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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 광풍에 스텝 꼬인 ‘명텐도의 나라’ 코리아

그야말로 광풍입니다. 전 세계 게이머들이 미쳤다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바로 닌텐도의 최신 게임 ‘포켓몬 고’ 이야기입니다. 그저 게임 하나가 새로 선보였을 뿐인데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보다 더한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을 즐기기 좋은 장소는 성지로 알려지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게이머뿐만이 아닙니다. 유명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포켓몬 고’ 열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미국 대선 유세전에도 ‘포켓몬 고’가 등장할 정도입니다. 외신들이 전하는 ‘포켓몬 고’ 광풍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포켓몬 고 광풍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게임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겠죠. 포켓몬 고는 미국 증강현실(AR) 게임업체 나이앤틱이 개발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로 유명한 일본 닌텐도가 유통하면서 닌텐도 게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뿌리도 1996년 처음 선보여 전 세계에서 2억8000만장 이상 판매된 닌텐도의 포켓몬 시리즈에 두고 있죠. 당시 시리즈의 주인공인 포켓몬스터는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해 세계적인 캐릭터로 급성장했고 국내에서 ‘포켓몬스터 빵’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이후 포켓몬스터의 열풍은 서서히 시들어갔습니다. 이를 재점화시킨 것이 바로 포켓몬 고 입니다. 이 게임은 포켓몬스터라 불리는 작은 캐릭터를 포획·수집하고 성장시키는 기존 방식은 유지하면서도 모바일에 증강현실(AR)이라는 최신 IT기술을 탑재했습니다. 고전과 최첨단을 결합하는 ‘엉뚱함’을 지닌 것이죠. 이 덕분에 단순히 가상 세계만 보여주는 VR(가상현실)게임과는 달리 가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게임 방법도 간단합니다. 포켓몬 고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후 실행시키면 됩니다. 이후 GPS(위치 정보)와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한 게임화면을 보며 거리나 공원 등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진동이 울립니다. 바로 주변에 포켓몬이 출현했다는 신호죠.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포켓몬을 터치한 후 포켓볼(몬스터볼)을 손가락으로 튕겨 맞추면 잡을 수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현실 공간 특성에 맞는 포켓몬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강 근처에서는 물 타입 포켓몬인 ‘꼬부기’가, 터널을 지날 때는 박쥐 포켓몬인 ‘쥬벳’이 나오는 식입니다.
희귀한 포켓몬을 얻을 수 있는 알을 수집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포획한 알은 인큐베이터에 넣고 열심히 현실세계를 걸으면 됩니다. 포켓몬 특성에 따라 정해진 거리를 걸으면 알이 부화됩니다. 이 때문에 대신 걸어주는 신종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습니다.
최신 인기 모바일게임과 비교하면 무척 단순한 방식인데도 게이머들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특히 숫자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만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7일 미국에서 출시되자마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받기 1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다운로드 숫자가 무려 1억건에 달했습니다. 그야말로 초대박이죠. 또 지난 12일 기준 포켓몬 고의 하루 이용자 수는 2100만 명에 달합니다. 이는 트위터를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이용 시간 면에서도 평균 33분 25초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황제인 페이스북의 22분8초를 10분 이상이나 앞질렀습니다.
매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포켓몬 고의 하루 평균 매출은 이미 160만달러(약 18억원)을 넘어섰습니다. JP모건은 닌텐도가 닌텐도 고를 통해 올해에만 2억3000만 달러(약 2610억)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주가가 치솟은 것은 물론입니다.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 전인 지난 6일 종가 대비 7거래일간 오름폭은 무려 93.2%에 달했습니다. 시가총액도 같은 기간 2조372억엔에서 3조9356억엔(약 42조1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2006년 가정용 게임기 ‘위’(Wii) 출시 이후 침체에 빠졌던 닌텐도가 한방에 일어선 셈입니다. 이는 지난 15일까지 포켓몬 고 정식 출시국가가 미국을 비롯해 호주·뉴질랜드·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하지만 출시국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포켓몬 고가 써내려가는 수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16일(현지시간)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26개국에서 동시 출시되면서 이용국가가 35개국으로 늘어나자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포켓몬 고가 유럽 26개국에서 출시되자 다운로드 횟수가 급증해 서버가 일시 다운됐고 이 여파로 미국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존 출시 국가에서도 접속이 수시간 동안 중단됐다”고 전했습니다. 나이앤틱은 앞으로 출시국을 200개국까지 늘릴 계획으로 알려져 포켓몬 고의 광풍이 더욱 거세질 조짐입니다.
