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ouklee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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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유행하는 몸짱사진

올여름도 어김없이 찿아오는 휴가철! 열씸히 운동해서 몸짱이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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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
과해
징그러
난 딱 축구선수몸매들이 좋든데 ㅎㅎ말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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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단련의 우선순위
신체단련의 우선순위 운동습관이 잘못되면 지속적인 부상요인이 축적된다. 그것은 신체의 불균형으로 나타나고 불균형은 구조적 문제, 통증, 기능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다만 그것이 언제 문제로 드러나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과거에 말타기를 하던 사람들은 다리가 벌어지고 소위 안장다리가 된다. 서양인은 양반다리를 하라 그래도 못한다. 동서양의 기후차이는 그 체격과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인류를 모아놓고 가장 체격차이가 큰 사람들을 세워 놓으면 남녀보다 훨씬 큰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날 것이다. 일단 상하지의 길이가 제각각이고 상체와 하체의 비율도 제각각이다. 머리크기부터 손가락, 발가락 길이까지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뼈의 굵기와 살찐 정도까지 포함시키면 같은 인종내에서도 체격을 표준화시키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거기다 사람마다 좌우불균형이 있다. 아예 좌우 뼈의 길이가 다를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는 사용정도에 따라 좌우비대칭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걸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왼팔과 오른팔을 쓸 때 손가락과 손목, 팔꿈치의 주요 궤적과 빈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근육의 굵기나 수축속도까지 달라질 수 있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다. 골반의 전방경사와 좌우경사 척추의 휘어짐, 어깨불균형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사람마다 3차원 영상분석으로 그 운동궤적을 분석한 후에 전체 통계와 평균을 따져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굳이 다 다른 사람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게 강제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모든 사람에게 최선인 운동방식과 운동궤적이 있을까? 일반적인 운동이라면 바람직한 표준을 정하고 거기에 끼워맞출 수도 있다. 다수의 정규분포를 따를테니까 소수는 무시하고 평균을 정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 사람의 운동능력 향상이나 최적화, 목적성을 띤 기능향상, 전투능력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재활치료나 기능향상을 나는 같은 관점으로 본다. 필라테스도 죠셉 필라테스가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기능성 운동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서론이 길다. 아무튼, 신체는 발달하지만 그건 운동보다 단련의 과정이라 보는게 좋다. 운동이란 말은 그냥 동작의 반복이나 기능의 유지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허나 모든 운동과 무술은 기능의 발달과 향상을 목표로 한다. 보라. 운동이란 말 속에도 목표의 차이가 발생한다. 신체단련이 위에서 말한 불균형이나 일반화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그 우선순위가 명확해야한다. 예를 들어 허리가 아픈 사람한테 윗몸일으키기를 시키는 건 잘못된거다. 마찬가지로 허리와 골반이 뻣뻣한 사람한테 발차기를 연습시키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목과 어깨가 뻣뻣한 사람한테 손기술이나 주먹질을 가르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신체의 기능이 그 동작을 수행할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는 반복된 단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초보자가 헬스장에 가서 벤치프레스부터 시작하는건 잘못된 거다. 효율성과 기능성을 기준으로 보면 쉬는 시간 거의 없이 팔굽혀펴기를 100회까지 할 수 있기 전에는 벤치프레스나 중량운동을 해선 안된다. 스쿼트도 마찬가지다. 쉬지않고 100번을 앉았다 일어날 수 있을만큼의 골반과 무릎과 발목과 근력을 확보한 후에 중량운동을 하는게 순서에 맞다. 나는 중량운동도 중력운동으로 대체하는게 더 안전하다고 보지만, 어쨌든 맨몸운동으로 충분히 단련된 후에 중량운동을 하는게 맞다. 그게 부상을 입지않고 강해지는 길이다. 그리고 신체단련을 위해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부위는 어디일까? 이건 답이 쉽다. 심폐가 먼저고 그 다음이 팔다리다. 보디빌딩에서 말하는 근육의 구분은 하지말자. 간단히 말하면 달리기와 매달리기가 기본이다. 달리기를 하면 심폐는 당연하고 다리가 단련이 된다. 매달리기나 당기기, 턱걸이를 하면 팔이 단련이 된다. 그러니까 맨몸운동은 달리기와 턱걸이 딱 두개면 끝난다. 나는 허리가 약해서 허리를 따로 강조해왔지만, 사실은 달리기와 매달리기만 해도 허리와 복근, 척추 역시 단련이 된다. 사실 팔다리보다 복근이나 기립근을 우선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실 허리는 앞뒤를 따로 단련해야되고 그러면 엉덩이도 단련해야된다. 그걸 달리기로 해결하면 된다. 달리기에 스쿼트, 런지만 추가하면 엉덩이도 발달한다. 