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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귀여워 진 슈퍼히어로 캐릭터들
JR Pencil이라는 작가를 발견했습니다. 코믹스나 게임의 영웅 캐릭터들을 작고 귀여운 버전으로 다시 그리는 아티스트인데요, 오늘은 마블과 DC의 작아진 영웅 일러스트를 가지고 와 보았습니다. 마블 우선 시작은 어벤저스들 부터! 원래도 귀여움 담당이지만 작아지고 더 귀여워진 스파이더맨 아이언맨도 이렇게 보니 애기애기 하네염 캡틴의 사이드킥이라 할만한 팔콘(하지만 버키에게 순위 뺐김) 어벤저스 1편에서 뉴욕의 건물주들을 울렸던 로키 원작 보다는 더 강하고 밝아보이는 스칼렛 위치 시빌워에서 깨알 활약을 펼쳤던 앤트맨 얼마전 광안리에서 촬영을 마쳤다는 블랙 팬서 비전이 이렇게 귀엽고 새침한 캐릭터였나요?ㅋㅋㅋ 아마도 인피티니 워에서 큰 활약상을 보여줄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어벤저스 팀은 아니지만 우리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캐릭터가 있지요? 바로 우주 악동 스타 로드 입니다~ 그리고 다른 영화사에서 활약 중인 또 다른 마블팀이 있습니다. 바로 엑스맨팀이죠. 아포칼립스에서 강렬한 등장을 보여준 샤일록 거대한 악의 축이라기엔 조금은 모자랐던 아포칼립스(오히려 핵무장 해제 시켜줌...) 세대 교체를 알리며 등장한 어린 스톰 아포칼립스에게 너무 토사구팽 당해 불쌍했던 아크 엔젤 ;_; DC 최근 저스티스 리그의 예고편이 공개되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DC(그리고 과연 본편은...)의 히어로들 입니다. 그야말로 DC의 얼굴 마담이라 할 슈퍼맨 최근 솔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원더 우먼 작아져도 사라지지 않는 부자 포스의 배트맨 비록 드라마에서이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는 중인 슈퍼걸 이미 저스티스 리그에서 코믹과 귀여움 담당을 예약해둔 플래시 예고편 공개와 함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중인 사이보그 멋+유머+배트맨과의 의외의 찰떡 궁합을 보여줄 예정인 아쿠아맨 그리고 DC에는 또 다른(그리고 우리를 경악케 한) 안티 히어로 팀이 있죠. 바로 수어 사이드 스쿼드팀 입니다. 수스쿼에서 유일하게 건질 만한 것으로 평가된 할리 퀸 약간은 '응?'하고 느껴졌던 조커 수스쿼의 사실상 리더 데드샷 의외의 웃음 담당 엘 디아블로
핵무기의 시초 맨해튼 프로젝트
세계 2차 대전으로 전 세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많은 나라들이 혼란스러웠던 당시 1938년 유럽에서 독일이 우라늄 원자핵 분열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된다 이에 많은 과학자들은 가만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이 핵분열 실험에 성공하여 마침내, 히틀러가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되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 할 것 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많은 과학자들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여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형태의 폭탄은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극도로 강력한 폭탄이 될 것 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폭탄 단 한개를 선박에 실어 폭발시킨다면 선박이 있던 항구 전체와 인근 지역 모두를 일순간에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고민끝에 노벨상 등을 받은 유능한 과학자들을 끌어모아 핵무기 제조 프로젝트를 극비에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 (1942년 8월 13일 ~ 1947년 8월 15일) 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장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물리학의 아버지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 그리고 지금도 화자되며,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인물 존 폰 노이만 등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이 진행시키는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 하지만 프로젝트 도중 루즈벨트 대통령은 급성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데.. 