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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이 캐스팅 하고 싶어서 여러번 회사까지 찾아간 연예인

팟캐스트 씨네타운 곡성 비하인드 스토리 中
"곡성의 <무명> 역은 나홍진이 처음부터 현아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역"
시나리오가 어느정도 나오고 난뒤 큐브에 직접 대본 들고 찾아갔지만 현아가 거절
포기하기 않고 나홍진이 직접 4번이나 더 찾아갔는데
현아가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하면서 연기 안한다고 거절
그 뒤 천우희에게 시나리오가 가고 캐스팅
큐브 부사장이 한탄하면서 너무 아깝다고 속상해 했다고 합니다.
나홍진 영화의 현아라.. 상상이 잘 안가긴 하네요!
나홍진 영화라면 분명 탐이 났을것 같은데
자신은 노래하는 사람이라며 딱 잘라 거절한게 정말 멋져요!
뭣이 중헌지 자신이 잘하는게 무엇인지 아는 현아가 좋다면

하트뿅뿅♥ x 1000

3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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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이라...퍼포먼스하는 예술가라 해줄께...
저 배역은 천우희 였기에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봄. 나홍진 감독이 어떤식으로 보여주길 원했는지 모르지만 저 배역이 현아였다면 곡성이란 영화의 완성미는 확 떨어졌을듯
똑쟁이ㅠㅠ 현아가 연기라.. 상상이 안가지만, 안하길 잘했네요
안하길 잘해부렀제 전혀 안어울려
이건 현아가 자신의 탤런트가 뭔지 알고 거절했기때문에 자기 이미지도 지키고~ 영화도 살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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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싸움꾼 이성계 총정리
망해가던 고려를 지켰던 무적의 장수, 역적으로 몰리자 그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90년대 최고의 사극이었던 용의 눈물에서는 고 김무생 씨가, 정도전에서는 유동근 씨가,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천호진 씨가 연기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외침과 내란에서 고통 받던 민중을 구했던 이성계. 그의 전설적인 활솜씨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합니다. 30년 동안 전쟁터에 나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진정한 싸움짱, 무쌍 이성계. 그는 얼마나 싸움을 잘 했던 걸까요? 오늘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아닌, 고려 역사상 최강의 장수였던 이성계를 살펴봅니다. 이성계는 1335년 10월 11일 태어납니다. 전주 이씨 집안 이자춘의 둘째 아들이었죠. 이성계의 선조는 전주를 떠나 여진인들이 살고 있던 남경, 간도에 지역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원나라가 지배하던 곳인데 여기서 지방관리 벼슬을 했죠. 아버지 이자춘은 쌍성총관부를 함락할 때 공을 세워 동북병마사로 고려 중앙 관직에 진출합니다. 어려서부터 활솜씨가 뛰어났고 머리도 좋았습니다. 젊은 시절 이성계는 어느 절에서 잠깐 낮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인 이자춘의 묏자리를 잡아준 무학대사가 있던 절이었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집이 무너지면서 서까래에 깔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깨고 보니 등에 진짜 세 개의 서까래에 눌린 자국이 있었죠. 야사에 의하면 무학대사는 그 자국을 보고 왕이 될 징조라고 해석했다고 합니다.(등에 난 三자 + 이성계의 몸 l = 王)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말로 유명한 최영, 하지만 이 말은 최영이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한 말이었죠. 아무튼 최영과 함께 이성계는 고려의 전설이 됩니다. 스물여섯 살부터 커다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시작하죠. 1361년에는 10만이 넘는 홍건적이 고려 수도 개경을 함락하자 고려와 여진족 2천명의 사병조직을 만듭니다. 수도를 탈환하여 가장 먼저 성에 들어가고 홍건적 두목은 활로 쏴 죽였죠. 다음 해에는 원나라의 나하추가 수만 군사를 이끌고 왔지만 물리칩니다. 1364년에는 원나라 조정의 사주를 받은 덕흥군과 최유의 군대를 최영과 함께 섬멸합니다. 1370년에는 지금의 만주 땅인 요동을 공격하는 제1차 요동정벌에 성공하죠. 고작 1만5천명에 불과한 군사를 이끌고 우리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요동을 점유했죠.