마찬가지로 매달리기에 버티기와 레그레이즈만 추가하면 허리와 복근강화가 된다. 두 개면 될 일을 세 개로 늘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굳이 신체단련의 우선순위를 단계별로 구분하자면, 1순위, 심폐 2순위, 하체(다리 엉덩이) 3순위, 중체(허리 복근 옆구리) 4순위, 상체(어깨 가슴 팔) 5순위, 손발 6순위, 전완 종아리 7순위, 팔꿈치 무릎 8순위, 상완 허벅지 9순위, 어깨 골반 굳이 단계와 부위를 구분하면 이렇게 된다. 보다시피 아래에서 위로 작은 부위에서 큰 부위로 내려간다. 이렇게 해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단련된다. 허나, 대부분은 이와 반대로 크고 강한 부위부터 위에서 아래로 순서를 짠다. 큰 근육부터 운동하는건 좋은데 가슴 팔 어깨를 주구장창하고 하체는 하나로 묶어버리고 관절은 신경도 안쓴다. 물론 운동선수라면 큰 틀에서 기본 균형은 다 맞춘다. 문제는 기준과 원칙이 없는 일반인과 초보자는 대충 보기좋고 하기쉬운 운동위주로 순서를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가슴 팔은 키우면 세보이고 뿌듯하고 다리는 티도 안나고 잘 크지도 않는다. 그러니 상체운동을 더 하고 하체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그냥 취미수준이면 상관없는데, 기능향상이나 무술 격투기술을 위한 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데다 손목 발목 무릎 골반 어깨 팔꿈치가 약해지는 방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영 강해지는건 고사하고 언제 다치고 부상을 입을지 카운트를 세어야 한다. 신체단련에 있어서 기본을 무시하고 순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대략 3년안에 관절문제가 발생하리라 본다. 열심히하면 1년안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뼈가 잘못되거나 디스크나 연골, 인대의 손상이 발생할 것이다. 운동이든 단련이든 자신이 하는 방식의 우선순위와 선택기준이 무엇인지를 정리해보아야 한다. 그걸 모른다면 이미 약화중일테지만 늦게라도 문제를 확인하면 고칠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한
내가 관심,사랑에 집착하는이유(feat:애정결핍)
내가 관심,사랑에 집착하는이유(feat:애정결핍) 인간에게 배고픔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하루만 밥을 먹지 않아도 엄청난 고통이 찾아온다. 삼일정도를 참으면 죽을 듯 괴로울 것이다. 고고한 선비도 당장 쓰레기통을 뒤진다. 청정한 수행자도 치킨 냄새에 혹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살기 위한, 즉 생존이다.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뛴다. 이는 몸의 관점이다. 다음은 마음의 관점이다. 어린 아이는 약하다. 갓 태어난 강아지보다 약할지도 모른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수가 없다.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무럭무럭 배부르게 먹고 자라나야 한다. 그래야 정신이 배고프지 않고 건강해진다. 무조건적으로 그 사랑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가는 .. 아이는... 금세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충분한 사랑을 먹지 못했다면.... 엄마와 아빠가 매일 화내고 싸운다. 엄마 아빠는 나를 놔두고 매일 일하러 나간다.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서 괴로워한다. 아빠는 매일 술먹고 화를 낸다. 엄마는 자꾸 신경질 부리고 잔소리를 한다. 아빠는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린다. 엄마 아빠가 동생만 좋아한다. 자꾸 나에게만 참으라고 한다. 나한테 하지 말라는 소리만 한다. 조기교육이라면서 매일 공부만 시킨다. 어른들이 자꾸 자기말을 들으라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하라고 한다. 작은 실수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점점 숨이 막혀간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먹어도 아이에게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미움을 먹었다면... 소중한 존재가 아닌 부모를 힘들게 하는 말안듣는 아이라는 느낌을 먹었다면... 언니보다 뭐든 부족하고 못난 열등의식을 먹었다면...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존재의 무가치함을 먹었다면... 옆집 친구에 비해 부족한 바보느낌을 먹었다면... 내가 아무리 요구하고 요청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비참함을 먹었다면... 어린 아이는 비싼 산삼을 먹어도 부족할수 있는데 오히려 독초를 먹어버린 셈이 된다. 그 독초는 서서히 가슴속에 침투한다. 무의식 깊은 곳까지 서서히 흘러 내려간다. 순수했던 아이의 마음은 변질되어간다. 배고픔은 차오를때로 차오른다. 분노는 차오를때로 차오른다. 슬픔도 차오를때로 차오른다. 고통도 차오를때로 차오른다. 두려움도 차오를때로 차오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서서히 깨져간다. 집착증은 이제 서서히 또아리를 틀게 된다. 어느때가 되면 견딜수 없을 만큼 괴로운 순간이 온다. 그때 상처받은 어린 아이는 1주일 굶은 맹수처럼 사랑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아무리 배터지도록 먹어도.... 토하고 또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다. 여기저기 뒤져야 한다. 버려진 강아지가 음식을 쓰레기통을 뒤지듯.ㅜㅜ 그렇게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길 잃은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아가듯... 물론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는다. 다만 어릴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괴로움과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목숨을 다해 사랑을 찾아 떠난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 누군가가 나를 떠나가는 것을 극도로 괴로워한다. 