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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임팩트 있었던 미드필더는?

임팩트 시리즈 2탄, 미드필더 부문입니다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능력이 다양하고, 세계최고의 선수들이 너무많아 10장 안에 다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 밖의 최고의 미드필더는 여러분이 뽑아주세요! ※좋아여 도 마니 눌러주세욬ㅋㅋㅋㅋㅋ -소통하는 editor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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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도 인정한 스콜스!!!
아 네드베드도!!
다들 최고의 선수지만 그래도 지단 앞에서는...지단에 견줄만한 선수는 피를로 정도만이 있을듯 하네요
아 시야랑 패싱하면 제라드랑 사비인뎁.. 다 선택하교싶네요
임팩트만 보면 지단 넘사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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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팀 3색' 승격 전쟁, 클래식으로 가는 티켓을 잡아라!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K리그 챌린지, 각 팀 별로 약 5경기만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순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선두권 경쟁이 돋보인다. 현재 (10월 8일) 안산 경찰청이 승점 64점으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강원이 승점 62점으로 2위를, 부천과 대구는 승점 60점으로 3위와 4위를 질주하고 있다. 사실 유력한 승격 후보는 안산 경찰청이었다. 초반부터 견고한 수비라인을 앞세워 승점을 쌓았고, 현재 주전급 선수들이 전역으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위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다음 시즌부터 경찰청이 연고를 아산으로 바꾸고 안산에는 시민 축구단이 창단된다. 이로 인해 안산의 승격권은 이사회로부터 박탈되었고 안산을 제외한 채로 승격팀이 결정된다. 이는 연맹 규정 제1장 3조 5항에 의하고 있으며 "클럽의 파산, 탈퇴, 해체, 징계 등의 변수 발생에 따른 승강 팀 수 및 승강 자격은 이사회가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안산이 1위로 시즌을 마감할 경우에는 2위가 바로 클래식 티켓을 얻게 되며, 안산을 제외한 세 팀이 플레이오프를 통해 클래식을 향한 전쟁을 펼친다. 그래서 더욱 치열해진 2위 싸움이다. 매 라운드마다 2위가 뒤바뀔 정도로 순위를 가늠하기 어려워 더 많은 재미를 볼 수 있다. 현 상황으로써는 강원과 부천, 그리고 대구의 경쟁이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다. 즉, 강원과 부천, 대구 중 한 팀이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강원과 부천은 36경기를 소화했으나 대구는 35경기만을 소화했다. 그들은 다음 월요일에 안양으로 원정을 떠나 36번째 경기를 뛸 예정이다. 매 라운드 순위가 변동되는 것도 재미요소 중 하나다. 지지난 라운드에는 강원이 2위였으나 지난 라운드에 부천이 2위를 수성했다. 이어 이번 라운드에는 부천이 휴식을 갖는 사이 강원이 충주를 꺾으면서 2위로 올랐다. 그들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면, 다시 제 자리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부산이 승점 55점으로 바로 밑에서 뒤쫓고 있으며 6위부터 9위까지의 차이는 단 승점 6점이라는 순위가 입증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대구는 16승을, 부천은 17승을, 강원은 18승을 거뒀다. 세 팀 모두 35경기 이상 치렀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두 경기당 한 번 밖에 이기지 못한 불안한 승률이다. 남은 경기에서도 충분히 순위가 변동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3팀 3색' 승격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클래식을 향한 티켓을 잡기 위해 세 팀이 치열한 경쟁을 보여줄 예정이다. 유럽 축구 못지않은, 최고의 축구 경기를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 ◇ 강원 FC : '최근 5승 3무 1패' 좋은 기류를 만난 강원, 3년 만에 승격할까? 흐름이 좋다.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최근 9경기에서 5승 3무 1패를 달리고 있다. 안정적인 수비진은 업그레이드되었고 공격에서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살아났다. 단 4경기만을 남겨둔 상황, 흐름을 유지한다면 가장 유력한 승격 후보는 강원 FC를 꼽을 수 있다. 강원 FC는 지난 40라운드 충주전에서 최우재, 안현식, 이한샘, 김윤호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을 선택했다. 시즌 전체에 걸쳐 중용하던 정승용과 '주장' 백종환을 제외하고도 안정적인 수비진이 꾸려졌다. 상대팀을 향한 압박과 태클, 빌드업 플레이까지 긍정적인 플레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입증되었는데, 강원은 36경기에서 단 28개의 실점만을 내주며 최소 실점 클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즌 강원의 수비진에서 인상적인 선수로는 정승용이 있다. 2011시즌 리그 3경기, 2012시즌과 13시즌에는 단 한 경기 출전에 그쳤던 그가 강원으로 임대 이적을 온 이후 크게 성장했다. 이번 시즌 35경기를 뛰며 3골 2도움을 올렸고 오버래핑과 발기술을 이용한 공수 밸런스 플레이를 보여줬다. 외인 4명의 조합도 강원의 경기력을 좌우하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팀과 함께한 마테우스 알베스는 최전방에서 9골을 넣으며 기량을 끌어올렸다. 이어 부상으로 팀을 떠난 지우를 대신해 세르징요 파울로가 영입되었고 중원에서 활약 중이다. 과거 울산과 제주에서 뛴 바가 있는 마라냥도 강원에 합류했으며 '전북맨' 루이스까지 팀에 영입되었다. 강원은 한국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무조건 승격에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사실 강원이 루이스를 영입하기에 쉽지 않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브라질 출신인 세르징요의 조언을 듣고 이적을 고민해보게 되었으며 강원의 비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적했다. 이후 14경기에서 4골 3도움을 올리며 팀에 자리매김했다. 안정적인 수비 라인과 중원, 공격을 넘나드는 용병 선수들에 힘입어 모든 강원 선수들이 힘을 냈다. 서보민과 오승범, 허범산 등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선수들까지 살아나면서 팀이 더욱 강해졌다. 물론 시즌 중반 체력과 집중력이 저하되면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무패 행진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선수들의 사기 또한 저하되는 듯했다. 하지만 메인 스폰서인 강원랜드의 지원금 지불 문제로 선수들이 다시 한 번 뭉쳤다. 기존의 유니폼 중앙에 붙어있는 '하이원 리조트' 마크를 검은 테이프로 댔고, 경기장 광고판에 있는 하이원 브랜드를 흰 천으로 가렸다.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뭉친 덕분일까, 부진에서 헤어 나와 다시 한 번 상승세를 맞이했다. 강원은 앞으로 대전, 부산, 안산, 경남을 상대하게 된다. 올 시즌 내내 안산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부산, 경남, 대전에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나 경남과 부산은 리그 개막 후 2연전에서 고전하게 만들었던 클럽이다. 앞으로 승격을 위해 순탄한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정작 강원에게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들의 경기가 아니다. 10월 19일에 대구 스타디움에서 대구와 부천이 맞붙는 경기가 강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앞으로의 경기를 충분히 잡고, 대구와 부천의 경기를 주목해야 한다. 이는 비교적으로 강원이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5승 3무 1패의 좋은 기류를 맞이한 강원, 강등당했던 아픔을 뒤로하고 3년 만에 승격할 수 있을까? ◇ 부천 FC : '전북현대를 꺾은 전력' 물 만난 부천, 사상 첫 승강을 노린다 부천이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내고 있다. 2007년 부천 SK가 제주로 연고를 이전하자 이를 반대하던 서포터들이 창단한 클럽인 부천 FC 1995가 2012년에 프로 클럽으로 승격한 후, 1부 리그 승격을 앞두고 있다. K3리그를 전전하던 중 K리그 챌린지에 합류한지 4년이 지났고, 드디어 클래식 승격의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 부천의 조직력은 리그 내에서 최정상급이다.