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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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발연기 스타들

김명민
"나는 연기파가 아니다, 나는 연기를 못해 힘든역만 한다."
김혜수
"나는 배우자격이 없다."
한석규
"내 연기는 공해, 쓰레기같이 느껴져..."
김혜숙
"한 장면 연기를 위해 밤새 연습한다"
정보석
"내 연기는 꼴찌"
최민식
"내 연기 후배들한테 부끄러워"
하정우
(말대신)
영화 '신세계' 영화 감독 曰
"가상의 인물 정청보다 훨씬 실존 인물처럼 연기했다. 황정민은 그냥 정청이었다.
정청 대사의 반이 애드리브, 헤어스타일부터 의상, 하물며 카메라 앵글 동선까지 연구해와서
직접 감독에게 제안.
한편으로 또라이 미친 캐릭터인데, 더 미친놈처럼, 더불어 더 사람냄새 나게,
더 멋지게 만들어놔서 자꾸 카메라 앵글안에 담고 싶게 만듦.
실제로 영화에 나온 대사 절반이 애드리브였다."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2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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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소다좀 사온나
저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노력했기에 최고의 연기자가 될 수 있었겠죠. 인기좀 얻으면 어깨에 힘들어가서 초심 잃는 연예인들, 경력만 많고 연기에 발전이 없는 배우들 좀 보고 본받으시오.
원빈: 한번도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 없다
전부다 멋진 배우들....🖒🖒🖒
마동석:몸이 허약해서 과격한 연기 못해요~샤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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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줄서서 쉑쉑버거 먹고 온 후기
이것은 쉑쉑버거(쉐이크쉑버거)를 쉽게(?) 본 기자의 잘못으로 인해 탄생한 기사다. 하나 더 말해두겠다. 본 기사는 메뉴의 맛 보다는 오픈일의 분위기를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2일, 대망의 쉑쉑 서울 1호점 오픈일. 뉴스에이드는 부푼 맘으로 오전 9시에 쉑쉑 앞에서 집결했다. 분명 그 전날까지는 "우리가 1등인 거 아닙니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9시 상황. 이미 매장 앞 줄은 3줄 돌파. 직감했다. 아, 오늘 쉽지 않겠다. 오픈일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지 이미 현장에는 많은 직원들과 가드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마치 팬미팅, 혹은 팬사인회 대기줄 같은 분위기. 이미 방송국 카메라들이 셋팅되어 있었다. 아니! 쉑쉑 오픈이 이다지도 엄청난 이벤트였다니...방송사 외에도 페이스북 생방송, 아프리카 생방송 등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9시 30분이 되자 기자의 뒤쪽으로도 줄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났다. 이미 인도는 절반 이상 점령(?)당한 상황. 주저앉을 것을 고려해 작은 돗자리 같은 것들을 준비해 온 프로들이 부러워지는 순간.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쉑쉑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줄을 서 있는 이들에게 직원이 쉑쉑 로고가 새겨진 선글라스를 증정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자외선 차단 기능도 있는, 나름대로 갖출 것은 갖춘 선글라스다. 10시 10분 전, 어디에선가 밴드가 나타났다. 주섬주섬 악기들을 꺼내놓고 공연을 준비하는 밴드. 얼마 후 갑작스런 음악이 들려왔다.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한국의 '뽕끼'도 느낄 수 있었던 알찬 공연.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한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이미 줄은 매장 앞을 꽉 채우고 건물 한쪽 벽을 돌았다. 10시 40분께. 군데군데에서 약간의 갈등 발생. 주로 미리 줄 서있던 일행들과 합류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의 팽팽한 신경전이었다. 10시 50분.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매장 앞으로 집결했다. 손을 높이 들고 박수를 치며 "쉑쉑!"을 외쳤다. 에브리바디 쉑쉑. 그들은 신났고, 기자는 점점 더 지쳤다. 직원들에 이어 누가봐도 임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등장. 오픈식에 빠질 수 없는 테이프 커팅 실시. 드디어! 입장이 코앞이다! 11시, 입장 시작. 우르르 몰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문 카운터 앞 상황을 고려해 조금씩 입장시켰다. 고로, 입장이 시작됐다고 해도 줄이 팍팍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려야했다. 쉑쉑버거 먹기 너무 힘들다. 기다리는 동안 내부에, 특히 유리창 쪽에 앉은 이들은 줄선 사람들의 엄청난 시선 어택과 더불어 언론사 카메라의 쏟아지는 관심을 감내해야 했다. 11시 30분. 드디어! 뉴스에이드도 주문 성공. 내부에 들어왔다. 꽤 넓다. 테이블도 큼지막하다. 생각보다 쾌적한 실내.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벨을 준다. 