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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내가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오늘의 주인공은 강항(1576~1618)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살다 갔지만 알게 모르게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치고 간 사람이었다 강항은 임진왜란 도중인 1593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4년만에 형조 좌랑까지 올랐다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잠시 휴가를 얻어 고향인 영광에 내려와 있었는데 정유재란이 터지는 바람에 휴가가 쫑나고 군량수송임무를 수행했다 강항한테는 비교적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수군통제사가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원균이었다는 점. 칠천량 해전 패배의 여파로 일본군의 공세에 직면하게 된 강항은 간신히 영광으로 도망쳐 의병을 모았다 (?? : 님아 ㅈㅅ) 하지만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일본군의 공세 앞에 의병이 제대로 모일리가 없었고 기껏 모은 한줌의 의병도 도로 흩어졌다 이순신이 수군 통제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강항은 이순신에게 가려고 가족들과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강항이 문관 고위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군은 강항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일본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들었는데 아들과 딸이 죽었으며 병에 걸린 조카가 일본군에 의해 산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강항 본인도 가족들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처음에는 일본 에미헤현에 감금되었는데 탈출 시도가 적발된 후 수도인 교토로 이송되었다 강항에게는 천만다행인게 교토에는 말이 통하는 지식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국적을 초월한 만남이 이때 성사된다 강항이 기록한 세이카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두뇌가 총명하고, 옛글을 잘 쓰며, 책을 많이 읽는 성품이 바른 사람으로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이카는 학구열이 높은 사람으로 성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아직 일본에 성리학이 제대로 전수되지않아 배움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조선에서 장원급제한 '성리학 마스터'가 고위직 포로로 끌려왔으니 그야말로 동경하던 아이돌이 옆집에 이사온 꼴이었다 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강항은 조선 정부의 시스템과 과거 제도, 여러가지 성리학 해석을 가르쳐주었고 세이카는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유학자로 갈아탔다 강항이 포로 생활로 힘들어할때 세이카는 강항에게 은전을 주어 생활비로 쓰게 하였으며 강항은 세이카에게 사서오경 일본식 해설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강항이 조선에 돌아갈 수 있게 힘을 써준 것도 세이카였다 임진왜란에서 드물디 드문 국경을 초월한 우정. 1600년 조선 땅을 밟은 강항은 한양에 올라가 일본에 대하여 자세한 보고를 올렸고 기록을 모아 '간양록'을 지었다 이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다 1618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도쿠가와가 일본을 재통일하고 군사적인 필요가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문신으로 바꾸기 위해 유학을 주입하는데 이때 후지와라 세이카를 불러 대학에서 유학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게 일본에 주자학과 성리학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은 도쿠가와의 개인유학 교사인 '시강'이 되었다 100년도 지나지않아 17세기 후반이 되면 조선 주요 수출품에 성리학 서적이 포함되고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오면 일본유학자들이 이들을 잡고 학문과 정치를 논했다 하니 전쟁포로였던 강항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마냥 작지만은 않았던거 같다 일본에는 강항 헌창비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여기에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어놓았다 피를 피로 씻는 임진왜란이었지만 강항과 세이카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구.... 강항의 기록에는 재밌는게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이 일본보다 크다고 하는데 믿을만한 일본인(세이카)이 보여준 기록을 보니 일본이 우리보다 더 큰거 같아요" "일본 군인들은 수백, 수십년 묵은 오래된 검(원문은 천년, 수백년)은 챙겨가는데 최근 만들어진 검은 안 좋다고 그냥 버려요" "조선에서 돌아온 일본애들이 자기들은 한두걸음 칼싸움을 잘하는데 조선애들은 수백걸음 밖에서 활을 쏴서 힘들었다고 하네요" "일본은 세금을 너무 거두어서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군인으로 끌려가는 애들은 충성심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따라다닐 뿐이니 이전에 항복한 왜인들을 잘 품어주었으면 좋았을것 같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신에 문제가 많고 지식인들 중에서는 알음알음 천하가 뒤집어졌다(신분제가 아작났다)라는 불만이 나오곤 해요" 등등 몇 안되는 고위직 포로의 신분으로 그 당시 일본 상황을 총망라한 보고서여서 당시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많다 (출처) 저게 바로 한류인가 K-성리학