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이성계는 성 안에 있는 적군을 향해 활을 쏩니다. 자신의 활이 없어서 부하의 활로 편전, 즉 애기살 70발을 쐈죠. 이게 전부 헤드샷, 적군의 얼굴을 맞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쳐들어온 왜구를 족족 섬멸했는데 특히 황산대첩을 통해 고려의 영웅이 됩니다. 이후 우왕의 명을 받아 제2차 요동정벌을 위해 북쪽으로 출동했다가 압록강에 있는 한 섬에서 회군하죠. 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위화도 회군입니다. 이후 창왕에 이어 공양왕을 옹립하죠.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철퇴를 맞고 죽자 이성계는 크게 분노합니다. 그러면서 조선 건국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됩니다. 무학대사의 도움으로 개경을 벗어나 한양에 도읍을 정합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대충 정리해서 배달해 드리는 내 손안의 지식인, 총정리! 이번 70화의 주제는 ‘최고의 싸움꾼 이성계’입니다. - 망해가는 고려를 지켰고, 멸망시켰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 사극에서의 이미지와 다른 싸움꾼 이성계를 소개합니다. - 퍼펙트 골드의 원조는 천하의 명궁 이성계였지요. - 무술의 천재였던 그는 사기캐에 가깝습니다. 무용담으로 알아봅니다. - 황산대첩 얘기를 들으면 “이거 설화냐?”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양궁 종목에 혼성 종목이 추가됩니다. 한국이 금메달 하나를 더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죠. 한민족은 고대부터 활을 주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부여와 고구려, 백제는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기마민족이었죠. 고구려에 주몽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신궁 이성계가 있었습니다. 태조실록에 기록된 이성계의 활솜씨는 믿기 어려울 수준입니다. 태조에 대한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가정해도 엄청난 솜씨였죠. 활쏘기 대회에 나가면 상대 수준에 맞춰서 비슷하게 쏴주는 ‘매너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상대가 자존심에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죠. 태조실록 1권에서는 어릴 때의 활솜씨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태조가 젊었을 때 정안공주 김 씨의 집 담모퉁이에 까치 다섯 마리가 있었다. 태조가 한 발을 쏘니 5마리가 모두 떨어졌다. 김 씨가 이를 괴이하게 여기니 태조는 ‘절대 발설하지 마라’고 했다.” 명궁 이성계는 장비 아이템도 남달랐습니다. 화살대로 싸리나무를 썼고 화살 깃은 학의 깃털을 달았습니다. 촉은 순록의 뿔로 만들었는데 크기가 커서 그 파워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이자춘은 사람이 쓸 물건이 아니라고 감탄했죠. 노루사냥을 할 때 화살 한 발을 쐈는데 노루 두 마리를 관통한 후 나무에 꽂혀버립니다. 신하는 화살이 너무 깊이 박혀서 쉽게 뽑을 수 없었다는 후일담을 남겼죠. 고려 때 공민왕은 80보 떨어진 곳에 은거울 10개를 세워두었습니다. 활로 맞히는 자에게 은거울을 주겠다고 약속했죠. 이성계는 96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은거울을 모두 맞혀버립니다. 하루는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벌였습니다. 120미터 떨어진 배나무에 열린 탐스러운 배를 활로 맞춰보라고 친구들이 부추기자 시위를 당겼죠. 화살 하나에 배 다발이 우수수 떨어졌고 이 배를 깎아서 친구들에게 대접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우왕 때의 ‘엑스텐’ 혹은 ‘퍼펙트 골드’ 사건입니다. 고려 우왕이 가장 활 잘 쏘는 무신을 겨루는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60미터 거리에서 밥그릇만한 과녁을 맞히는 게 규칙이었죠. 그 안에 더 작은 과녁도 있었는데 지름이 6cm에 불과했습니다. 이성계는 그 작은 과녁을 계속 맞혔죠. 놀란 우왕은 “우왕, 우왕, 우왕……!” 하면서(?) 이성계에게 말 세 필을 하사합니다.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엑스텐을 쏘며 카메라 렌즈를 깬 사건 기억하시나요? 원조가 바로 이성계의 퍼펙트 골드입니다. 왜구와의 전쟁을 앞두고 부하들 앞에서 화살 시범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270미터 떨어진 거리에 투구를 놓고 쐈죠. 세 발 모두 적중했고 병사들의 사기는 높아졌습니다. 여진정벌을 할 때는 기병이 탄 말의 눈을 조준해 맞힌 적이 있죠. 