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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축구]K리그 클래식 티켓값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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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angy 서울이 많이 비싸긴 하죠
시민구단하고 지방이 티켓값이 조금 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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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터프함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 김형일
어제 전북vs상하이 경기에서 나온 중국 선수의 미친 하이킥입니다. 중국의 클래스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중국도 중국이지만 실점 앞에서 온몸을 내던지는 한 수비수의 모습이 더 눈에 띕니다. 당시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 선수는 몸을 던지는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 김형일 누가봐도 위협적인 이 장면에서 과연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대는 선수들이 몇명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축구화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일 선수는 이내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벌떡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고 파이팅을 불어넣어주는 김형일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스터드에 얼굴을 가격당하는 심각한 파울을 당했음에도 금새 일어나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 나아가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 보는 내내 소름이 돋습니다 사실 터프함하면 바로 이분이죠? 젠나로 가투소 하지만 어제 김형일은 아시아에서 터프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인데, 사실 국축이 그렇게 인기있는 상황이 아닌데 국대도 아닌 클럽 선수로서 이렇게 검색어에 오르게 된다는것 자체가 그의 플레이의 클래스를 알게 하는 상황입니다. 원래도 파이팅형 수비수이긴 했지만 어제 있었던 저 장면을 기점으로 5: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기세면에서 이때 상하이는 꺾이게 됐습니다. 김형일은 상대의 퇴장과 우리의 사기까지 한 번에 끌어올린 최고의 한 수 뒀고 상대를 침몰시키는데 보이지 않는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김형일 선수 너무 멋있었어요 ㅠㅠㅠ
[울산 레전드 특집] 01. '유비' 유상철
울산도 어느덧 팀이 생긴지 30년이 넘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이나, 그 30년 가까운 역사에서 리그를 제패했던 적이 딱 2번, 운도 지지리 없어서 준우승만 머물렀던 것이 무려 8번이나 되니 이만하면 K리그의 '콩구단'이 아닌가 싶을정도다. 이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울산에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거쳐갔지만, 정작 레전드로 꼽을만한 선수가 누가 있냐고 말한다면 의외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선수들 대부분이 '거쳐가는 클럽'으로 인식을 한건지 울산을 발판으로 다른 팀으로 떠나기 일쑤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울산을 대표하는 레전드가 그만큼 더 귀하고 생각보다 끄집어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선수를 꼽자면 나는 제일 먼저 이 선수를 언급하고 싶다. 바로 '유비' 유상철이다. 유상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울산골수팬으로 자리잡았을 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 허약체질 개선을 위해 신었던 축구화, 선수로써 꿈을 키우다 184cm 78kg(선수시절 프로필)의 체격으로 몸싸움에서 웬만한 유럽 선수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유상철이지만, 어렸을 때는 아주 정반대였다. 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아 키도 작고 비쩍 말라서 운동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허약체질을 개선해서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였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응암초등학교-경신중-경신고를 거쳐서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의 작은 키가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경신고에 진학하고 나서 1학년 때 당시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해 겨율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고 그 노력의 정성이 빛을 발했던 것인지 고2때부터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20cm나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유상철은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AFC대회 챔피언쉽에 한국대표팀으로 뽑혔으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쳤고, 한국은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그렇게 유상철은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한 후에 1994년에 프로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그가 데뷔한 팀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고향인 서울팀이 아니라 울산이었다. 2. '유비' 유상철, 대중 앞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기다(1994~1997) 사실 유상철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서울 로컬이었기 때문에 프로팀을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을 원했었으나 울산이 드래프트 1순위로 유상철을 택했다. K리그가 개막하기 전에 그는 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 전지훈련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몸만들기에 들어간 것이 그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되었고,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A매치 데뷔무대를 가지기도 했다(아쉽게도 94 미국월드컵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뽑히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그는 울산에서 우측 수비수로 처음 프로데뷔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수비수로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덕분에 그는 그의 존재를 처음으로 부각할 수 있었던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 선발되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전은 유상철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에 처음 부각시켰던 경기였다. 