫고 설산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그들의 ‘패스브레이킹’ 정신 앞에 히말라야도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 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 오늘의 명언 길이 이끄는 대로 가지 마라.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족적을 남겨라. – 랄프 왈도 에머슨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도전정신 #새로운길
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의사가 말해주지 않는 건강검진의 진실
벌써 7년전 일이다. 국내 5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의 43세 부장 L 모씨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다. 촉망받는 인재로 회사 일에 파묻혀 살았지만, 자기 관리도 철저한 편이고, 회사에서 해 주는 건강검진을 대학병원에서 열심히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배가 심하게 아파 찾아가 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 결국 사망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장. 철저한 자기관리. 회사검진 스케쥴을 충실하게 따랐고,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대장암을 막지 못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학병원에서 시행한 ‘회사검진’ 프로그램에는 애석하게도 대장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건강검진 업무를 담당하는 내과, 영상의학과, 가정의학과 의사 중 누가 봐도 중요한 검사가 빠진, 조금은 허술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병원과 회사 사이에 맺은 계약이므로 의사의 의견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지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작년에는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더 욕심을 부리자면)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건강검진을 받아 왔는지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가족 중 어떤 종류의 암 환자가 있었는지, 이 사람의 직업,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어느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내년에 어느 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받을지 등의 꼭 필요한 정보를 알고 건강검진 설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검진의 경우 그런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검사 전 건강검진 설계에 의사가 개입 할 여지가 없다. 그냥 건강검진은 진행된다. 마치 서울역 기차는 정시에 떠나는 것처럼 검사는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병원에서 말해주는 검진 권장 주기도 믿을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대장 내시경의 권장 주기는 5년이다. 유방암 검진을 위한 유방촬영의 경우 2년 주기로 받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보면, 권장 주기도 믿을 수 없다. 부산 해운대 아파트에 살던 50대 남자 사업가가 있었다. 매우 꼼꼼하고 본인의 건강도 철저하게 챙기는 편인지라 매년 같은 시기에 규칙적으로 서울까지 와서 꼭 서울대 병원에서 본인비용으로 비싼 건강검진을 받았다. 10여년 철저하게 본인이 만든 지켜 오던 어느 해, 미국 출장 관계로 그 시기를 놓치고 다른 일도 바쁘고 해서 2년 만에 검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위암이 생겼고 많이 진행이 많이 돼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검사 주기는 비용과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 따라서 이야기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다. 병원이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검진을 자주 받는 것이 환자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고 수입증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회사검진, 국가암검진을 하는 회사나 국가측에서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기간을 늘리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벋어 날 수 없다. 특히 회사검진, 국가암검진 등 남의 돈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엔 검사 주기가 짧아질수록 사회적 비용이 증가된다. 고혈압의 기준이 과거엔 수축기 140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30 이다. 10 정도 낮아 졌다. 사람 신체에 변화가 온 것일까. 130- 140 사이의 사람들을 고혈압 치료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보험회사 측의 로비가 있었던 것이다. (기준은 미국에서 정해진 것이며, 보험사 로비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제는 이 기준을 전 세계가 따랐다는 것이다 ) 대장암의 경우 채식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인다면, 발병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거꾸로 육식을 많이 하고 운동량이 적다면 발병가능성이 증가한다. 