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fly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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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보다가

<그저 바라보다가>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나쁜일이 생기는 게 슬픈 인생이 아닙니다.
후회할 일이생기면 교훈을 얻을 수 있구요,
나쁜일이 생기면 좋은일의 소중함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 생각은요. 진짜 슬픈 인생은
살면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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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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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쏙:속] 박원순 시장 사망…빈소는 서울대병원
CBS노컷뉴스 장규석ㆍ조태임 기자 “1일 1쏙이면 뉴스 인싸!” CBS <김덕기의 아침뉴스>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매일 아침 필수뉴스만 ‘쏙’ 뽑아 ‘속’도감 있게 날려드리는 [뉴스쏙:속]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9일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서 구급대원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민기자 7/10(금), 오늘을 여는 키워드 : 어이없이 막 내린 박원순의 ‘소명’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보궐선거 이후 민선출범 이후 처음으로 3선 내리 서울시정을 펼쳐왔습니다. 지난 6일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며 소명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의 소명은 어이없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 당혹과 충격 어떻게 수습해야할까요. 일단 사건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방송 : CBS라디오 김덕기의 아침뉴스 (7월 10일)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16) ■ 진행 : 김덕기 앵커 ■ 연출 : 장규석, 조태임 1. 박원순 시장, 실종신고 7시간만에 숨진채 발견 소문이 현실이 되지 않기 바랐는데...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늘(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가족들의 실종신고를 받고 경찰이 수색에 나선 지 7시간 만인데요. 박 시장은 어제(9일) 오전 10시 44분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을 나와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성균관대 뒤편 와룡공원에 도착했고, 이때 CCTV에 찍힌 모습이 현재까지 알려진 박 시장의 마지막 행적입니다. 가족들은 어제 오후 5시 17분 112로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긴 뒤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소방과 함께 700여명을 투입해 밤늦게까지 수색작업을 벌인 끝에 오늘 새벽 삼청각 인근 산 속에서 숨진 박 시장을 발견했습니다. 2. 박 시장관련, 성추행 고소장 접수 확인 박 시장의 전직 비서로 알려진 A씨가 8일 밤 서울지방경찰청을 직접 찾아 박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신체접촉을 당했고 메시지로 부적절한 내용을 전송받았다며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박 시장은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지 하루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건데요. 경찰은 성추행 고소와 관련된 어떠한 사실관계도 일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박 시장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수사기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10일 새벽 서울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이송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황진환기자 3.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충격에 빠진 서울시와 정치권 3선 서울시장이자,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보폭을 넓히며 코로나 19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박 시장의 사망 소식에 정치권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박 시장의 사망소식이 속보로 전해지자 서울시청 직원들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등 당혹감과 참담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박 시장의 유고에 따라 서울시는 서정협1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게 됩니다. 박 시장이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그제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만났고, 실종 당일에도 여러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던 만큼 정치권도 더욱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박 시장과 가까웠던 이른바 '박원순계'로 알려진 인사들은 고인이 안치된 서울대병원에 밤새 머물렀습니다. 4. 오늘 부동산대책 발표, 종부세 대폭 강화할 듯 오늘 예고됐던 부동산 대책 관련 당정 협의는 박 시장의 사망으로 일정이 취소됐습니다. 다만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합대책 발표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우선 현행 최대 3.2%인 종합부동산세율이 6%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한편, 과도한 세제혜택 지적을 받아온 임대사업자 혜택도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5. 오늘 전국 장맛비, 남부지방은 호우주의보 오늘은 전국에 비 소식이 있습니다. 남부와 제주도에는 호우특보가 내려져있는 가운데 시간당 50mm 안팎의 매우 강한 비가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강원 영동과 영남 해안에는 내일 아침까지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겠습니다. 전남 남해안과 제주도에는 100mm 이상, 서울 등 그 밖의 지역에도 10~60mm의 비가 내린 뒤 밤에 대부분 그치겠습니다. 비가 내리며 더위는 다소 주춤하겠습니다. # 전남 고흥 병원서 화재…2명 사망·56명 부상, 부상자 계속 증가 중 # 폼페이오 “북미 대화 희망”. # 김여정 “아무 실익 없어, 하지만 비핵화 의지 없는건 아냐” # 故 최숙현 선수 가해 김도환 선수...납골당 찾아 사죄 ■ 클로징 코멘트 by KDK ■ (오늘은 클로징 멘트가 없습니다.) 2580@cbs.co.kr