당시 8강전은 한일전이었기 때문에 분위기상으로는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던 무대였고,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1대0으로 밀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정국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유상철은 오른발 발등으로 공을 골대로 밀어넣으면서 동점골을 뽑아냈고, 이것을 기점으로 한국은 일본을 계속 몰아치다가 결국 3대2 역전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4강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유상철이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어지게 된 첫 계기였다. 그 해 유상철은 국가대표로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듯이 클럽팀인 울산에서도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선수 신분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되었다. 프로 첫시즌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유상철은 다음해인 1995년에는 홍콩국제대회나 다이너스티컵과 코리아컵 등 다수의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경험을 축적하였고, K리그 올스타전에서 올스타대표로 선정되며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대표팀 와일드카드로 뽑히면서 1996년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올림픽 직전에 부상을 당하면서 중도하차하게 되었다. 이 때 부상의 여파로 유상철은 8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는 등 부진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밑바닥을 찍으면 다시 상한가로 돌아서듯이 그러한 부진을 유상철은 1996년 수원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1대1로 비기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골을 뽑아내면서 부진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고, 울산의 첫번째 챔피언 등극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이 때 고재욱 감독의 플랜에 유상철이란 존재는 필수요소였다. 1996년 첫 리그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후 이듬해인 1997년은 울산 구단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화려한 멤버진을 갖췄다. 이당시 울산은 일명 '깡패축구'로 올드팬들에게 불리기도 했는데, 김현석, 유상철, 김병지, 김종건, 황승주, 정정수, 김상훈, 박정배 등 울산 스쿼드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이 상당히 컸다. 하지만 1996년 리그 우승의 임팩트가 너무나 컸던 지, 1997년은 슬럼프에 빠졌다. 특히나 1996년에 속히 말해 '날라다녔던 신인 선수들'도 2년차 징크스에 대부분 빠져버린 셈이었다. 유상철은 부진한 것은 아니나 당시 팀의 분위기에 맞물려서 그렇게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3.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유상철, 그리고 J리그 사기유닛시절(1998~2002) 1998년은 유상철을 대한민국을 대표로 하는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해였다. 이미 K리그 내에서는 나름 입지를 갖춘 미드필더이긴 했지만, 그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아니었나 싶다. 월드컵 대표팀으로 나서기 전에 열렸던 아디다스컵 대회에서 유상철은 주축선수로 활약하면서 팀의 컵대회 우승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 때 활약을 발판으로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주장완장을 차고 뛰었다. 특히나, 벨기에전에 유상철이 터뜨린 극적인 동점골은 유상철이라는 선수를 전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경기이자, 유상철의 득점본능을 깨우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 전까지 유상철이 울산이나 국가대표에서 맡았던 역할은 주로 중원에서 조율을 전담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1998년의 유상철은 내 뇌리 속에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고, 내가 울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유상철이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록 수원에게 리그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긴 했지만, 그의 활약상은 충분히 찬사받을만 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고 난 뒤, 유상철은 한 층 더 진화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수비수와 미드필더로만 뛰었던 그가 정규리그에서만 무려 14골을 뽑아내면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997년에 김현석에 이어 1998년에 유상철이 득점왕에 올라서면서 울산은 2년 연속 득점왕을 배출해낸 셈이다. 사실 유상철이 기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가 스트라이커로 포지션 변경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타고난 피지컬과 위치선정, 그리고 넓은 시야가 크게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유상철처럼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모두 뛰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는 이전에 김주성 밖에 없었고, 현재까진 없다. 하지만 유상철은 1998년을 끝으로 울산을 떠나게 되었다. 월드컵과 K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상의 영향인지 옆나라 일본 J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그의 활약은 여전했다, 아니 유상철은 속칭 "J리그를 씹어먹는 사기유닛"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J리그 선수들이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있어서 약점을 보이다보니 힘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유상철에게 있어서는 J리그는 완전히 독무대였다. 요코하마로 가서 유상철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전 포지션을 오가면서 활약했다. 그러다 2000년에는 같은 울산 출신인 김현석과 더불어 J리그 득점왕 경쟁까지 했을 정도이니 그의 J리그 활약은 길게 설명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2000년 유상철의 경기 기록 : 리그 22경기 출장 17골/리그컵 6경기 출장 4골). 그렇게 2001년에는 황선홍-홍명보가 있는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면서 '코리안 3인방'을 결성하기도 했다. J리그 활약 당시에 유상철에게 놀랄만한 오퍼가 들어왔다. 바로 스페인의 명문 클럽인 FC 바르셀로나로부터 이적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이 당시 한국인 선수에게 유럽팀으로부터 오퍼가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며, 지금 시대에 비해 한국 선수들의 유럽에서의 인지도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유상철의 바르샤행 링크 자체만 하더라도 크나큰 파장을 줬다. 