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래픽= 이종현
[청춘스포츠 3기 이종현] 1위와 10위와 싸움. 양 팀이 만난 경기는 뻔해 보였다. 우루과이는 코파 아메리카 역대 최다 우승국(15)이며 러시아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우울하다. 남미 예선에서 10위(1무 5패), 7골을 넣고 17골을 얻어맞았다. 최근 분위기로 보나 양 팀의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나 우루과이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가장 관심을 받은 장면은 수아레스의 분노와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수아레스 없는 우루과이는 앙금없는 찐빵이었다.
#그날의 분위기
양 팀은 1차전 결과의 온도 차는 명확했다. 우루과이는 멕시코와 경기에서 1-3 대패를 당했다. 킥오프 전 엉뚱한 우루과이 국가 대신 체코 국가가 나왔고 주심이 엉뚱한 판정을 내렸으며 멕시코가 소위 ‘약 빤’ 경기였다. 고딘과 카바니가 항의하는 시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했다.
베네수엘라는 한 명 적은 자메이카를 맞아 1-0 신승을 거뒀다. 한 명이 적었어도 자메이카는 매서웠다. 어렵사리 승점 3점을 차지한 베네수엘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한 2차전. 킥오프 이후 다급했던 우루과이와 달리 베네수엘라는 여유가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와 1차전의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여유로운 경기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우루과이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2차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하는 참사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선수단에 있었다.

선제골의 주인공 론돈. ⓒ남미 축구협회 페이스북
#베컴 샷이 만든 나비효과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은 건 우루과이였다. 우루과이는 볼을 소유하고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했다. 카바니의 헛발질이 아니었다면 득점할 수 있는 장면도 있었다. 그때 경기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일어났다.
전반 35분 알레한드로 게라가 하프라인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도한 슈팅이 그림같이 날아갔다. 마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베컴이 시도한 킥과 유사했다. 무슬레라가 나온 것은 보고 시도한 기습슈팅이었다. 무슬레라의 손끝에 맞고 골포스트를 맞았지만, 맹렬히 쇄도한 론돈이 마무리 지었다.
급할 게 없었던 베네수엘라는 선제골 이후 더욱 느긋해졌다. 코너킥, 드로잉, 골킥, 프리킥 등. 잠시라도 시간이 끌 수 있는 상황에선 어김없이 시간을 끌었다. 강팀이 할 수 있는 여유로운 경기운영과 템포 조절을 베네수엘라가 했다. 첫 골이 만든 나비효과였다.

수아레스 없어 외로웠던 카바니. ⓒ 남미 축구협회 페이스북
#갓바니가 웬 말
우루과이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암흑기를 뻥 차버렸다. 우루과이 축구의 부흥에는 확실한 킬러의 존재가 컸다. 포를란과 수아레스는 언제나 우루과이의 믿을맨이었다. 카바니도 때때로 잘했다. 단지 주변 선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수아레스 없는 카바니는 경기 내내 방황했다. 전반 14분, 30분, 33분. 카바니는 자신에게 찾아온 찬스를 모두 놓쳤다. 카바니가 이 모든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있었다. 후반 45분 페널티 박스 안에서 잡은 결정적인 찬스. 완벽한 찬스에서 시도한 카바니의 슈팅은 골문을 외면했다. 갓바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페라난다
스페인 라 리가 최연소 외국인 득점 기록자인 페르난다는 베네수엘라의 호날두다. 호쾌한 드리블과 왼쪽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돌파하는 움직임까지. 어린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기 중 영향력을 발휘한다.
페라난다의 전반 활약은 미미했다. 우루과이의 거친 수비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페라난다는 경기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에 관여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후반 22분 하프라인에서 밀고 올라간 역습찬스에서 1대 1 찬스를 만들었다. 비록 득점엔 실패했어도 그의 잠재성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후반 32분 투입된 오테로와 함께 앞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세대교체의 '상징' 페라난다를 상대한 노쇠한 우루과이. ⓒ 우루과이 축구협회 페이스북
#세대교체도 문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우루과이
우루과이의 패배를 카바니의 부진으로만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측면의 가스톤 라미레즈와 수아레스의 대체자 스투아니의 활약도 부족했다. 전반 두 선수는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 후반이 돼서 그나마 공격지역에서 찬스를 만들었다. 스투아니는 후반 8분이 되어 슈팅다운 첫 슈팅을 기록했고 라미레스 역시 10분에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최전방 문제에 가렸지만, 우루과이의 미드필더의 부진도 패배에 한몫했다. 포백 앞을 보호한 아레발로 리오스는 지난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당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왕성한 활동량과 터프한 수비력으로 우루과이를 견고하게 했다.
현재 30대 중반이 넘어선 리오스는 정점에서 내려왔다. 활동량이 줄면서 상대 팀 선수들이 우루과이 포백과 직접 맞부딪치는 장면이 늘어났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가 강한 건 고딘-히메네스 센터백 라인의 능력도 있지만, 포백 앞에 견고함을 유지하는 미드필더 라인(가비-아우구스토)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우루과이 미드필더의 커버 능력과 활동량은 부족했다. 베네수엘라의 역습에 자주 위기를 맞았다.
카바니를 제외한 공격자원의 활약도 부족했다. 리오스와 함께 중원을 구성한 알바로 곤잘레스도 별다른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측면과 최전방 공격수의 부진뿐만 아니라 허리에서 적절한 공격작업을 만드는 ‘설계자’가 부족한 것도 우루과이의 패인 중 하나다. 우루과이 스쿼드의 변화는 불가피 해보인다. 오스카 타바레스의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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