말 위에서 뒤로 눕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쏜 얘기는 영화 속 장면 같습니다. 상대의 화살을 눈으로 보고 피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정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우왕과 사냥을 나갔을 때 얘기도 유명하죠. 이성계는 평소 사냥할 때 짐승의 오른쪽 안시골을 쏴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시골이 아닌 등골만 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베이브 루스의 예고홈런은 논란이 많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딱 한 번이었죠. 이성계는 사슴 40마리 모두 등골을 맞혀 잡았습니다. 함께 사냥에 나간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겠죠. 30년 동안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이성계, 그는 타고난 무장입니다. 어진에 묘사된 모습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 뼈가 굵은 체질이죠. 위에 얘기한 활쏘기를 비롯해 말 타는 실력도 사기캐였는데 무술에도 천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힘이 천하장사였습니다. 이성계가 사용한 활은 한국전쟁 이후 행방을 찾을 수 없지만 칼은 남아있죠. 150cm가 넘는 대검을 썼습니다. 극진공수도의 창시자로 유명한 최영의가 소를 때려잡는 영상은 유명하죠. 이성계는 한 손으로 황소 뿔을 잡고 제압했다고 합니다. 사실 염소 한 마리 제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맨손으로 싸워도 절대 지지 않았습니다. 그 피지컬을 가지고 쏘는 화살의 위력은 엄청났죠. 고작 2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홍건적 10만 명을 무찔러 개경을 탈환한 게 스물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그 공으로 다음해에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도 단위의 군을 지휘합니다. 이때 원나라 장수 나하추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이성계의 나와바리, 아니 동북면으로 쳐들어옵니다. 당시 잘 나가던 싸움꾼 나하추와 새로 등장한 신인 파이터 이성계가 함흥평야에서 제대로 맞짱을 뜨게 됐죠. 이미 고려 북방에 세력을 두고 있던 나하추는 자기 밑의 가장 뛰어난 장수를 골라 선발대로 출전시킵니다. 이성계는 우습게 발라버렸고 나하추는 다른 장수 5명을 출전시킵니다. 하지만 역시 이성계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죠. 그러자 나하추는 본대에 직접 합류에 출전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싸움꾼 이성계는 나하추의 본대마저 관광 태워버립니다. 기가 찬 나하추는 10명의 기병을 이끌고 나가 이성계에게 대화를 요구합니다. 이성계 역시 호위병 10여명만 데리고 나갔죠. 나하추는 “홍건적을 잡으려고 오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지 고려를 침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변명합니다. 계속 지는 바람에 병사 만 명을 잃고 장수도 잃었으니 싸움은 이제 그만두고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죠. 휴전을 제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나하추가 술수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나하추의 뒤로 보이는 원나라 부대를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패전을 하고 있는 군대라기엔 사기가 좋아보였습니다. 이에 나하추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성계는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던집니다. “항복해라.” 그리고 대답도 듣기 전에 나하추의 부장에게 화살을 쏘아버립니다. 상남자 이성계입니다. 이성계의 화살을 맞은 부장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죽었죠. 당황한 나하추에게 이성계는 다시 항복을 요구합니다. 부하를 죽여 놓고 말이죠. 그러면서 나하추가 탄 말도 쏘아 죽여 버립니다. 나하추는 거품을 물고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이성계는 나하추가 갈아탄 말 두 마리도 화살로 쏘아죽입니다. 이후 이성계 혼자 적군 스무 명을 죽인 얘기가 나오는데 영화 같은 내용입니다. 창을 휘두르자 말에서 떨어지듯 누워서 피하고, 말에 거꾸로 누워 적을 죽이고, 그렇게 혼자 대역 없는 롱테이크 액션씬 연기를 하다가 결정적 장면을 만듭니다.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투구에 턱까지 갑옷을 두른 적의 장수를 만난 거죠. 