사실 바르샤에서 관심을 가질 만 했던 것도 당시 유상철이 1998 FIFA 올스타팀에 선정될 정도 주가를 높이고 있던 터였는 데다가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를 가리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 능력이 주목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적설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에이전트 및 기타 문제로 결렬되었다고 한다. 4. 2002년 월드컵의 진정한 히어로, 그리고 친정팀으로 금의환향(2002~2006) 2001년, 한국 축구는 거스 히딩크라는 네덜란드 출신 외국인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앉히면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였다. 그가 오기 전에 한국 축구는 "축구강국들에 비해 기술이 떨어지고, 힘과 체력이 앞선다"라는 평이 많아서 브라질로 유학 보내는 사례가 많았다(울산이나 포항 등 몇몇 K리그 클럽들이 실제로 브라질 유학파를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오히려 "한국축구는 기술은 좋으나, 힘과 체력이 떨어진다"는 정반대의 평가를 하면서 한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놨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체력과 피지컬 강화 운동에 주력했다. 그 중심에는 유상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호가 부침을 거듭하게 되자, 국가대표팀에 대한 불안감도 가중되었고, 이에 맞물려 유상철도 한국 스타플레이어들이 통과의례로 치르던 안티지분을 대량 확보했다. 정확하게는 유상철의 안티확보 근원은 2000년 허정무 감독시절, 그가 스트라이커로 뛸 때 숱한 1대1 찬스를 날려버린 것 때문에 붙은 것이다. 그 이후로 스트라이커 기용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흔들릴 유상철은 아니었다. 히딩크호에서 유상철의 입지는 굳건했고, 일전에 히딩크가 홍명보를 다스리기 위한 방책으로 그를 센터백으로 기용하기까지 했으니 그의 입지에는 별 타격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2년 월드컵 당일, 유상철은 폴란드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을 꽂아넣으면서 한국대표팀에게 첫 월드컵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한국은 54년만에 월드컵 1승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월드컵 기간 내내 줄곧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면서 김남일과 함께 중원에 포진되었다. 영국의 축구평론가인 앤드류 워쇼가 UEFA에 기고한 글에서 유상철을 "유상철은 이번 월드컵에 참여한 수비형 미드필더 중 최고다. 그의 침착성과 탁월한 볼 배급 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고, 세계 축구팬들은 그의 등번호(6)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할 만큼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히딩크가 김태영-홍명보를 빼고 닥공모드를 시전할 당시에 최진철과 함께 최후방 수비를 맡으면서 이탈리아의 역습을 막아내기도 했고, 스페인과의 8강전에선 센츄리클럽에 가입했다. 2002년 월드컵 영웅은 이렇게 탄생했다. 월드컵 4강신화의 주축으로 주목받던 유상철은 월드컵이 끝나고 일본에서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해 가시와 레이솔을 떠나 유럽 클럽팀들을 알아보고 있었으나, 자신의 에이전트의 무능력으로 인해 유럽 진출은 커녕 무적신세가 되면서 선수생활에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와중에, 국제미아가 될 뻔한 유상철에게 구원의 손길을 준 팀이 있었으니, 바로 유상철의 친정팀인 울산이었다. 그리고 유상철이 복귀한 뒤에 처음으로 골을 터뜨린 경기가 재밌게도 지난 1998년 울산에서의 마지막 골을 기록했던 성남전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하여 이천수와 3골 합작하면서 침체된 울산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8연승을 달리며 2위로 리그를 마쳤다. 이정도면 상당히 성공적인 K리그 복귀였다. 다음 해인 2003년에 FA 자격으로 자유신분이 되었지만, 울산이 연봉 3억원에 격려금 2억원을 제시하면서 울산과 재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해 부산과의 경기에서 이장관이 유상철에게 비신사적인 태클을 걸었고, 이에 이성을 잃은 유상철은 이장관을 폭행하면서 5경기 출장정지와 82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유상철은 이 징계에 대해 "동업자 정신을 버린 축구에 대해 화가 났다"고 밝혔고, 이 사건을 계기로 J리그로 떠나버렸다. 자신이 J리그에서 처음으로 뛰었던 요코하마로 재이적한 유상철은 2003년 시즌 후반기에 17경기 출장 6골을 뽑아내면서 요코하마의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연봉 1억엔으로 계약하였다. 히딩크가 국가대표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유상철은 여전히 국가대표팀의 중심이었다. 쿠엘류-박성화 감독체제를 거치면서 맏형 역할로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일조하였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와일드카드로 뽑혀서 어린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맡으며 올림픽 대표팀을 8강까지 견인하였다(올림픽 대표팀에선 플랫3에서 뛰었다). 요코하마가 2년 연속 리그 제패한 뒤에, 유상철은 방출되었다. 노장인데다가 2002년 이후로 계속 부상이 잦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러던 와중에, 유상철은 다시 울산으로 복귀하길 결심하면서 2005년 울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유상철은 그렇게 많은 경기 수를 출장하지 못했다. 부상후유증과 노쇠화도 있지만, 유경렬-조세권 등의 주축 선수들이 자리를 잡은 터라 쉽사리 이들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상철은 조금 뒤로 물러나서 울산 선수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고, 결국 울산은 2005년에 리그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유상철은 울산에서 뛰면서 리그 우승 2번 모두 경험하는 울산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그 이후, 유상철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어했지만, 그의 무릎이 허락하지 않았다(유상철의 왼쪽 무릎 부상이 호전되지 않았던 터였다). 결국 그는 2006년 K리그 울산 홈개막전에서 은퇴경기를 치뤘고, 후에 요코하마에서도 유상철의 은퇴경기를 기념했다고 한다. 이렇게 '유비' 유상철의 선수 경력은 마감하게 되었다. 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혔는데, 유상철은 선수로 뛸 당시에 왼쪽 눈이 실명상태라 오른쪽 눈에 의지한 채로 경기를 뛰었다는 것을 고백했고, 이러한 사실은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이러한 부상을 숨긴 채, 그는 남모르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수 생활 은퇴 이후, 유상철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날아라 슛돌이 감독을 시작으로 춘천기계공업고 감독, 그리고 현재는 대전 감독 지휘봉을 잡기도 했었고, 현재는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오로지 울산에서만 뛰었던 '의리파 유비' 유상철, 그 때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울산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유.상.철. 원문 : http://blog.daum.net/manutdronaldo/502
놓칠 수 없는 상위스플릿행 티켓,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에 웃는 자는 누구?