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돋보이며 소통하면서 나오는 시너지가 빛을 보고 있다. 또한 팬들이 만들어 낸 클럽이라는 점은 팀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온다. 이는 FA컵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잡는 이변까지 연출해냈다. 현재 부천은 FA컵 4강에 진출했으며 '언더독의 반란'을 스스로 보여줬다. 동시에 자신들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부천은 공격진의 루키안-바그닝요 듀오가 팀의 핵심이다. 시즌 내내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먼저 루키안은 34경기에서 14득점 3도움을 기록 중이다. 40번의 유효 슈팅 중 14개를 득점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슈팅 대비 득점률이 좋은 편이다. 오프사이드도 15개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공격수라는 것에 비해 55개의 파울을 기록하고 있으며, 7개의 경고를 받아 상대팀들의 원한을 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천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8경기에서 MoM을 수상했다. 바그닝요도 상당히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31경기에서 9골 3도움을 기록했으며 유효 슈팅은 43개를 때렸다. 선수들을 향한 날카로운 패스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플레이는 상대를 헤집고 다니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바그닝요 역시 파울 수가 많아 상대팀들에게는 원한을 산 선수다. 총 117개로 경기당 3.77개의 파울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부천은 그 어느 팀보다도 팬들과 뭉쳐져 있는 클럽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과거 부천 SK가 연고 이전을 하고 홀로 남은 팬들이 직접 창단하여 일으켜 세운 클럽이다. 팬들의 노력을 가상히 여긴 부천시에서 예산안을 나눠주고, 팬들이 직접 구단 운영에 도움을 주면서 프로 승격에 박차를 가한 바가 있다. 이는 국내와 국외를 통틀어 찾아보기 어려운 전례다. 그런 만큼 어려운 고난 속에서 성장한 클럽이기에 팬들과 더욱 뭉쳐질 수 있었다. 이는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주장인 강지용 선수를 비롯해 용병들과 문기한, 진창수 등 선수단 전체가 조직력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부천은 안양, 대구, 부산, 고양을 만난다. 부천 입장에서 쉽지 만은 않을 일정이지만 모두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클럽들이다. 현재 안양과의 상대 전적은 4승 6무 6패 (부천 기준)로 열세하다. 그러나 안양은 현재 9위에 위치했으며 최근 5경기 전적이 무승 1무 4패일 정도로 침체기다. 또한 부산과의 상대 전적에서 2승 1무로 크게 앞서 있으며 고양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8승 4무 4패로 앞서있다. 물론 대구와 부천, 그리고 강원까지 세 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경기는 역시 부천과 대구의 경기다. 부천이 상대 전적에서 2승 3무 6패로 열세에 위치하고 있으나 승격을 앞둔 경기에선 어떤 변수도 계산할 수 없다. 물론 좋지 만은 못한 현 상황이다. 리그 내에서 '최약체'로 분류되는 충주에게 2-3으로 잡혔으며 최근 5경기에서 1승 2무 2패를 기록 중이기에 승격에 노란 불이 켜졌다. 이런 상황일수록 팬들과 선수들이 하나 되어야 한다. 역사상 첫 승격을 향한 첫걸음은 승리가 아닌 조직력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과연 부천은 팀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 클래식에 발을 들어 내밀 수 있을까? ◇ 대구 FC : '이번에는 기필코!' 하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을 승격 전쟁 조용히 승점을 쌓아오더니 또다시 승격 전쟁에 참전했다.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이번 시즌에는 꼭 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작년의 대구는 팀 내 에이스였던 조나탄의 26골에 힘입어 승점을 67점까지 쌓았었다. 1위로 시즌을 마무리 한 상주상무와도 같았던 67점이었다. 하지만 득실차 또한 20점으로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승자승 원칙에 의거하여 대구가 2위로 밀려났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아쉬움이 이어졌다. 서울이랜드와 수원FC의 경기에서 이긴 수원이 대구까지 꺾으면서 승격에 성공했다. 대구는 그대로 좌절했고 승격은 다음으로 미루어야했다.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올 시즌의 대구FC는 천천히 승점을 쌓아올렸고 현재 승점 60점으로 3위에 올라있다. 게다가 강원과 부천보다 한 경기 덜 치른 35경기만을 소화했음으로 다음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2위까지 오를 수 있다. 대구는 다른 클럽보다도 외인 용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클럽이다. 파올로와 세징야, 에델까지 세 명의 선수가 대구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먼저 파올로는 17득점 3도움을 올리며 득점 랭킹 2위에 올라있다. 득점 랭킹 상위 10위 안에서 가장 적은 경기인 30경기만을 소화했음에도 랭킹 2위다. 경기당 득점률이 매우 높은 편이며 득점력이 좋은 선수다. 이어 세징야도 대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정확한 킥과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는 대구의 서포터즈들을 사로잡았다. 32경기를 뛰며 10득점 6도움을 기록했다. 에델 역시도 32경기를 뛰었다. 그 경기에서 6득점 2도움을 올리며 팀에 기여했다. 다른 외인들과는 달리 뒤늦게 골 맛을 보았지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플레이하고 있다. 대구의 외인 선수들은 대부분 K리그 챌린지의 정상급 실력을 갖고 있으며 크게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인해 대구의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외인 선수들을 기용함으로써 한국 선수들에 대한 출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에 의존하다 망친 경기가 한 둘이 아니다. 대구의 손현준 감독 대행도 이에 대해 “외국인 선수들은 양날의 검”이라고 발언한 바가 있다. 외인 선수들이 더욱 더 대구에 녹아들어야만 효율적이고, 빠른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 "파울로 등은 기량만 놓고 보면 클래식 상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개인 능력으로만 축구를 하려고 한다. 공격이 단조로워져 경기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구가 그동안 더 높이 치고 나가지 못한 이유” - 손현준 감독 대행 대구는 안양, 서울 이랜드, 부천, 경남, 대전을 만날 예정이다. 대부분 객관적인 전력이 대구에 비해 밀리는 팀들이다. 하지만 대구는 안양에 상대 전적이 1승 6무 4패로 열세에 있다. 물론 이번 시즌의 대구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전적이다. 경남에도 7승 3무 17패로 밀리고 있다. 대부분이 K리그 클래식 시절 만났던 전적이지만 챌린지에서의 경남이 상승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쉽게 볼 수 없다. 대구가 이를 갈고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승격을 하겠다'는 의지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과연 대구는 남은 5경기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까, 클래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슬슬 아빠 지단이 보이는 엔조 지단 최근 근황
