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j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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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일

2014년 10월 우연히 빙글을 접하고 제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글들을 소개했습니다. 무료 전자책 '나비는 자유롭게 난다'와 '의식혁명'의 저자 호킨스 박사 글을 주로 소개했고 홍익학당 강의를 가끔 소개했지요! 요즈음에는 서양 영성의 공통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비주의 영성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일들이 공익을 저해하거나 상업적입니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스토커처럼 신고해대는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한때 엄청난 뷰가 발생해서 큰 격려로 생각하였고 감성일변도의 빙글에도 영성과 철학에 관심을 가진 분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지독한 안티가 있는 듯하여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글을 안 올리겠습니다. 혹여 저와 함께 공부하실 분은 페이스북 '그리스도의 편지 읽기' 그룹이나 네이버 정신세계사 카페로 찾아 오시기 바라면서 빙글을 운영하시는 분들과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댓글 주신 분들의 뜻에 따라 글을 계속 올리겠습니다. 아울러 안티 하시는 분들의 속마저 헤아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7.1.]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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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빙글을통해 정성스런 글과 영성에대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도움이 많이되었는데...아쉽네요...힘내시고..뜻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깊은 공부를 하시는 분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오고 있어요. 힘내시고 앞으로 좋은 말씀 많이 남겨주세요!!!
다시 글을 올려주신다니~~반갑고...감사합니다~~선생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을 통해 얼이 밝아지는 마당이되었음합니다.
호킨스 박사님의 "의식혁명"에 나오듯이 세상에는 기준점 200이하의 사람의 아직도 많으며, 어느 연예인이나 정치가에게도 안티가 있고,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무지한 사람들의 한마디에 반응을 한다면 세상에서 큰일은 누가 만들어 나가겠습니까? 부디 크게 보시고 본래 뜻하신바대로 계속적인 가르침을 전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스쳐지나듯 보아도 쌓이고 쌓이면 매일먹는 음식이 비록 배설이 되더라도 그 사람의 체질을 바꾸듯이 범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tjryu 그러게요~~안타깝네요~~하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의식의 확장에 관련된 복음들 전해주세요...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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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만 긴 거짓말 사라지는 것들은 왜 단단한 것들 만을 남기고 떠나나요 말랑한 것들은 왜 사라지고 마나요 바다의 바닥에 딱딱한 죽음 하나가 구릅니다 조개 껍데기 하나가 구릅니다 때마침 옆을 지나던 소라 게 한 마리 관심을 보이며 다가옵니다 빈 껍데기 앞에 선 게는 그 안을 오래도록 들여다 봤습니다 집이 너무도 깨끗했기에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거나 그게 아니면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게는 생각했습니다 죽음이 보기에 삶은 다만 긴 거짓말이고 삶이 보기에 죽음은 유치한 장난이겠죠 금방이라도 누군가 돌아올 것 같은 깨끗한 빈집 앞에서 게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집게로 조개껍데기를 두 어번 두드려 보고 또 괜히 주위를 서너 바퀴쯤 돌아보고 나서야 빈 껍데기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한 게는 그제야 말랑한 아랫배를 껍데기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가장 단단한 것 속으로 가장 부드러운 것을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한 번의 밤이 찾아옵니다 등껍질이 막 영글어 가는 이른 밤 속에서 게는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의 출처를 찾던 게는 이내 그 출처가 자신의 집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껍데기가 알맹이를 집이 저를 비워놓고 사라진 주인을 단단한 것이 말랑한 것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리하여 게도 빈집처럼 가만히 눈을감고 집게발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게가 잉태한 슬픔은 별이 되어 빈집의 벽을 타고 흐르고 게의 바다는 그 농도를 더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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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는 그날도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더 분주했던 엄마는 식초병을 참기름병으로 착각하고 찌개에 넣고 말았습니다. 순간 아차 했지만,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까운 마음에 그냥 식탁에 내놓았습니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중학생 큰딸이 찌개 맛을 보더니 잔뜩 찌푸린 채 말했습니다. “엄마 찌개 맛이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초등학생 둘째 딸도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가 했던 말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자식들의 쏟아지는 음식 불평에 엄마는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런 두 딸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가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디, 맛 좀 보자. 조금 시큼하긴 하지만, 먹는 데는 문제가 없구나.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한 것 보니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있는 듯하구나. 음식 맛을 말하기보다 먼저 엄마의 걱정거리가 뭔지 여쭤보지 않겠니?” 순간 딸들의 얼굴에 죄송함이 묻어났습니다. 딸들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감싸주는 아빠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금세 식탁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느 순간에도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며 존중하며 그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녀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며, 엄한 훈육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 E.리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소서
