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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서울 25시, 夜 (29)

제2화 그녀는 분식회계 중 (8)

박 과장의 성난 그것이 낚시찌처럼 껄떡거리고 있어 민망했다.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박 과장은 불을 끄지 않았다. 이혜진은 천장의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질끈 눈을 감았다.
어머머!
어젯밤의 박 과장은 성교육 교과서에 나오는 모델이었다. 지극히 정상위 체위를 고수했다. 오늘은 죽기라도 작정했는지 발끝부터 더듬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 과장님.
여자에게서 으뜸으로 부끄러운 곳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 세상은 종말이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의 기를 혀와 입술로 모아서 자극하고 애무하기 시작했다.
백 번 얻어맞아도 아프지 않은 입술로 그곳을 마구 때릴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묘한 쾌감이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발가락 끝이 바르르 떨리고, 입안의 침이 바짝 말라 버렸다.
“과…장님.”
박 과장의 혀가 젤리처럼 부드럽게 입안으로 빨려들어 온다. 목마른 사슴처럼 정신없이 탐했다.
“혜진아!”
“네.”
이혜진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대답했다. 이내, 내가 언제부터 이 남자의 여자가 됐지? 하는 생각이 혼란으로 밀려와서 눈을 떴다. 거울이 보였다. 거울에 젖가슴을 애무하는 박 과장 모습이 들어 있다.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건, 아냐. 이건 아냐….
박 과장이 힘찬 폐활량을 자랑하며 언덕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상야릇한 쾌감이 발끝으로부터 중심부로 빠르게 이동하는 걸 느끼는 순간 새하얀 학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눈이 부셨다. 밖은 밤일 텐데도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와서 온 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햇살이 뜨거운 혀로 더듬은 자리마다 데이지꽃이 피어났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떨어진 데이지 꽃잎이 몸에 닿을 때마다 숨이 멎게 하는 전율이 밀려왔다.
짜릿하면서도 몽롱하기도 하고, 몽롱하면서도 온몸이 나른하게 주저앉는 것 같은 전율은 뭐라고 형용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들이 수천 미터 심해에서 잠을 깨어 수면 위로 올라와 솟구쳐 처음 햇살을 본 것처럼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결승선에 도착한 박 과장이 괴성을 지르며 풀썩 무너져 내렸다. 이불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거울 속으로 나신이 보였다.
처음에는 거울 속의 나신이 부끄럽기만 하더니, 나중에는 방아를 찧는 박 과장의 엉덩이가 호박처럼 둥글다는 것도 알았다.
도둑이 도둑질하면서 도둑질한다고 안 하고 그냥 턴다고 한다. 사기꾼은 사기 친다는 말 대신 작업한다고 하고, 소매치기는 일꾼이라 부른다. 뇌물 먹는 공무원은 보험료 받는다고 한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비극적인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
단, 아마추어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혜진도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박 과장이 허벅지를 더듬어 손을 잡았다. 내버려뒀다. 박 과장도 손만 잡고 가만히 있었다.
“딴생각 먹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오피스텔 앞에서 내렸다. 택시 안에 앉아 있는 박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고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마음속으로는 두 번 다시 블랙홀모텔에 가면 이혜진이 아니고 개혜진이라고, 다짐하고 맹세를 했다.
그랬던 것이 이튿날 출근을 해서 상황이 역전됐다. 벌써 출근을 해야 했을 박 과장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과장들은 부장과 함께 모닝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박 과장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은근히 걱정됐다.
어제 말도 없이 가더니 마포대교에서 빠져 죽었나?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부장은 늦어도 8시면 출근을 한다. 차장은 8시 20분까지, 과장급은 30분 전까지는 출근한다. 박 과장은 9시가 지나도 출근하지 않았다.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대리들한테 왜 박 과장님이 출근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젯밤 박 과장이 양쪽 젖가슴에 나란히 선명한 키스 마크를 만들어 놓지 않았어도, 박 과장의 크고 단단한 그것이 무시로 입안을 들락거리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물어볼 수도 있다.
“결재 올릴 것이 있는데 과장님 왜 안 나오세요? 오늘 휴가인가요?”
어젯밤 일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물을 수가 있다. 대리들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박 과장의 부재를 물었다가는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거릴 것 같아서 고개를 뒤로 돌릴 수도 없었다.
어머! 과장님.
박 과장이 출근한 시간은 10시쯤이다. 만약 박 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90%는 내 책임이다. 난 속세를 떠나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거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녀가 될 테지.
아아! 제발 죽지만 말아줘요.
과장님 저 수녀 되기 싫거든요. 과장님만 살아 계신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을 갈 수도 있어요.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사람이 껌 종이 까는 것처럼 쉽게 죽지는 않아.
아니지, 어제 나 때문에 죽는다고 하셨잖아.
내가 뭐 대단한 여자라고….
한만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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