최근 스타드 드 랭스와의 프리시즌 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엔조 지단입니다 지네딘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가 되어 코치, 감독을 연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아들인 엔조 지단은 유스 시절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감독이 된 아버지의 지도를 받는걸 보니 참 세월이 빠르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사실 엔조 지단의 성장과 관련해 큰 기대가 없다는 설은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 퍼져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지네딘 지단의 클래스가 워낙 대단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이는것도 사실이긴 하구요. 하지만 오랜만에 본 모습을 보니 부족하긴 해도 지네딘 지단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폼에서 말이죠 ㅋㅋㅋ 특히 한쪽발로 이렇게 방향전환을 하는 모습이 전성기 시절 지네딘 지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엔조 지단도 아버지의 플레이를 보며 많이 연구했을까요? 은근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게 ㅋㅋ 또한 슈팅력도 아빠를 그대로 빼다 박았더군요. 지네딘 지단은 볼컨트롤도 훌륭했지만 슈팅 역시 일품인 선수였습니다. 중거리슛, 프리킥 심심찮게 꽂아 넣었던 선수지요. 이런게 다 유전이 된 모양입니다 ㅋㅋ 특히 이제 크도 크고 신체적인 성장이 마무리 단계여서 그런지 아버지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ㅋㅋㅋ 역시 그 아빠에 그 아들인 모양이에요! 엔조가 각성해서 한계를 뚫고 성장한다면 레알 마드리드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우승컵을 드는 장면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약스 상대로 손흥민이 못해보인 이유
어제에 이어서 참 이번주는 축구 때문에 일주일이 빨리가는 느낌이네요 ㅋㅋㅋㅋ 박지성에 이어 다시 한 번 챔스 결승을 밟는 한국인 선수가 ㅠㅠㅠㅠㅠㅠㅠ 사실 이번 경기에서 손흥민의 활약상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기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던건 손흥민이지만 해트트릭은 모우라가 해버리기도 했고 부담감 때문인지 손흥민도 힘이 많이 들어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손흥민이 평소에 보여주던 다이나믹한 모습을 억제당한 이유는 바로 이런 집중 견제 탓일 겁니다. 페널티 에어리어는 손흥민이 가장 좋아하는 구역입니다. 오른발 왼발 모두 찰 수 있기 때문에 페널티 에어리어 가운데에서 수비수들은 손흥민 막기를 무엇보다 어려워하죠. 이번 경기에서도 손흥민이 슛팅 가능 지역에서 공을 잡자 아약스 수비수들은 순간 손흥민의 슛각을 좁히기 위해 우르르 몰려옵니다. 무려 5명이나 말이죠 ㅋㅋㅋㅋㅋ 사실상 경험이 많은 블린트 제외하고 모두 어그로가 끌렸고 결국 트리피어에게 넓은 공간이 나버렸습니다. 이 장면은 모우라의 동점골이 터지기 바로 직전의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각에 가까운 위치지만 손흥민의 슛팅 파워를 알고 있는 수비수들은 재빨리 빈자리를 커버합니다. 사실 이런 집중 견제 때문에 손흥민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손흥민의 기록은 못했다고 하기엔 섭섭한 면이 있습니다. 슛팅 6개에 2골대 패스 성공률 93% ㄷㄷ 드리블 8번 성공 (양팀 최다라네요 ㄷ) 헤딩 경합 1번 성공 평점 7.9 기록상으로 손흥민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중 견제를 받다보니 우리가 기대했던 골을 못봐서 못해보인다고 보여지는 모양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4강전에 출전만 해도 대단한거였는데 어느새 손흥민의 위상이 골을 못넣으면 못한걸로 보여질 선수가 되버린거죠 ㅋㅋㅋㅋ 여하튼 다음은 결승입니다. 케인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아마도 손흥민의 선발은 유력해보입니다. 4강에서 좀 쉬었으니 결승 폭격 가즈아
역대급 터프함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 김형일
어제 전북vs상하이 경기에서 나온 중국 선수의 미친 하이킥입니다. 중국의 클래스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중국도 중국이지만 실점 앞에서 온몸을 내던지는 한 수비수의 모습이 더 눈에 띕니다. 당시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선수는 몸을 던지는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 김형일 누가봐도 위협적인 이 장면에서 과연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대는 선수들이 몇명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축구화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일 선수는 이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벌떡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고 파이팅을 불어넣어주는 김형일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당하는 심각한 파울을 당했음에도 금새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 나아가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 보는 내내 소름이 돋습니다 사실 터프함하면 바로 이분이죠? 젠나로 가투소 하지만 어제 김형일은 아시아에서 터프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인데, 사실 국축이 그렇게 인기있는 상황이 아닌데 국대도 아닌 클럽 선수로서 이렇게 검색어에 오르게 된다는것 자체가 그의 플레이의 클래스를 알게 하는 상황입니다. 원래도 파이팅형 수비수이긴 했지만 어제 있었던 저 장면을 기점으로 5: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기세면에서 이때 상하이는 꺾이게 됐습니다. 김형일은 상대의 퇴장과 우리의 사기까지 한 번에 끌어올린 최고의 한 수 뒀고 상대를 침몰시키는데 보이지 않는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김형일 선수 너무 멋있었어요 ㅠㅠㅠ
호날두가 더이상 폭발적인 드리블을 못하는 이유
호날두를 이정도의 슈퍼스타급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던건 그의 화려한 외모보단 화려한 드리블 스킬이었습니다. 과거의 호날두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로 축구팬들을 열광케했죠. 하지만 그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신체능력의 하락이 보이기 시작했고 요즘엔 이런 스피드를 쉽사리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이 말고도 호날두가 이런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한몫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 포르투갈 대표팀 팀닥터에 의하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호날두의 무릎상태는 최악, 그는 애초에 챔피언스결승전부터 뛰지 말았어야 했어." "그가 고통을 느끼는 곳은 과거 호나우도와 카카가 겪었던 무릎, 그의 무리한 경기출전 욕심이 더욱 무릎을 상하게 했고 나를 제외한 모든 닥터들이 그를 만류했지만 결국 그는 대회참여를 강행했고 탈락을 경험했지." "난 그 이후로 그가 더이상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발롱도르와 유로우승을 거뒀지." "그는 축구선수이기전에 인간의몸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선수야 그는 결승전에서 같은 무릎을 또 부상 당했고 그것은 최악이였지. 하지만 그는 고작 2개월에 회복하고 다시 경기출전을 감행하고 골도 넣고 있어 놀라운 일이지 " 출처 - 포르투갈 스포츠잡지 o jo go (오 조고) 번역 - 로스블랑코스인[펌] 레알마드리드코리아 로스블랑코스인님 모든 월드클래스이자 정점에 도달했던 선수들이 그렇듯 호날두 역시 높은 수준의 승부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커리어를 망가뜨리곤 했죠. 토레스가 이와 아주 유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을 극적으로 월드컵으로 이끈 호날두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는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죠. 심각한 부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닥터들의 만류에도 호날두는 뛰었고 전문가들은 이제 호날두의 커리어는 내리막길로 향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날두의 무릎은 유로 2016에서 또 다시 말썽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호나우도나 카카가 어떻게 커리어 내리막길을 맞이했는지 가늠해본다면 호날두가 더이상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란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오히려 2016년 챔스 우승과 유로 2016 제패 그리고 4번째 발롱도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습니다. 