이에 당시 미국 부통령 이었던 트루먼 부통령이 취임한지 단 3개월 만에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당시 급하게 대통령직에 앉게 된 트루먼 대통령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중 이라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알게된 즉, 처음 듣는 프로젝트 였기 때문이다 현직 부통령도 몰랐던만큼 철저한 보안을 바탕으로 극비리에 진행된 프로젝트 였다 그래서 과학자들끼리도 대화중 핵심용어가 새나갈수 있는 것을 방지하고자 핵 이라는 용어대신 "더 가제트" 라고 바꾸어 불렀고, 심지어는 실험이 진행된 건물의 청소부 조차 이곳에 들어오면 6개월이 경과되기 전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싸인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그만큼 철통 보안속에 진행된 프로젝트 속에서 마침내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핵실험 (1945년 7월 16일) 이 실시되었다. 실험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를 본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계 당시 생각했던 위력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실험에 참가했던 이들의 반응은 "한낮의 태양보다 몇배는 더 큰 강도의 빛이 사방에 쏟아졌다."     - Thomas F. Farrell (프로젝트 당시 미국 부사령관) -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고 30초가 지난 다음에야 시력을 찾았다."     - Robert Serber (프로젝트 당시 미국 물리학자) - 위의 반응으로 알 수 있듯 인류 최초의 핵실험 결과로 알려진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러던 중, 이 어마무시한 핵무기를 트루먼 대통령은 고민끝에 결국 사용하기로 하는데, 당시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전쟁을 이어나가자, 세계 2차대전을 끝낸다는 명분으로 폭탄투하를 결정하게 된다. 이것이 1차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사용한 핵무기 "리틀 보이" 다 미국은 이 핵폭탄을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하게 된다 투하 전, 미군은 일본 국민들에게 삐라를 뿌려 미리 대피할 것을 경고하는데 이것이 1차 히로시마 원폭투하 전 미군이 살포한 삐라의 앞면이다 <공습 예고> - 이 도시가 미공군의 다음 공격 목표입니다. '폭격으로 초토화된 독일 베를린 시.' '연합국에 항복하러 온 수많은 나치 독일군.' '초토화된 독일 시가지, 유럽의 평화와 동시에  새로운 독일 건설로 나아간다'. 위의 문구처럼 먼저 패전으로 인하여 쑥대밭이 된 나치독일의 풍경을 경고문에 넣어 위협감을 더하고 있다. 친절하게도 공습예고가 뿌려진 도시를 따로 넣어놓기도 했다 무서운 것은 어디에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이름은 없다는 것 실제 이 때문에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교토는 폭격하지 않는다더라'면서 피난민들이 이런 도시에 몰려들기도 하였다 이 삐라의 후면에는 경고의 내용이 담긴 본문이 적혀 있었는데 위의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국민에게 고함. 당신은 자신이나 부모, 형제 혹은 친구의 목숨을 보전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보전하고 싶다면 이 삐라를 읽어주십시오. 수 일 내로 이 삐라 반대편에 적힌 도시 중 너댓곳에 위치한 군사시설을 미 공군이 폭격할 것입니다.  위 도시들에는 군사시설 및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습니다. 군부가 이 승산이 없는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사용할 병기들을 미군은 전부 파괴할 것입니다만, 폭탄에는 눈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아시겠지만 인도주의적인 미국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반대편에 적혀있는 도시들로부터 피난하십시오. 미국의 적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전쟁에 끌어들인 군부야말로 적입니다. 미국이 구상하는 평화는 여러분을 군부의 폭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나은 새로운 일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쟁을 끝낼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반대편에 적히지 않은 도시에서도 폭격이 있을지 모릅니다만, 적어도 반대편에 적혀있는 도시 중 반드시 네 곳은 폭격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사오니, 반대편에 적힌 도시들로부터 피난하십시오. 