춤추는 리그테이블, 스플릿모드 돌입 전까지 앞으로 남은 라운드는 "-2" 지난 3월 대장정의 막을 올렸던 2016년 K리그 클래식도 어느덧 정규리그가 끝나고 상, 하위 스플릿모드로 돌입하기까지 앞으로 2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서울과 울산은 지난 9월 3일에 미리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이 두 팀은 한 경기만 남았다). 이번 시즌은 무패행진으로 독주를 달리고 있는 전북을 제외한 채, 상위권과 중위권 싸움이 시종일관 치열하였기에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었다. 시즌 중에 최용수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로 진출하게 되어 감독이 교체되었음에도 서울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조용히 단독 2위까지 올라 자신들의 자리를 굳혔고, 울산도 수요일에 있었던 주중경기에서 성남을 홈으로 불러들여 2대1로 잡아 세번째 상위 스플릿 진출팀이 되었다. 반면에 하위 스플릿은, 시즌 내내 최약체로 분류되었던 인천과 올해 승격팀인 수원FC를 비롯하여, 수원과 포항까지 하위 스플릿 그룹으로 묶이게 되었다. 특히 수원과 포항은, 불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상위권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았다가 한 시즌만에 추락하면서 적잖은 이변을 연출하였다. 이 2경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는, 앞으로 상위스플릿으로 진출할 수 있는 티켓은 3장 뿐인데, 이 티켓을 잡을 수 있는 구단은 5팀. 공급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수요다. 그렇기에 정규리그가 끝날 때까지 K리그 클래식 리그테이블에서 불꽃 튀는 경쟁이 계속될 것이며, 순위는 계속 춤추게 될 것이다. 티켓을 간절히 원하는 구단이 누구인지 한 번 알아보자. 제주(4위, 12승 7무 12패, 승점 43점) : 32라운드 - vs 상주, 33라운드 - vs 전남 산술상으로 계산해보았을 때, 상위스플릿에 확정짓기 위한 총 승점은 최소 47점이 넘어야 한다. 이렇게 비교했을 때 그나마 제주는 다른 4개 팀에 비해 경쟁에서 앞서고 있는 편이다. 울산-서울-전북으로 이어지는 3연전에서 전부 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점도 챙겼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1승 1무만 기록해도 상위스플릿 확정이다. 하지만 남은 2경기가 오히려 제주의 숨통을 조여오는 데스매치가 되어버렸다. 다음 상대인 상주와 전남이 제주와 같이 상위스플릿 경쟁을 하고 있는 팀이기에 호락호락하게 승점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며, 특히 마지막 라운드 상대인 전남의 최근 상승세가 대단히 무섭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주의 치명적인 약점은 항상 제주도를 벗어난 원정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인데, 남은 2경기 모두 원정경기라는 게 그들에게 있어 대단히 껄끄러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에이스이자 플레이메이커인 송진형이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UAE리그의 알 샤르자로 떠났다는 것도 큰 손실이다. 2) 전남(5위, 11승 9무 11패, 승점 42점) : 32라운드 - vs 수원FC, 33라운드 - vs 제주 시즌 초중반만 하더라도 전남은 하위권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계속 맴돌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전남이 중하위권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전남이 이번시즌에 강등되는 게 아닐까하는 예측도 했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전남은 차근차근 승점을 챙겼고, 어느덧 리그 5위까지 올라오면서 상위스플릿 티켓의 행방을 흐려놓은 장본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5경기 전적에서 전북보다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3승 2무, 승점 11점), 경쟁상대인 광주와 상주까지 격침시켰다. 전남이 상위 스플릿의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승점 5점이 필요한데, 남은 2경기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다. 다행히 32라운드는 꼴지인 수원FC 원정, 마지막 라운드 상대인 제주는 홈경기이다. 다만, 변수라면 마지막 제주와의 경기가 잔디 문제로 광양이 아닌 순천으로 옮겨서 치른다는 점이다. 가끔 순천에서 경기를 치르긴 했으나, 분명 광양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3) 상주(6위, 12승 5무 14패, 승점 41점) : 32라운드 - vs 제주, 33라운드 - vs 전북 초중반 상주의 상승세는 위력적이었다. 상주를 보는 여론의 반응은, 상주의 상승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보다 오래 갔었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 상주는 종종 다른 팀들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도 하면서 중상위권에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상주의 주축이었던 박기동, 이승기, 임상협, 김성환, 이용, 박진포 등이 전역과 함께 원소속팀으로 복귀하면서 크나큰 전력누수가 발생했고, 이 효과가 고스란히 상주의 다음경기에 영향을 끼쳐 무승의 쇠사슬을 끊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홈구장인 상주경기장의 잔디 관리 문제로 홈경기가 원정경기로 바뀌는 굴욕까지 겪었다. 갈 길 바쁜 상주인데, 하필이면 다음 상대가 제주와 전북이다. 남은 경기 전승해야하는 입장에서 과연 상주가 분위기를 전환시켜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남아있는 상주 선수들이 제 몫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페이스로는 당장 제주전도 장담하기 힘들어보인다. 4) 성남(7위, 11승 8무 12패, 41점) : 32라운드 - vs 전북, 33라운드 - vs 포항 초반에는 전북을 제치고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던 성남이었으나, 팀의 에이스인 티아고가 이적하고 황의조가 침묵하면서 자연스레 경기력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12경기동안 1승밖에 거두지 못하자, 김학범은 팀의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고 성남의 분위기는 더욱 더 침울해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구상범 감독대행 체제로 바뀌자마자 성남의 공격력은 살아났고, 수원FC와의 깃발더비에서 승리하면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비록 다음 경기였던 울산에게 아쉽게 역전패 당하긴 했지만, 김현과 황의조, 박용지를 앞세워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특히나 오랫동안 침묵하던 황의조가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앞으로 남은 2경기 상대가 꽤나 까다롭다. 성남의 고비는 바로 다음경기인 전북 원정이 될 것이다. 