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HAR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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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CEO가될수없는 이유는.

가야할길을 아는것과 그 길을 가고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차이다. 본인이 가야할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사람들을 도와주고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한 개소리이다.
당신은 CEO가아니라 그냥 정식개인사업자등록을 낸 불법브로커일뿐입니다. 내가 좀 키워주려고 몇년동안 당신에게 대표라고 해주면서 조언해주니까 정말 당신이 대표라고 생각하나본데.. 당신은 그냥 하루하루 끼니때우며 살아가는 그냥 밥버러지 입니다. 그러니 잘지내시길바랍니다.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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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개소리지?
고마워용~"꼬옥"~~메롱ㅋ
@shooo1 토닥토닥. .쓰담"~
강한 독설~~잠시 심장이 쪼그라 들엇어요..덕분에^^
절이 싫으면 중이떠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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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경제적 자유란?
나에게 재정적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뭘까? 내가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는 상상이 사실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럼 지금 현재 상황을 보자. 내가 만약 중국어를 잘하고 유창하게 하고 싶은데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면, 또는 기타를 잘 치고 기타 연주를 통해 음반을 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면, 배우거나 코칭을 받거나 컨설팅을 받거나 강의를 듣거나 책을 사거나 대신 하도록 사람을 고용하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 비용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그리고 금전적인 비용 뿐만 아니라 시간적 비용과 대인 관계적 비용 등 여러 방면에서의 비용이 복합적으로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나에게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뭘까? 나에게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는 내가 원하고,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그것들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할 경우 내가 다른 방면의 비용과 함께 기꺼이(혹은 주저없이) 투자하고, 지불하여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내가 돈의 통제권을 가지고 돈의 주인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러한 여유로 돈을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에 쓸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는 즉 돈에 지배받지 않고 돈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선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대게 많은 사람들의 기준의 돈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능할 것 같다. 다만 나의 생각과 돈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가능할 것같다. 최근 들어 나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부와 돈에 대한 책을 접하고 있다. 일단 나는 아직까지 자산이나 모아놓은 돈이 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실패하는 투자나 부동산에 대한 책은 잠시 뒤로 미루고 있다. 아직 돈이나 자본 혹은 자산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무작정 뛰어들면 된통 돈독이 올라 당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과 자본, 자산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고자 자기계발서 같은 부와 돈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웰씽킹], [더 해빙], [멘탈 리셋], [아비투스], [부의 추월차선], [프리리치] 등이 있다. 이러한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부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붙는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책은 노골적으로 돈을 좋아하라는 말까지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없는 것보다는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여,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보다 가치있게 사용하다보면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음에 어떠한 물건을 살때나, 어떠한 주식에 투자하거나, 어떠한 부동산을 계약하든 더더욱 신중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와 또 그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생각과 신념, 그리고 선택이 나의 현재에 맞는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보노보노 첫화와 마지막화를 통해 살펴보는 철학 이야기 (스압주의)