[7월 7일] 소서 (小暑) 날짜 태양의 황경이 105°인 날 2020년 7월 7일(화) 소서는 24절기의 열한째로, 음력으로는 6월절(六月節)이고 양력으로는 7월 7, 8일 무렵입니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몰려오는 때로 이때는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지고, 비가 많이 오지요. 소서와 관련한 말에는 "소서 때는 새각씨도 모 심어라", "소서 때는 지나가는 사람도 달려든다"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 무렵에 모내기 끝내고 모낸 20일 뒤 소서 때는 논매기인 피사리를 해주며,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해야 하는 일로 바쁜 시기입니다. 피사리 《고려사절요》 4권을 보면 "소서가 가까워오니, 죄가 무거운 죄수에게는 관대히 하고 가벼운 죄수는 놓아주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역시 바쁜 일손을 거들라는 뜻이겠지요. 또한 《상촌 선생집》 54권을 보면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귀뚜라미가 벽에서 울며, 매가 먹이 잡는 연습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보리와 밀도 먹게 됩니다. 특히 이때의 시절음식은 밀기루 음식인데 밀이 제맛이 나는 때라 국수나 수제비를 즐겨 해먹지요. 채소류로는 호박, 생선류로는 민어가 제철입니다. 민어는 포를 떠서 먹기도 하고, 회를 떠서 먹기도 하며, 매운탕도 끓여 먹는데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수제비 띄워 먹는 맛은 입맛 없는 계절의 별미였습니다. #소서
손을 들어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하여 나는 넘어왔다
오랜만에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 일찌감치 누운 안 방과 거실,  그 사이에 놓인 선풍기만이 번갈아 고개를 대며 서로의 온도를 섞었다 그리하여 그 밤은 끝내 표준시 아침을 안 먹으니 우유라도 마시라며 그는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고 가 우유 두 갑을 사들고 왔다 난 속이 좋지 않다며 마시지 않았다 우리는 텅 빈 고깃집에서 점심부터 삼겹살을 먹었다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얘기들이었다 새로 생긴 성당의 구조나 갈려나간 교구, 교무금을 3분 1이나 때어 준 통이 큰 주임 신부님 자세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된장을 기다리다 그만 배가 불러와 밥은 두 세 숟갈만 입에 덜었다 왜 이렇게 못 먹냐고 그는 어째 익숙한 음에 기대더니 어릴 때 내가 이유식을 세 되씩이나 먹었다고  자다가도 배가 고파 울고 엄마가 지친 밤 본인이 직접 타 준 이유식을 혼자 들고서 잘 먹었다고 남은 밥알을 긁으며 늦은 감상을 들려주었다 늦은 만큼 길게 웃었다 이쯤 하면 하고 시계를 보았다 미안하다 고맙다 잘해봐라 갈 거라면 일찍 가라며 남은 밥알을 입에다 다 털어 넣곤 그는 마스크를 꺼내 젖은 입을 가렸다 네하고는 나도 마스크로 덜 삼킨 입을 가렸다 더 가는 팔로 굳이 내 짐 가방을 들고 가는 그를 따라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서 나는 지하철 개찰구로 내려갔다 카드는 미리 찍었는데 그의 입은 안즉 멈추질 않네 들썩이는 개찰구 멈칫하는 사람들 손을 들어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하여 나는 넘어왔다 충분했다고 이제 다시 가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그가 개찰구 앞에서 한 이야기가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임신부님 얘기보단 더 민망한 얘기였던 거 같은데 참 W 레오 2020.07.02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맑음
이케아 인형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NO플라스틱
매일 플라스틱 조각 8백만개가 바다에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시나여! 그리고 매년 1억마리의 해양 생물들이 그 플라스틱 조각들 때문에 세상을 떠나구여ㅠㅠㅠㅠ 많은 사람들이 요 사실을 알고 각자의 실천을 하고 있잖아여. 개인적으로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회사 차원에서 같이 하기도 하구... 환경 단체도 많구. 근데 그 중 귀여운 캠페인이 보여서 제가 가져왔어여 +_+ 학생 다섯명이서 만든 광고 캠페인! 웬만하면 다 한 번은 봤을 이케아 인형을 가지고 하는 캠페인인데 너무 기엽단 말이져. 물론 실제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잔인하지만 ㅠㅠ 이케아에 있는 해양 생물 인형들에 플라스틱 폐기물들을 씌우는 캠페인을 시작한거져 ㅠㅠㅠ 사실 사진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관심있는 사람들만 보고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모르잖아여. 이렇게 더 친숙한 이케아 인형으로 한다면 한 번은 더 보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이케아랑 같이 하는 캠페인은 아니구 그냥 학생들이 하는 거예여 +_+ 기엽져. 그럼 이케아는 이걸 보고 왜 가만히 있냐구여? 뭐 이케아는 이미 옛날부터 환경 오염 관련한 캠페인을 계속 실천하고 있거든여. 뭐 간단하게는 제로 플라스틱 운동이라거나 그래서 이케아 카페나 가구에 있는 플라스틱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있구, 이케아에서 생산하는 가구들은 모두 재사용이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져. 2030년에는 100프로 재사용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_+ 그 뿐 아니라 제품들을 만들 때 발생하는 대기 오염까지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실천중! 개개인의 작은 실천부터 기업의 큰 움직임까지... 같이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지 않을까여 +_+ 우리도 실천해여!