같은 나이의 쌍둥이라고 해서 대장내시경 주기를 같게 할 수 있을까. 유방암의 경우 30세 이전에 첫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며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발병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진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물론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 유방암 발병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같은 나이의 쌍둥이라고 해서 유방암 검사 주기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검사주기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다. 모르면 자주 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 건강검진,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지역 유명대학병원의 기본건강검진의 경우 남자 61만원, 여자 64만원이다.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니 대장내시경이 빠졌다. (물론 대장내시경을 매년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계속 이 병원의 기본건강검진 을 이용하면 영원히 대장내시경을 못하게 될수도 있겠구나라는 염려가 생긴다.) 흉부 전산화 단층촬영 (가슴 CT)도 빠졌다. (흡연자 필수)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안 해도 되는 세세한 검사들은 제법 많이 포함되었다. 가슴 CT 와 대장내시경을 넣으면 100만원 초반이 될 것이다. 프리미엄 검진을 보니 가슴 CT와 대장내시경, 기타 부위의 초음파. CT 등을 넣어서 178만원을 받는다 (남자기준) 하지만 심장마비. 중풍 위험성을 미리 감지해 주는 검사는 빠졌다. 심장과 경동맥 검사를 추가하니 200만원이다 (남자기준) 얼마 전 배우 안재욱씨가 미국에서 갑자기 뇌수술을 받았다.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병이 었다. 뇌혈관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었다가 터져서 생기는 병으로 응급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면 바로 사망한다. 터지기 전 뇌혈관 꽈리를 찾아주는 검사도 수요가 급증했다. MRA 라는 검사인데 이것을 넣으니 290만원이다. 비교적 고통 없이 몸의 구석구석을 보면서 암을 가장 초기에 발견해 준다는 검사 PET 이 있다. 위의 검사에 PET 을 넣으니 430만원이다. 호텔에서 하루 재워주고, 고급승용차 안타도 1인당 430만원이다. 부부가 받으면 900만원을 잡아야 한다. 건강검진 설계사 이용하면 비용 줄이고 효과 유지 가능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용을 줄이면서도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건강검진 설계사를 이용하면 된다. 먼저 건강검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건강검진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 된다 1. 진단검사의학 영역 : 피 검사. 오줌 검사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피,검사 오줌검사다. 피 한방울, 오줌 한방울로 한두가지부터 수 백가지 까지 다양한 검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가격이 천차만별이 된다. 피, 검사 오줌검사는 기계가 하게 되는데. 검사대행 전문업체가 있다. 국내에서는 녹십자. 이원이라는 곳이 양대산맥이다. 즉 어디서 검사하던지 결국 비슷한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외주검사) 동네병원에서 피 검사 하나, 대학병원에서 피검사 하나 차이가 없다. 가장 쉽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검사 영역이다. 꼭 의원에서 검사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2. 위 내시경, 대장내시경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은 많다. 하지만 전공의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내시경을 배우는 의사들은 내과 전문의 들이다. 내과 전문의 중에도 소화기 분야를 특별히 더 공부한 의사가 가장 잘 한다. 의사들도 본인이나 본인 가족의 내시경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내과 전문의 중에도 소화기 내과 전문가에게 의뢰를 한다. 대학병원이냐 의원이냐에 따라 두 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난다. 내과 전문의에게 내시경 받는 경우에는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3. 초음파 초음파를 하는 의사들은 더 많다. 일부 기관의 경우 의사 감독 하에 의사가 아닌 기사를 통해 초음파를 하는 곳도 있다. 의사 중에서 전공의 시절부터 초음파를 완벽하게 배우는 의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밖에 없다. (기계자체는 물론 초음파 관련 물리학 까지 공부한다) ㄹ혜 대통령이 대학병원에서 초음파를 받게 된다면 어느 병원이 던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초음파를 하게 된다. 유방초음파의 경우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처럼, 유방영상전문의가 하게 된다. 