첫화 어째서일까? (첫화부터 시작되는 보노보노의 궁금증병) 어째서 모두들 집을 갖고 있는걸까? 포로리야.. 어째서 집을 갖고 있는거니? 넌 뭐하러 그런 시시한걸 물어보니 사는게 집이지 뭐겠어 사는게 집이라고~~? 그래~~~~? (집을 갖고 싶어 포로리의 집에서 같이 살려고 하지만 해달의 특성상 높은 나무 위의 집에서는 살수 없는 보노보노) 나도 집을 갖고 싶어.. (집이 될만한 곳을 여러군데 찾아보지만 모두 환경에 맞지 않아 좌절ㅜ) 나도 집을 갖고 싶어요.. (마지막 시도로 멘토 야옹이 형에게 상담요청) 집이라면 벌써 갖고 있잖니. 에에~? 보노보노가 서식하는 바다 앞 야 보노보노. 넌 먹을때 어느곳에서 먹니? 저기쯤~? 잘때는? 저기쯤이었던가~? 그럼 이 바다 전체가 다 니 집이잖니. 이 바다가 전부 내 집~? 그렇구나~ 야옹이형 고마워. 첫화답게 보노보노 세계관의 기본적인 메세지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듯 합니다. '집'이라는 개념이 꼭 통나무집이나 동굴처럼 '닫힌' 공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죠. 먹고 사는 생활방식에 따라 집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를 보일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노보노 같은 경우는 바다생물이기 때문에 다람쥐나 너구리가 거주하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집을 가질수 밖에 없는겁니다. 그러니 억지로 남의 삶의 방식을 따라하려는 것(포로리의 집에서 같이 살려고 애쓴다든지)은 집착일 뿐이죠. 집이란 것은 그저 먹고 자는곳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죠. 다만 개인적 특성에 따라 그 먹고 자는곳이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구체화될 뿐입니다. 드넓은 바다 전체가 보노보노의 집이 된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지만, 집이라는 것의 본질을 그저 '먹고 자는곳'으로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전혀 문제될게 없는 얘기입니다. 바다는 분명 보노보노가 '먹고 자는곳'이 맞으니까요. 확대적용해서 생각해 봅시다. 성공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tv나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흔히 돈을 많이 번다든지,많은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최고의 스타가 된다든지, 이상형의 여자 또는 남자와 연애한다든지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국어사전에 성공이라는 단어를 치면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 간단명료하죠. 물론 돈을 많이 버는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의 경우는 돈벌이가 곧 성공을 의미하겠지만, 그 외 다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굳이 돈에 집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적으론 좀 배고픈 삶을 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해나가고 있다면 그게 곧 성공일 따름이니까요. 성공이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목적을 달성함'이라는 보편적 뜻으로 이해되지만, 그 성공이란 개념이 현실화,구체화된 모습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겁니다. (똑같이 '먹고 자는 곳'이라 할지라도 포로리의 집과 보노보노의 집은 그 구체적 모습이 너무나 다른것처럼요.) 그걸 깨닫지 못하면, 저마다의 개성에 맞게 구체화됬을 뿐인 타인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혼동하게 되어 남의 삶에 집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는것이죠.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보노보노 한국판 오프닝의 가사 중 어느 한구절이 생각나네요. 이 구절로 첫화 리뷰를 간단히 마치겠습니다. '상식이라는걸 누가 정한거야 정말로 진짜~' 마지막화 실컷 재밌게 놀고나니 해가 짐 어째서일까? (또 시작되는 보노보노의 질문병) 어째서,어째서 즐거운일은 끝이나는 걸까아~? 넌 왜 그런걸 또 궁금해 하니.. 보노보노, 잘생각해봐. 예를 들어서 내가 포로리를 때리고 있다고 치자. 맨첨에는 그게 굉장히 즐거워. 하지만 계속 때리고 있으면 차츰차츰 힘도 들고 손이 아파오거든? 즉, 싫증이 난다는거야. 그렇군. 즐거운 일은 싫증이 난다는 거로구나.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아빠,어째서 즐거운 일은 끝이나는 걸까요? 멍멍아, 너는 똥싸는게 즐겁니? 응! 매일 즐거운 일이 계속 됬으면 좋겠지? 뭐~? 그럼 난 매일 똥만 싸고 있어야돼~? (낮에도) 응가~ (밤에도) 응가~ 이제 더는 안나와... 그렇게 돼도 안되겠네... 즐거운 일은 어째서 끝나는 거죠~? 잘 들어봐 즐거운 일이란 것은, 맨 처음에는 굉장히 즐겁단다. (아들 패는게 삶의 낛인 패륜 아빠. 너부리가 왜 삐뚤어졌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 하지만 차츰차츰 손이 아파오고 힘도 들어. 즉, 싫증이 난다는거야. 마지막으로 멘토 야옹이형한테 질문 (첫화와 상당히 유사한 전개죠) 언덕위로 올라가 지는 해를 바라봄 (즐거운 일이 끝나는 시간인 황혼의 무렵) 잘 듣거라 보노보노. 즐거운 일이 끝나버리는 것은, 슬픈일이나 괴로운일을 반드시 끝내기 위해서란 걸 말이야 ..그래도, 즐거운일이 쭉 이어지면 좋을텐데요~ ..그러니? 그러면, 저 햇님은 하늘에 쭉 떠있는 편이 좋겠니? ..그렇게 되면 밤이 안오겠죠. ..그렇겠지? 햇님이 지고, 밤이오고 그리고, 또 햇님이 뜨고, 아침이 오듯이..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을 끝내기 위해서, 즐거운 일도 끝나는 거란다.. 햇님이 뜨고 지고 하듯이, 즐거운 일도 시작되고, 또 끝나는 거란 말이야.. 그렇군요.. 햇님이 지니까, 밤이오고, 밤이오니까, 아침이 되는 거로군요.. 그렇단다.. 슬픈일이나, 괴로운일이 끝나기 위해서 즐거운일이 끝나는 거라고? 하아..역시 모르겠어.. (자연의 섭리와 함께 둥글어가는 인생의 순환이치를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보노보노) (너부리) 야 보노보노~~뭐하고 있냐~ 아, 너부리야~포로리야~~ 어서 이리와~~ 잘은 모르지만, 오늘도 즐거운 일이 시작되나봐.. 틀림없이 그래..! ;;;;;;;;;; (보노보노 땀소리) (하지만 보노보노가 알수있는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끝나버린 즐거운일도 언젠가 다시 새로운 오늘로 다가온다는 것..!) ----------------------------------------------------------------------------------------------------- 인간이 여타 동물과 별반 다를게 없는 원시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된 한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뭉뚱그려 말하면 '사고하는 능력'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사고하는 능력 또한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했죠. 