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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면의 예술, 그리고 어제와 내일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브루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에서 ‘DISGUISE : MASKS AND GLOBAL AFRICAN ART’(이하 Disguise)라는 타이틀 아래 가면을 통해 본 아프리칸들의 문화와 뿌리를 담은 전시회가 진행 중입니다. 복합 미디어 전시인 이번 전시회는 25인의 아프리칸 아티스트와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들의 작품은 아프리카의 전통 문화 중 비중 있는 문화인 가면의 중요성과 예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들은 사진,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 일상의 사물이지만, 미술 작품이나 그 일부분으로 새로운 지위를 부여 받은 사물), 비디오 프로젝션, 네온사인, 음향 몰입 예술(Sound Immersion), 조각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는데요. 참여 아티스트 중 눈 여겨 볼 아티스트로는 나이지리아 태생의 포토그래퍼이자 필름메이커 ‘지나 사로 위와(Zina Saro-Wiwa)’가 있습니다. 이번 Disguise 전시회에서 그녀가 선보이는 두 개의 포토 시리즈 ‘보이지 않는 사람(The Invisible Man)’과 ‘오겔레의 남자(The Man of the Ogele)’은 나이지리아의 소수 부족의 문화와 전통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사진과 조각의 조합으로 이뤄진 시리즈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신(新) 오고니(Ogoni, 나이지리아 남부 지방에 거주하는 부족) 가면을 직접 제작해서 쓰고 있는 ‘사로 위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가면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오고니랜드(Ogoniland, 오고니 부족이 차지한 나이지리아 남부의 지역)에서 큰 유행으로 자리잡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 가면은 사로-위와의 삶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자유의지를 대변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합니다. ‘오겔레의 남자’는 나이지리아 남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오겔레 부족의 남성들의 사진으로 구성된 포토 시리즈인데요. 이 사진에서는 개인보다는 부족 중심적인 그들 문화에 맞춰 함께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젊은 남성들로 구성된 이 오겔레 부족의 그룹은 종종 나무로 된 무거운 가면을 쓰곤 하는데요. 착용하는 사람의 피부톤에 따라 각각 다른 색상으로 칠해진 이 가면은 착용자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오겔레 부족의 남성 그룹은 가면이 가진 신비로운 힘을 믿어왔는데요. 그들이 미래의 마스크 디자인과 부족의 노래, 춤을 개발하기 위해 3년 간 숲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 느꼈던 신비로운 힘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사로-위와는 오겔레 부족의 남성을 사진에 담은 첫 번째 포토그래퍼인데요. 그녀는 마스크에 가려진 오겔레 부족 남성들의 진짜 모습을 비추고, 가면과 가면 착용자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 조명했습니다. 이렇듯 아프리카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아직도 세상에 노출되지 않은 신비로움이 가득한 땅인데요. 선진화라는 미명의 기계 문명이 아직 발이 닿지 않은, 순수하고 영적인 아프리카인들의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듯 합니다. 또한, 아프리카 인들의 가면에 대한 예술적 가치와 의미, 지난 날의 가면의 형태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브루클린 박물관의 공식 홈페이지를, 아티스트 지나 사로-위와의 자세한 프로필과 더 많은 작품은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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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lover3 항상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 덕분에 모르던 것도 알고 힘도 많이 납니다!