결국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일본은 이 피해로 히로시마의 인구 약 14만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된다 최초의 원폭 투하 후 트루먼 대통령은 이 원폭투하가 미국에서 시작한 것임을 세계에 알리는 연설을 하고 이와 동시에 일본이 당장 항복 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상황속에서 항복을 하면 너무 불리하다는 주장을 내세워, 조금이라도 전세가 뒤집혔을 때 유리한 조건속에서 항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원폭 투하 후, 연설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3일 뒤에 바로 2번째 원폭투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2차 나가사키 원폭투하에 사용한 핵무기 "팻맨" 이다 미국은 경고를 무시한 일본에게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또 한번 핵무기를 투하하게 된다 미군은 투하 전 또 한번 삐라를 살포하는데, 히로시마가 생지옥이 된 이후에 뿌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삐라 본문에 쓰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 국민에게 고함!! "즉시 도시에서 대피하시오" 이 삐라에 쓰인 내용은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주의하여 잘 읽으시기 바랍니다. 일본국민들은 지금 중대한 시기에 직면해있다. 연합군 수뇌부는 삼국공동선언에 의거한 13개조로 이루어진 관대한 조항을 제시하여 무익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일본군부는 이를 무시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미국은 현재 몇 명을 희생시킬지 모르는 무서운 원자폭탄을 발명하여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원자폭탄은 단 한 개만으로도 그 거대한 B-29 폭격기 2천대가 한 번에 투하할 수 있는 수준의 폭탄의 위력에 필적한다. 이 무서운 사실은 여러분은 히로시마에 폭탄 한 개가 떨어졌을 때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익한 전쟁을 지속하려는 군사상의 모든 것들은 무서운 원자폭탄에 의해 파괴된다. 미국은 이 원자폭탄을 여러개라도 쓸 준비가 되어있으며 여러분들이 이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 천황 폐하께 청원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들에게 요구한 13개조로 이루어진 관대한 조항을 신속히 받아들여, 평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일본의 건설을 종용하는 바이다. 따라서 일본 국민 여러분은 즉시 무력저항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단호히 원자폭탄을 비롯한 우수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이 전쟁을 신속하고 강제적으로 종결 시킬 것이다. "즉시 도시에서 대피하시오" 일본 군부에서 반응이 없자 결국 나가사키에도 원폭을 투하하게 된다 위 사진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전후 비교 사진이다 육안으로 봐도 엄청난데, 이 투하로 나가사키 지역 인구 7만명이 사망하게 된다 재래식 폭탄이 아닌 지금껏 보지못한 전례없는 이 엄청난 무기앞에 더 이상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일왕 히로히토는 결국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핵무기 하나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당시 연합국의 공격과 소련의 영토확장을 목표로 한 일본 침공으로 인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원폭 투하가 일본 항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트루먼 대통령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끝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핵무기의 시초가 된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련하여 유명한 어록이 있다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이제 우린 다 개새끼들이야. - 케네스 베인브리지 - (첫 원폭 실험후 자괴감에 휩싸이며 한 말) If I Had Foreseen Hiroshima and Nagasaki, I would have torn up my formula in 1905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었을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https://youtu.be/MFuBtWXjVQU 위 영상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후 트루먼 대통령이 전 세계에 투하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는 연설 영상이다 "조금 전 미합중국의 비행기가 히로시마에 폭탄 하나를 투여했습니다 이 폭탄들은 계속 생산중 입니다 심지어 더 강력한 폭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구 역사상 전례가 없는 파괴의 비가 하늘에서 내릴 것 입니다 이런 공중 공격 뒤에 우리는 해상과 지상에서의 공격을 여러 차례 이어나갈 것 입니다 그들이 아직 본 적도 없는 힘과 그들이 이미 잘 알고있는 공격 기술들로 말입니다" https://youtu.be/220P5UVO7RA 위 영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문 육성을 디지털 복원하여 만든 영상이다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펌] 냉혹한 공기총의 세계