태고적 인류는 먹고사는 문제,즉 생존 자체가 곧 삶의 목적이나 다름없었고, 생존하기 위해선 자연의 원리를 이해해야만 했으니까요. 원시인도 이해할수 있는 자연의 섭리는 바로 '순환'입니다. 해가 뜨고 지고, 또 다시 해가 뜨는것..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오는것.. 이러한 자연의 순환 이치를 거부하면 인간은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순환이치에 역행하는 경향이 있죠. 이문재의 '광화문,겨울,불꽃,나무'라는 제목의 시는 이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참고:http://blog.naver.com/kls12?Redirect=Log&logNo=110144421104) 그렇기에 인간의 삶의 구조는 자연의 순환 구조와 상당히 닮아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해는 내일의 해가 다시 뜨기 위해 져야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 역시 오늘의 즐거운 일은, 내일의 또 다른 즐거운 일이 새로이 시작되기 위해 끝나야만 하는 것이죠. 제가 들었던 철학 관련 교양수업 중, 첫시간에 교수님이 재밌는 얘길 하더군요. 시험으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를 약술형으로 냈는데, 어떤 학생이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도통 몰라서 '?'라는 단 한글자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 '물음표'야말로 철학의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나름의 정답으로 인정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학생은 물음표의 본래 의미 그대로 단지 그 문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쓴것 뿐이지만 ^^;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은 내용가지고 이게 무슨 철학이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철학의 본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물음'일 뿐이에요. 다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저마다 다를 뿐이죠. 누군가는 단순하게, 또 누군가는 매우 심오하게 말이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타당한 논증구조로써 체계화시켰을 때 구체적인 학문적 물음으로 형상화 되는겁니다. 화학적으로 비유하자면 '물음'은 철학이라는 물질을 구성하는 일종의 원자인 셈이에요. 다이아몬드와 석탄, 이 두가지 물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다이아몬드는 아름답고, 석탄은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죠? 하지만 이 두 물질은 단일한 탄소원자로만 이루어진, 화학식으로 따지면 완전히 동일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탄소원자가 어떻게 배열되었느냐 하는 구조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식이 어떻든간에 이 두 물질은 동일한 탄소원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논증구조가 세련되지 못한 단순한 개똥철학이든, 학문적 체계를 갖춘 고급철학이든 뭐든 간에, 모든 철학은 '물음'을 기본 구성요소로 하고 있습니다. 보노보노는 철학의 가장 원초적 본질이라 할수 있는 이 '물음'을 계속해서 던집니다. 보노보노의 머리 위에 종종 나타나는 '땀'은 바로 이 '물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노보노는 '틀림없이 그래!'라고 외치지만, 진짜 숨겨진 마지막 대사는 바로 ;;;;;;(땀)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도 보노보노는 그 순수한 '물음'을 내던지며 자연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이 만화의 핵심 주제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봅니다. 보노보노는 왜 하필 마지막화에서 '어째서 즐거운 일은 끝나야하지?'라는 의문을 던질까요? 그것은, '보노보노'라는 이 즐겁고도 평화로운 만화영화 역시, 마지막화를 통해 그 이야기가 끝을 맺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감명깊은 만화 또는 드라마를 보다가 그것이 마지막화에 이르러 결말이 나버리면,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시청자의 기본심리입니다. 그것이 해피엔딩이든,베드엔딩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일은 왜 끝나야하지?'라는 질문은, 보노보노뿐만이 아니라 보노보노를 감상하고 있는 시청자 역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물음이죠. '왜 이 재밌는 보노보노가 끝나야만 하는거지?..' 하는.. 그렇기 때문에 보노보노의 마지막화는 그 어떤 만화의 결말보다도 더 아름다우며,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결말입니다. 그 물음에 대해 답을 줬거든요. '또 다른 즐거움의 시작을 위해서'라고. 출처ㅣ루리웹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여느 책에서 항상 강조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부자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라는 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부를 이루기 위해선 자신에게 맞는 부를 정의하고, 또한 풍부한 부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부자(富者)를 자신에 맞춰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나서 길을 가거나, 누워서 천장 바라보거나, 버스에 앉아 창가 밖을 보거나 잠시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동안 드문드문 떠오르는 생각을 잡았다. 