헤어지고 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듯 고통을 받는다. 끝없는 집착의 미로에 빠져든다. 어떻게 해서라도 어릴때 경험한 버림받은 고통을 재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해도 안된다. 내가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존중을 받고 이 사회에서 성공을 했을지라도 무의식에 깔린 독초는 나에게 말할 것이다. " 나는 사랑이 배고파! 죽을것 같아" " 아직도 부족해! 난 혼자서 살수가 없어" " 사랑을 주지 않으면 독초가 내 심장을 뚫고 나올지도 몰라.... 빨리 제발 부탁입니다." 의식적으로 아무리 통제를 하려고 해도 안된다. 하루만 굶어도 미쳐버릴 정도로 괴로워하는데.. 마음도 몸과 같다. 때로는 몸은 견딜수라도 있지만 마음은 한번 금이 가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더군더나 어릴때 무수한 그 상처 덩어리들은 돌처럼 아니 철근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집착하며 살지도 모른다. 당신이 아무리 자신을 사랑해줘도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도 여전히 그대의 마음은 배고플지 모른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ㅜㅜ 언제까지 지나간 마음속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타인의 사랑을 받아도 끝이 없고 내가 사랑을 해도 끝이 없다면 방법이 없는가? 나는 이런 집착증 애정결핍증의 마지막 치료법은 자기사랑이라고 말을 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너무나도 뻔한 말이기에 이 또한 답이 될수가 없다. 지금은.... 잠깐 이런 생각을 해봤다. 단순한 사랑(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였구나! 더 깊은 실제 원인은 바로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당신은 그동안 목숨바치듯 집착했다. 달리 생각해보자. 과연 지금 당신은 죽을만한 상황인가? 과거의 어린아이마냥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지옥과 같은 괴로운 환경인가? 아니다. 당신은 지금 생존이 보장되어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고해서 죽는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도와준다고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신이 당신의 생존을 책임질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것만이 내면 깊은 곳의 독초를 빼낼수가 있다. 아니, 그것을 깨닫는순간 더이상 어린아이는 독초를 머금은채 고통받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선택할수 있는 삶이 펼쳐진다. 그렇게 우리는 일어설수가 있다. 나의 무의식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 우리는 지금 생존하고 있다." " 나는 죽거나 없어지지 않아 " " 그리고 예전처럼 나약하지 않아 " " 괜찮으니 이제 내 손잡고 함께 바람쐬러 가자." 지나간 과거속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벌버둥을 치지 말자. 그 상처를 채워주기 위해서 사랑을 찾아서 구걸하는 여정을 그만하자. 그냥 나의 생존이 보장되었음을 인정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보자. 그것이 나에게 해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글쓴이 : 김영국 행복명상 연구소장
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신체의 균형, 근력과 부상 심폐와 장기를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상은 골격에 집중된다. 여기서 말하는 골격은 관절을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운동과 치료법이 있다. 재활도 의학의 한 분야로 스포츠의학의 한 축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소메트릭이 재활치료법의 주류가 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등척성 운동, 그러니까 근육의 길이가 고정된 운동, 쉽게 말해 버티기는 신체의 근력과 관절, 협응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초보자나 부상자, 노약자에게 이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 치료, 방법은 없다. 아마도 이것이 강조되지 않은 이유는 그 효과에 비례해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버티기를 하라는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럴듯이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불교적 수양에서는 대근기 중근기 소근기를 나눈다. 이것은 현대말로 인내심과 참을성이 얼마나 강하냐를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자존심과 똥고집이 쓰일 수 있다. 잘 보면 자존심이 센 사람이 인내심도 강하고 참을성도 높고 똥고집도 있다. 그것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기란 어렵다. 그 사람의 목적과 행위가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끝없는 향상심이나 도전정신, 불굴의 의지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내심도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악화와 불균형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인정과 부정의 심리와 깊게 관계되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목표에 집착한다 치자.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본 실력이나 한계를 아주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늘려나감을 의미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계단식이 아니라 선형으로 그것도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이차방정식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말하는게 아니다. 3차원 도면의 나선형 회전을 말하는 것이다. 