다들 알겠지만 총은 존나 쎄다. 막강한 화약의 은총에 힘입어 총성이 전장에 울려퍼진 순간 전쟁터의 패러다임은 영영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총이 완벽한 무기라고 보긴 힘들었는데 여러가지 약점 중에서도 제일 심각한게 연사력이었다 옛날 총들은 자동발사는 커녕 반자동도 안 되는 총들이었다. 한발 한발은 존나 뼈아프게 아파도 그 다음 한발을 날리려면 라면 끓여먹을 시간 정돈 아니더라도 물 올리고 봉지 뜯고 불 키는 시간 정돈 있어야 했다. 왤케 오래 걸렸는지 궁금할텐데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이 당시 전쟁 꼬라지가 어떤 꼬라지였는지 보고가자 이 당시 주무기는 머스킷총이었는데, 이 새끼들은 위력은 존나 확실했지만 위력말고 다른 면에서는 좀 읭스런 면모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우선 앞에서도 줄창 말했던 연사력이 헬이었다. 머스킷총은 한 발 쏠 때마다 월탱 자주포만큼이나 긴 장전시간을 요구했는데 그럴만도 한게 총 한 발 쏘려면 화약봉지 뜯고 화약봉지 부어넣고 총을 똑바로 세우고 총알을 앞구멍으로 넣고 다시 화약 넣고 꼬질대로 존나 쑤시고 다시 들고 해머 젖힌 후에야 조준하고 쏠 수 있었다 시간도 개같이 오래 걸리는데 존나게 큰 총을 무조건 세워서 장전해야 되니 엎드려쏴는 꿈도 못 꿨다 한 대만 맞아도 대갈통 작살나는 총알이 날아다니는데 무조건 상남자 써서쏴 딜교를 해야 된다. 연사력만 문제냐면 그게 또 아니다 존나 구식 화약을 쏴갈기는지라 연기가 장난 아니게 솟아오른다 한 두 발만 연사해도 전장은 저 지경이 된다. 지 총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총을 조준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눈만 안 보이면 또 다행이겠지만 귀도 안 들렸다. 수천명 단위로 일렬로 나란히 서서 구식 화약을 뻥뻥 쏴갈기는데 당연히 소리도 존나게 크다. 바로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명령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는데 귀머거리되는건 둘째치고 이딴 걸로 야간기습은 꿈도 못 꾼다. 이런 꼬라지니 당연히 사거리가 길 리가 없다 눈깔 앞에 연막탄이 날아다니는 수준인데 어케 조준 사격을 하냐. 당연하지만 반동 억제 그딴 건 생각도 안 하던 시대라 반동도 무지막지했다. 이 때문에 화력을 보장하려면 존나 머릿수 모아서 존나 각 재서 줄 세워놓고 100m 안쪽에서 상대 표정 봐가면서 싸워야했다 현대 시점에서 보면 뭔 븅신짓거리냐 탄식이 나오는 라인배틀이 이런 이유로 생긴 거다. 얘들이 빡대가리라 이렇게 싸우는게 아니라 이렇게 싸울 수 밖에 없던 거다 당연하지만 얘들도 이렇게 싸우는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인간은 자고로 난 다치기 싫은데 쟤들은 죽이고 싶은 종족이다 머스킷이 아무리 한방뎀이 쩔어도 죽창뎀만으로 전쟁질을 해먹을 순 없으니 군바리들의 고민은 한 곳으로 수렴했다. 어케해야 사속을 올릴 수 있을까? 캘리코를 붙이는 걸론 해결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직 발명되려면 200년쯤 더 있어야되니까 이렇게 총신을 여러개 늘려보기도 하고 권총을 여러 개 들고다니기도 하고 줄 서서 앞놈 쏘는 동안 뒷놈 장전하는 식으로 물량을 늘려보기도 하고 아무튼 존나게 많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근데 이런 꼼수는 결국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총신 여러개 달린 놈은 생긴게 븅신인만큼 명중률도 븅신이고 권총 여러발 달고 다녀봤자 권총이고 내가 줄 서서 쏘면 남들도 줄서서 쏜다. 결국은 총 자체의 연사력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걸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나라가 바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오스트리아다 캥거루가 뛰노는 나라 오스트리아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당시 총의 지루를 해결했을까 오스트리아에 캥거루가 산다는 것을 부정하는 무식한 친구들은 없길 바란다 (캥거루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삽니다. 드립임.) 캥거루파워의 힘으로 오스트리아는 슈퍼 오버테크놀러지 연사총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바로 공기총이었다 좃밥의 대명사로 통하는 공기총이?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들겠지만 진짜다 바르토로메우스 지란도니가 발명한 이 지란도니 공기총은 시대를 까마득하게 앞서가는 개사기 무기였다 호에엥 머스킷 이거 넘 느리고 앞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사거리도 짧고 반동도 쎄서 개같아요 공기총을 쓰세요 아니 공기총으로 사람을 어케 죽여요 산소중독으로 죽임? 근데 진짜 사람이 죽었다 공기총이라니 이름만 들으면 별로지만 절대 좃밥이 아니었다. 왜냐면 이 새끼는 250미터에서 대갈통에 빵꾸를 이쁘게 뚫어놓는 화력이 나왔으니까 군필여고생들이니 250사로가 얼마나 먼 지는 다들 감이 잡힐 텐데 어케 공기총 주제에 이딴 화력이 나오냐고 싶을텐데 그 비결은 바로 개머리판이었다 지란도니 공기총의 저 웃기게 생긴 개머리판은 사실 개머리판이 통째로 압축공기통이다. 