물론 성남도 2전 전승을 거둬야 하는 입장이지만 울산전에서 보여준만큼 전북을 상대로 빠른 역습을 펼친다면, 도전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5) 광주(8위, 10승 11무 10패, 41점) : 32라운드 - vs 포항, 33라운드 - vs 서울 지난 시즌에 1부 리그로 돌아온 광주의 우선 과제는 1부 리그 잔류였고, 그들은 그 과제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좀 더 욕심을 내서 상위스플릿을 목표로 설정하였고, 아직까지는 조금의 가능성이 남아있다. 광주가 현재 상위스플릿 경쟁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노장 정조국의 득점행진이 한 몫 했다. 비록 광양 원정에서 그들의 무패 행진이 멈췄으나, 그 전까지 7경기 무패행진이었고 남기일 감독은 올시즌에 11개 클럽들을 상대로 광주가 '쉽게 지지 않는 팀' 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수원과의 홈경기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패배를 모면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광주도 상위스플릿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 앞으로 남은 상대가 포항과 서울이라는 게 걸린다. 올시즌에 이 두 팀에게 광주가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에 확률상으로는 광주가 상위스플릿 갈 확률이 가장 적은 게 사실이다. 만약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한다 하더라도, 자력으로 따내긴 힘들기에 다른 팀들의 경기결과까지 수시로 체크해야 할 것이다. 10월 2일 33라운드는 오후 2시에 일괄적으로 경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경기도중에 순위가 실시간으로 바뀌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90분이 될 것이다. 이 중에서 나머지 상위스플릿으로 갈 티켓을 쟁취할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위로 올라가기 위한 총력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슛토리] 아프리카의 '검은 예수'
2005년 11월.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남북으로 나뉘어 전쟁 중이었다. 정부군이 점령한 코트디부아르 남쪽, 반군이 깃발을 꽂은 북쪽. 분단된 나라에서는 수없이 총성이 울리며 동포들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넣었고, 한 나라의 국민들끼리 동족상잔을 이어가며 비극적인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지쳐가던 그 때,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한 남자는 동료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강적들을 꺾으며 월드컵 본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내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주고, 전쟁을 멈추자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해 세계인의 '축제'에 참가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을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은, 수단 대표팀을 3-1로 이기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그는 선수단을 촬영하는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붉어진 눈시울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호소했다. 사랑하는 코트디부아르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합시다. 그리고. 제발 월드컵 본선이 진행되는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주세요. 그리고 그의 진심과 눈물이 섞인 호소를 TV로 지켜본 반군과 정부군은 정말로 1주일 동안 전쟁을 멈추게 됐고, 코트디부아르에는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휴전이 진행되던 2007년, 극적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코트디부아르는 길었던 내전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웃으며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모두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는 '검은 예수' 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슛토리] 오늘의 주인공.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가졌던 완성형 스트라이커. 실력만큼 인성도 월드 클래스였던 남자.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아프리카의 '검은 예수' 디디에 드록바(Didier Drogba) 안녕 친구들! 오늘은 정말 유명한 선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아마 축구 좀 좋아한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가 이 선수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해. 심지어 축구를 잘 몰라도 이 선수의 이름을 들어본 친구들도 많을거야. 특히 이 선수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FC의 팬들에게 드록바는 거의 신과도 같은 위치에 있어(드---멘) 전성기 때 드록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완벽형 스트라이커'야. 흑인 특유의 유연성 + 피지컬과 189cm의 키와 점프력에서 나오는 제공권, 빠른 스피드. 여기에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패스와 연계, 위치선정까지 뛰어난 그야말로 만능 공격수였어. https://youtu.be/T-BCZmQ8WU0 (드록바의 베스트 골을 모아놓은 영상) 드록바라는 선수가 첼시에서 세운 업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데, 첼시는 드록바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4회, 리그 컵 우승 3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커뮤니티실드 우승 2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고, 드록바는 첼시에서 381경기 164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 첼시라는 팀의 최전성기에 핵심으로 활약했던,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이지. 이런 드록바는 조국인 코트디부아르를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도 유명해. 그는 내전이 진행되는 중 잉글랜드에서 '조국과 국민은 고통 속에 있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될까?' 라는 고민을 항상 했다고 해. 그리고 그가 결심한 것이 생방송에서 호소하는 것이었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 그리고 내전이 종료된 직후, 그의 연봉 중 절반이었던 한화 약 60억원으로 조국을 위해 코트디부아르에 병원을 설립하고, 4,000명에 달하는 전쟁 난민들을 후원하기 시작했어. 