쏠 곳이 없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이성계는 먼저 그 장수의 말을 쏩니다. 화살에 맞아 말이 날뛰자 장수는 말고삐를 당기며 “워, 워, 워!”라고 소리를 질렀죠. 그 순간 이성계는 그 장수의 입 속을 겨냥해 화살을 쏩니다. 유일한 빈틈이었던 입 안에 명중했죠. 이걸 본 적군은 아예 질려버려서 자기끼리도 엉키면서 도망갑니다. 야사에는 이성계가 혼자 쫓아가 나하추의 장군 세 명을 죽인 얘기도 나옵니다.  결국 나하추는 싸울 마음이 1도 남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성계에게 감명을 받은 그는 말과 함께 선물을 바쳤죠. 고려와 화친을 맺은 나하추는 정1품 벼슬까지 받습니다. 벼슬보다도 이성계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게 최고의 선물이었겠죠. 남원시 운봉읍에는 사적 제104호 황산대첩비지가 있습니다. 이성계의 명성이 고려에 울려퍼지며 조선을 세우는 계기가 된 전투였죠. 14세기 후반 동아시아는 난장판이었습니다. 홍건적을 비롯한 반란군이 중국과 고려 북방을 뛰어다녔고, 일본은 남북조시대의 혼란으로 왜구가 한반도를 노략질하고 있었습니다. 왜구는 정규군이 아닌 해적이지만 당시엔 군대에 가까웠죠. 배를 타고 상륙해 충청, 전라, 경상도를 약탈하고 사람을 죽인 후 불을 질렀습니다. 어린 고려 소녀의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제사를 지낸 후 시체를 태워버리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고려의 대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출동하지만 완전히 망해버렸죠. 이게 사근내역 전투입니다. 이럴 때 영웅이 등장하는 법이죠. 이성계는 길마다 깔린 시체를 지나 남원에 도착합니다. 북상을 장담하던 왜구와 이성계의 군대는 황산 자락의 정산봉에서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죠. 이성계는 부대를 둘로 나누어 왜구를 유인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왜구가 고려군의 뒤를 치려고 하면 이성계가 나타나 쓸어버리곤 했죠. 지휘만 한 게 아니라 직접 활을 잡고 왜구를 사냥했습니다. 왜구가 기습하자 화살 50발을 연속으로 쏴서 머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왜구가 산 위에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자 병력을 재편성한 이성계는 직접 선두에 서서 공격을 개시합니다. 난전 속에 이성계는 적의 표적이 됐고 말이 화살에 맞습니다. 갈아탄 말도 화살에 맞고, 이성계의 왼쪽 다리에도 화살이 꽂혔죠. 곧바로 화살을 뽑아내 병사들은 몰랐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두려운 자는 퇴각하라! 나는 적에게 죽겠다!”라고 외치며 사기를 올립니다. 하지만 왜구의 대장 역시 엄청난 싸움꾼이었습니다. 왜구의 대장은 아기발도였는데 “나이 어린 미소년으로 흰 말을 타고 다녔다”고 고려사와 실록에 기록됐습니다. 중2병 나이라서 그런지 겁 없이 용맹하고 사납기로 유명했죠.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아기발도의 싸움 실력에 감탄하여 생포하려고 합니다. 요동정벌 때도 유능한 적 장수를 부하로 만든 전례가 있죠. 하지만 아기발도가 고려진영을 워낙 휩쓸고 있다 보니 생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가질 수 없다면 죽여야 하는 상황, 여기에서 이성계의 활솜씨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아기발도는 온몸을 두른 갑옷과 투구로 얼굴과 목에 빈틈이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부하 이지란에게 “저 놈의 투구 꼭지를 쏴서 투구를 벗기게 할 것이니 네가 바로 쏴라!”라고 말한 후 말에 채찍질을 한 후 활을 당깁니다. 이내 아기발도의 투구 꼭지에 명중했죠. 투구 끈이 끊어져 투구가 기울어지자 아기발도가 고쳐 씁니다. 이성계가 다시 화살을 쏴서 꼭지를 맞히니 투구가 떨어졌지요. 이때 이지란이 저격에 성공합니다. 삼국지에서나 볼만한 일이 벌어졌죠. 이성계의 미친 전투력을 눈앞에서 본 왜구는 대장이 죽자 사기를 잃습니다. “이거 실화냐?”라고 외치다 죽었죠. 이 전투에서 전사한 왜구의 피로 냇물이 붉게 변해 일주일이나 갔다고 합니다. 고려인이 포획한 말이 1,600여필이었고 압수한 무기는 셀 수도 없었죠.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적군이 아군보다 10배 많았지만 겨우 70여명이 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대중매체, 특히 사극에서 우리가 본 그의 이미지는 많이 왜곡되어 있죠. 신화에서 볼만한 위인이자 답이 없던 고려를 구한 수호신, 그리고 한 나라를 건국한 이성계. 북방 오랑캐와 왜구로부터 백성을 구한 영웅이자 30년 동안 전쟁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최고의 싸움꾼.