벨이 울리면 다시 카운터로 가 메뉴를 받아오면 되는 시스템. 해외 지점들과 동일하다. 한쪽에는 이렇게 셀프바가 있다. 머스터드와 케첩, 후추, 소금 등 양념과 포크, 나이프, 스푼, 티슈, 소스통이 비치되어 있다. 직원들은 상당히 빠르게 테이블 등 매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오픈발(?)일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 직원 수도 많고 첫 날의 혼란 치고는 착착 돌아가고 있는 느낌. 내부에도 카메라를 들고 배회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이 오픈 대란을 찍기 위한 온 이들이 오픈 대란의 주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그리고 거기에 일조한 기자와 동료1). 드디어 나온 메뉴. 대체로 기름지고 짜다. 고로, 맛있다. 우리 팀은 버거 3가지(쉑버거, 스모크쉑, 슈롬)와 치즈프라이, 쉑카고도그, 밀크쉐이크, 강남(아이스크림) 주문. 비주얼은 이러했다. 기자는 런던 코벤트가든 지점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사실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치즈프라이는 한국 매장이 조금 더 덜 짠 느낌. 자세한 맛 묘사는 그냥5대 쉑쉑버거편을 참고하시라. 식사를 마친 시간은 오후 1시. 여전히 밖에는 줄이 엄청났다. 아마도 하루 종일 이런 상태이지 않을까하는 생각. 한국에 상륙한 쉑쉑버거, 올 사람들에게 미리 말하겠다. 한동안은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들이 엄청날테니 초상권 관리 잘 하시길. 그리고 줄을 설 작정을 하고 오시길. 이왕 줄을 설 것이라면 오전에 서자. 지금은 여름이다. 사진=임영진 기자, 안이슬 기자, 몽타 안이슬기자 drunken07@news-ade.com
음식 나눠준 남성 따라 마라톤 완주한 유기견
물과 음식을 나눠준 한 마라토너를 따라 250km를 완주한 유기견이 화제다. 영국 일간 미러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마라토너가 유기견과 함께 250km 마라톤 결승선에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마라토너 디온 레오나르도는 지난 6월 중국에서 열린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울트라 마라톤은 중국 고비사막의 250km를 가로지르는 대회다. 올해는 101명의 마라토너가 이 대회에 참여했다. 디온은 티얀 샨 산맥 코스를 지나던 중 버려진 유기견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유기견은 더운 날씨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디온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 유기견에게 가지고 있던 물과 음식을 나눠줬다. 이때부터 유기견은 디온의 옆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디온은 “강아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며 “고비와 함께 강을 건너기도 하고 물과 음식도 나눠먹었다” 고 말했다. 디온은 강아지에게 ‘고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디온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순간에도 ‘고비’는 옆자리를 지켰다. 그는 “고비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스타트 라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마을은 3마일~5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다”며 “녀석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녀석을 데려가 함께 살 생각이다”고 말했다. 마라톤 대회의 행사 관계자는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고비는 우리의 마스코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SAP Journal & 사진작가 양승우 인터뷰
ASAP Journal(이하, A)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사회 저변에 자리한 소외된 이들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고 가감없이 담아내 온전히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양승우(이하, 양)’을 만나 그의 사진과 그의 세계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지난 1996년에 혈혈단신으로 도일 후 외로움과 생활고, 쉽지 않은 거리 생활까지 거쳐온 그의 모습에는 청춘의 푸른 빛에너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 있는 눈동자와 거센 기운은 주변을 온 전시장을 채울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그의 사진 속에는 예쁘게 포장되거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인 요소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혹자에게는 불편하고 언짢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양승우의 이미지는 우리가 편하든 편하지 않든 여전히 우리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모습이며, 때때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에 고개를 내젓는 대신 끄덕이게 됩니다. 