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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남녀, 원시시대에도 있었다?

질투라는 감정은 인간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질투는 '짝'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전술의 하나로 보는데, 동물에게도 이런 전략은 있다. 귀뚜라미 수컷은 원래 큰 소리로 울지만 암컷에게 다가갈 때는 다른 수컷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낮춘다고 한다. 자신만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어떤 벌레는 교미를 하고 난 뒤에 암컷의 생식기 입구를 막아버린다. 다른 수컷의 정액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질투는 구석기시대의 감정이 거의 변형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얘기한다. 구석기의 원시인들은 먹이를 구하고 짝짓기를 하고 자식을 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노하우를 신경회로망에 기록해 뇌 속에 새겨놓았다. 이분들이 직면했던 상황에 기초하여 만들어 놓은 사랑의 원리들을 현대인들이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얘기다. 미국의 데이비드 버스는 1994년 '욕망의 진화'라는 책에서 6개 대륙 37개 문화권의 성 의식을 분석하고 남녀관계에서 발생하는 질투심에 대해 이렇게 진단을 해놓았다.
인류의 선조들은 남녀관계에 대한 외부의 위협에 대해 상대방이 긴장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감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질투심이라는 것이다. 남녀 간에 질투를 느끼는 횟수나 강도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질투의 목적이나 내용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닐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질투한다. 즉 중복관계로 친자임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 자식이 아닌 존재에게 '투자'하는 것이 삶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성적인 투자처가 바뀌는 상황 자체에 대해 질투한다. 자신의 삶의 안정감이 사라지고 기존에 낳은 자식을 부양할 수 있는 조건도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버스는 2006년에 낸 '위험한 열정. 질투'라는 책에서 이 같은 감정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해 놓았다. 남자는 씨를 가능한 한 널리 뿌리려는 성적 전략을 지니고 있고, 여자는 좋은 씨를 제대로 받아 자식을 생산하려는 성적 전략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한번 임신을 하면 양육기간까지 포함해 몇 년을 투자해야 하기에 여성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욕망과 성적 전략을 지닌 가운데 남녀가 서로 속고 속이며 발전시켜온 감정 체계가 바로 질투라는 것이다. 질투라는 심리적 도구를 이용해 상대방이 외도할 가능성을 줄여왔다.
최대한 많은 여성을 상대하려는 남자와 한 남성을 오래 붙잡아 두려는 여자 사이에서 각자의 목적에 맞게 견제하기 위해 질투를 활용한다. 질투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상대방의 외도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이 지혜야말로 수천 년 전 구석기 선배들이 개발하고 활용했던 '감정 장치'라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질투는, 변형된 사랑의 양상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활용하는 오래된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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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잡은남자를 놓지지않기위해서가아니라. 최고의 남자 한명 무리의 우두머리. 즉 좋은유전자의 씨를 받는게본능임. 그러니 남자는 이쁜여자친구잇어도 못생긴애랑바람피고..여잔 더멋지고 힘센남자나타나면 훌쩍 떠나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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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수저 집에 처음 들어가 본 흙수저 표정 (feat.러시아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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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초기 독일의 광기와 히틀러의 인기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20년짜리 휴전협정이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당시 포슈 원수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독일에게 자비를 배풀어 한 편으로 끌어들이던가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 철저하게 짓밟던가. 그러나 그들은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독일의 힘을 찢어놓치도 못한 채 과도한 채무와 굴욕만을 요구하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1차대전 이후, 베르샤유 조약은 독일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독일인들은 절망에 허덕였다. 독일 국민들의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영국은 뒤늦게 프랑스가 강력히 주장했던 '독일에게 굴욕을 줄 정도로 가혹한 채무'에 반대했다. 그러나 1차대전 당시 본토가 짓밟힌 프랑스와 벨기에는 여전히 증오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채무 불이행을 근거로 군대를 동원하여 독일 서부 최대 공업지역 루르 지역을 침공하여 강제점령했다. 이것이 바로 '루르 점령'(Ruhrbesetzung) 사건이다. 1923년 3월 독일 루르, 프랑스 군의 행렬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지 않는 독일인들이 프랑스 장교로부터 폭행당하고 있다. 2년에 걸친 강제점령 기간 동안 프랑스군은 130여 명의 독일인을 총살했다. 군대를 제한당한 독일은 변변찮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또 공업지대를 빼앗긴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이란 경제적 재앙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까지 세계를 덮쳤다. 2년 후 점령기간 동안 9억 달러의 차익을 남긴 프랑스 군은 철수했지만 이를 계기로 독일 민중의 베르사유 조약과 승전국에 대한 적개심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 때, 히틀러와 나치가 등장했다. 나치 독일, 베르사유 조약의 무효를 선언. '라인란트 재무장' 선포. 재무장과 동시에 각종 대규모 공공사업 추진으로 실업률 급감. 나치독일, 대독일의 통일을 외치며 오스트리아 합병 (안슐루스) 체코 주데텐란트 지역 강제합병 (뮌헨 조약) 사상자 4천만명을 낸 1차대전의 악몽에 시달리던 영국과 프랑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를 방관. 버려진 이들은 영국와 프랑스를 이렇게 불렀다. '서방의 배신자들'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 소련과 불가침조약 체결 후 폴란드 침공.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영국-프랑스-벨기에 3국, 연합군 결성. 대 독일 선전포고. 1차대전 종전 20년 만에 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이 영국-프랑스 동맹과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 아무리 독일이 발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내 막강한 공업능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들, 상대는 로마 제국 이후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인류 역사상 최강국인 대영제국과, 그 대영제국을 상대로 수백년을 나란히 경쟁한 프랑스 식민제국이었다. (중략) ...' 연합군의 선전포고. 역으로 연합군 본토로 치고 들어가는 독일군 141개 사단의 진격. 독일 15기갑군단 제7기갑사단 에르빈 롬멜 소장, 프랑스 최정예 제1기갑사단, 제4기갑사단 격파. 마스강 도하 연합군의 대 독일 방어선, 3일 만에 붕괴 나치독일이 연합군에게 살포한 전단. "우리가 이긴다. 우리가 최강이니까." 독일군, 프랑스 전역 석권.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 대서양과 맞닿은 프랑스의 서쪽 끝, 브르타뉴를 점령한 독일군 '독일의 형제들이여! 우리가 마침내 해냈다!' - 나치 독일 기관지 '검은 방패'의 당시 1면 헤드라인 - 프랑스 수도, 파리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독일군 에펠탑에 휘날리는 히켄크로이츠 파리에 입성한 선봉부대의 사열을 받으며 항복 서명장에 도착한 히틀러. 항복서명은 1차대전 당시 독일이 항복한 기차 칸을 그대로 가져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독일 장병들이 탑승한 열차가 역을 지나갈 때, 모든 일반 열차는 운행을 멈추었다. 귀국하는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독일인들. 1940년 독일 베를린, 라디오에서 격앙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장병들이 도착했다는 긴급 보도를 송출했다. 개선한 장병들을 보기 위해 생업을 멈추고 몰려드는 시민들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귀국한 히틀러의 시가행진 인산인해를 이룬 베를린, 지크 하일! (승리, 만세!)을 외치는 독일인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