굳이 정신과 신체의 성장을 그래프에 비유하자면 그렇다. 2차원으로 보면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이 그려 지겠지만, 실제의 3차원에서는 상승과 하강이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그린다. 이런 관점의 확장이 없으면 신체가 균형을 이루고 성장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굳이 근장력과 지구력과 유연성의 삼요소로 성장의 변수를 구분했지만, 이것들은 결국 신체가 실제에 반응하기 위한 대응을 요약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지성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심리다. 가뜩이나 신체는 두뇌라는 중추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 두뇌라는 것 자체가 신경의 집합이며, 인간은 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을 정신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신체 전반이 지성이나 이성과 마찬가지로 통합적인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신체의 기능적 움직임에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지능,그러니까 사고와 편견,과 본능, 감각과 감정,이 그러한 통찰과 이해를 후천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다. 초원의 사자는 태어나기를 강하게 태어났다. 그냥 잘 먹고 성장하면 따로 노력을 안해도 강한 이빨과 다리로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다닌다. 인간도 물론 타고난게 있다. 달리기와 던지기의 능력이다. 인간만큼 오래달릴 수 있는 동물은 말밖에 없고, 인간만큼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신체능력은 전 지구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이해를 적용한 적이 없다. 다 자르고 고대의 원시인과 비교하면, 현대인은 심각하게 게으르고 쓸데없이 집착한다. 오직 건강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달리기만 하고 하루종일 물건을 만들고 놀면 그게 최상이다. 그게 원시인의 일상이다. 그러면 그게 제일 건강한거다. 물론 현대인은 필요이상으로 경쟁하고 필요이상으로 복잡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만큼 일해야 되고 신체도 더 건강해야한다. 정신적 영역에서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다. 따라서 신체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정신을 포함한 수련을 해야한다. 정신수양과 단련을 할 수 없는 운동은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안된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인간사회의 과열경쟁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이 받쳐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얘기다. 운동을 통한 경쟁이 스트레스 해소나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으로 본질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운동을 해서 자동으로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노력으로 정신력을 강화하고 다시 운동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금메달에 집착하고 순위와 성과, 경쟁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의미는 있지만, 정신이 발달하고 신체가 균형을 이루는 것과 상관이 없다. 내가 수영, 육상, 등산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자연과 조응하는, 그러니까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가장 적합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지능과 본능, 이성과 정신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충분하니까.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반드시 정신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두뇌와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을 겪고 신체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뇌로 통합되고 심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마음의 병을 명확히 진단하는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신체의 균형을 통해 정신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예나 종교, 예술의 영역이 여전히 중요하고 정신, 영혼, 심리와 직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가 부상을 입는 것도 정신과 신체의 불균형, 근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감정조절이 안되면 무리한 동작을 하고 무리한 동작과 자세는 관절의 부하를 극대화한다. 그것이 정적일 경우는 근력으로 어느정도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격렬한 동작에서는 꼼짝없이 근력이 약한 부위의 관절에 부담이 집중된다. 인간이 부상을 입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신체능력의 한계치는 가장 강한 부위기 아니라 가장 약한 부위, 가장 강한 근력이 아니라 가장 약한 근력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상체의 근력이 아니라 손가락의 근력, 팔꿈치의 근력, 어깨의 근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으며 하체의 근력이 아니라 발가락의 근력, 무릎의 근력, 골반의 근력이 옳다. 허리의 근력이 아니라 장요근의 근력, 복직근의 근력, 기립근의 근력이 기준이다. 그 중에 가장 약한 근력이 자신이 낼 수 있는 근력의 최대치이며 부상을 입지 않는 한계치인 것이다. 가장 약한 부위보다 높은 근력을 사용하는 것은 부상을 입는 지름길이며 신체를 망가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신체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건강해지는 것도 부상을 입지 않는 것도 더 강해지는 것도 간단하다. 가장 약한 부위의 근력을 강화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체의 균형을 맞추며 전체가 강해진다. 지극히 당연한 원리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본질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 대한