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고작 6년, 자식들의 권력다툼을 보다가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이성계는 서울을 떠나 소요산과 함주에 머무르기도 했죠. 함주는 지금의 함흥이고, ‘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한 것도 이 시절입니다.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에 돌아온 이성계는 74세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이성계가 고독한 세월을 보내며 불교에 매달린 것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이 글은 전체 방송의 일부분만 다루었습니다. - 무엇이든 정리해드리는 "총정리" - 아래 주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PC, 모바일: http://www.podbbang.com/ch/12078 * 아이폰 팟캐스트: https://itunes.apple.com/kr/podcast/chongjeongli/id1130129527?mt=2
6평 원룸 84만원으로 꾸미다
오늘의집에서 인테리어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직접 원룸을 꾸며보았어요. 6평 원룸을 80만원이라는 제한된 예산안에서 꾸며야 했는데요, 그렇기에 가성비 좋은 상품들을 고르기 위해 힘이 들었답니다. 완성된 원룸을 비포/애프터로 소개합니다! 출처: 오늘의집 스토어 바뀌기 전 공간 이번 원룸인테리어를 요청해주신 분은 몇가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들을 제안해주셨어요. < 우리 집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 1) 인테리어 컨셉은 잘 모르지만 심플하고 밝은 톤 2) 거의 휴식만 취하는 공간이기에 휴식에 특화된 집 3) 보기 싫은 옷들을 정리할 깔끔한 수납공간 "저는 집에서는 업무를 전혀 보지 않아요. 친구를 초대하는 일도 드물고, 요리를 자주 하지도 않아요. 오롯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집이 바뀌기 전엔 소파가 불편해서 집에 오면 거의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보면 자꾸 눕게 되고, 자꾸 게을러지더라구요." "지금은 눕기만 하는 생활을 청산하고 입식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소파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TV도 볼 수 있어 이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 "침구류는 모두 촉감이 정말 좋아요. 특히 이불세트는 잘 때마다 몸에 닿는 촉감이 새 것 같아서 아주 만족합니다." "쿠션 겸 베개나 담요는 예쁜 포인트가 되어줘요. 담요 모서리에는 태슬이 달려있어 고급스럽고 예뻐요. 여름에는 이불 대신 쓰기도 좋은 소재랍니다." "메인 천장등은 바꾸지 않았지만 간접조명이 있으니 확실히 아늑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네요. 허전한 침대 위에 자리잡은 액자도 심플하고 예뻐서 마음에 들어요." "기존에는 행거에 잔뜩 걸린 옷이 정말 보기 싫었어요ㅜㅜ 그래서 가장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답니다." "집이 작아 수납가구를 늘리긴 어려웠기에 커튼으로 행거를 가렸는데요. 깔끔히 가리기 위해 기존의 옷장은 버리고 행거를 연장했어요. 침대 밑에도 수납함을 넣어 입지 않는 옷들을 수납했어요." "TV장 대신 자리잡은 작은 서랍. 여기에도 의류를 넣어놓긴 했는데 서랍의 높이가 낮아서 문구류나 잡다한 물건들을 깔끔하게 넣어놓는 용도로 더 알맞는 것 같아요." "앞에서 말했듯 저는 집에서 요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기존에도 따로 식탁이 없었는데 책장이 식탁 역할을 해주어서 좋아요." "부엌과 공간이 분리되기도 하고, 수납공간이 더 생겼어요." "특히 조명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전구색이 따뜻하고 디자인도 예뻐서 만족도 100%에요. 전체적으로 조명들이 참 마음에 드네요^^" "화장대는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현관 옆에 협탁으로 작은 파우더룸을 만들었어요. 협탁은 재질도 좋고 디자인도 예뻐서 강력추천하고 싶어요." "보기 싫던 행거를 가린 것, 쓸모 있어진 소파공간 그리고 아늑한 조명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친구들은 구조가 크게 바뀌진 않았는데도 훨씬 깔끔해졌다는 반응이에요. 혼자 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인테리어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집이 꾸민 원룸인테리어 어떠셨나요? 작지만 알차게 채워진 공간, 사람이 '사는 공간'인 만큼 '사는 스타일'에 맞춰진 공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