호날두는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때로는 피니쉬에 집중하며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맨유시절로 회귀한 듯한 플레이로 동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축구팬들에게 이번 시즌 초반 호날두는 무수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호날두의 폼은 끔찍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린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터진 무릎부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절반쯤 흐른 지금 호날두는 다른 모습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2경기 덜치른 현재 승점 1점차로 여전히 바르셀로나에 앞서 있고 호날두는 이번 시즌 모든 경기 통틀어 36경기 24골 10도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울산 레전드 특집]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사람들에게 있어 팀에서 '레전드' 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공통분모격으로 해당되는 기준이 '해당팀의 원클럽맨' 이라거나, 아니면 '최소 그 팀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 로 클럽에서 얼만큼 뛰었는지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물론 그 클럽에서 오랫동안 뛴 시간은 중요하다. 그만큼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과 오랫동안 추억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나 국내나 레전드로 꼽는 선수들에게 '멘탈' 부분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즉,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피치 위에서의 행동이라던지,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모습이 프로의식이 투철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 또한 선수들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예외도 분명 존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에릭 칸토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출신인 슈테판 에펜부르크의 경우에는 각각 맨유와 바이에른에서 5시즌 이상 뛴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혈질이며, 어느 순간에는 시한폭탄같은 분노를 피치에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두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올라있으며 팀의 영광과 함께했다.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4번째 울산의 레전드는 이것과는 정반대격인 스타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유상철, 김현석, 김병지와 달리 오랫동안 울산에서 뛴 것도 아니며, 진중하거나 겸손한 스타일이 아닌, 화끈하면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이 선수는 울산 팬덤 내에서는 말그대로 '언터쳐블(Untouchable)' 이며, 2000년대 이후 울산 팬이 된 사람들이 울산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쯤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밀레니엄 특급' 이자, '2000년대 K리그 대표 사기유닛' 으로 언급되는 이천수다. 이천수의 일대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울산 레전드 특집 - 04.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1. 모든 이들로부터 주목받던 '밀레니엄 특급' 10대 소년, 그렇게 2002년 월드컵까지 종횡무진 이천수는 프로 데뷔하기 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주목받는 '슈퍼 탤런트' 였다. 그가 고등학생 신분일 당시인 1990년대 후반에 고교리그는 이천수가 다녔던 부평고가 주름잡고 있었고, 이천수와 더불어 최태욱-박용호를 '부평고 귀각 3인중' 이라 불렸다. 그들을 앞세운 부평고는 국내 대회를 제패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청소년대표팀에도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9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방가반두 컵에 청소년대표팀 주전으로 참가하였고, 태국 올림픽 대표팀을 7대2로 대파하였고(이천수가 무려 4골을 기록하였다),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까지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비록 일본 실업리그 팀에게 2대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에서 통합 8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라섰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천수를 '밀레니엄 특급' 이라 불렀고, 그는 10대의 나이에도 벌써부터 전국의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유망주로 등극했다. 이천수는 곧바로 1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동시에 국가대표팀 데뷔까지 끝마쳤는데,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19세에 불과했다. 이천수는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고, 2년 뒤인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당당히 엔트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물론 비슷한 연령대였던 박지성처럼 주전선수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대표팀이 치뤘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주로 그는 교체선수로 투입되곤 했는데,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폭발력 있는 스피드와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역할을 하였고,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기록하고 쇼트트랙 세러모니를 할 때 오노 역할로 전파를 타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전에서는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파올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등 팬들 뇌리에도 상당히 강렬하게 남았다. 거스 히딩크가 이끌었던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4강' 이라는 한국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23인에 대한 해외 클럽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갔다. 월드컵 때 모두의 시선을 끌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는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따라 네덜란드로 날아갔고, 차두리도 아버지인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을용은 한국인 최초로 터키 수페르리가 진출을 하는 등 대표팀 선수들의 해외이적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에 맞물려 이천수 또한 월드컵 직후 곧바로 해외이적을 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다(월드컵 시작하기 이전에 이천수는 2001년에도 유럽 진출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의 달리, 그는 해외보단 국내리그를 택했다. 이미 그는 월드컵이 시작하기 이전에 국내 프로팀 입단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 반시즌만에 K리그를 접수한 '사기 유닛' 으로 등극하다(2002 ~ 2003 여름) 2001년 말, 고려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천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울산과 계약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었다.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000만원, 당시 신인선수가 받을 수 있는 역대 최고액을 갱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계약에 붙어있는 특별조항들이다. 