대학병원이냐 의원이냐에 따라 두 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난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초음파를 받는다면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건강검진 설계사를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집근처 또는 직장 근처의 내과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을 찾아간다. (인터넷 검색 : 내과의원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 그곳에서 내과 전문의 또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임을 확인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싶으며 나에게 알맞은 맞춤형검진을 원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의사는 당신에 대해 자세히 질문을 하게 된다. 가족중에 암으로 고통 받으신 분 또는 중요한 질환이 있었는지, 당신의 생활습관과 직업, 과거 질환, 수술, 입원경력. 현재 아픈 곳, 먹고 있는 약, 작년에 어디서 어떤 건강검진을 받았는가? (국가암검진이든 회사검진, 개인검진 이든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가지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은 후 담당 의사는 당신에게 꼭 필요하고 알맞은 건강검진 항목을 만들 수 있고 권유하게 된다. 놓치는 것 없이, 불필요한 것 제외하고, 최적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실시 하는 국가암검진은 꼭 받는 것이 좋다. 일단은 공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검사는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암검진만 믿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홀수해, 짝수해 2년 주기로 한다는 것도 아쉬운 점 중의 하나다. 받을 수 있는 국가암 검진을 가급적 빨리 받는다. 국가암 검진 결과표를 가지고, 건강검진 설계의사 를 찾아간다. 그러면 최소한 국가암검진에서 시행한 검사는 제외하고 검사를 하게 되므로 비용을 줄 일 수 있다. 10월 이후엔 건강검진 받으려는 사람이 급증한다. 많이 기다려야 하고, 불친절하고 의료진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서둘러 일찍 받아 두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tip 똑똑하게 건강검진 받는 법 1. 건강검진 설계의사를 꼭 만들어 둔다. (동네 또는 회사근처 내과의원.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 2. 무료 검진은 착실히 받는다(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회사검진) 3. 결과표를 가지고 건강검진 설계의사를 만나 추가로 검사할 항목을 정하고, 본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더 받는다. 4. 가급적 [- 의원]을 이용한다. 같은 검사를 해도 비용이 저렴하다 5. 내시경은 내과전문의에게 받는다. 6. 초음파 검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받는다. (유방초음파는 더욱 까다롭게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 7. 건강검진 결과표는 스크랩하여 보관하고, 새로운 의사를 만날 때마다 가지고 간다. 8. 보다 저렴하게 효과적인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한 곳에서 완벽한 검사를 받을 순 있지만 비용은 많이 증가한다) 9. 건강검진은 10월 이전에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 다만 얼마라도 반드시 내 돈을 추가해 검사를 더 받는다. ㅊㅊ https://news.joins.com/article/10964441 2013년도 기사지만 도움 되는 것 같아서 퍼옴
어이 자네, 신사답게 '파브르'처럼 행동해~!~!
두유노 파브르? 사실 파브르는 곤충기 이외에도 흥미로운 일화가 있음 사실 파브르는 교육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진보적이었음 사범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초등교사가 된 뒤, 자신이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던 만큼 배움의 열망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 그 당시는 여자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었음 하지만 파브르는 자신의 월급을 털어 측량기구를 구입하고, 교장을 설득해 실용 과목을 개설해 소녀들과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줬음 뿐만 아니라 그는 노동자, 농민, 여성들을 자신의 강의에 참석시키고 생물학과 박물학을 강의함 ㅇㅇ 여성의 교육과 권리를 재차 주장했던 그는 당시로서 혁명 그 자체였음 BUT….. 그때나 지금이나 늘 보수 진영은 존재했고,당시 노동자와 농민을 교육시키는 파브르는 사회 체제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한 인물로 인식되었음 먼저 성직자와 교회의 비난이 시작됨 예를들어 꽃의 수정과정에서 암술과 수술의 만남을 강의하면 파브르의 강연이 저질이고 외설적이라며 그를 매도했음; 지들이 음란마귀아님? 그 이후 학자들과 기득권은 정규 코스를 밟지 않았던 파브르를 시기하고 비정규직으로 차별했고, 결국 파브르는 진보 성향을 가진 교육부 장관 뒤쥐와 함께 쫓겨나게 됨 ㅠ 물론 그 이후도 곤충과 식물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무려 30년에 걸친 이 대작으로 인해 그는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음 ^^ 파브르라는 학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 처럼 단순히 곤충만 연구한 사람이 아님 열린 사고와 사회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뒤뤼의 평생교육론을 받아 들여 자신의 평생을 자연과 교육에 바친 학자이자 교수였음 ㅇㅇ 사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멋지고 편견 없는 인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