재미난 것은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판에서도 포켓몬 고의 열풍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한창 열기가 점점 무르익어가는 미국 대선에서 포켓몬 고가 등장했습니다. 민주당은 사실상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16일 오하이오주 선거유세에 앞서 오하이오주 매디슨 공원 포켓스톱 겸 체육관에 ‘유혹 모듈’을 설치했습니다. 유혹 모듈은 30분가량 해당 장소의 포켓몬 출현 빈도를 높여주는 아이템입니다. 또 유세를 알리는 홈페이지 에 “우리와 함께 어울리면서 포켓몬을 잡고 전투를 하는 동시에 유권자 등록을 하고 클린턴에 대해 알아보자”며 “어린이들 환영!”이라는 공지도 올렸습니다.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도 ‘포켓몬 고 게임을 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안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한다”면서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켓몬 고를 패러디해 클린턴 전 장관을 비난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영상엔 플레이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클린턴 전 장관에게 몬스터 볼을 던져 포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후보모두 게이머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입니다. 내년 국내에서 치러질 대선에서도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후보가 나올까요.
한편 일본에서는 포켓몬 고 열풍으로 증권사들이 유탄을 맞았습니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을 앞서 예측한 증권회사가 없었을 뿐 아니라 증권회사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수혜주 발굴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실제로 노무라증권은 지난 달 닌텐도의 목표주가를 주당 1만5400엔에서 1만5200엔으로 낮춰잡는 등 잘못된 판단을 내려 상승 랠리에 체면을 크게 구겼습니다. 노무라 증권 리포트를 믿은 기관이나 개미들은 대박맞을 기회를 눈앞에서 날려버렸죠. 이에 따른 비난이 봇물치고 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포켓몬스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이마지카로보’와 자회사가 포켓몬스터 관련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사노야스홀딩스’ 등을 추천한 증권사도 거의 전문하다시피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적했습니다. 닌텐도의 나라인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끌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주식시장의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거시경제 변동에만 이목을 집중시킨 탓이라는 꼬집고 있습니다. 일본은행(BOJ)의 질적·양적 완화책 등으로 관제시장 색체가 강해지면서 증권사들은 BOJ이 금융정책, 정부의 경제대책, 해외 환율 및 증시 움직임에는 주목했지만 정작 개별종목 분석을 등한시 했다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을 받을 곳이 일본 정부와 증권사만일까요. 세계적인 IT트렌드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정부는 무임승차하려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명텐도’죠. 기억나시는 분들도 많을테지만 벌써 2009년 2월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광풍을 일으키자 ‘우리는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왜 못 만드나?’라는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을 질책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의 역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수십년의 노하우와 개발 역사를 지닌 닌텐도를 대통령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냐?” “대박난 상품이니 욕심은 나겠지만 단순하게 삽으로 만들수 있는게 아니다” 등의 비난이 대부부이었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닌텐도 DS를 합성한 패러디 사진도 각종 커뮤니티를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후 ‘명텐도’는 해외 첨단기술을 명목적으로 추종하는 정부의 안하무인격인 정책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올해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키자 대결이 끝난지 이틀만에 정부는 당장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5년간 무려 3조5000억원이나 투자하겠다는 엄청난 계획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차가웠습니다. ‘창조경제 한다더니 따라하기 급급하구나’ ‘알파고 따라한 ‘헬파고’가 나올 듯’이란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학습효과 때문인지 포켓몬 고가 광풍을 일으키자 정부가 ‘한국형’ 포켓몬 고 혹은 ‘뽀로로 고’ 개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18일 현재까지 정부의 움직임은 없네요. 