가톨릭의 성녀 마르가리타
안티오키아의 성녀 마르가리타. 천주교의 14구난성인 중 한 명으로 굉장히 유명한 순교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원래 이교의 사람이었으나, 믿음 있는 자였던 유모 덕에 카톨릭의 믿음을 전파 받는다. 이후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다. 누군가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축복이었겠지만, 마르가리타에게 아름다움은 독이었다. 안티오키아 지사로 임명된 올리브리오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추악한 욕망에 찌든 올리브리오는  아름다운 마르가리타에게 청혼을 한다. 심지어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는데, 아내와 이혼할 테니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이를 거절하고 자존심이 상한 올리브리오는 분노에 미쳐 날뛰게 된다. 이후 그는 마르가리타가 금지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지하 감옥에 가둬버린다.  이후 고문과 회유가 반복되는 끔찍한 감옥 생활이 이어진다. 하지만 신실했던 마르가리타는 믿음으로 이를 이겨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컴컴한 어둠에  그녀를 유혹하기 위한 악마가 찾아온다. 악마는 기괴한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악마는 마르가리타에게 찾아와 유혹하기 시작한다. 마르가리타, 마르가리타. 불쌍한 소녀여. 네 신은 너의 고난을 보고도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왜 그럼에도 너는 신을 믿는가? 신을 저주해라 그리고 믿음을 버려라. 세상 모든 걸 원망해라......!!! 감옥에 갇혀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던 마르가리타에게 악마의 유혹과 위협은 크나큰 고난이었다. 마르가리타는 악마를 마주한 채..... 가슴에 품고 있던 신앙심이 깃든.... 망치를 꺼낸다. 그것도 존나 크고 아름다운. 안 그래도 별 거지 같은 이유로 감옥에 갇혀서 고문 당하느라 빡쳐 있던 마르가리타는 눈에 뵈는게 없었다. 왜 어째서 감옥에 갇혀 있던 성녀가 가슴에 망치를 품고 있었는지는 묻지 말자. 중요한 건,  사탄이 안 그래도 빡쳐 있던 성녀의 콧털을 건드렸다는 거다. 정설에 의하면,  성녀 마르가리타는 그 말을 들은 즉시 사탄의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망치로 뚝배기를 후려갈겼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가리타를 그린 그림을 보면 유독 사탄의 머리를 잡고 침착하게 망치를 내리 치는 모습이 많다. 그냥 울먹이면서 망치를 휘두르는 그런 나약한 모습은 상상하지 말자. 나사렛의 몽키 스패너의 믿음을 이은, 안티오키아의 정의로운 장도리는 그런 것 따위는 없다 머리 채를 잡고 정확히 망치를 후려 갈기는, 숙련된 자세로 악마를 퇴치하셨다. 망치로 악마를 때려잡는 그림이 성모마리아라는 오해가 있는데 자애로우선 성모님은 망치로 악마의 머리를 때리는 일은 하지 않으신다. 그 분은 그냥 주먹으로 갈긴다. 도구 따위에 의지하지 않으신다. 오해 없길 바란다. 아무튼 이렇게 악마를 때려잡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고 많은 사람이 그걸 보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놀라워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믿음이 전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녀 마르가리타는 그 이후로 고난을 받다가 결국은 참수형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참수형도 칼로 10번 이상을 내리쳤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성인의 반열에 들었지만, 문제는 당시 카톨릭에서는 망치로 악마를 때려잡는 성녀를 그릴 수가 없어서 믿음과 기도로 악마를 물리치게 했다는 장면으로 순화시킨다. 이후 그림을 보면 성녀 마르가리타는 망치 대신 십자가를, 눈 부릅 뜬 얼굴에서는 자애와 편안함이 머문다. 그리고 그녀를 위협했던 용 역시 그냥 불쌍한 애완동물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정교회는 그런거 없어서 그냥 마르가리타가 빡쳐서 망치 들고 악마 패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아무튼 후에 천국에 간 성녀는  먼 훗날, 신의 부름을 받은 또 다른 성녀 앞에 나타나 위대한 주님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마르가리타로부터 계시를 받은 그 성녀가 바로.... 예수초즌, 잔다르크다. 성녀 잔다르크는 성녀 마르가리타의 환시를 받고 영국군의 대가리를 깨버린다. (출처) 어쩐지 마르게리타 맥주와 마르게리타 피자가 맛있더라니 다 뚝배기 맛이었군