우선 울산은 이천수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의 이적료 전액을 이천수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당시 이적료의 10%를 선수에게 주는 관례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CF 광고시에도 이천수에게 전액 보장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이천수의 이적료가 10억원이고 CF 광고를 몇차례 촬영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1년에 무려 20억원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사실 그는 모교였던 부평고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하길 갈망했었고, 함께 뛰었던 최태욱은 졸업 후 안양 입단을 확정지었다. 집안형편도 어려웠던 상황이었기에, 그는 하루빨리 집안에 큰 힘을 보태기 위해 프로전향을 강력히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대학교 진학을 택하기 되었던 케이스였다. 그렇게 오매불망 프로선수를 꿈꿔왔던 이천수는 실질적인 프로데뷔는 2002년 여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그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지도 하에 월드컵 이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을 합숙식 해외 전지훈련이 연달아 소화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반시즌간 공백이, 울산이나 이천수 양 쪽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울산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순간, K리그 모든 클럽들은 그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2년 시즌 그의 기록이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18경기 출전에 7골에 9도움으로 데뷔 첫 해에 K리그 도움왕과 신인상, 나아가 AFC 신인상까지 거머쥐었고, 그는 유상철과 함께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끌어올렸다. 만약 울산이 성남을 제치고 2002년에 리그 챔피언에 올랐더라면 이천수가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쥘 뻔 했을 것이다. 데뷔 첫 시즌에 보여준 그의 능력 때문에 그의 별칭이 괜히 '밀레니엄 특급' 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각인시켜주었다. 울산에서의 두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이천수, 그를 막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03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 이천수가 기록한 스탯은 18경기 출전 8골 6도움, 가히 "리그를 씹어먹는다" 는 표현의 적절한 예시였다. 그렇기에 이천수를 보는 상대팀은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2003년 5월 21일, 상대팀이 얼마나 이천수를 견제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던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당시 울산은 수원 원정을 왔던 상황이었고 후반 23분, 이천수는 수원 수비수와 충돌하다가 어깨가 빠져 한동안 피치 위에 누워있었다. 그 때, 수원 서포터즈는 이천수를 도발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던 이천수는 화가 나서 서포터즈를 향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응수했다. 이에 뒤질세라 수원 서포터즈는 '삽질개천수' 라는 플랜카드를 내걸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그 날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마쳤고, 이천수는 이후 벌금 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수원 쪽에서 이천수를 도발했던 것은 그가 수원킬러로 유명할 정도로 수원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지난 시즌 7골 중 2골은 수원이었고, 공교롭게도 데뷔무대도 빅버드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천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천수는 참지 못하고 화답해버린 셈이다. 그 후, 이천수는 수원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천수가 울산 선수로 있는 동안 수원은 거의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 당시엔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3. 한국인 최초 프리메라리가 1호, 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스페인 생활(2003 여름 ~ 2005 여름) 워낙 국내무대를 손바닥 위를 내다보듯이 마음껏 휘젓고 있던 이천수, 그는 분명 국내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이천수에게 뜻하지 않는 손님이 스페인에서 찾아왔다. 그를 보러 멀리서 온 손님은 바로 레알 소시에다드. 소시에다드는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줄곧 이천수의 모습을 지켜봤었고, 그의 K리그 활약상을 보고 확신을 가져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3년 계약에 이적료 42억원에 연봉 6억원, 의식주 부분 모든 것을 지원받게 되었다. 먼저 유럽으로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울산 입단 시에 체결한 계약 조건이 발효되어 그는 이적료의 70%인 27억 3천만원을 챙기게 되었다. 성남과 리그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던 울산 입장에서는 전력상 상당한 타격이지만, 울산 성향이 선수들의 해외진출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의 스페인 진출은 마치 1990년대 후반에 안정환이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하는 것과 맞먹을 만큼의 이슈를 몰고 왔다. 등번호 19번을 받은 이천수, 때마침 레알 소시에다드가 지난시즌 리그 2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진출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할 수 있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진출하는 것이 꿈" 이라는 발언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레알 마드리드와 앙숙 관계였는데 이천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인터뷰 도중 실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가 입단할 당시 매우 환영했던 현지 팬들과 구단은 그의 인터뷰 때문에 소시에다드를 그저 "거쳐가는 클럽"으로 생각한다며 반감이 생겼다. 논란 속에서 레알 소시에다드 선수로서 라리가에 모습을 드러낸 이천수, 하지만 K리그에서 보여줬던 이천수 특유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다. 2003/04 시즌, 그는 총 13경기에 무득점으로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쳤고, 팀 또한 중위권으로 추락하며 시즌을 마쳤다.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소집될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2004/05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2부리그에서 갓 승격된 팀인 누만시아로 임대가게 되었다. 당시 소시에다드에선 Non-EU 규정 때문에 카르핀, 니하트, 코바체비치 등에 밀려 출전기회가 다소 적었고, 반면 누만시아는 스쿼드가 빈약했기 때문에 다소 출전기회는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누만시아로 임대가서도 이천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누만시아와의 임대가 끝난 후, 국내로 복귀할 준비를 하였다. 그의 유럽 진출기는 실패로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4. 한국으로 돌아온 '사기 유닛' 울산의 제2 전성기를 만들다(2005 여름 ~ 2007 여름) 국내 복귀를 모색하던 이천수,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바로 친정팀이었던 울산이었다. 이천수가 떠난 이후, 울산은 막강한 수비를 앞세워 최강방패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경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거나 상대의 심장을 꿰뚫을 창끝이 무뎠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울산이 번번히 우승으로 가는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고, 팀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의 발목을 잡고 있던 주요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김정남은 이 문제를 이천수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셈이다. 