여기다 공기를 무지막지하게 때려놓고 압축한 다음에 총에 연결하고, 쏠 때마다 방아쇠를 당기면 압축된 공기가 총알을 힘차게 밀어내는 것이다. 이 압력이 위에서 설명한 날아가는 살상력의 힘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10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 얼굴보고 총알 땡기던 시대에 250m를 날아가는 총알이 나온 것만으로도 획기적이다. 호에엥 쩌내요 근데 공기총이라고 하니까 쏠 때마다 공기 불어넣어야 되는 거 아님? 장전 복잡해보여여 장전? 아아...이미 끝난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사거리만 긴 게 아니었다. 저게 장전 끝난 거다. 기울여서 엄지 손가락으로 땡겨주면 끝이다. 이 정도면 수십년 뒤에 나올 볼트액션 총보다도 훨씬 간단하다. 한 발 장전하는데 30초 걸리던 시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이세계총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당시 총들이 앞구멍으로 총알 쑤셔넣는 전장식이었다면 지란도니 공기총은 튜브방식의 탄창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탄창 속에 줄줄히 총알이 들어있기 때문에 한 발 쏘고 기울여서 땡겨주면 바로 차탄이 장전되는 것이다. 거기다 짤 보면 알겠지만 화약을 써서 발사하는게 아니라 개머리판에 이미 들어있는 압축공기를 써서 발사하는 거라 반동이 하나도 없다. 반동이 없다는 건 곧 명중률이 존나 올라간다는 뜻이다. 근데 명중률을 높이는게 이것만이 아니다. 와 ㄹㅇ? 근데 화약 안 쓰면 연기도 안 나고 불빛도 안 나겠네? 개굿 거기다 화약 안 들어가서 소리도 조용함 공기총에서 화염이 뿜어져나올 리가 없으니 당연히 연기도 안 나고, 지란도니 공기총을 갈겨대는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은 남들이 연기 들이마셔가며 으겍켁 눈먼 사격하고 있을 때 존나 깔끔하게 조준사격할 수 있었다. 총구화염도 당연히 없으니 구석에 짱박혀서 똥싸개 저격질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 소리까지도 화약무기에 비하면 무음 수준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얼마나 연사 가능함? 20연사 나폴레옹 : 쒸펄 지란도니 공기총의 튜브형 탄창에는 약 20발의 총알을 우겨넣을 수 있었다. 30초에 한 발 쏘고 눈멀고 귀멀고 조루사거리 총쓰던 시절에 조용하고, 반동없고, 멀리나가고, 20발 반자동 연사가 가능한 개사기총이 갑자기 튀어나온 거다 그야말로 머스킷 시대에 씹새가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이런 고성능에 풀발기한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은 이 개사기 공기총을 제식무기로 냉큼 채용했다 근데 여기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친구들이 있을 텐데 저런 개사기 무기를 들고 있으면서 왜 오스트리아가 세계정복을 못했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적힌 것만 읽어보면 지금쯤 영어 대신 오스트리아어 쓰고 군대 무기는 공기총으로 통일되고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캥거루 기르고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세상에 장점만 있는 무기는 없다 지란도니 공기총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단점이 있었다 님 님 이거 갑자기 왜 안 나가여 아 장전할 때 너무 쎄게 땡기셔서 고장남 님탓임 가서 새거 사오세요 뭐야 씹 이걸로 집도 사겠네 왤케 비쌈 근데 뭐임 이번엔 살살 땡겼는데 안 나가요 너무 살살 땡겨서 고장남 님탓임 다시 사오세요 지란도니 공기총은 존나 섬세해서 존나 비쌌고 존나 섬세해서 존나 잘 고장났다 이 당시 기술력으로 이만큼 뽑아낸 대가라고 해야겠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기술력이 좋지도 부자나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양산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사방에서 총이 고장나기 시작했는데 새걸 생산하긴 커녕 고장난걸 수리하는데도 벅차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기총이라는 특성상 공기압이 떨어지면 대미지도 같이 떨어지기 때문에, 앞에 나가는 건 멀리 빨리 쭉쭉 나가는 총알이었지만 연사가 계속될수록 사거리와 위력이 점차 줄어드는 문제점도 컸다. 하지만 이딴 건 전부 사소한 문제였고연 전투에서 사기 성능으로 씹발라 버릴 수 있는데 꾹꾹 참고 쓸려면 쓸 수가 있었다 존나 큰 마지막 문제점이 없었다면 그래도 20연사 뽕맛은 오지네 ㅎㅎ 근데 이거 다시 쏘려면 어케해야함 공기를 다시 채우세요 입으로? 펌프질이나 하십쇼 몇 번이나? 「1,500번」 씨펄 지란도니 공기총은 이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전용 펌프를 통해 공기를 재충전해서 써야 했다. 이 사기 무기가 널리 퍼지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 공기총 매커니즘 그 자체였다 조용하고 반동없고 사거리 길고 위력 좋으면 뭐하냐? 30발 쏘려고 개머리판에 채워넣어야 하는 압축공기는 펌프질 1500번을 해야 하는 분량이다. 