또한 2009년 펩시콜라 CF를 촬영하고 출연료로 받은 약 54억원을 자신의 고향인 아비장의 종합병원 건립 기금으로 내놓았고, UN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어. 그의 아내 또한 드록바와 함께 선행을 하기로 유명해. 스캔들 및 여자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 드록바 부부는 코트디부아르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의 의료시설 부족 및 낙후된 의료체계에 관심을 갖고 재단을 설립해 꾸준히 의료지원을 하고 있어. 또한 에이즈퇴치운동 등 공공 보건에 관련된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인기가 높다고 해. 심지어 드록바의 어머니조차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때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러 온 서포터들을 위해 현지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서포터들에게 전달하며 감사함을 표했어. 서포터들은 대표팀의 주장의 어머니라서가 아닌, 워낙 인품이 훌륭하신 분이라서 유명하다고 얘기했다고 해. 정말 그 엄마에 그 아들... 우리나라로 치면 손흥민 선수 어머니께서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게 음식을 돌린 정도...일까? 드록바의 사진을 들고 마치 신처럼 숭배하는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의 모습이 보여? 드록바가 입국할 때면 사람들은 환호를 하며 그에게 다가가 왕관을 씌워주고, 망토를 전달한다고 해. (대략 이런 느낌...?) 어떤 외신 기자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만약 드록바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국민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 어차피 당선될 건데 돈 아깝게 투표는 왜 해야 하죠? 이렇듯,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신과도 같은 위치에 서있는 남자야. 물론 그가 조국을 위해 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국민들이 이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랬던 그는 어느 날 돌연 중국 리그로 이적해버렸는데, 노쇠화로 인해 피지컬적인 부분이 떨어졌어도 충분히 유럽에서 통할 능력을 가진 그였기에 많은 팬들이 의아해했었어.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조국은 아직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나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갈게 기다려!) 라고... 아아...드---멘... 참고로 중국 리그는 다른 곳보다 많은 연봉을 보장하지만, 리그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삶의 질 또한 낮아지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들은 기피하는 곳이야. 그의 선행은 아프리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그가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 선행을 베풀었어. 선수 말년 그는 터키 갈라타사라이라는 팀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터키에서 광산 폭발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가 일어났었어. 선수들은 팀과 함께 십시일반 모금을 해 위로금을 전달했었고, 드록바도 아낌없이 모금에 동참했어. 그런데 그 후, 익명의 기부자가 한화 약 14억원에 달하는 큰 돈을 기부했다는 거야. 그런 큰 돈을 한 번에 기부할 사람이 몇 되지 않았기에 추리는 것은 쉬웠고, 그 인물은 드록바로 밝혀졌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드---멘...) 익명의 기부자가 드록바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일로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라며 아낌없는 프로 선행러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조국이 고통받고 있다며 자신의 재단인 '드록바 자선재단'을 이용해 자신의 병원을 개방해서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코로나와 싸워나갈 수 있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고 해. 드록바는 이렇게 얘기했었어.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봤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 준 순간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 이 말 한마디에 그의 인품이나 애국심,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 여전히 선행을 멈추지 않는 남자.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 남편이자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남자. 코트디부아르와 아프리카의 영웅 '검은 예수' 흔히들 축구를 전쟁으로 비유하곤 하지. 하지만 이 세상엔 축구로 전쟁을 끝낸 남자도 존재한다는 거. 전쟁을 멈춘 남자. 디디에 드록바였어!
[프리뷰] K리그 클래식 2016 4R 인천 유나이티드 vs 성남FC
현대 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4R 성남 FC vs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장: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동장 일 시 : 2016-04-09 토요일 킥오프: 16:00 리그 1위 유지를 노리는 성남 FC와 리그 최하위 탈출을 노리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만난다. 리그순위표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두 팀은 이번 주말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동장에서 K리그 클래식 4R 경기를 치른다.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성남은 전북과 서울의 양강 체제를 깰 수 있는다크호스로 지목 됐다. 반면 인천은 강등권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 했다. 성남은 5년만에 리그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상승세의 분위기를 탔다. 지난해부터 성남은 선제골을 넣은 후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 했다. 특히 한점 차 승부에서 매우 강했다.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 승률이 90%가 넘을 정도로 지키는 축구에 강했다. 올해도 그 흐름을 이어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 실점은 단 1점으로 막았다. 2승 1무로 승점 7점을 획득해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핵심 선수를 뺏겨 전력이 약화된 인천은 리그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김도훈 감독이 처음 부임 할 당시에도 팀의 주축들이 대부분 이적하여 선수 구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리그 9경기만에 승리를 거둘 정도로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올해도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리그 3경기에서 모두 패배 하여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시작 하고 있다. 