그렇게 2005년 여름, 그는 호랑이굴로 컴백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컴백할 때, 사람들은 과연 이천수가 스페인 생활동안 잃어버렸던 감각과 자신감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고 보통 웬만한 선수들은 복귀하고 난 뒤에 적응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이것은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론의 상식을 완전 뛰어넘어버렸다. 이천수를 다루는 법을 잘 알았던 김정남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고, 그는 최대한 이천수를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천수는 그에 보답하는 듯한 모습으로 반시즌 밖에 소화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7골 5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선보였던 그의 모습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플레이오프 3경기동안 무려 3골 2도움을 기록했고 그 중 챔피언결정전이었던 인천과의 홈&어웨이 경기 중 1차전에서 3골 1도움으로 혼자서 인천을 초전박살내는 말그대로 끝판왕의 아우라였다(이것이 후에 제작된 인천의 다큐멘터리인 '비상'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졌다). 결국 울산은 이천수의 맹활약 덕분에 2005년 두번째 별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이천수처럼 반시즌동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건 이전에도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찾아볼 수 없다. 리그 MVP와 베스트 11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천수, 그 다음해인 2006년에도 선봉장에 선 그는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들을 여러가지 만들어냈다. 짧고 굵직한 족적이 바탕이 되어 그는 딕 아드보카트의 간택을 받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첫 경기인 토고전에서는 안정환이,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 그리고 마지막 조별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는 심판판정 논란이 부각되긴 했지만, 이천수는 박지성에 버금가는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였고, 토고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4년 전 무득점의 한을 풀기도 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A3 챔피언스컵 대회였는데, 울산은 한국 대표로 출전하였고,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그리고 다롄 스더와 풀 리그 형식으로 치뤘다. 특히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가 이천수라는 이름을 아시아 전역에 떨치는 경기가 되었는데, 당시 이천수는 감기기운으로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무려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감바 오사카를 6대0으로 격파하는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다롄 스더 경기에서도 2골을 쓸어담아 울산이 대회 우승을 하는 데 1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 득점왕과 MVP까지 싹쓸이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울산은 '아시아 깡패' 라는 별칭까지 탄생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울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특히나 8강전이었던 알 샤밥(사우디)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로, 1차전에서 6대0 대승, 그리고 2차전에 1대0 승리로 통합 7대0 승리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선사하였다. 이천수는 역시나 이 경기에서도 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록 4강전인 전북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통합 6대4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천수의 역량이 가장 만개하던 시기가 아니었나하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2007년 2월,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그리스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골은 후에 팬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골이 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천수는 못다 핀 꿈이었던 유럽 진출을 다시 한 번 노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무대였고, 송종국이 뛰었던 페예노로트였고, 그 해 8월에 이적완료하였다. 5. 날개가 꺾인 비호(飛虎),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게 되다(2007 여름 ~ 2012) 페예노르트에서 등번호까지 부여받은 이천수, 하지만 그는 페예노르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새 팀에 적응해야할 시기에 한국에서 소송문제로 심적으로 묶여있는 상태였고, 이천수가 여기에 신경쓰다보니 페예노르트에 제대로 녹아들 리가 없었다. 그의 부진한 모습에 네덜란드 현지 언론들과 팀에서는 당연히 그를 곱게 보질 않았다. 결국 2008년 7월, 이천수는 한시즌만에 페예노르트를 떠나 다른 팀으로 임대가야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K리그 무대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울산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를 가장 껄끄러워했던 수원이 당시 차범근 감독의 요청 하에 그를 임대영입한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빅버드에서 뛰게 되었으니 당시 수원팬들은 말그대로 '충격' 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이천수가 부진과 부상으로 3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팀 내 항명사건까지 일으키니 그를 증오 수준으로 배척하였다. 항명 도중 팀 내 동료 폭행을 저질러으니 차범근 또한 억누르던 분노를 참지 않고, 그를 임의탈퇴로 공시해버렸다.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이천수는 더이상 K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고, 그의 선수생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이천수를 구원해준 인물은 바로 과거 2002년 월드컵 때 함께했던 전남의 박항서 감독이었고, 극적으로 임의탈퇴까지 가진 않았다. 이천수는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전남으로 임대가는 모양새로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7경기 4골을 기록하는 등 기량은 서서히 예전의 모습으로 찾아나가는 듯 했지만, 다른 문제가 이천수의 발목을 잡았다. 쉽게 설명하면, 2009년 2월, 이천수가 전남에서 뛰기 직전에 선수 본인 동의 없이 에이전트와 전남이 말도 안되는 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던 와중, 원소속팀인 페예노르트는 그 해 여름 사우디의 알 나스르로 이천수를 이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천수 또한 알 나스르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이 사실을 안 전남은 이천수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껴 그의 이적에 제동을 걸려고 했었고, 이천수는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려고 하는 전남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번 그는 코치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전남의 뒤통수를 쳤다. 