[책추천] 예민한 성격이라고 자타가 인정할 때 읽으면 좋은 책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상대에게 '예민하네'라는 말을 듣거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남들보다 조금 더 섬세한 성격일 뿐인 여러분을 위해, 섬세한 성격의 친구를 둔 여러분을 위해 5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은 '예민이'들에게 쿨하게 동지가 되어 줄, 당차고 재치 있는 에세이 네, 저 예민한 남자입니다 박오하 지음 ㅣ밝은세상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Z3avZm 때로는 예민해서 힘들었던 이들에게 그 감각을 어떻게 살리면 좋은지 알려 주는 책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 젤린 지음 ㅣ나무생각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8w5dIX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적당히 예민할 수 있을까? 기복이 심해 힘들었던 일상이 곧 평온해질 책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캐린 홀 지음 ㅣ빌리버튼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Z1io13 예민하단 소리만 들으면 스트레스받을 때 나에 관해 똑똑히 알려줘서 자존감이 생기는 책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다카다 아키카즈 지음 ㅣ매일경제신문사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e73r1L 지친 내면을 찬찬히 살피고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정신과 전문의에게 심도 깊이 받는 상담 같은 책 예민함 내려놓기 오카다 다카시 지음 ㅣ어크로스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O1ZBfK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https://bit.ly/3f2yOff
진짜 위대한 사람
가난하지만, 심성이 착한 한 청년은 신문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신문 뉴스에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가 가득했고, 힘과 권력을 가졌지만 부패한 사람들의 행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힘과 권력과 지혜가 있다면, 세상을 위한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움도 짧고 가난한 청년은 세상을 위한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몰라, 영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에게 찾아가 조언을 청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제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세상을 위하는 일도 아닌데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토머스 칼라일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따뜻하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집을 청소하는 단순한 일이라도 그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어떤 일이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토머스 칼라일은 다시 청년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면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귀한 일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에도 하찮은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고 쉽게 보이는 일도 하나하나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열심히 산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지탱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책임을 다하면 꼭 성공한다. – 데일 카네기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성범죄자의 선처호소 편지 집어던진 미국판사
지난 2018년, 미국 미시간주 법원. “멸시당한 여자의 분노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을 잘못으로 몰아갔습니다” 성범죄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이 쓴 해당 내용의 편지를 읽던 판사는 편지를 휙 내던졌다. 이날 법정에 선 피고인은 선수들에게 치료를 빙자해서 성폭력을 저지른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였다. 판사는 주치의를 향해 일갈했다. “아직도 당신이 한 짓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 편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난 의사인 당신에게 내 반려견 치료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판사가 주치의에게 선고한 처벌은징역 175년 “당신에게 175년, 2,100개월 형을 선고합니다. 방금 당신의 사형 집행 영장에도 서명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 것은 판사로서 제 영예이자, 권한입니다.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서 나갈 자격이 없습니다.” 선고가 끝나자 법정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판사는 판결을 내리며 이같은 말을 남겼다. “오늘 판결은 내가 내리지만, 두 번째 판결은 신이 내릴 것입니다.” + 어린 체조선수 등 10~30대 여성들을 상대로 장기간 상습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 30여년에 걸쳐 자신의 치료실에서 체조·수영·축구·배구 선수 등 10~30대 여성 156명을 성추행거나 성폭행한 천하의 ㄱㅆㄹㄱ같은 놈 손정우 사건 담당 판사 정신차려라... 판사님 내한 소취...