돈, 섹스, 유흥으로 드러나는 그의 사진 시리즈 ‘靑春吉日(청춘길일)’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폭력배들의 범죄와 거친 생활만이 아닌, 조직 폭력배 이전의 친구, 사람간의 정과 일상,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A)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양) 96년도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배운 사진이 너무 재미 있고 일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처음 사진을 찍게된 이후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 작가 양승우입니다. A) 진행중인 전시<청춘길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리겠습니다. 양) 사진 속 인물들이 다 친구들이거든요. 저를 포함한 그들의 젊었던 시절을 다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기에 청춘 길일이라는 제목을 지었어요. 이 시리즈는 자살한 친구를 계기로 찍기 시작했는데요.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 친구를 보려고 했는데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거에요. 그 이후부터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계속 찍고 기록에 남기게 됐습니다. A) 이번 전시는 누군가 에게는 노골적으로 보일 수 도 있지만 작가님에게는 익숙한 ‘청춘의 일상’ 쯤으로 생각을 해도 될까요? 양)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A)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청춘은 어떻게 정의 할 수 있나요? 양) 에네르기(에너지)죠. 청춘 하면 친구, 섹스, 일,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그런 면에서 작가님은 아직도 청춘의 한 가운데에 있으신 것 같은데 양) 아뇨. 끝났어요. 끝난 지 꽤 됐어요.(웃음) A) 저희가 보기엔 아직도 작품에서 드러나는 힘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데 왜 청춘이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양) 옛날하고 몸이 틀리거든요. 싸움하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웃음) 옛날에는 보면은 내가 지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좀 거친 세계의 사람들을 보면 지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의 청춘은 끝났다고 생각해요. A)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많은 전시를 진행 하셨지만 국내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어떠세요? 양) 해외에서 전시를 하면, 작품 설명을 할 때 통역을 써서 말을 하다 보니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해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지금은 제가 직접 설명을 하려 하니 말투도 어색하고 일본 말도 섞여서 나오다보니 더 조심스러운데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한국말인데도.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A) 그간 국내에서 전시를 진행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양) 하고는 싶었어요.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안 붙여오더라고요.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쪽(일본)에서 그나마 책 4권 5권 정도 나오니까 좀 알아봐 주시는 분도 있고, 찾아봐주시는 분도 있고 하다 보니 연락이 오고, 전시까지 진행하게 됐습니다. A) 현재까지 약 20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 제대 이후 한국에 사는게 재미가 없어서 일본으로 건너가셨다고 하셨는데, 왜 하필 일본을 가게 되신 건가요? 양) 일단 가깝고 얼굴에 이방인 티가 잘 안 나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게 됐습니다. A) 언어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로 처음엔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양)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한 번은 자전거보관소에 쭉 세워진 자전거를 막 발로 차고 그랬어요. 경찰 신고를 받고 파출소에 갔는데 순경이 와서 훈계를 하면 권총을 뺏어버릴 정도로 함부로 행동 한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세월이 지나니까 없어지더라고요. A) 도일 직후부터 2006년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전기 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사진을 공부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도쿄 공예대학은 오랜 전통과 함께 일본 내에서도 사진교육의 주력 학교로 입학 자체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입학하게 되었고 어떻게 10년이란 시간 동안 사진을 공부 하시게 됐나요? 양) 처음엔 사진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어학교는 비자가 2년밖에 되지 않으니까 비자 문제도 해결할 겸 원서만 내면 입학을 허가해주는 전문학교에 다니게 됐죠. 