전남은 이에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였고, 연맹은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임의탈퇴로 처분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양 측의 잘못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전남은 선수가 알지 못하게 어떻게 해서든 갑의 입장에 서기 위해 치졸한 모습을 이적과정에서 보여주었고, 이천수는 전남에서 뛸 때에도 적잖게 사건사고를 일으킨 데다가 떠나는 과정까지도 트러블을 만들어 모든 이의 비난을 샀던 것이다. 모든 논란을 만들고 사우디로 떠났던 이천수, 알 나스르 선수로서의 삶도 그렇지 평탄치 못했다. 알 나스르에서 15경기 출장하여 3골을 기록하며 나쁘진 않았으나, 문제는 구단에서 급여를 제 기한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체불이 길어지자, 이천수는 이 명목 하에 무단 이탈하였고, 다음 행선지는 J리그의 오미야로 정했다. 이천수는 오미야에서 연습생 신분부터 시작하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었던 시절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 계약이 종료되면서 그는 무적신세가 되어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듬해 호주 A리그의 어느 클럽에서 오퍼가 왔지만, 이천수는 거절했다. 그는 K리그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살이가 힘들었던지, 이천수의 마음 한 켠에는 'K리그에 복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국내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바로 전남과의 틀어진 관계를 되돌려놓아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가 간단해보이면서도 쉽지 않았다. 비록 전남 또한 잘못한 점은 있지만, 이천수가 전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부분 등이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고, 전남의 공식 입장 또한 "진정성이 부족하다" 고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전남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2012년 10월, 이천수는 직접 광양까지 내려가 전남의 홈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한 명 한 명 대상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천수는 이후에도 본인이 용서받을 때까지 홈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으나, 축구인 상당수는 그의 진정성을 여전히 의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2월 5일, 프로축구연맹에서 그의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주었고, 22일에는 전남도 그를 풀어주기로 확정지은 것이다. 드디어 이천수의 고난의 연속이 끝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6.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마음으로,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2013 ~ 2015) 극적으로 K리그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천수, 전남이 임의탈퇴를 풀어주기로 한 소식과 동시에 그의 입단소식이 보도되었다. 팀은 자신의 고향팀인 인천이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4년만의 복귀라 그런지, 이천수는 절주선언에 이어 오로지 가족과 축구에만 전념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1년동안 무적신세였던 탓이 예전같은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당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인천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팀 전력에 충분히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4월 16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풀타임 소화한 후에 전남 서포터들이 포진하고 있던 원정석으로 다가가 깍듯이 인사하였고, 이에 박수로 화답하는 등 서로간의 앙금이 완전히 풀렸다. 그 후 4일 뒤에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면서 1,428일만에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급작스런 현역복귀로 몸이 적응안되었는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K리그 복귀 후 첫시즌은 19경기 2골 5도움으로 팀 성적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스탯이었다. 그리고 이천수는 연봉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인천과 2015년까지 함께하며 인천과의 의리를 과시함과 동시에 팀 내 최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풍미하던 사기유닛도 나이에는 장사 없었고, 예전과 달리 날카로움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부상 빈도 또한 높아져서 출전 횟수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부상으로 인천이 FA컵 결승전에 진출하던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5년 11월 5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11월 28일인 마지막 홈경기는 부상으로 인해서 은퇴식으로 대체하여 그의 파란만장했던 선수로서의 생활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천수는 "게으른 천재", 또는 "트러블메이커" 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적합하지 않다. 그가 경기 때마다 번뜩이는 모습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악바리 스타일이며 이천수 본인 또한 악바리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트러블메이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조금 억울한 것이, 해외 사례만 하더라도 이천수보다도 더 심하면 심한 선수는 끝도 없다. 호마리우, 안토니오 카사노, 조이 바튼, 아드리아노, 마리오 발로텔리, 하르템 벤아르파 등 피치 밖에서 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면서도 잘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국내에서 이천수 같은 유형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언론에서 보여줬던 인터뷰 방식 등이 경솔했던 것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이천수의 업적이나 기량 등을 폄하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하는 바다. 인천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통해 개과천선 했으니 이만하면 훈훈한 결말이다. 은퇴식을 치르고 나서 인천 서포터즈는 "풍운아를 품은 우리가 행운아" 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웅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은 울산 쪽이 아니었나 싶다. 이천수의 전성기는 곧 울산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힐만큼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함께 해왔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에게 모든 걸 맡기듯이, 울산에게 있어서 이천수는 "쟤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이천수는 무언가 해줄 것이다." 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이천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여 결국 울산을 리그 챔피언에 올려놓은 후에 아시아 깡패라는 칭호까지 선사했다. 실제로 이천수가 임의탈퇴 신분으로 K리그에서 한동안 떠나있을 때에도 남들은 다 적으로 돌아서도 항상 그의 편에 서있었던 것은 울산 팬들이었고, 그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오더라도 집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환호해주곤 했다(심지어 울산으로 돌아오라는 걸개도 걸렸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JTBC 해설위원으로 종종 울산 문수경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울산 팬들로부터 이천수콜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그는 울산의 또 하나의 레전드였고, 영원한 '밀레니엄 특급', 'K리그 사기 유닛' 이다. 두고두고 기억하리, 이.천.수.