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1)
1904년 10월 19일, 미 오클랜드.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혼부부가 기차에 올라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몇이나 낳았으면 좋겠어?' '글쎄, 한 다스만 낳지. 기왕이면 남녀 각각 여섯 명씩.' 대화 내용이 살짝 소름끼치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말은 실제로 실현됩니다. 평생 길브레스 부부는 여섯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가졌고, 개중 다섯째 아들과 일곱째 딸에게 자신들 이름을 각각 붙여줬죠(프랭크 2세, 릴리언 2세). 비록 둘째는 1912년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지만,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모두 잘 성장해 주었습니다. 길브레스 부부와 11명의 자식들. 자녀들은 부부의 실험 연구 대상이자 참가자였습니다. 부부는 여러 번 자녀들이 접시를 닦는 동작을 촬영해 분석하거나, 그들이 개발한 방식으로 타자기 사용을 보름 만에 숙지하게 교육하는 등 일상 생활에 그들의 연구를 접목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기억하는 부모는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네요. 어째서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가 열두 명 자식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프랭크 길브레스는 매번 가족들을 데리고 국립공원이나 영화관에 입장할 때, 혹은 기차나 차편을 타야 할 때면 항상 단체 할인을 받아냈다고 하네요. 나중에 프랭크는 아이들 중에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없어서 섭섭해했답니다. 여러 명 아이들을 한 번에 낳아 한 번에 기르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나요? 뉴저지 몽클레어에 집을 한 채 마련해 두고, '과학적 관리법과 낭비의 동작을 없애는 학교'라고 이름붙인 집에서 길브레스 부부는 평생 자신들의 연구를 그 자신과 자기 자식들에게 적용했습니다. 나중에 셋째 어네스틴과 다섯째 프랭크 2세는 자기 가족들이 그 집에서 살았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요. 이 책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속편에 영화, 뮤지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프랭크 길브레스는 자상하고 유쾌한 가장이었던 모양이지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혁신주의 운동이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떨칠 때가 1900년대 초 일입니다. 최초의 경영 컨설턴트 프레데릭 테일러가 활발하게 강연, 저술 활동을 하며 자신의 소위 과학적 관리론을 설파하고 다닌 때도 이 즈음이죠. 1904년 결혼한 길브레스 부부가 어떻게 평생에 걸쳐 공동연구를 수행했는지는 잠시 미뤄 두고, 먼저 프랭크 길브레스에 대해 잠깐 조명을 해보겠습니다. 프랭크는 메인 주 페어필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아났습니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결과 MIT에 입학 허가를 획득하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를 선택했죠. 17세이던 그가 선택한 첫 직업은 벽돌공 수습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능력을 인정받아 현장감독으로 승진했고, 나중엔 아예 독립해 건축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때 프랭크 나이가 34세였습니다. 사장이 된 프랭크가 집요하게 파고든 건, 바로 벽돌쌓기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수단으로 현장 연구를 실시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불필요한 작업 동작을 선별해내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동작 연구였죠. 프랭크는 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건설업계의 작업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여러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습니다. <현장 시스템(1901)>, <콘크리트 시스템(1908)>, <벽돌쌓기(1909)> 3부작 저서가 바로 그 방안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1903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부유한 집안 여성이 미 동부로 여행을 옵니다. 그녀 응접을 맡은 안내원 미니 번커는 프랭크의 친척이었죠. 결국 미니 번커의 소개로 여성은 프랭크 길브레스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 뒤 약 1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서로 마음이 맞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여성이 바로 프랭크의 영원한 반려, 릴리언 길브레스였죠. 릴리언의 아버지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으로 설탕 정제업으로 나름대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 집안일에서 자주 릴리언의 도움을 받았죠. 릴리언은 학업 성적이 뛰어났는데, 부모는 대학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자기 딸이 형편 넉넉한 집 자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게 두 사람의 바람이었죠. 릴리언은 그런 부모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너무 평범해서, 부자들은 아무도 저와 선뜻 결혼하려 하지 않을 거에요.' 