그게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사진학교였어요. 그런데 수업을 들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어 공예 대학교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게도 합격해 대학원까지 마치게 됐습니다. A) 10년이라는 시간이 상당히 긴 시간인데요. 그 시간 동안 학비라든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굉장히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계속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나요? 양) 학생 때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의외로 장학금 제도도 있고 상금도 많이 타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지금보다 학생때가 돈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그 때야 계속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죠. A) 지난 2005년에는 코토부키초의 일용직 노동자와 노숙자 ‘곤타’씨를 비롯한 3-4개의 테마를 작품으로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창간한 잡지 ‘데이스 재팬(Days Japan)’에서 주관하는 일본 국내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들을 사진에 담게 되셨나요? 양) 같은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저랑 비슷한, 뭐라 해야하죠? 느낌이 비슷해요. A) 동질감이라든가 어떤 유대감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양) 네. 나는 항상 그걸 냄새라고 표현해요. A) 이런 작업 과정에서는 실제 노숙도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이에 대한 에피소드와 곤타 씨는 어떠한 사람인지 말씀해 주세요. 양) 에피소드 많았죠. 예를 들어 추운 겨울 날이 되면 곤타가 내 옆에 자고, 모르는 사람도 같이 자곤 했는데 추우니까 막 서로 몸이 딱 붙어서 자잖아요. 그러면 이 같은 것도 막 옮고, 가려워서 힘들기도 하고.. 날씨가 훤하게 밝을 때까지도 둘이 껴안고 자는 일도 있었어요. 그리고 곤타는 지방 출신의 홈리스인데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셨나봐요. 도쿄에 14살에 올라왔는데 일하던 공장이 도산하는바람에 그때부터 홈리스 생활을 하게 됐죠. 곤타랑은 2-3년 동안은 거의 일주일에 2-3일은 같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원래 나라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보호 시설에 있었어요. 그 곳에서는 한 달에 한 150만원정도 나오거든요. 그런데 중간에서 소개하는 업자들이 다 떼어먹고 결국 얼마 남지 않게 되요. 그런 문제도 있고, 그 시설은 겨울에도 따뜻하고 좋긴하지만 곤타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통행금지도 있고 행동에 제한이 있으니까. 자기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더라고요. A) 곤타씨를 촬영할 때 어떤 점이 가장 재미있거나 인상깊었나요? 양) 처음엔 옆에서 보고 있는데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뭐 어쨌든 계속 찍긴 찍고 있었어요. 사실 정리해서 책으로 낼 마음까지는 크게 없었죠. 그렇게 계속해서 찍고 있는데, 어느 날은 곤타가 빠찡코 앞에서 자고 있었어요. 밤이 지나고 가게 오픈 시간이 되니 가게 직원들이 나와서 곤타를 쫓아내더라구요. 날씨 환해졌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라는 식으로 쫓아내니까 곤타가 일어나면서 짧은 시를 하나 짓더라구요. 뜻이 뭐냐면 ‘자는 것이 좋은데 바보 같은 세상 사람들은 왜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하나?’라는 내용이었어요. 이거 재미있다 싶어서 곤타가 시를 쓸 때마다 달라고 해서 모아놨어요. 이후로 만날 때 마다 계속 시를 써서 주더라고요. 근데 그 내용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하고 곤타의 시를 같이 엮어서 한 콘테스트에 냈는데 대상을 받아서 책을 공짜로 내줬어요. 그게 제 첫 번째 포토북이에요. A) 그럼 곤타씨는 지금도 계속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요? 양) 아뇨, 곤타는 안타깝게도 지금 당뇨병에 걸려서 보호시설 안으로 들어갔어요. A)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은 하고 있나요? 양) 네. 계속 연락 하고 있어요. 전화도 계속 오고. A) 다큐멘터리 사진은 설정된 모습이 아니기에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가 정말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촬영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이미지를 남기셨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양)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오늘 누군가를 찍어야겠다, 예를 들어 곤타를 찍겠다 마음을 먹으면 하루 종일 계속 따라다녀요. 대화를 하든 안 하든. 뭐 물론 대화 하면서 놀 때도 있고…. 자기 볼 일 보고 있으면 옆에서 그냥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야 할 순간이 보일 때마다 셔터를 눌렀어요. 