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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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켜다

누구나 맘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씌인 성냥이 하나있지 엄지와 검지로 쥐고 어느순간 불길을 일으켜 손끝이 검게 타들어가도록 설레는 불꽃을 쳐다보게 될 눈물에 젖어 흐른 황을 손톱끝으로 모아 말려 오랫동안 기다렸다 한 순간 맘속을 연소된 이름으로 녹아내리게 할 너도 그런 가는 나무로 만든성냥 하나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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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주 끝. 어제는 봉준호의 <괴물>을 다시 보았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전 그 영화를 보았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공공재로서의 타임캡슐이기 때문이다. 2006년 <괴물>의 개봉 날짜만 기다렸다가 개봉 첫날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영화 초반 한가로운 한강공원에 괴물이 드디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탄성마저 질렀던 기억이 난다. 와아! 그리고 내가 만든 영화라도 되는 양 나직이 읊조렸다. 아, 천만 관객은 그냥 넘겠구나. 그리고는 천만을 넘어 한동안 꽤 오랫동안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로서 기록을 유지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로써는 아주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CG에 쓰인 것으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각에서 볼 때는 아주 어설프기가 그지없다. 그런데 봉준호가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어설픈 CG로라도 모험을 감행한 봉준호에게 정말 감사할 지경이다. 그렇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다소 어설픈 테크닉이라도 그것을 통해 뭔가를 도모해볼 수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 저곳을 오르면 무언가가 보일 것 같은데, 아주 허약한 사다리밖에 없으니 조금 더 견고한 사다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게 아니라, 이 허약한 사다리라도 딛고, 위험을 감수하며 가보는 거다. 봉준호는 많은 것을 미리 내다봤다. 한강에 괴물이라니, 이 지극히 한국적인 사회에 벌어진 괴생명체 스토리라니. 이러한 황당무계한 설정은 할리우드나 되어야 수긍이 가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한국 영화가 우주까지 나아갔지만, 정말로 그때는 이런 설정이 모험에 가까웠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한국인 특유의 방식으로, 한국인 특유의 유머로,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에 없던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는 것.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상수 역시 어떤 점에서 유사한 지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작품 가운데 <생활의 발견>이 그렇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홍상수는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 감독과 상당히 비슷한 문법을 구사할 때가 있는데, <생활의 발견> 역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식이 홍상수만의 것이 아닌 에릭 로메르의 것이라고 해도, 공간 자체가 한국이며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또한 한국의 전설을 그대로 시나리오에 활용한다. 한국이라는 재료로 만드는 에릭 로메르 풍의 영화. 그것은 이미 로메르 풍을 넘어선다. 전혀 새로운 것이 돼버리는 거다. 이것은 굉장히 영리한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상수는 그렇게 에릭 로메르의 동양식 아류가 아니라 홍상수 그 자체가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상황에 스스로 던져지는 것. 그것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도, 성공할 확률은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 볼 때 <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사람은 변희봉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이롭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배려는 인격의 옷
조선 후기 부정한 관리를 적발한 암행어사로 이름이 높은 문신 정치가였던 박문수의 일화 중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 한 번은 친척 집에 잔치가 있어 밤을 새웠다가 다음날 일어나서 세수를 하기 위해 박문수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 그러자 바로 앞서 세수를 하던 친척의 행동에 박문수가 불쾌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 당시에는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문화로 내 것 네 것 구분이 별로 없었고, 생활도 넉넉지 못해 세수 후에 사용되는 수건은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한 곳에 걸어놓고 사용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세수를 마친 친척이 여러 사람이 써야 할 수건을 혼자서 온통 다 적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수건이 젖어버리자 박문수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옷으로 얼굴을 닦아야 했습니다. ​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친척이 평안 감사로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박문수는 임금님에게 간청했다고 합니다. ​ “제가 개인적으로는 친척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만, 공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는 평안 감사 감이 되지 못합니다.” ​ 이 말과 함께 세수 후 남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서 수건을 사용하던 일을 예로 들어 말했고 임금은 박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친척의 평안 감사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어사 박문수의 친척은 수건 한 번 잘못 사용한 것을 두고 평안 감사가 될 수 없다는 일에 억울해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어사 박문수는 사소한 배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평안 감사로 가게 되면 백성들에게 어떻게 행동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의 인격은 말과 행동을 통해 평가하기 때문에 배려는 인격이 입는 옷이라고도 합니다. ​ ​ # 오늘의 명언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 속담 –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배려#인격#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새로운 오늘
해롤드 라미스 감독의 1993년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와 마음가짐의 힘에 대해 유쾌한 스토리로 교훈을 전합니다. ​ 자기중심적이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왕자병 중증의 기상 캐스터 필 코너스에게 한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를 취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 투덜거리며 도착한 필은 서둘러 형식적으로 취재를 끝내지만, 폭설로 길이 막혀 다시 마을로 돌아와 하룻밤을 묵게 됩니다. ​ 다음 날 아침, 낡은 호텔에서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되고, 축제가 끝났는데 또다시 축제 준비로 부산한 마을의 모습을 보고 경악합니다. ​ 분명히 하루가 지났는데 내일로 넘어가지 않고 축제의 날이 반복되고 있던 것입니다. ​ 황당한 일이 일어나자 필은 돈 가방 훔치기, 축제 망치기 등 고약한 행동을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 하지만 이것도 잠시,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에 절망한 필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다시 침대 위에서 눈을 떴습니다. 죽음도 반복되는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죠. ​ 거의 미칠 지경이 된 뒤에야 필은 마음을 바꾸어 이왕 보내는 하루를 이전과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구하고 타이어가 펑크나 쩔쩔매는 할머니들을 돕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일 오차 없이 되풀이되는 사건에 천사처럼 나타나 이들을 도와주며 점점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 처음으로 이기심을 버리고 선한 행동을 하며 따뜻한 하루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곤 어느 날 드디어 그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이 눈 앞에 펼쳐지며 희망찬 필 코너스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오늘도 어제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 날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에 따라 하루가 희망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 하루가 무기력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오늘을 맞이해보세요. ​ ​ # 오늘의 명언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 앤드류 카네기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일상#일상의반복#새로운오늘#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https://youtu.be/Pabb0dbtp6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