결론적으로 이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부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본질 :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어떤 두려움과 위기가 와도 그것을 딪고 일어 설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배풀어줄 수 있는 사람, 또 그것이 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부를 가진 사람은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와 돈은 엄연히 다르고, 부가 있기 때문에 돈이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지 돈이 있어서 부유하다는 것은 사실상 맞는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의 착시 현상인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렇다면 그 부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자기계발서 같은 부와 돈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또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었다. 부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고 괴롭고 위기가 찾아오며 좌절을 하면서 다시 일어서고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고 또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그 기질을 만들어 나간 것이었다. 그렇게해서 그러한 멘탈을 이용해 부를 이룩하고 나서는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이었다.
절벽에 뿌리를 내리다
해변의 절벽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바위틈에서 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싹 : 바람이 날 여기로 데려왔는데 여기서 살아도 돼? 바위 : 안 돼. 이곳은 너무 위험하고 척박해. 싹 : 어쩌지 벌써 뿌리를 내렸는걸. 시간이 흘러 싹이 자라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위틈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은 나무는 크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바위 :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으면 멋진 나무가 되었을 텐데. 나무 : 무슨 말이야, 난 세상에서 이곳이 제일 좋아. 바위 : 뿌리를 좀 더 깊이 뻗어봐. 나무 : 내 뿌리가 자랄수록 너는 몸이 부서지잖아. 바위와 나무는 그렇게 수십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무뿌리가 파고든 바위틈에 고인 빗물이 겨울에 얼고 봄에 녹는 것이 반복되었고, 결국 바위는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위 : 나무야, 난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나무 : 안 돼. 힘내. 바위 : 괜찮아. 이제야 이곳에 살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아. 난 너를 만나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거야. 네가 오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네가 오고 나서 난 기쁨이 뭔지 알았어. 나무 : 나도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슬퍼하지 않았어. 그날 밤에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나무는 바위를 꼭 끌어안고 운명을 같이했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입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힘들 때 멀어지지 않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에 누군가 작은 뿌리를 내린다면, 그를 위해 날마다 쪼개지는 바위처럼 살아보세요. # 오늘의 명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함께#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술 항아리 채우기
옛날 어느 부자가 자신의 하인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았습니다. 하인들이 모인 자리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인들에게 금화 한 닢과 작은 술 단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말했습니다. “곧 큰 잔치를 여는데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특별한 포도주를 연회에서 내놓고 싶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준 금화로 각자 다른 포도주를 한 단지씩 사 와서 이 큰 항아리에 한데 섞어 두도록 해라. 여러 가지 포도주를 섞으면 어떤 맛이 날지 매우 궁금하구나.” 하인들은 각자 포도주를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하인은 주인에게 받은 금화를 자신이 챙기고 자신의 술 단지에는 물을 채워 슬그머니 큰 항아리에 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큰 항아리에 물이 조금 섞인 걸 누가 알겠어. 이 금화는 내가 써야겠다.’ 잔치가 열린 날 부자는 포도주를 사러 보낸 하인들을 모아 두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잔치는 그동안 고생한 너희들을 위한 잔치다. 오늘 하루는 너희가 사 온 술을 마음껏 마시며 즐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받은 하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술잔에 받은 것은 전부 맹물이었습니다. 하인들은 모두 나 하나쯤이야 하고 생각하고, 금화를 빼돌리고 물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인들은 빼돌린 금화를 도로 빼앗기고 잔치 내내 맹물만 마시고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란 공동체에 속한 일원입니다. 그러나 간혹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당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 오늘의 명언 교묘하게 속이는 것보다는 서투르더라도 성실한 것이 좋다. – 한비자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공동체#속임수#나하나쯤#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