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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서울 25시, 夜 (32)

제2화 그녀는 분식회계 중 (11)

박 과장도 오피스텔에 올 때마다 입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원한다면 복숭아를 씹으면서 이혜진을 눕힐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느긋한 표정으로 이혜진을 바라봤다.
이혜진은 난생처음으로 남자의 품에서 아침 해를 봤다. 햇살이 이렇게 눈부신 줄은 몰랐다. 커튼을 하얗게 물들이고 방으로 들어온 햇살은 책상을 뽀얗게 물들이고 있다.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이며, 연필꽂이, 몇 권의 책이 사진처럼 아름답다.
“일어났어?”
박 과장은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이혜진을 끌어당겼다. 이혜진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혜진은 박 과장의 거친 입술이 젖가슴에 와 닿는 순간 입을 턱 벌렸다. 박 과장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이혜진은 맥이 풀린 얼굴로 턱을 한껏 치켜올린 채 이를 악물었다.
이것이었던가. 박 과장의 손은 마법사의 손과 같았다. 손끝이 스쳐가는 곳마다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은 전율이 입을 통하여 거칠게 튀어나왔다.
박 과장의 입술이 이혜진의 둥그스름한 어깨에 질퍽한 타액을 묻혀 가면서 목덜미로 옮겨갔다. 이혜진이 목을 비틀며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익숙한 무게의 감촉이 배를 뜨겁게 누르기 시작했다.
이혜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아닌 남자의 품에서 아침을 맞은 것만이 아니다. 모닝 섹스도 처음이다. 모닝 섹스가 주는 쾌감은 모텔에서 소나기 섹스를 할 때와 차원이 달랐다.
모텔에서의 소나기 섹스가 소주 10%에 맥주 90%라면, 내 침대 위에서의 모닝 섹스는 양주 50%에 맥주 50% 수소폭탄주다. 박 과장이 아침의 기가 가득 채워져 있는 불기둥을 유감없이 흔들 때마다 이혜진은 박 과장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해 파드득거렸다.
이혜진은 다른 연휴 같았으면 절망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남자. 전화를 걸고 싶어도 전화를 할 수 없는 남자. 커피를 타 주고 싶어도 커피를 타 줄 수 없는 남자가 그리워서 원망하고, 원망이 지나치면 단교를 하고, 단교의 도를 넘어서면 회사에 사표를 내겠다며 소주잔을 홀짝거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꿈 같은 2박3일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이혜진은 박 과장과 함께 마트에 가서 카트를 끌어보지 못했다. 백화점에 가서 박 과장의 속옷을 구입하지 못했고, 운동복을 입고 나란히 아침 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머, 혜진 씨 연휴 때 피부만 다듬었나 봐. 완전 빛이 나네. 빛이 나.”
“연휴 때 좋은 일 있었어요?”
연휴 기간 엔도르핀을 충분히 흡수한 이혜진은 사무실을 환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시샘하던 여직원들은 마음속으로 질투의 칼날을 갈면서도 도저히 칭찬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같은 애가 뭐 좋은 일이 있겠어요? 대전 집에 가서 푹 쉬었어요.”
“하긴 충분한 휴식만큼 좋은 화장품이 없다는 말은 들었어요.”
학력고사 전국 수석의 소감은 “학원도 안 가고 교과서하고 EBS 방송만 들었어요”라는 말이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내고 족집게 학원에 다닌 학생들은 모두 돌머리라는 뜻이다.
“자기도 아까 그년이 하는 말 들었지?”
“그년?”
“자금부에서 그년이 몇이나 되겠어. 딱 그년밖에 없지. 나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난 아침에 한 시간 동안이나 마사지를 하고 출근했어. 그냥 쉬고 있어도 얼굴이 예뻐진다면 우린 뭐야?”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구. 얼굴 좀 예쁘다고 우리를 반쯤 베어 먹은 쉰 깍두기로 생각하나 봐.”
여직원들은 어머머! 기가 막혀,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이혜진을 갈기갈기 찢었다.
“내가 오줌 누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냐.”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뒷말을 하던 여자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화장실 안에서 나온 여직원이 점잖게 끼어들었다.
“무슨 방법?”
“우리가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시집을 보내버리는 거야.”
“얘 좀 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이혜진 같은 애가 남자를 알면 더 예뻐진다는 거 몰라?”
“듣고 보니 그러네. 영화배우 이영애도 결혼하고 더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듣잖아.”
“가만! 가만! 그년 혹시 연휴 동안 남자하고 여행 다녀온 거 아냐?”
자금1과의 여직원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승승장구하는 기업이라고 해서 앞뒤 안 재보고 매수를 했다가는 깡통 찰 수도 있다.
경제라는 것이 상승곡선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악재를 만날 수도 있다.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곁을 무심히 지나쳤다가는 산불이 나서 오도 가도 못한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못 들어봤어? 이혜진 같은 년이 호박씨 까는 거 숱하게 봤어.”
자금1과의 여직원이 얼른 문 앞으로 갔다. 문 밖을 살펴보고 나서 숨 가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긴, 내 친구 중에 선희라는 애가 있거든. 정말 예뻐. 근데 너무 내성적이라 남자 손목도 안 잡아 본 애거든.”
한만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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