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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서울 25시, 夜 (27)

제2화 그녀는 분식회계 중 (6)

이혜진이 더 크게 흐느끼니까 박 과장이 얼른 계산을 하고 왔다. 박 과장의 옆구리에 안겨서 밖으로 나갔다.
술 탓인가? 난생처음으로 공개망신을 당했던 것 때문인가?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취한 눈물은 자아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서러운 여자, 스물다섯 살 여자 중에서 가장 외로운 여자로 만들어서 멈추지 않았다. 박 과장이 이끄는 대로 훌쩍거리며 따라갔다. 그곳이 모텔인 줄 몰랐다.
박 과장이 마음껏 울라면서 맥주를 따라줬다. 맥주에 눈물을 섞어 마시며 흐느꼈다. 어느 틈에 박 과장이 옆으로 와서 어깨를 감싸고 다독거렸다. 고마웠다. 박 과장이 옆에 있으니까 그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고마워요.”
“고맙긴.”
박 과장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박 과장의 손이 등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머! 하는 사이에 박 과장이 껴안고 침대로 뒹굴었다. 눈물을 닦는 사이에 스커트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박 과장은 여자 옷 벗기기 선수였다.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박 과장의 가슴을 떠밀거나 고함을 지를 여유도 없었다. 스커트 속으로 들어오는 손을 밀어내면, 블라우스 단추를 열고 있었다. 젖가슴을 만지려는 손을 밀어내면 스커트가 공중을 날아 바닥으로 착지하는 것이 보였다.
“오, 옷 구겨져요.”
박 과장이 재빠르게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반복된 훈련으로 옷 벗기는 속도가 몹시 빨랐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알몸이 되어 버렸다. 이불로 몸을 가리려는데 박 과장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왜 들어오세요?”
“나도 옷 벗었잖아.”
“이, 이러시면…”
박 과장과 알몸으로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뭐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 묵직한 몸이 배를 짓누르는가 했는데 어느새 젖꼭지가 박 과장 입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놀라는 사이에 입으로 혀가 들어왔다.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돌리면 축축한 혀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혀를 피해 위로 올라갔더니 배꼽을 핥는 감촉이 뜨겁게 회오리쳤다. 배꼽을 핥는 묘한 감촉을 피하려고 몸을 옆으로 돌렸더니 엉덩이를 핥기 시작했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똑바로 누웠더니 남의 살이 몸속으로 당당하게 파고들었다.
“미안해.”
첫 사랑, 아니 첫 경험이다. 25년 동안 애지중지 저축해온 처녀성이 단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영수증으로 남은 것은 시트에 한 점 점으로 찍혀 있는 진달래꽃잎이다. 박 과장이 감격한 얼굴로 와락 껴안았다. 입에서 순대 냄새가 풍겼으나 참을 만했다.
“저, 전 괜찮아요.”
이혜진은 박 과장의 품에서 벗어나 얼른 이불로 혈흔을 덮었다.
박 과장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입술을 다물고 심각한 얼굴로 술잔을 내밀었다. 습관이라는 건 무섭다. 이혜진은 얼떨결에 술잔을 내밀었다. 박 과장이 어서 마시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혜진은 이 술이 박 과장과 마시는 마지막 술이라는 생각에 홀짝 비웠다. 점심도 먹지 않은 빈속을 따라 내려가는 소주의 감촉이 짜르르 울린다. 기다렸다는 얼굴로 박 과장이 다시 잔을 채웠다.
이홉들이 소주 한 병에서 몇 십 잔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닐곱 잔 나온다. 더구나 마지막 이별의 잔이다. 삼겹살은 1인분도 먹지 않았는데 금세 빈 소주병이 3병으로 늘었다.
박 과장은 말이 없었다. 삼겹살을 처음 먹어 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상추에 깻잎을 얹고, 청양고추를 분질러서 한 토막 얹고, 마늘 한 조각을 올린 다음 노릿하게 익은 삼겹살 두 점을 얹었다. 그걸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원샷! 상추쌈을 우걱우걱 씹고만 있었다.
“아줌마! 동치미 국물 추가!”
박 과장이 삼겹살집에서 처음 한 말은 동치미가 들었던 빈 그릇을 용감하게 들어 보였을 때이다.
이혜진은 취기가 가슴까지 차오르면서 자꾸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거의 1년 동안 영화도 몇 번 봤고, 바닷가도 갔었고, 맛없는 순두부찌개 안주에 취하도록 마시기도 했었다. 그걸 정이라고 하는 건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아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늘 끝장내야 해.
박 과장이 충격을 받더라도 거래를 마감할 수 있는 작전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는 과장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어젯밤 일도 벌써 잊었어요.”
“과장님, 어젠 제가 실수를 했어요. 저 그런 애 아니거든요. 그러니 두 번 다시 우리 밖에서 만나지 말아요.”
“만약 과장님이 계속 이상한 생각을 하시면 회사를 그만두겠어요.”
“과장님, 제가 과장님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웃기지 마세요. 저 원래 개그 프로 안 보는 애거든요.”
가능한 한 퍼펙트하게 단타로 이별을 통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 과장이 소스를 주지 않아서 지금 상태가 상승 중인지 급락 중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자.”
삼겹살 2인분을 혼자 거의 다 해치운 박 과장이 일어섰다. 술값을 계산하고 와서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앞장을 섰다.
“어…어딜요?”
이혜진은 이 사이에 끼어 있을 고춧가루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따라 일어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박 과장이 비를 맞으며 편의점 쪽으로 뛰어갔다.
한만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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