지난해와 비슷한 여건과 출발을 보였지만 경기 내용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실점이 늘어났다는 점은 인천에게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4경기 연속골에 도전한다. 성남 공격수 티아고 성남의 시즌 초반 상승세의 원동력은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티아고 이다. 지난해 포항에서 리그 4골 3도움을 기록 하였다. 포항 시절과 비교 하였을 때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페이스 자체가 다르다. 지난해 히-조-루라는 조롱거리 별명이 붙여질 만큼 외국인 농사에 실패 한 성남은 티아고의 활약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외국인 공격수의 공격 포인트와 공격 기여도에 따라 리그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리그 특성상 티아고의 활약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리그 4경기 연속골에 도전하는 티아고는 지난해 포항 유니폼을 입고 인천 원정에서 골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인천, 주축의 이적. 대체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하다. 인천은 지난해까지 뒷문을 든든히 지킨 유현 골키퍼가 팀을 떠났다. 팀의 중심으로 굳은 일을 성실히 해낸 수비형 미드필더 김원식은 임대 만료로 원 소속팀인 FC서울로 복귀 하였다. 공격에서 팀에 큰 기여를 한 김인성도 울산으로 팀을 옮겼다. 팀의 주축이 빠저 나간 자리는 남은 선수들이 대체 했다. 그러나 앞선 3경기에서 그들의 공백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김원식이 빠진 자리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역습을 끊어 낼 선수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 골키퍼는 경험이 부족한 골키퍼가 선발 출장 중이다. 이태희, 김다솔 골키퍼는 실점의 빌미를 제공 하는 등 안정감이 떨어졌다. 아직 조수혁 골키퍼가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 중 이기 때문에 이태희, 김다솔 골키퍼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사후 징계, 전력의 손실을 입다 성남 측면 수비수 이태희는 지난 포항전 패널티 박스 안에서 골문으로 향하는 볼을 고의적으로 손으로 막아 사후 징계로 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개막전부터 좋은 활약을 펼쳐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남 입장에서 전력적인 손실을 입게 됐다. 특히나 성남은 이태희를 활용 하여 중앙 미드필더들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패스 능력을 커버하기 위해 상대 진형 깊숙한 위치까지 오버래핑, 중앙으로 움직여 공격에 가담하는 공격 루트로 득점과 가장 가까운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 냈다.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팀의 큰 영향을 끼친 선수의 부재는 팀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태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박용지가 대체 선수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선 3경기에서 실망스러웠던 공격적인 능력을 보여줘야 할 차례가 왔다. 이번에도 쓰리백? 인천의 중앙을 책임지는 김도혁은 성남의 뒷공간을 허물 수 있는 킥 능력을 보유 했다. 지난 3R서울전에서도 몇 차례 서울의 수비 라인 배후공간으로 침투 패스를 시도 하여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 냈다. 최전방에 위치한 진성욱은 준수한 라인 브레이킹 능력을 갖췄다. 외국인 공격수 케빈은 제공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이다. 성남의 수비라인의 부담을 줄 수 있는 인천의 핵심들이다. 성남 선수들이 후반 막판에 체력과 집중력 저하를 보이고 있는 점은 인천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인천이 선제 실점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서울전에는 쓰리백을 사용한 김도훈 감독은 황의조를 원톱으로 사용하는 성남에 대비하여 포백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지난해 10월, 스플릿이 결정 되는 중요한 경기에서 쓰리백 전술을 시도 하다가 황의조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김두현의 부상 복귀 성남의 두목까치 김두현은 경미한 부상에서 회복하여 훈련에 합류 했다. 그러나 인천전 출전은 확실하지 않다. 김두현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피투와 조재철은 지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무리하게 출전 시킬 가능성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 된다. 관전 포인트 1. 두번의 클린시트 vs 리그 최다 실점 성남은 박준혁의 공백을 프로 경험이 없는 김동준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맡겼다. 경험의 부족으로 김학범 감독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학과 프로의 슛 파워와 타이밍의 차원이 다르다는게 그 이유 였다. 그 평가는 시즌 시작과 함께 감독의 노파심으로 바뀌고 있다. 김동준의 안정적인 핸들링 능력과 세이브 능력은 성남의 3경기 중 2경기에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천은 지난해 32실점으로 리그 최소실점으로 시즌을 마감 했다. 짠물수비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가장 큰 역할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 시작은 리그 8실점으로 최다 실점을 기록 하고 있다. 개막전 3실점에 이어 2실점 - 3실점으로 경기당 2.7골을 허용 하고 있다. 티아고가 연속 골을 기록하고 있고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성남의 공격진을 실점 없이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 황의조의 첫 득점은 언제? 황의조는 지난해 리그 15골로 득점 랭킹 3위로 시즌을 마쳤다. 리그에서의 첫 필드골은 3월 말에 열린 수원 삼성과의 3R 였다. 당시 PK 실축 후 리바운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 했다. 그 이어 열린 4월 초 4R 대전 원정에서 헤더 골로 리그 연속골에 성공 했다. 득점을 시작한 후로 분위기를 타는 모습을 보였다는 반증이다. 시즌 첫 골을 언제 넣는가에 따라 시즌 활약상이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앞선 3경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황의조는 리그 최다 실점 팀을 상대로 올 시즌 마수걸이 골에 도전 한다.