설득이 먹힌 건지, 아니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건지, 릴리언은 소원대로 근처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은 주 시민은 누구든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강의가 많아서 심지어 건물 밖에 텐트를 치고 진행하는 수업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 학교에 기숙사가 따로 없어서 릴리언은 매번 집에서 통학을 해야 했습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는데, 심리학 등에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릴리언은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려, 졸업식 연사로 연단에 올랐죠. 캘리포니아 대학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졸업 연사를 맡은 사례였습니다. 1900년 릴리언은 콜롬비아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는데요. 본인은 영문학 전공을 희망했지만, 지도 교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영문학 교수는 여학생을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그녀는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 진학하는데요. 도중에 건강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902년 모교인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돌아와 기어이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릴리언은 바로 박사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때 지원한 전공은 영문학,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했죠. 이후 1903년 동부 여행 도중 소개받은 프랭크와 1904년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앞서 적은 그대로입니다. 결혼 이후 프랭크의 연구는 부부 공동의 연구가 되었습니다. 프랭크는 릴리언에게 산업심리학 분야를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죠. 릴리언 역시 그 편이 프랭크의 일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동의합니다. 결혼 당시 이미 프랭크는 길브레스 사Gilbreth inc.라는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두 사람이 꾸리는 가정 생활은 여러모로 독특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 그 집에선 항상 심부름거리가 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용돈이 추가로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이 할 심부름거리를 골라 길브레스 부부에게만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입찰액을 적어 제시했는데요. 부부는 이중에 최저입찰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응찰해 심부름을 맡기고 용돈을 주었다네요. 2. 프랭크는 매번 조끼를 입을 때면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며 단추를 채웠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위에서 아래로 끼우면 7초가 허비되지만, 아래서부터 채워 올라가면 고작 3초밖에 안 걸린다나요? 3. 한번은 면도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면도솔 두 개로 거품을 낸 후, 면도칼 두 자루로 한꺼번에 면도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걸 확인하려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당연히 면도칼에 목이 베여서 피가 났는데, 자녀들 증언에 따르면 프랭크는 베인 것 자체보다 그걸로 인해 목에 붕대를 감느라 2분이 오히려 허비된 것에 실망한 듯 보였다네요. 4. 평소에 프랭크는 가족 집합 신호로 휘파람을 정해 놓고 스톱워치까지 동원해서 신호 즉시 모든 가족이 무슨 일이 있어도 모이도록 훈련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체가 모여야 할 일이 있거나 손님이 와서 가족을 소개시킬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휘파람 신호를 이용했다는데요. 어느날 이들 가족이 길가에서 낙엽을 태우던 중, 그만 불이 나무 벽에 옮겨 붙었다고 합니다. 프랭크가 즉시 휘파람을 불자, 불과 14초만에 온 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죠. 불은 소방수에게 채 연락할 틈도 없이 꺼졌답니다. 5. 프랭크 길브레스가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냐고요? 화장실에는 가족들이 매일 할 일과 공정표가 붙어 있었는데요. 이건 부부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각종 가사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아이들은 밤에 자기 전 체중을 달아 그래프에 적고, 숙제를 마무리하고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으면 또 도표에 표시를 했습니다. 이때 아내 릴리언 길브레스는 스케줄에 기도하는 것도 표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요. 프랭크는 심사숙고 끝에 각자 자유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네요. 특이한 성격은 부부 양쪽 모두였던 모양입니다.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제 1회 국제경영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도중에 그는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고 근처 공중전화로 아내이자 파트너인 릴리언에게 전화하죠. '오는 도중에 가루비누 담는 동작을 생략할 좋은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기지 않지만, 그게 프랭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 가기도 전에 프랭크 길브레스는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홀로 남은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11명의 자녀와 집, 남편이 남긴 사업체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맡은 일이 남아 있었죠. 프랭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돌자, 심지어 그동안 길브레스 사와 거래해 온 업체들이 컨설팅 계약 중지를 통보했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두 선택지가 있었죠. 모든 일을 접고 고향에 가서 남편 잃은 미망인으로 평생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업무 파트너로서 그의 연구와 일을 이어갈 것인가. 릴리언 길브레스는 남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산업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