알파고 때만 해도 이틀 만에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했던 정부가 웬일일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포켓몬 고가 출시된 같은날 우리 정부는 미래 먹거리를 키우겠다는 무역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대책에서 5개 신산업을 거론했는데 그중 하나가 가상현실(VR)입니다. 2020년까지 50여곳의 VR기업을 육성하고 이들이 아직 초기인 VR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VR 서비스플랫폼, VR 게임체험, VR 테마파크, 다면상영시스템(스크린X), 교육유통 등 5대 VR 신산업의 기술개발, 콘텐츠 제작, 해외 진출 등에 총 6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라는 성명도 내놨습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산업화 시절과 달리 지금은 민간이 시장의 주인공”이라며 “정부는 규제 완화와 기술 개발 지원 등을 통해 투자를 촉진하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정부 발표는 물론 박 대통령의 발언 어디에도 AR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셈이죠. 일각에서는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지난해 ‘ICT 동향 보고서’에서 영국의 투자은행 디지캐피털의 데이터를 인용해 VR보다 AR의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무시됐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포켓몬 고에 탑재된 AR은 가상과 현실을 묶어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장비가 필요없습니다. 그냥 스마트폰만 있으면 됩니다. 반면 가상을 보여주는 VR은 별도의 장비가 필수죠. 오큘러스의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구글의 카드보드 같은 저가 장비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VR을 선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에 HMD까지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업체들도 HMD를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정부가 AR을 쏙 빼놓은채 VR만 민 이유를 보이지 않으신가요. 포켓몬 고가 출시 전부터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AR열풍이 몰아칠 조짐이 불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정부가 VR을 키우겠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삼성·LG전자의 입김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놨으니 정부는 선뜻 ‘한국형’ 포켓몬 고 혹은 ‘뽀로로 고’를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죠. 대신에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셧다운(shutdown)제’가 풀어주는 유화책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포켓몬 고 열풍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해놓은 이야기가 있으니 한발만 살짝 걸치는 스텝꼬인 모양새를 취한 셈이죠.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선진기술에 대한 정부의 명목적인 추종 때문에 기존에 개발해놓은 기술도 사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켓몬 고의 열풍을 몰고 온 AR게임의 원조는 사실 우리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R게임을 출시했기 때문이죠.
KT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1년 AR 게임 ‘캐치캐치’를 선보였습니다. 캐치캐치는 2012년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기술 박람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 출품된 유일한 AR 게임 앱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거리에서 앱을 실행하면 숨어 있는 몬스터가 보이고 몬스터를 잡으면 캔디나 쿠폰 등을 얻을 수 있는 등 게임 방식도 포켓몬 고와 비슷합니다. 할인권이나 통신사 포인트를 내걸고 각종 이벤트로 게임 띄우기에 나섰지만 정부와 게이머들의 무관심 속에 1년 밖에 서비스되지 못했습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포켓몬 고 같은 게임이 나오기 힘들다고 단언합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부가 말로만 창조경제라고 떠들고 현실은 모방경제를 추종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예를들어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들고 가도 해외 성공사례가 없으면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처다 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외국에서 성공한 것을 모방한 것만 들고 오라는 이야기죠.
게다가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창조 콘텐츠를 각광받고 있는 게임이 국내에서는 사회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말로는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불합리한 규제로 게임산업 발전을 막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켓몬고와 같은 세계적인 게임이 한국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IT트렌드가 등장할 때마다 무임승차하려는 우리정부의 구태가 반복되는 한 포켓몬 고 같은 광풍을 국내 기업이 일으킬 일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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