전문가가 대한민국 국보 중의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하는 문화재.jpg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련 전문가가 국보 중의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하는 유물. 과장이나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원 오브 카인드라 말하는 유물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알려면 1993년으로 돌아가야 함. 1993년 부여 능산리 문화재가 가장 없을 만한 곳에 주차장 짓기로 결정 주변 다 파보고 검사했는데 없어서 승인됨. 발굴단 중 한 명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함. 한번만 더 파보자라고 공무원에게 필사적으로 요청함. 원래 규정되면 이미 승인되서 윗사람들까지 결재 땅땅 받은 거라 NO인데 갑자기 우주의 기운이 이상하게 몰렸는지 당시 부여군청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 담당자가 오케이 해봅시다! 이러고 무리해서 예산까지 따로 때줌. 그리고 땅을 파보는데.. 갑자기 진흙 속에서 이게 나옴 전에 이런 유사한게 한번도 없어서 발굴 당시에 뭔지 아무도 모름 보름동안 유물처리 끝에 발굴단은 엄청나게 경악함. 백제 금동 대향로 무려 1300년전 향로가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유물인 것. 1300여 년을 당 속에 있었지마 진흙이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줘 녹이 슨 흔적조차 없었다. 당시 학자는 이 유물 하나가 무령왕릉 발굴 전체와 맞먹는 고고학적 대발견이다 할 정도 당나라에 의해서 사비 백제가 멸망할 때 이름 없는 한 명의 백제인이 목숨을 걸고 보물을 보호하다, 진흙 속에 파 묻은 것이라 한다. 이것이 천년이 지나 우연하게, 그것도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후손에게 발견된 것. 수은과 금을 이용한 도금법인 ‘수은아말감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선 기술이었음. 정밀하고 화려한 백제 문화재 중에서도 초초초초고난이도의 작품으로, 동시대에도 견줄만한 작품이 없음. 이것을 만든 사람은 삼한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에 해당하는 초특급 천재일 것으로 추정. 1300년전 유물이 어디 손상된 곳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지금의 자태를 보노라면 나라가 멸망하고 온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느 ㄴ와중에 무명의 한 백제인이 왜 목숨을 걸고 이것을 보호하여 진흙속에 파 묻었는지 알 것 같음. 정말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연속과 행운이 겹쳐서 발견된 유물. 발견될 때 섬유 조각과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금동대향로를 감싸서 묻은 흔적이라 추정된답니다. 즉 우연하게 던져졌거나 난리중에 떨어져 간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파묻어 숨겨둔 것. 현재로 소개할 때 학자가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라고 말하는 그것. 백제 금동대향로. 출처 도탁스 향피우는 장면도 추가해봅니다. 정말 예술이네요..
내 배를 망치는 따개비를 죽인다
뱀코 짤을 보다가 배에 들러붙은 따개비를 보게 되었다 따개비는 게의 친척으로 바위나 뱃바닥에 붙어서 증식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생명체로 인간이 처음 배를 띄운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모든 배들의 숙적이 되었다 뱃바닥에 증식한 저 징그러운 따개비들 따개비가 늘어나면 1) 유선형 선체가 뭉개지면서 저항이 높아지고 속력이 느려지며 2) 방치하면 점점 무거워졌다 따개비의 석회질 껍데기는 매우 날카롭고 단단해서 손으로 때어내는게 매우 어려웠으며 배를 뒤집은 다음(?) 불에 지지거나 망치로 때리는 방법을 썼다 큰 항구에 도착하면 이런 대대적인 정비를 한번씩 받고 했는데 쥐를 쓸어버리기위해 배를 아주 침수시켰다가 끌어올리는거랑 따개비 제거하는게 가장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항해는 길면 몇 개월이나 걸리는 길고 긴 여정이고 그 동안 한번도 정비를 못 받는 경우로 왕왕 나왔기에 따개비가 들러붙는걸 막기위해 그 비싼 동판을 뱃바닥에 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동은 지금도 비싼 금속이므로 이런 고급 처리를 받은 배는 소수였다 요즘은 유독성 페인트를 발라 따개비 증식을 늦추거나(페인트도 항해를 오래하면 독성이 씻겨나가기 때문에 확실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전기 충격으로 조지거나 화학약품을 뿌리는 방법으로 따개비를 제거하고 있다 독성 페인트와 화약약품 처리는 해양오염 문제 때문에 점점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의 영길리들은 중죄를 지은 선원을 밧줄에 묶은 다음 뱃바닥을 한번 쓸고가게 하는 형벌을 가했다 이 경우 선원의 등판은 따개비 때문에 너덜너덜해졌으며 운좋게 살아나도 감염 때문에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역시 영길리야 대단한 창의력! (출처) ????? 따개비 형벌 미친 거 아니냐며 영길리 창의력은 정말 ㄷㄷ 차라리 형벌로 바닥의 따개비를 떼라고 하지 이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