항상 잘 보고있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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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교과서에서 배운 독립운동사의 한 시점 그래서 제목이 주는 무게감,엄중한 한일관계, 광복절을 앞둔 시기, 주위의 반응 등을 살폈을 때 이 영화는 보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친구들의 모임 날이라 모임을 끝내고 2차로 단체관람을 제안했으나 애국심(?)이 없는 탓인지 시쿤등한 반응이라 아는 사람과 보았다. 마누라는 오전에 회사에서 단체관람을 했기에 제외 하고 그렇다면 누구랑...ㅋ 반일 정서에 편승한 이른바 ‘국뽕’(지나친 애국심을 비하하는 속어) 영화라는 비판과 ‘우리가 기록해야 할 승리의 역사’라는 평이 팽팽하게 맞선다는 영화다.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령의 험준한 산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장 수십 리를 뻗은 계곡 지대이다. 봉오동에는 100여 호의 민가가 흩어져 있었는데 독립군 근거지의 하나로서 최진동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최진동 부대가 일본군 정규군을 대패시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전과 중 하나이다. 이것은 역사의 팩트다. 영화는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가상이다. 유준열이라는 주목받는 배우도 있지만 국민 조연 유해진이 모처럼 주인공이다. 이들 두명이 종횡무진 하며 일본군을 다 죽인다. 요즘의 한일감정에 이입했을 때 어마 무시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텐데 별로다. 그 원인은 개인적 생각에 대사에 무게감이 없다는 거다. 산만한 전개, 춘추전국시대도 아닌데 등장하는 큼지막한 칼의 무기 마지막 신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같은 무게감이 없다. 그래서 재미없다. 개인적인 견해다. 마누라 말을 빌리면 재미를 떠나 이 시기에 그냥 봐 주어야 할 영화란다. 유해진이 영화 내내 외쳐대는 쪽바리 새끼들 때문에... 요즘 핫 한 '영혼구매'가 그런 거다. 내가 못 가는 상황이면 영혼이라도 보낸다는 응원 그냥 봐 주자. 실제 전투에 사용했다는 태극기가 등장할 땐 뭉클했다. 광복절인 이 아침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영들에 묵념의 예를 갖춘다.
카메라에 담긴 '규모 6.0 지진'을 미리 감지한 고양이들
대만 타이베이에 사는 페이 유궈 씨는 아파트 거실에 홈 카메라를 설치해 반려묘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게 취미입니다. 말 그대로 고양이들이 서로 장난치거나 낮잠을 자는 등의 평범한 하루를 촬영하기 위함이었죠. 그러나 8월 8일, 목요일 새벽 5시 28분,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5마리의 고양이들. 화면 오른쪽에 있는 고양이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을 번쩍 뜹니다. 곧이어 나머지 고양이들도 동시에 눈을 뜨고. 잠시 후, 집안의 선풍기를 비롯한 소품들과 고양이들의 머리가 좌우로 격하게 흔들립니다. 규모 6.0의 지진입니다! 다행히 영상 속 고양이들은 모두 새벽에 자다 깼음에도 지진에 침착하게 대응했으며, 다친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놀라운 건 바로 지진을 한참 전에 미리 예측하는 능력인데요. 동물이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은 수 세기 전부터 나왔습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1년 전 반려견이 지진을 미리 예측하여 보호자를 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명한 영상 자료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지진을 예측한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동물에 의존해 지진을 대비하기보다는 지진계를 믿는 게 더욱 정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지만, 일각에선 일반 가정에서는 '지진을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진계'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반려동물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지진을 대비하는 방법이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옥수수를 따면서
옥수수 따기는 농사 일중 서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앉아서 하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군대서 오리걸음 기합을 받을 때도 늘 꼴찌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자세가 더 편하시단다. 아마 일생의 적응된 작업 환경 탓일 거다.  키 보다 더 자란 옥수수밭에 들어서면 열기로 인해 숨이 콱 막힌다. 무엇보다도 양날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옥수수 잎은 피부를 스치며 가른다. 중무장은 필수다. 어릴 적 키보다 더 자란 옥수수밭고랑은 우리들의 해방구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심길 이는 옥수수수염을 고추에 묶어놓고 뽐내곤 했다.  우리는 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아마 제약 없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어른들이 부러웠을거다.  그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이 억누르고 있다는 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깨의 그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우리는 다시 어릴 적 그 시절을 꿈꾼다. 그때가 좋았는데 하면서... 어릴 적 전쟁놀이, 숨바꼭질 등 모든 놀이 또한 이 옥수수밭에서 시작되었다.  나름 동네 대장이었던 나는 이 옥수수밭고랑을 작전본부로 삼아 모든 명령을 하달하곤 했다.  사랑채에 군인 가족이 이사 오고부터 난 그 장교 아들의 부하로 전락했다. 반은 군인과 다름없던 그 아이는 전쟁놀이에 탁월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로 군장을 만들기도 하고 근사한 목총도 만들고 모르는 군가가 없었다. 아는 게 힘이라는 걸 이때 절실하게 느꼈다. 하굣길에 중학생 누나가 나를 불러들인 곳도 이 옥수수밭이었다. 누나의 감촉이 남다른 걸 알고부터 나는 심한 성장통을 앓았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 추억으로 사는 거라고 오늘도 범바위산으로 노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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