'리오넬 메시'하면 생각나는 골 TOP5
안녕하세요~지난주 '호나우지뉴 TOP5 골'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준호 에디터입니다^^ 많은 분들이 호나우지뉴의 멋진 골을 보고 현존 최고의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와 비교하시는 의견이 많았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메시하면 생각나는 골 TOP5!! 먼저 19살 시절 기록했던 '마라도나 재림' 골 장면입니다~헤타페와의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전반 29분, 하프라인부터 골키퍼까지 5명을 제치고 넣은 슈퍼골 장면입니다! 이 골은 1986년, 국가대표 선배인 마라도나가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넣은 골과 아주 유사해 전 세계 스포츠 뉴스를 도배했죠! 드리블 위치랑 수비수들을 제치는 장면이 너무 똑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nXzXsdZJ5AQ) 이날 2골을 몰아친 메시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헤타페에 5-2 완승을 거둡니다! 축구 황제의 시작을 알리는 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07.4.18 두 번째 골은 '아스날 킬러'답게 챔피언스리그에서 나온 멋진 골 장면입니다. 10/11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아스날에 1-2 역전패로 탈락 위기에 처한 바르셀로나는 2차전 누 캄프 홈 경기에서 전반전을 0-0으로 끝낼 위기의 상황에 처합니다. 전반전이 끝나가던 그 순간! 기가막힌 침투로 오프사이드를 깬 메시는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받아 슈체스니 골키퍼의 키를 넘기고 빈 골문에 골을 넣죠! 후반 26분에는 연장의 기운이 돌던 상황에서 두 번째 골까지 넣으며 팀을 8강에 진출시킵니다! 결국 이 시즌에 바르셀로나는 맨유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죠! 2011.3.9 세 번째 골은 같은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기록한 환상골입니다! 부스케츠의 인생 어시스트로 알려진 골이기도 하죠~ 1차전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 바르셀로나는 2차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면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후반 31분, 메시가 아펠라이의 패스를 받아 1-0으로 앞서나가는 골을 넣으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다급해집니다! 이때 메시가 후반 42분, 다급한 레알 마드리드를 침몰시키는 쐐기골을 작렬합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부스케트의 패스를 받은 메시는 수비수 5명을 제치고 골을 기록합니다! 아직도 메시의 엘 클라시코 최고의 골로 회자되고 있죠! 라모스는 호나우지뉴 TOP5 골에 이어 여기서도 등장하네요~2011.4.28 네 번째 장면 역시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입니다~ 이렇게 보니 메시는 중요한 경기에서 멋진 골들을 많이 넣었네요~ 바르샤는 후반 32분, 알베스의 패스를 받아 메시가 선제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 나갑니다. 그리고 선제골을 넣은지 3분이 안된 시간에 메시가 환상골을 터뜨립니다! 라키티치의 패스를 받은 상황에서 보아텡을 넘어뜨리고 노이어의 키를 넘겨버리죠~ 세계 최고의 수비수인 보아텡이 중심을 잃을 정도로 완벽한 드리블이었습니다! 호나우지뉴와 다른 스타일이지만, 간결한 터치로 상대를 아주 농락해 버렸네요! 결국 3-0 완승으로 결승에 올랐고 유벤투스를 3-1로 대파하며 이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합니다! 2015.5.7 마지막 골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메시의 커리어 최고의 골이 아닌가 싶습니다! 축구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첫 번째 헤타페전 골은 스피드가 붙은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이번 빌바오전 골은 구석에서 수비수 세 명이 동시에 붙었지만, 이를 무력화 시킨 최고의 기술이었습니다~ 보아텡을 쓰러뜨리고 24일 뒤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메시는 빌바오의 거친 수비 때문에 고전합니다ㅠㅠ 하지만, 전반 20분 의욕적인 빌바오 수비 4명을 바보로 만들며 멋진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이후 빌바오 수비는 급격히 무너졌고 바르셀로나는 3-1 승리와 함께 우승을 차지하죠~이 시즌 바르셀로나는 트레블에 달성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냅니다! 2015.5.31 재밌게 읽으셨다면 좋아요! 한 번 눌러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박지성
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떄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어렸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러 오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라치셨겠죠. 박지성 어머니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中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 친구하고 부딫혀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버지 자서전 中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대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 "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 하느냐, 다른 선수들은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면서 때리더라고요" 그후 박지성은 원래 가려던 중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로감 아버지 자서전 中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1학년 축구부 동기들도 지성이를 싫어했으니, 지성이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원공고에 다닐 당시 선배의 구타에 못이겨 몇몇 선수들끼리 팀에서 도망을 치기로 계획을 짰다. 당연히 박지성도 그 멤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훈련 후 선배의 구타에 박지성의 팔이 부러졌다. 어쩔 수 없이 박지성은 합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 숙소 이탈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나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 별일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을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 "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글..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오유 유소년 대회도 열고 자선경기도 열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애들한테 다 기부하던데 자기가 맞으면서 축구를 했던 시절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처럼 축구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엄청 큰거 같습니다.. 예체능계의 똥군기는 진짜 언제쯤 없어질까요
오늘자 사실상 감독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호날두
호날두를 좀 알고 계신 분들은 감독두에 은근 기대가 있으실겁니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호날두는 실질적인 그라운드의 사령관이었습니다. 1: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전 57분쯤 AT마드리드는 경기에 변화를 주기 위해 가메이로를 토레스로, 사울 니게즈를 가이탄으로 교체합니다. At마드리드가 전술에 변화를 주자 호날두가 곧장 지네딘 지단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입을 가리고 뭔가 대화를 나눕니다. 입을 가렸기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상대편 전술 변화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한듯 합니다. 호날두의 제안에 지네딘 지단은 그렇게 하라는 의미로 눈을 찡긋 감아줍니다. 사실 경기장 안에서 느끼는 점과 밖에서 느끼는 점은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감독 역할을 해줘야하는 선수를 감독들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곧바로 호날두는 지단과 상의했던 변화를 선수들에게 지시합니다. 이 후 AT마드리드는 마지막 3번째 교체카드까지 사용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전술 변화를 가져간지 10분 만에 호날두가 또 다시 2번째 골을 성공시킵니다. 성공적인 대응과 변화에 지단과 수신호를 교환하는 호날두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호날두는 마지막 해트트릭을 완성했습니다. 지네딘 지단 감독과 어떤 전술적 변화를 이야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호날두의 눈은 정확했습니다. 상대의 교체카드와 현재 선수들의 상태를 고려해 감독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이는 곧 훌륭한 대응으로 연결됐습니다. 예전부터 호날두는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꽤 많이 보여줬습니다. - 리얼 그라운드의 감독, 호날두 - 호날두가 승부차기를 승리를 이끈 방식 특히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주고 멘탈 관리를 해주는건 지금 당장 감독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거기다 이제는 경기를 읽는 눈까지 가지게 된다면,,, 감독으로서도 큰 성공을 이끌고 있는 지네딘 지단 감독의 전철 충분히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