딱 느낌이 오잖아요? 얼굴 표정이 재밌다거나, 특이한 행동을 한다거나…. A)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우리나라 조직 폭력배, 일본의 야쿠자 집단을 담은 사진집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친구들 덕분에 다소 수월하게 접근 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어떻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촬영을 하셨나요? 양) 야쿠자를 처음 찍게 된 신주쿠 가부키초, 그 곳이 예전에는 가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아주 위험한 동네였어요. 그런데 저에겐 그 동네가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거리에 담배 버리는 사람도 있고, 깡통 차는 사람도 있고. 너무 편했어요. 그래서 가부키초를 혼자 나름대로 찍기 시작했는데, 야쿠자들이 한 서너명이서 걸어오는데 너무 찍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아무리제가 겁이 없다 해도 망설여지더라고요. 못 찍었어요. 말도 못 붙이고…. 그렇게 그냥 집에 갔는데 잠을 못 잘 정도로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꼭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다시 가부키초를 찾아갔죠. 또 그 야쿠자들을 만났는데, 내가 여기서 한 대 맞더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가서 말을 걸었어요. 나는 사진 전공하는 학생인데 한 번만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무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고, 찍으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급하게 학교로 뛰어가서 암실에서 인화해서 갖다 줬어요. 그랬더니 마음에 들었나 봐요. 잘 찍는다고 하면서 우리 사무실로 놀러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놀러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죠. 야쿠자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거리도 많은데요. 예를 들어, 잘린 손가락은 버립니까? 물어보면 안 버린대요. 그럼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싱크대 열어보면 손가락이 있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고…. 점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야쿠자들의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가 사진을 찍게 됐죠. 일본 사람들이야 야쿠자를 보면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데, 오히려 저는 외국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A)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양) 뭐 싸우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어요. 제가 인상이 워낙 안 좋아서 그런가(웃음). 그런데 한 번은 경찰하고 트러블이 있었는데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필름을 버려야 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죠…. A)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굉장히 자극적인데요. 이에 반해 사랑하는 이(사모님)를 담은 사진집 ‘사쿠라’ 시리즈는 굉장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워서 조금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양) 보통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사랑한다는 말 안 하잖아요? 이 시리즈는 제가 3년에 한 번씩 아내에게 하는 애정표현이에요. A) 그렇다면 사쿠라 시리즈는 보통 3년의 주기를 가지고 진행하시나요? 양) 정확히 3년의 주기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3년에 한 번씩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A) 작가님의 사진의 특징은 방금 이야기한 사쿠라 시리즈도 그렇고, 이번 전시인 청춘길일도 그렇고 보통 주변의 일반적인 인물을 통해 영감을 받아 작업을 진행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주제로부터 영감을 얻으시나요? 양) 축제 같은걸 하면 포장마차가 쭉 들어서잖아요? 그것도 야쿠자들이 하는 건데, 요즘엔 거기에 있는 일반인들과 야쿠자들을 찍고 있어요. A) 작가님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말레이시아, 콩고, 필리핀을 배경으로 촬영하신 사진도 보았는데, 그 곳엔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양) 그곳엔 사진 찍으러 간 게 아니라 다른 일, 진짜 노동을 하러 갔어요. 일본인들은 정글이나 위험한 환경을 무서워해서 갈 사람이 없기에 제가 가게 됐어요. 그래서 일 하지 않는 시간에 틈틈이 사진을 찍게 된거죠. A) 콩고는 흔히 가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닌데,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양) 깜짝 놀랐어요. 