집중력과 부상의 관계
집중력과 부상의 관계 코치나 감독, 가르치는 사람들은 항상 집중력을 강조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친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동작이나 운동에서 집중력은 신경계와 직결된다. 거기다 긴장도는 호르몬 분비와도 연계된다.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초보자가 무리한 상태에서 부상으로 직결되는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정신상태를 강조하는 이유도 부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느슨한 정신상태에서는 동작도 느슨해지고 커진다. 당연히 관절에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군대에서 기합을 많이 주는 이유는 정신상태가 극한상황에서 전력이탈로 곧장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면 바로 신체적 반응들이 나타난다. 쥐가 나거나 어지럽거나 구토를 하고 근육이 경직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일반적인 운동과 훈련의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니 더 자주 빈번하게 발생한다. 발목이 접질리거나 인대가 파열되거나 뼈가 골절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런 부상의 빈도수가 집중력과 관계되어있다. 특히 경미한 부상은 간과되기가 쉬운데 턱걸이를 한다 치자. 손가락을 느슨하게 걸치고 하는 경우와 꽉 잡고 할 경우의 관절이 받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근육의 수축정도에 따라 체중이 관절에 걸리는 하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복시 팔꿈치의 각도변화도 인대에 영향을 미친다. 야구선수와 테니스선수는 팔꿈치에 주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떠한 운동이든 손과 팔을 쓰면 팔꿈치와 어깨에 과도한 부담을 받게 되어있다. 그걸 피할 방법은 운동을 안하는 것뿐이고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정확한 순서와 각도를 찾는 것이다. 어깨와 팔길이에 따라 각도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대신 정확한 순서는 정할 수 있다. 턱걸이라면 손아귀 힘을 꽉주고 날개뼈에 힘을 주고서 등으로 당겨야 한다. 팔과 팔꿈치는 광배근으로 당기는 것을 보조하는거지 그러니까 버텨주는 거지 팔로 당기는게 아니다. 다시 손아귀힘을 꽉주면 전완근이 수축된다. 그러면 봉부터 팔꿈치까지 고정이 되고 상완과 어깨, 등이 남는다. 최종수축점인 광배, 등허리에 힘을 주고 당기는 것이다. 이걸 순차적으로 하면 일종의 지렛대 원리가 된다. 광배근은 등허리 척추뼈에 붙어서 윗팔뼈의 안쪽에 말려서 붙는다. 그러니까 팔을 위로 쫙펴면 광배근육은 180도 회전하게 된다. 그걸 수축시켜서 윗팔뼈를 당기고 이두근은 다시 아랫팔뼈를 당긴다. 간단히 얘기하면 척추로 팔을 당기는 것이다.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가 근육이 되고 그걸 버티는게 힘줄이다. 이걸 천천히 하면 문제가 없는데 빨리 반복하면 근육간의 힘차이가 발생한다. 가장 약한 근육이 힘이 빠지는만큼 힘줄과 관절에 부하가 증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회전이 발생하면 인대가 뒤틀린다. 야구선수가 공을 던질 때는 그 회전속도가 정점에 있어 궤적을 가지고도 논쟁이 된다. 릴리스 시점, 공을 언제 놓느냐에 따라 팔꿈치에 걸리는 부하가 다르다. 공을 놓는 시점의 작은 차이가 팔꿈치에 걸리는 부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치에 도달한 동작이나 운동이 아니라도 장시간의 반복된 동작은 관절과 인대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 중량까지 더해지면 관절의 부하는 증가하고 부상의 악화속도는 더 빨라진다. 이처럼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와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자세와 습관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니까, 관절에 가해지는 작용반작용, 관성의 법칙을 어떻게 운동에너지로 전환할 것이냐가 매우 중요하다. 기본과 기초가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며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팔꿈치나 무릎에 직접 충격이 가해지는 동작을 어깨와 등, 골반과 엉덩이가 흡수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똑같아 보이는 동작이라도 그 힘의 전달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본인만 알 수 있는 수축느낌을 관절이 아닌 대근육으로 옮겨야 하고 그것도 결국 팔다리의 교차운동으로 전환해야한다. 장기적으로 운동시의 집중력은 부상의 가능성을 줄이거나 없애고 안정적인 동역학을 체화할 수 있는 기술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게 반복되면 어디에 무리고 어떻게 하면 다치는지 알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하고 동작에 엄격한 것이 결국은 건강과 성장을 좌우한다. 선수라면 선수생명을 좌우할 것이고...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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