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게 던져야 됩니다"
야구 중계를 보다보면 해설진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하지만 국내타자들은 생각보다 낮은 공을 잘 공략합니다.
오히려 '하이패스트볼'에 헛스윙을 하는 경우가 많죠.
아무리 낮은 공이라도 타자가 노리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들이 높은 공보다 낮은 공에 더 약합니다.
그 통계를, 신체조건도 야구 환경도 다른 KBO리그에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요?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저도 야수이지만 답답할 때가 많아요.”
KIA ‘캡틴’ 이범호(35)가 타고투저 현상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투수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무슨 뜻일까.
최근 물오른 타격감으로 데뷔 후 첫 3할 30홈런 100타점을 바라보는 이범호는 “타자들은 낮은 코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투수들은 그곳으로 공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3루에 서서 상대 타자들 바라보면 대부분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낮은 곳을 공략할 채비를 하고 있다. 160㎞짜리 빠른공이 홈플레이트 끝을 날카롭게 파고들면 모를까, 비슷한 공은 노림수를 가진 타자들에게 걸려들기 십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회전이 제대로 걸린 하이 패스트볼은 완벽한 밸런스와 타이밍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펜스 밖으로 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KBO리그에서 하이 패스트볼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타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SK 정의윤이 좋은 예다.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몸쪽을 파고드는 낮은 공은 정의윤이 리그에서 가장 잘 친다고 볼 수 있다. 최승준도 체력이 떨어지기 전 이 코스를 놓치지 않았다. 리그 전체적으로 몸쪽 대응력이 좋아진 것은 메이저리그 미네소타로 진출한 박병호의 영향이 크다. SK 김용희 감독은 “우리가 야구를 배울 때에는 일본 주간 베이스볼 같은 잡지에서 찍은 스틸 사진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의 전부였다. 아무리 잘게 끊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사진으로 이론을 분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영상 장비가 발달하면서 내가 배울 때와 지금은 타격 이론이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상으로는 몸쪽 공을 공략할 때 임팩트 순간 왼팔(우타자 기준)이 곧게 펴져 있지만 실제로 이런 자세로 타격하면 파울이 되거나 공에 밀리기 일쑤다. 왼팔을 구부린채 임팩트를 하고, 강한 몸통회전으로 배트에 힘을 전달하는 것이 이상적인 타격폼인데 박병호가 이 타법으로 홈런왕에 오르면서 국내 코칭스태프들의 타격 이론도 자연스럽게 변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몸쪽 대응이 수월해지면 공과 배트가 만나는 면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몸쪽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공이 눈과 멀수록 강한 스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범호는 “낮은 공을 칠 때 팔이 더 자연스럽고 빠르게 몸에서 빠져 나온다. 팔을 부드럽게 쓸 수 있으니 손목을 넣으면 당겨지고 그대로 뻗으면 밀 수 있는 부챗살 타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슴 높이로 오는 공은 노리고 있어도 정타로 만들기 쉽지 않다. 하이 패스트볼을 치는 훈련을 하지 않아 준비가 안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BO리그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은 “하이 패스트볼을 마음먹고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드물다”이다. 투수들은 “투구훈련 할 때 모든 코칭스태프가 ‘낮게 던지라’고 강조한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낮게 던지는 것이 투수의 첫 번째 덕목이라는 인식 탓이다. 투구훈련 때부터 높게 던지는 것을 금기시하니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많지 않다. 두산 더스틴 니퍼트나 KIA 양현종 등 리그 톱클래스 투수들은 의도적인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이나 범타를 유도한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이 예리한 변화구가 아닌 빠른 공으로 타자들을 돌려 세우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역설적으로 KBO리그 스트라이크존이 지나치게 좁은 것도 큰 영향을 끼친다. 타자들은 “조금 높다 싶으면 배트를 내린다. 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리그의 질적 하락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수들이 왜 낮게 던지려고만 하는가?”라는 타자들의 물음을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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