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dwls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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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언

'너는 커서 뭐가 될래?' '공부해서 남주냐, 열심히 해라.' '그게 밥먹여주냐? 속 썩이지마라.' 자라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자 지금도 제일 많이 듣는 말. 부모의 입장에선 자녀가 잘되길 바란다. 남의 돈 받아 일하는 것은 힘들걸 진작에 겪고, 자신의 자녀만큼은 겪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 하고자 채찍질 한다. 힘든걸 겪게 하기 싫어서. 자연스레 어른들의 바램 속에 살아간다. 우린 그걸따라 그어놓은 줄을 따라간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조차 가지지않고 따라간다. 자연스레 꿈은 접고 그어진 줄을 그저 생각없이 따라간다. 그리고 둘로 나뉜다. '잘 따라오기 잘했다, 괜히 따라왔다.' 그리고 안심, 후회를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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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159 자꾸 태그하시면 신고할거에요!
@tap159 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남의 생각을 한심히 여기는 사람이 더 한심하죠!
@tap159 제가 그렇다고 한적은 없는데.. 그냥 그렇다고 그런건데?ㅇㅇ;
@acb3114 음...글쎄요
공부해야 된다는걸 어른되서 알면...너무늦죠 ㅎㅎㅎ 할수있는 폭이 줄어 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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