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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북서쪽 작은 마을 에피루스에서 대대로 은세공업에 종사해온 불가리 가문은 1881년 이탈리아의 로마로 이주, 크리니타 데이 몬티 거리에서 은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만인 1884년 시스티나 85번가에 첫 공방 겸 매장을 열면서 불가리(Bulgari)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후 1905년 로마의 고급 쇼핑가인 비아 콘도띠 10번지로 본점을 확장 이전하게 되었고,
이곳은 지금까지도 불가리의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로마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1932년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 사후 두 아들 조르지오와 콘스탄티노 불가리가 가업을 물려받게 됩니다. 진귀한 원석과 다양한 주얼리 세팅 기법에 관심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사조부터 그리스 로마시대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네오헬레니즘 사조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독창적인 형태의 주얼리로 선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컷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으로 장식한 기하학적이고 대담한 주얼리들은 이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불가리를 어느덧 이탈리아 최고급 주얼러로 거듭나게 했지요.
한편, 불가리는 1940년대부터 여성용 손목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시계들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시계는 아니었습니다. 특유의 브레이슬릿 형태의 손목시계 제작을 위해 불가리는 뱀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는데, 불가리는 훗날 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하는 '세르펜티'로 이름 붙였습니다.
1975년 불가리 로마(Bulgari Roma) 시계를 발표한 이후로는 불가리의 시계 사업도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당시 디지털 표시 방식의 시계와 일반적인 시·분침 형태의 시계 이렇게 두 종류의 불가리 로마 모델을 선보였는데, 기대이상의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입니다. 애초 VIP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한정 제작된 불가리 로마가 뜻밖의 반향을 일으키자 이에 고무된 불가리는 1977년 시계의 베젤부에 불가리 로고를 상하로 음각한 최초의 불가리 불가리(Bulgari Bulgari) 시계를 시판하게 됩니다. 불가리의 첫 본격 시계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 불가리 불가리는 그 배후에 유명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erald Genta, 1931~2011)가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젠타는 로열 오크, 불가리 불가리 외에도 오메가의 컨스텔레이션,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IWC의 인제니어 등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시계들을 디자인한 거장입니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계 브랜드를 설립하기도 했는데, 2010년 브랜드가 불가리에 완전히 인수·합병됨으로써 불가리와의 오랜 인연을 사후에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불가리가 제랄드 젠타와 함께 새로운 시계 컬렉션을 구상할 무렵 가장 큰 영감을 얻은 오브제는 다름 아닌 고대 로마시대의 코인(주화)이었습니다. 황제의 옆모습 앞뒤로 새겨진 글귀는 불가리 불가리 시계의 베젤 상하를 분할해 음각된 로고의 형태로 응용되었고, 컬렉션 특유의 둥글고 우아하게 마무리된 원통형 케이스는 로마 신전의 기둥에서 착안해 제작되었습니다. 불가리 불가리는 예상대로 런칭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아가 불가리 불가리 더블 로고는 각종 반지나 목걸이 등 불가리의 주얼리 컬렉션에도 다양하게 변주되어 이내 브랜드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매김했지요.
불가리는 자사의 주얼리는 19세기 전통 방식 그대로 이탈리아의 공방에서 제작했지만, 시계만큼은 일찌감치 스위스 제조를 고수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스위스가 고급시계의 고향이라는 대중들의 지배적인 인식을 고려한 것이었을 터입니다. 그렇게 1982년에는 스위스 뇌샤텔에 ‘불가리 타임(Bulgari Time SA)’이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계 제조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불가리 불가리 컬렉션은 1977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간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초기 모델과 지금의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가리 불가리 더블 로고와 원통형 케이스,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은 전혀 바뀌지 않고 계승되고 있지요.
다만 보이지 않는 큰 차이가 있다면 무브먼트에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가 큰 환영을 받지 못하던 시절인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불가리 불가리 시계에는 대체로 스위스산 쿼츠 무브먼트가 탑재되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을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서부터는 다양한 종류와 기능의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해 시계로서의 가치를 높여갔지요.
대표적으로 2001년 첫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이 불가리 불가리 컬렉션을 통해 선보였으며, 2004년에는 날짜와 요일을 레트로그레이드 형태로 표시하고 문페이즈 기능을 더한 모델과 같은해 불가리 불가리 첫 투르비용 시계를 발표하는 등 고급 컴플리케이션 분야에까지 지속적인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불가리는 더욱 모던하고 세련된 케이스와 다이얼 그리고 최상급 무브먼트로 업그레이드를 한 새로운 불가리 불가리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스틸 내지 핑크 골드로 제작된 케이스에 시, 분, 초, 날짜를 표시하는 기본적인 모델에는 불가리가 100% 자체 개발, 제작한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BVL 191를 탑재했으며, 크로노그래프 모델에는 제니스의 전설적인 하이비트 자동 크로노그래프 칼리버인 엘 프리메로를 수정한 BVL 328를 탑재해 매니아층을 겨냥했습니다. 그리고 불가리 불가리 투르비용 모델에는 르 상티에의 불가리 자체 컴플리케이션 공방에서 완성한 자동 투르비용 칼리버 BVL 263를 탑재해 특별함을 더했습니다.
불가리가 주얼러로서 뿐만 아니라 워치메이커로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던데는 아이코닉 컬렉션인 불가리 불가리를 비롯해 디아고노, 아씨오마, 세르펜티, 최근의 옥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컬렉션이 출시될 때마다 매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 감춰진 불가리의 끊임없는 투자와 시계 제조에 쏟는 열정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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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패션 브랜드 시계들은 그냥 무브 다른곳에서 사서 쓰는줄 알았는데 불가리는 아니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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