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냐,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냐. 사실상 미국의 차기 대선 후보가 이 둘로 좁혀졌습니다. 재미난 것은 두 후보의 출신과 배경이 극과 극이라는 점입니다. ‘여성 대 남성’, ‘인권변호사출신 대 부동산 재벌’, ‘주류 대 아웃사이더’, ‘흑인 진보층 대 백인 보수층’ 등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습니다. 따라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도 생각보다 클 수 있습니다. 두 후보가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슬로건
일단 슬로건부터 극과 극입니다. 우선 클린턴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스트롱거 투게더(Stronger Together)’입니다. 함께 해야 강하다는 뜻이죠. 대내외적인 도전과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는 호소가 담겨있죠. 특히 다인종국가인 미국의 통합을 위해서도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트럼프를 분열과 증오의 후보라고 비난하는 구호입니다.
이에맞서 트럼프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ing America Great Again)’입니다. 이는 사실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가 사용한 것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미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후광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리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이 슬로건은 오바마 정부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습니다. 민주당 정권이 8년 동안 집권하면서 위대한 미국을 후퇴시켰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경제정책
경제정책에서도 두 후보 간의 차별성은 뚜렷합니다. 특히 정책운용의 주요 수단인 세금 정책에서 매우 대조적이죠.
클린턴은 중산층 복원을 위해 부자증세를 약속했습니다. 연소득 100만 달러가 넘는 경우 최소 30% 세율을 부과하고 연소득 500만 달러가 넘는 경우에는 4% 할증 과세하는 방안이 부자증세 골자입니다.
이와함께 함께 투기자본과 불로소득에 확실한 과세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주식 단타매매와 부동산 단기보유 자산에 대한 자본이득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방안을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트럼프는 소득 최상위 계층의 세율을 39.6%에서 25%로 대폭 인하하고 개인소득 2만 달러, 부부합산 5만 달러의 저소득층에게는 연방 소득세를 모두 면제하겠다고 약속했죠. 또 상속세와 법인세도 각각 폐지하거나 감축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럼 줄어든 세원을 어디서 충당할까요. 트럼프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소득공제와 세액공제제도를 폐지하거나 감축해 충당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민자 정책
두 후보의 이민자 정책은 포용 대 배척으로 극과 극입니다. 우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임기 100일 내에 이민개혁법안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 법안은 1100만 명의 서류미비자들을 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그동안 쏟아냈던 막말처럼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테러와 범죄가 발생하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멕시코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불법이민자 추방군을 창설하겠다고는 주장도 거침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의료정책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시스템 개혁안인 ‘오바마케어’에 대한 입장도 갈립니다.
클린턴은 ‘오바마케어’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클린턴은 건강보험 개혁은 정치적 문제가 아닌 도덕적 문제이고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클린턴은 제약회사의 의약품 가격인상을 규제하는 등 환자의 부담을 적극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오바마케어로 미국인의 부담이 급증하고 경제적 불확실성도 증가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소득층과 노인층을 위한 차상위 복지정책만 유지한 채 건강보험 산업의 자유시장 개혁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트럼프는 제약산업의 진입장벽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해외 의약품 수입제약을 완화해 소비자들이 더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후변화
힐러리는 친환경 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등 기후변화에도 적극적인 입장입니다.
반면 트럼프는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도 ‘사기극’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세계관
국방장관을 지내며 외교협력의 중요성을 몸소 느껴온 클린턴은 현재의 동맹 시스템을 확고하고 강하게 유지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을 유지하면서 한·미, 미·일 동맹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을 앞세워 현행 동맹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를 냉전의 유물로 폄하하고 한국과 일본, 독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도 ‘미국의 국익’을 잣대로 동맹관계를 다시 따져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맹들의 방위비 분담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도 큽니다. 클린턴은 방위비 분담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기본전제는 동맹 강화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을 경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일정 시점에서 두 나라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
거의 유일하다시피 입장차이가 크지 않은 분야가 자유무역협정입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반(反) 무역정서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을 놓고는 두 주자 모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두 후보 모두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도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자유무역협정 등 이미 발효된 양자 무역협정을 놓고는 클린턴이 이를 지지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재협상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
두 후보 모두 북한 문제를 대처하는데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원하는 역할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클린턴은 현행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조를 계승해 압박 우위의 대북정책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압박과 제재를 통해 이란을 핵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모델을 북한에 대해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복안이죠. 이를 위해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의 북한관은 다소 오락가락입니다. 한때는 ‘상종 못할 존재’로 취급했지만 최근들어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통제하도록 경제적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지지율
현시점에서 지지율은 클린턴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로이터통신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지지율은 46%로, 트럼프(35%)를 11%포인트 차이로 앞섰습니다. 최근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 2~5%포인트 이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던 것에 비하면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죠.
이는 1984년과 88년 민주당의 대선 경선에도 참여했던 저명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한 오바마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부통령, ‘진보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지 선언 덕분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샌더스 후보의 협력 약속도 큰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트럼프 진영은 내분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학’ 사기 혐의 사건을 담당한 곤살레스 쿠리엘 샌디에이고 연방지법 판사에 대해 트럼프가 “멕시코계여서 나를 증오하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한다”고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발언이 나오자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습니다.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했고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제3 후보인 게리 존슨 자유당 후보 지지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총기규제
미국 대선의 또 다른 변수가 출몰했습니다.
1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클럽에서 최소 50명이 사망한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총기규제에 대한 시각이 미국 대선정국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실정을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써온 공화당의 트럼프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오바마 행정부의 대 테러 정책이 실패한 근거사례로 활용하며 오바마와의 정책적 차별화를 선명히 드러내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급진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옳았다고 축하하는 지지자들에 대해 “감사한다”며 “나는 축하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강인함과 경각심을 원한다.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는 평소 총기소유를 적극 옹호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총을 갖고 있었으면 참사를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반면 오바마와 정책적 동조화를 꾀해온 클린턴으로서는 현 정부의 테러대응 체계에 큰 허점을 드러낸 이번 사건이 자신의 선거캠페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은 테러 대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총기규제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무분별하게 총기판매와 소지를 허용한 것이 대형참사로 이어진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TV토론, 제3 후보인 게리 존슨 자유당 후보의 선전 등 11월까지 대선판도는 여러 번 출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클린턴이 되건 트럼프가 되건 우리나라에는 현재보다 유리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트럼프는 물론이거니와 클린턴의 경우에도 동맹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초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클린턴은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매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에서 현 오바마 정부보다 한층 더 강한 제재와 압박을 추구해 한반도 긴장을 조장할 우려도 있습니다.
결국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큰 일 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질서의 명언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