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관적 타당성'이라는 말로 포장한 당신의 견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거짓자아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환상을 지탱하고자 남을 비난하고, 거기서 맛보는 얄팍한 우월감으로 불안을 잠재운다. 잠시의 안도감을 얻기 위해 진정한 삶의 목표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이 아닌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바로 당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잊지 마라."세상은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은, 세상이 당신의 의견을 그대로 비친다는 뜻이다.

모든 갈등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보통 인간관계가 싹트는 과정은 이렇다. 당신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친밀감은 점점 깊어진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대가 당신이 전혀 동조할 수 없는 의견과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서로 옳다고 으르렁대는 전쟁이 시작된다. 불행의 긴 터널로 들어서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친밀감이 깊은 만큼 의견차에서 느끼는 상처는 더 크다. 때로는 버리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때 잠시 몸을 숨겼던 거짓자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옳아. 내 방식만이 유일해. 나를 진짜 사랑한다면 네가 양보해야 해." 그렇다고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서로 옳다는 주장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두 사람은 자기주장에 집착하며 팽팽히 맞선다. 거짓자아에게 복종은 패배와 치욕과 같다.
만약 이 시나리오에 공감한다면, 옳다고 우기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 생각처럼 다른 사람의 견해도 타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똑같은 가치의 견해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누가 옳고 그른지 굳이 평가하려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갈등상황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옳다고 인정받는 것인가 행복해지는 것인가?" 당신은 둘 간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다름 사람을 원망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그것만으로도 분노와 적대감의 늪에 빠진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 분노는 영혼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린다. 분노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면 할수록 당신은 상처를 입힌 사람과 더 깊이 연결된다. 분노는 행동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세상의 불의에 맞서고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분노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착하며, 가치를 둔 일에 확고한 믿음을 보인다. 손댈 수 없는 과거과 바로잡을 수 있는 현재를 구별할 줄 안다. 분노를 합리화하고 싶을 때마다 "어떤 문제든 의식 차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리라. 의로움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분노에 불을 붙이고 보다 깊은 반목을 초래할 뿐이다.
※ 위 컨텐츠는 《디팩 초프라의 완전한 행복》에서 발췌·편집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