처음 가자마자 입국 심사를 하는데 사람이 없는 거에요. 한참 기다리면 그제서야 공항 관계자가 나와서 돈을 달라고 요구해요. 돈이 없다고 하면 또 한참을 기다리고, 조금 주면 또 다른 게이트로 데려가서 또 돈을 요구하고,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공항을 벗어났는데 너무 편안한 거에요. 사람들도 자유로워 보이고. 이 사람들 진짜 편하게 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A)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예술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감동적인 예술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여건 및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 하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일본 도쿄의 ‘젠 포토 갤러리’, 프랑스 파리의 ‘인 바트윈 아트 갤러리’ 소속작가이긴 하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생계로 일본에서 일용직 노무자로 생활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란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양) 희열이죠. 힘들어도 그냥 맘에 드는 사진 하나씩 찍으면 모든 힘든 일들이 다 날아가버려요. 하얗게. A) 혹시 앞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이외에도 다른 영역으로도 범주를 넓혀가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양) 네. 이제는 싸움에서 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아직은 그래도 일하는 거 보면 일본 젊은 사람들 보다는 잘하거든요. 아직 에너지가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좀 더 찍고, 나중에 체력이 달리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죠. A) 국내에서도 작가님을 좀 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앞으로 국내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양) 일단 이번 전시가 끝나면 아무 전시 스케줄이 없으니까 일본으로 돌아가 막노동을 다시 해야죠. 그러면서 사진도 계속 찍고. 그러다 또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요. 원래는 한국에서 전시를 할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걸 듣고, 느끼면서 한국에서도 작업을 많이 해야되겠다고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도 뭔가를 같이 해보자 했을 때 일본 작품밖에 없으면 얘기가 안된다고 그런식으로 조언도 해주더라구요. 사실 그런거 신경 안쓰고 나 혼자 하고싶은거 하려고 했는데 조금은 생각도 해봐야 하겠더라구요.(웃음) 결혼도 했고. A) 모 인터뷰에서 앞으로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한국에서도 “고향, 엿장수를 찍고 싶다”고 하셨던 내용을 봤는데, 꼭 엿장수를 찍고 싶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양) 어릴 때 엿을 한 번 사먹으려면 돈이 있나요? 그래서 들판에 가면 비료 포대 있죠? 그걸 열 장을 가져가야만 엿을 조금 떼줘요. 그렇게 어렵게 구한 엿이여서 그런지 엿이라는 게 굉장히 애틋한 간식이고 저에게는 큰 추억이 된 거죠. A) 사진작가 양승우를 한 문장으로 정의 또는 정리 할 수 있을까요? 양) ‘영화’요. 저는 그냥 영화 편집 하듯이하면서 지금까지 사진을 해왔거든요. 혼자 할 수 있는 영화인거죠. 물론 진짜 영화는 혼자는 제작할 수 없지만 사진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담고 모든 내용을 직접 구성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영화라 할 수 있는거죠. A)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및 어떠한 작가로 남고 싶은지 ASAP Journal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양) 작가라고 불려지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대우해주는 이런 건 불편해요. 그냥 저 친구 또 사진 찍네? 또는 ‘찍새’ 그런 식으로 편하고 격식 없이…. 예쁘게 포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처럼 양승우 작가는 꾸밈 없고, 가감 없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거칠고 투박한 그의 사진 이면에는 좀 더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이 녹아 있으며, 원초적인 욕구와 감정이 포장되지 않은 상태의 ‘날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날 것, 단편적인 면만 본다면 불편하고 껄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날 것은 오히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주 처음의 모습이 보이기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사진이라는 끈을 놓지 못한다는 그의 단호한 어조에서는 그의 사진 세계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데요. 다가올 시리즈에서는 또 어떠한 사진들로 우리에게 영감을 줄 지 기대가 됩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양승우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청춘길일’을 비롯한 더 많은 사진 작품은 양승우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해보세요.