거기다 전쟁질하면서 딱 30발 쏘고 끝날 리가 없잖음. 예비개머리판도 당연히 들고 다닐텐데 개머리판을 3개만 들고 다닌다쳐도 펌프질 4500번을 해야한다. 씹헬지옥이다. 안 그래도 연사속도 빨라서 총알 소모 빠르다는 거 생각하면 더 들고 다녔으면 더 들고 다녔지 적진 않을걸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의 팔근육이 전투 시작하기도 전에 모조리 빠개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아무리 씹사기 무기라도 이딴 거 쏘려고 3시간동안 4500번 펌프질을 해야 한다면 고민이 존나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스트리아는 35년동안 꾹꾹 참으면서 지란도니 공기총을 써오다 딸근의 파열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머스킷으로 회귀하고 만다 존나 큰 장점이 있어도 존나 큰 단점을 가릴 수 없다면 결국 무기로선 실패작인가보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조선시대 군의 검, 환도
환도는 조선시대의 군의 칼이다. 환도에 대한 기록은 1277년 고려에 몽골사신이 와서 이장무와 함께 환도를 만들기 시작한것이 최초이며 고려후기에 들어온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세종실록 - 우리나라 말로 환도라 한다. 검은 칠을 하고, 장식은 황동을 사용하고, 술은 홍도수아로써 드리우고, 띠는 가죽을 사용한다.> *환도와 일본도의 구분법 일본도 환도 구분법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젤 쉬운게 그냥 장식을 보면된다 (칼날단면. 즉, 육각도,배형도,편삼각도 등으로 구분하는건 복잡 함) 환도는 칼 양끝에 '금속장식'과 '칼집에 띠돈'이 달려있고, '자루에 술'이 달려있다. 띠돈에 군복용 허리띠를 걸어 패용(착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환도 칼집에는 칼을 뽑을수 없게 락킹 버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환도 패용법 환도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했다 그 이유는 1. 말 탔을 때 걸리적 거리지 않음 2. 활 쏠 때도 걸리적 거리지 않음 때문이였다 넷플릭스 킹덤을 보면 칼자루가 앞으로 오도록 패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활을 쏠때 줄을 당기는데, 이때 칼자루에 걸려서 매우 매우 불편 하게 된다 그래서 활과 같이 무장 할때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 하는게 정석이다 근데 이렇게 칼자루가 뒤로가면 칼은 어떻게 뽑음? 하겠지만... 아주 쉽고 편하게 잘 뽑 힌다 *환도의 특징 조선 초기의 환도는 길이가 짧아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았고 이는 단점이였다. 물론 초기 환도에도 장점은 있다 좌우로 스텝을 밟으면서 후려치거나, 빠르게 이동해서 베는 식으로 기동력을 살리는 전법에 편리했다. 방패를 들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상대를 찌르는 검술에도 유리했지만, 기록을 보면 조선초기의 환도는 일본도의 위력을 이길 수 없었다고 나온다 초기 환도는 질량에 비해서 구조적인 안정성은 높지만, 한손으로 휘두르는 속력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살상력이 부족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격만으로도 충분히 살상력이 나오는 일본도에게 버티지 못 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검을 들고 크게 도약하며 창까지 상대 했었다고 한다) 결국 임진왜란을 겪으며 일본도를 상대 하기 위해 환도의 길이가 길어지게되고 임진왜란 이후엔, 몸을 위아래로 크게 회전하면서 체중을 실어 베는 일본의 검술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질량이나 내구도 같은 검의 스펙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검을 다루고 가르치는 검술 체계가 있느냐가 제일 중요했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근일에 약간 전습하니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별도로 한 장수를 뽑고 아이들 약간 명을 선택하여 한 대열을 만들어서 왜인의 검술을 익히되 주야로 권장하여 그 묘법을 완전히 터득한다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훈련 도감에 이르라."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왜의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중략)신의 아랫사람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환도는 원래 보조무기 국궁, 승자총통, 천자총통 같은 무기와 집단 전술을 애용했던 조선에서 짧은 환도는 보조무기였다. 애당초 조선의 주력은 갑사 부대 즉, 기마궁술이였다. (여진족,왜구 잘 조지던 정예병력이였는데, 신립이 탄금대에서 다 날려먹음) 때문에 조선에서 검을 이용한 전술은 빠르게 쇠퇴했고, 검을 제작하는 기술은 휴대하기에 편한 칼을 만드는데 집중되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환도는 일본도랑 크기가 비슷하더라도 약간 더 가벼웠다. 