박정희
[박정희(오까모또 미노루)] 1917년 경북 선산출생. 1925년 구미보통학교 입학. 1932년 대구사범입학. 이 해에 일본제국의 괴뢰정권 만주국수립. 1935년 5월 만주수학여행. 일본제국 지배 때 만주견문. 같은 해 김호남과 결혼. 1937년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부임. 같은 해 큰 딸인 박재옥 출생. 1939년 교직을 떠남. 1940년 만주신경군관학교 입학(혈서지원으로 특혜 입학 허용). 1942년 만주군관학교에 일제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고 일본육사 3년 편입. 1944년 일본육사 졸업 후 만주군 보병 제8단 배속, 중국항일군토벌종사. 1945년 일제패망, 만군이탈, 북경에서 조선인 광복군에 편승, 이 당시부터 친일행적 은폐. ⊙1947년 소위에서 대위로 승진 사관학교 중대장 근무. ⊙1948년 소령진급.10월 여순반란사건 발발,11월 남로당간부사실이 발각되었으나 수사협조(밀고)로 처형모면하고 석방. ⊙그 후 6.25전쟁 전까지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보도연맹원 처리안 기획. 이 사실은 미국정보공개에 의한 문서조사에서 드러났다. 월간 ‘말’2001년 5월호에 실린 이도영의 ‘제주도민 예비검속은 이승만 피신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글을 보면 박정희와 김종필은 전쟁 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의 주역으로 그 육군본부정보국 작전 과장이었다. 이 사실은 피살자 유족이기도한 제주도 교사인 이도영의 미국에서 공개된 문서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1950년 박정희 소령지위 회복. 중령진급.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결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준장으로 진급. ⊙1957년 제7사단장. ⊙1958년 소장진급. ⊙1960년 부산군수기지사령관. 2군 부사령관. ⊙1960년 4-19혁명으로 전쟁전후의 민간인학살과 친일파죄과에 대한 조사 성토로 불안을 느낀 박정희 등 친일파의 반혁명 음모가 싹틈. ⊙1961년 군사반란인 5-16 쿠데타를 일으킴. 박정희 가계도 가계(家系) 증조부: 박이찬 조부: 박영규(1840년~ 1914년, 호는 일부당(一斧當)) 조모: 성산 이씨(星山 李氏) 숙부: 박용빈 숙부: 박일빈 부: 박성빈(1871년 ~ 1938년) 모: 백남의(1872년 ~ 1949년) 형: 박동희(1895년 ~ 1967년) 조카: 박재홍, 박재선 형: 박무희(1898년 ~ 1960년) 조카: 박재석(1922년 ~ ), 박재호 누나: 박귀희(1902년 ~ 1974년) 의 아들, 은봉남과 은희만 조카: 은봉남(첫째1918년 ~ 1994년), 은희만(둘째,은지원의 부친)약력:단국대,연세대대학원,한국전력지점장,국무총리비서관,청와대, 보광개발(주)회장,현자영업. 형: 박상희(1906년 ~ 1946년) 조카: 박준홍, 박영옥, 박계옥, 박금자, 박설자 형: 박한생(박한희, 1910년 ~ 1928년)[287] 누나: 박재희(1913년 ~ 1996년) 첫 번째 아내: 김호남(1920년 ~ 1990년, 1950년 11월에 박정희와 이혼) 딸: 박재옥(1937년 ~ ) 본처 몰래, 박정희,이현란과(1948년) 약혼 (이현란과~ 3년간 동거)그후 본처와 이혼. 세 번째 아내: 육영수(1925년 ~ 1974년, 1950년 12월에 박정희와 결혼) 딸: 박근혜(1952년 ~ ) 딸: 박서영(1954년 ~ )근령에서 서영으로 개명. 아들: 박지만(1958년 ~ ) 손자: 박세현(2005년 ~ ) 첫 결혼 후 협의 이혼... 한국전쟁 중 육영수 만나 재혼 박정희는 대구사범 4학년 때인 1935년 여름 부친의 강권으로 억지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대구사범 교칙에 재학생은 결혼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비밀결혼을 한 셈이죠. 상대는 선산군 도개면에 사는 김호남(金浩南, 1920~1990)으로 그보다 세 살 아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 후 여름방학이 돼 귀국해서도 처자가 있는 고향집 대신에 교사 시절에 머물렀던 문경 하숙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50년 11월 협의 이혼하였는데, 그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박재옥(朴在玉)이 그 주인공인데, 박재옥의 남편 한병기(韓丙基)씨는 3공 시절 민주공화당 국회의원과 UN대사 등을 지내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박정희가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만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습니다. 1950년 8월 하순 피난지 부산에서 송재천(宋在千) 소위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는데, 4개월 뒤인 그해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허억 당시 대구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일화가 몇 가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육 여사 부친의 불참으로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 대신 신부를 인도했습니다. 또 주례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이라며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으며, 또 신부의 예물반지를 갖고 있던 송재천이 이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김재춘이 급히 나가서 새로 하나 사오기도 했습니다. 박-육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근혜, 근영, 지만 등 2녀1남을 두었습니다.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여대생과 동거 한편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기 직전에 한 여대생과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산 루시여고 출신으로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이현란(당시 24세)이 그 주인공인데, 이현란은 이국적인 외모에다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해 박정희 눈에 든 모양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요, 1947년 12월 경리장교였던 박경원(朴璟遠, 작고)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육군 대위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현란과 약혼한 후 곧 이현란을 용산 관사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으며, 이후 이현란이 수차례의 가출과 방황을 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습니다. 박정희와 동거녀 이현란에 대해 그간 알려진 내용은 이 정도가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