KOT가 선정한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TOP 6
FC 코리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상당합니다. 국대 축구를 00년부터 보기 시작한 본 에디터가 약 17년간 본 국대 스쿼드 중 가장 강했던 TOP 6를 선정해보았습니다. 'KOT가 선정한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TOP 6' P.S: 사실상 성인팀에 가까운 올림픽 대표팀도 포함했습니다. 6위. 2007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핌 베어벡 성적: 아시안컵 3위 의의: 한국축구에 4백 장착 아시안컵 3위에 그친 팀이 지난 17년간의 대표팀 중 6위에 선정된다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쿠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감독 등 유수의 외국인 수장들이 거쳐갔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4백 수비가 제대로 정착되어있지 못했는데요. 이 대회를 통해 4백 수비가 정착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경기력이 발암이었다는 점은 논외로 하구요. MVP: 이운재 (토너먼트 무실점 및 승부차기 2승 1패) 5위.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감독: 김호곤 성적: 올림픽 8강 의의: 세계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엿보다 평가전 내내 강했던 파라과이를 만나 허무하게 8강에서 떨어진데다, 본선 4경기에서 8실점으로 수비라인이 무너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 8전 8승 12득점 무실점으로 쾌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기존 와일드카드인 송종국, 김남일의 부상하차 및 박지성 차출 실패 등이 겹쳤지만,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이전에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MVP: 조재진 (4경기 2득점) 이천수 (4경기 2득점) 4위. 2015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 성적: 아시안컵 준우승 의의: 27년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도 실패했고, '늪축구'라고 포장하긴 했지만 경기력도 별로였죠. 사실 2011 아시안컵 대표팀의 경기력이 더 나았다고 보여지나, 프로는 결과로 말합니다. 대회 전부터 이동국, 김신욱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대회를 치르면서 이명주의 폼 저하 및 이청용, 구자철의 부상 이탈로 애를 먹었지만 꾸역꾸역 승리하며 결승전까지 갔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 2골로 승리한 점은 백미였다죠? MVP: 김진현 (5경기 무실점) 3위.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 홍명보 성적: 동메달 의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 병역면제라는 동기부여가 주어질 경우,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드러난 대회였습니다. 뭐,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당시 선수들의 폼은 절정에 이르렀죠. 홍명보 감독 특유의 (전술 유동성이 없는) 4-2-3-1의 명암 중 암보다는 명이 드러났던 시기였습니다. 나름의 의리축구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대회였다고 평합니다. MVP: 구자철 (주장 + 6경기 출전) 2위.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 허정무 성적: 16강 의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대회 직전에 센터백인 곽태휘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지역예선에서 팀을 캐리했던 이근호가 폼 저하로 탈락. 설상가상으로 베테랑 골키퍼 이운재도 노쇠화가 뚜렷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추스려 사상 첫 원정 16강 신화를 만들어낸 허정무 감독의 역량은 평가절하하기 힘듭니다. 사실 저 스쿼드로 16강에서 그친 점은 아쉽긴하지만, 순수 전력만 보면 어쩌면 2002 한일 월드컵 이상이라고 보여집니다. MVP: 박지성 (4경기 1골) 기성용 (4경기 2도움) 이정수 (4경기 2골) 1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성적: 4강 의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 아시아 국가 역사상 첫 4강 진출 아시아 선수 역사상 첫 개인 타이틀 수상 (홍명보의 브론즈볼 수상) 이 대표팀을 글자 몇 줄로 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실례일 것 같습니다. 제 유년시절을 수놓았고, 축구로 벌어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해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죠. 이런 대표팀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MVP: 히딩크 감독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KFA 관계자 전원 + 히딩크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전원 + 23인 엔트리 선수 전원 좋아요와 댓글은 본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된다능..ㅎㅎ 데헷 :)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바이에른 뮌헨 한국인 유망주 영입 ㄷㄷ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오늘 뭔 날인가요?? 아침에는 이승우 선수 도르트문트 이적설 뜨더니 오후에는 국내 유망주의 바이에른 뮌헨 입단이라니 ㄷㄷㄷㄷㄷㄷㄷㄷ 정우영 선수에 대해 저도 이번에 알게 되긴 했는데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인 대건고 소속으로 측면 미드필더라고 합니다. 최근 바이에른 뮌헨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잠재력을 인정받아 이적이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뮌헨이 인천에 8억원 가량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연봉으로는 2억 5천 만원을 받는다고 하네요ㄷㄷㄷㄷ 물론 FIFA 규정때문에 아직 18세 미만 선수라 바로 이적할 수는 없지만 내년 1월에 넘어가는걸로 인천과 합의가 됐다고 하네요! 출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21&aid=0002317978 기사에도 나와있듯이 드리블이 꽤 좋은 테크니션으로 보입니다. 측면 미드필더라 그런지 드리블이 꽤 좋은거 같습니다. 방향 전환이나 개인기 능력이 꽤 좋은거 같아요. 검색해보니 오프더볼이나 연계 센스같은게 굉장히 좋다고 하네요! 무엇보다도 어린 선수치고 전술 이해도가 굉장히 좋다고 하더군요. 경기중에 선수들에게 전술 지시를 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런게 사실 어린 선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그만큼 경기중 생각을 하면서 축구하는 똑똑한 선수라는 이야기죠. (움짤 출처 - 킥오프 http://www.kick-off.co.kr/pub/domestic.aspx?mode=view&postNum=4481&pageNum=1&searchType=1&searchText=%EC%A0%95%EC%9A%B0%EC%98%81) 예전에 일본의 우사미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부러움을 샀었는데 이제 내년이면 뮌헨 유니폼을 입은 우리나라 선수를 볼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