질량을 낮추었으므로 타격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다양한 무기들을 함께 패용하거나, 기동성이 높은 전술을 쓰기에도 유리했다. 활을 주무기로 한 우리나라의 병법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접전도 활로 할 정도였고, 임란 당시에도 궁술의 달인들이 많았었다. *임진왜란 이전 무과 시험에 검술과목 자체가 없었다. 다만, 군영에서 검술을 딱히 중요하게 안가르쳐서 공식적인 검술이 없던것이지 기록을 보면 소수의 민간에서 전승되어 몇몇 선비나 장군들이 칼로 전공 세우거나 검술 익혔단 기록들이 있긴있다 전쟁 터져서 수도까지 털리고 하니 당시 정보력 수준으로는 검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애들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근데 이건 세조가 조선군의 인사 고과를 철저히 궁사 위주로 재편시켜 창,검술의 전승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임란때 고생한게 아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조선의 검술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 발발 200년 이후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된 조선 시대 군용 무술 교본이다. 여기에 5개의 검술이 실려있는데 임란 이후 일본의 검술과 중국 남부의 검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무기,편제,상황에 맞게 상당부분 재구성 및 재편된 것들이다. 참고로 동시대 기준 수준이 매우 높은 검술 체계들로, 숙련된 검사들이 육성되기 시작했다 (김체건,김광택,백동수 등) 간혹 일본거랑 중국거 수입해와서 한국거 아니다라고 박박거리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만의 오리지널리티 있는것들이 포함되어있고, 어차피 무술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은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일본의 가라데는 중국 남파 권법에서 유래해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본토에 전해졌다. 즉, 자기들만의 무술로 승화시킨것이다. 현재 가라데를 중국무술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드라마의 폐해 한국 사극에서는 100편 중 90편 이상이 카타나(일본도)를 써서 논란이 많았다. 이후 추노,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킹덤 등등.. 무기 고증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쓴 작품이 나오며 고증된 형태의 환도를 볼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현대에 남아 있는 환도 칼 양끝의 '금속장식'과 '칼집의 띠돈'이 환도임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박물관 소장 녹칠어피 운검) 조선은 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칼들을 환도라고 불렀는데. 환도 종류로는 대표적으로 일반군용, 운검, 별운검, 어도 등이 있고 환도 외에는 사인검, 칠성검, 예검 등이 있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고려대박물관 소장) 운검 조선의 대표적인 환도 양식으로 후기까지 많이 유지했다. 운검은 왕의 호위무사들을 칭하고 이들이 패용하는 환도 명칭도 운검이라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별운검 나라의 큰 행사 때 왕의 양옆에서 별운검을 들고 호위하는 임시관직이다. 종2품(중장급) 이상 믿을만한 사람 2명을 선발한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어도(임금의 환도) 대모갑, 옥, 금, 은을 사용해 제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네덜란드 소장 운검) (독일 라이프치히 소장 환도) 칼집에 십장생문을 새겨 넣었고 칼날에는 광사두우 光射斗牛 '칼의 빛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쏘아 우주의 이치에 맞닿는다'가 새겨져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환도) (러시아 박물관 소장 환도) 코끼리 상아로 칼집을 만들고 조각을 넣음 금, 은 등을 사용해 제작 임진왜란 이후 일본도식 손잡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대 박물관 소장) 칼집에 옻칠을 하고 위에 금분을 뿌려 마무리하는 일본 전통공예 양식(마키에 양식)을 사용 전어도 태조 이성계의 칼 전어도는 경복궁의 고궁박물관에 소장중인 칼로 임금의 어도라고 전해지는 검이다. 야사로는 이성계의 칼로 전해지는데 고궁박물관엔 같은 칼이 1점이 더 있다. p.s 독일에 환도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고종이 선물로 준것들도 많고, 수집가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종격투기카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