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ds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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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첨가)
아무것도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영화였고
분명 그것은 현재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작품이었지만
나는 한참을 아무것도 말하지못하고
숨만 가늘게 쉬면서허공을 바라봐야만 했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영화를 꽤 오래전부터 보고자 했었다. 다만 두려웠다.
독일에는 독일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역사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이 스스로 인정했고 세계가 비난했던 유대인 학살, 그리고 포로수용소. 그것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때를 역사를 기억한다. 나 또한 그랬다. 어렸을 때 나에게 쇼크를 안겨줬었던 <인생은 아름다워> 그 영화와 이 영화의 같은점은 아들이 등장한다는 것이지만 그 내면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는 어둡고 슬프며 고통스럽고 참담하다.
그래서 두려웠다. 한참을 망설였다.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아주머니가 청소를 할때까지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차갑게 방안을 감도는 에어컨을 꺼버렸다. 에어컨보다 더 시린 오한이 찾아들었다. 그 추위에 몸을 추스리고 앉아서 한참을 숨만 쉬고 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물량'을 운송하는 유대인들 '존더코만도' 그들의 등에 x자는 그들이 '물량'들에 섞여서 죽지 않게 그들을 증명하는 신분증이나 다름없다. 들어오는 '물량들을 이동시키고 옷을 벗는 것들 도와주고 작은 공각에 다시 이동시키고 문을 닫는다. 잠시후 어느새 정말 '물량'의 단위가 되어버린 '토막' 들을 꺼내서 소각장으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청소를 한다. 한구석에 쌓여있는 '토막' 들 사이로 청소를 한다. 어디선가 숨소리가 들린다. 아이다. 아이가 살아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인 것 같다.
아들을 옮겨놓았다. 독일 장교가 오더니 몇마디 주고받고는 내 앞에 아들의 옅은 숨소리를 두손으로 틀어막는다. 나는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아들이 죽는 것을, '물량'으로 들어온 아들이 '토막'이 되는 것을 바라본다. 그저 바라만 본다.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 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토막'으로서 '소각'되어 다른 '토막'들의 재와 섞여 물속에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서 랍비의 기도와 함께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살아가기를 바랬다.
아버지는 필사적이다.
그간 자신과 생과 사를 함께했던 존더코만도 동료들보다 자신의 아들이 사람으로서 죽기를 바랬다.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에게 더이상 죽음이라는 것은 없었다.
이미 아들이 독일 장교의 손에서 숨이 멎었을 때 그의 숨도 함께 멎었다. 그저 그는 아들의 시체를 보존하고 랍비를 구하고 땅을 파서 아들을 묻으며 기도해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삶의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일에 개의치 않다. 자신이 죽지 않을 만큼만 그 선 안에서 최대한 모든 필요한 것들을 끌어당긴다.
영화는 사울 이외에 모든 외부의 것들을 흐릿하게 비춘다.
그의 근처에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울을 단호한 표정을 잃지 않으며
꿋꿋하게 아들을 위해 지옥을 거닌다.
단 하나의 행복함도 없이
끝까지 비참하고 끝까지 가슴을 옭매인다.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
지금도 공기가 무겁다.
영화 안의 그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태어나 함께 있지 못했고, 자라는 것을 봐주지 못했던 아들이다. 어쩌면 그만큼 성장한 모습을 처음 봤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독일장교의 손에 죽는 순간에도 내 아들이 저만큼이나 컸구나라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로서 생전에 하나도 제대로 해준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필사적이었을까. 그런 애틋한 아들이 죽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서 데려온 남자가 랍비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며 랍비라 믿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 하나 때문에 탈출하려는 동료들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결국 다같이 죽을 위기에 와서도 아들의 시체만을 생각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모르겠다. 어렵고 두렵고 무겁고 어두웠던 영화였다.
오늘 밤에 내가 잘 잘수 있을까. 어느새 눈을 떴는데 나는 그날의 그 지옥에 있지는 않을까.
문득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영화 <컨저링>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영화야 말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다. 내가 그날의 아우슈비츠에 있었다면, 내가 '물량' 이었다면 아니면 내가 '존더코만도'였다면, 내가 '사울' 이었다면 어땠을까?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으로 영화를 접어둬야겠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서 이 가슴 답답함을 한쪽에 접어 둬야 겠다.
당신에게 올바른 감동을
김큰별의 은하수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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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
줄무늬파자마를 입은소년 보셨나요? 그 영화도 수용소를 배경으로 했는데 엔딩장면이 나오고나서 한동안 멍때리게됩니다. 소설 원작인데 한번 보시고 위와같은 리뷰 올려주시면 좋을것같아요
Anonym
@kimds1991 위 영화를 보지는않았지만 어느정도일지 감은오네요ㅋㅋ 제가 추천한영화도 위와못지않을 영화일꺼에요. 어둡지않은 분위기로 먹먹함을 표현한다고 해야될까요. .ㅋㅋ 꼭보시고 전문가의 글솜씨로 리뷰가되서 많은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ㅋㅋ 저한테는 인생영화에요ㅋㅋ
좋은 의견감사합니다~^^! 꼭한번봐야할 영화리스트에 또 한편이 추가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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