융통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1박2일 새PD
윤시윤(본명 윤동구)의 고향 순천으로 다같이 떠난 1박2일팀! 1박2일답게 게임을 해서 저녁으로 전라도 밥상을 먹을 수 있음. ★★★ 게임 START ★★★ 한명만 죽이면 되는 게임인데 연속해서 세명이나 죽이며 열심히 하는 윤시윤.. (데프콘, 차태현, 김종민 OUT) 한명만 죽이랬더니 세명이나 죽여서 저녁을 못먹게된 멤버들은 승질이 남. 부자슈퍼에 모인 멤버 중 살아 있던 정준영한테 윤시윤 도착하면 죽이자고 함ㅠㅠ 그래서 미션 끝내고 부자슈퍼에 도착한 윤시윤은 저격당해 OUT 알고보니 제작진이 윤시윤에게만 몰래 3명을 죽이라는 미션을 내려줬음. 윤시윤을 쏜 멤버들은 엄청 미안해함ㅠㅠ 그리고 부자슈퍼에서 나오는 외할머님과 외할아버지를 만난 윤시윤! (윤시윤은 어릴때 이곳으로 와서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라서 엄청 애틋하다고 해요) 다같이 윤시윤이 외가댁에서 자라온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분위기가 훈훈해짐 그러나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애지중지 키운 손자가 오랜만에 자신이 만든 저녁을 못먹는다고 하니 너무 속상하신 할머님ㅠㅠ 할머님이 혼자서 잔뜩 준비한 저녁 상... 기정떡 서대회무침 문어숙회 생선조림 해파리냉채 직접 만드신 도토리묵 부추전 김치 윤시윤이 특히 좋아한다는 장어국까지.. 이 많은걸 게임에서 이긴 정준영 혼자 먹게 되는데, 맛 표현은 먹지도 않는 윤시윤이 해야 함;;;;;;;;; (피디가 시킴) 보다못한 할아버님도 화를 내시고, 혼자 먹는 정준영도 너무 민망한 상황... 입짧은 정준영은 많이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음식이 다 남아버림. 제작진이 궁여지책으로 게임에서 이기면 한그릇 준다고 함. 할머님은 그릇에 음식을 산처럼 담으시는데 새PD가 "그거 다 먹어야 돼요!!!!"하고 으름장을 놓자 어쩔수없이 음식을 덜고, 죄다 섞인 한그릇을 윤시윤에게 줌. 자막은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 이지만 오랜만에 손주 먹이려고 열심히 만든 밥을 저렇게 먹이니 맘이 좋지 않으신 표정.. 결국 PD가 안볼때 멤버들이 한두개 슬쩍 훔쳐먹고, 정준영이 먹고 남은 음식은 스태프와 PD만 먹음.. (모자쓴 사람이 새PD) 정말 그렇게 오랜만에 간 순천에서 외할머님과 외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끝! 재미도 좋지만 너무 맘이 안좋네요.. 오랜만에 서울에서 손자온다고 엄청 준비하셨을텐데 남은 음식 치우시면서 배 굶고가는 손자 생각에 많이 속상하셨을것 같아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이쯤에서 다시보는 북괴 전투기전력
※ 훈련기 전용버전 제외 자료출처: Flightglobal.com (2022 WORLD AIR FORCES) MiG-15 보유량: 4기 자폭공격 겸 예비 겸 훈련용으로 사용 MiG-17(F-5) 계열 보유량: 106기 북괴 제2 주력기, MiG-15에서 동체늘리고 애프터버너 탑재 MiG-19(F-6) 계열 보유량: 97기 북괴 제3 주력기, 소련 제트전투기 최초로 수평비행에서 음속돌파하여 슈퍼미그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고성능전투기로 취급받음 (1955년에). 1980년대 이후 이 전투기타고 한국으로 귀순한 사례가 2번 있음. MiG-21(F-7) 계열 보유량: 146기 북괴 제1 주력기, 원래 200기 가까이 보유했는데 기령초과, 부품동류전환, 비전투손실 등으로 조져먹고 현재 MiG-21 본판과 중국제 청두 F-7 포함해서 146기 가지고있는데 물량 중 대부분은 중국제 F-7임. 북괴 유일의 한국전쟁 이후 초음속전투기 격추기록 보유중(EC-121사건) Su-7 보유량: 18기 북괴 유일의 수호이 전투기, MiG-21이랑 MiG-19를 섞어놓고 길쭉하게 만든 듯한 기괴한 모습임. 운용부대는 알려진게 없어서 예비물자로 놔둔 듯하고 실제로 구글어스로 봐도 방현비행장(방현비행기공장 있음), 온천비행장, 순천비행장 등 여기저기 한 두놈씩 있었다 사라졌다 하는거보면 정기적으로 오버홀이나 관리는 하는 모양. Su-25 계열 보유량: 34기 북한 유일의 공격기, 전량 평양 동북쪽 순천시의 순천비행장에 주둔중인 제55 금성 근위 항공련대에 있고, 주둔목적은 평양방어 시 MiG-29가 공중우세를 유지하면 그 틈에 Su-25를 CAS용으로 밀어넣어서 한미연합군 기동부대의 진격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보임. 그게 되겠냐만은 MiG-23 계열 보유량: 56기 전량 평양 서북단에 위치한 북창군의 북창비행장에 주둔중인 제60 항공련대에 배치되어있고, 특이하게 고화질 전체샷이나 비행영상이 요즘에 잘 안 나오는데, 알다시피 주체톰캣이라 가변익을 차용해서 정비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잘 안 띄우는 것으로 추정 MiG-29 계열 보유량: 35기 Su-25와 마찬가지로 전량 제55 금성 근위 항공련대에 배치되어 평양제공권 확보를 목적으로 운용중, 러시아랑 맺은 유지보수계약에 따라 글래스콕핏 등으로 개량되고 정기적으로 관리받고있음. 물론 실 성능은 KF-16한테도 못 미치고 멋진 훈련이 아니라 열병식때 네온싸인달고 날라다니는게 전부지만 아마 대북제재 + 비행기 살 돈 없음 + 비행기 사도 인프라 구축할 돈 없음 + 유지할 돈 없음 환장의 상태인 북괴공군에서 적어도 2040년대까진 주력으로 쓸 확률이 높아 보임. 군사력에 그 누구보다도 GDP를 쏟아부었지만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실현중이신...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