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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현아가 될 수 있었던 여태까지의 현아

지금의 10대들은 약간 가물가물할 시절에 현아는 원더걸스로 데뷔했었다. 그 유명한 ‘텔미’의 뮤직비디오까지 찍어놓고 활동을 중단한 건 이제와서 생각해도 아쉬운 기회였다.
물론 지금의 현아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현 세대의 섹시퀸이다. 이제는 ‘와이 소 론리’를 외치는 원더걸스와 섹시퀸 현아의 조합은 신기할 정도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현아는 우리 생각보다 더 열심히 소처럼 일해 왔다. 화려하고 섹시한, 큰 고민 없이 잘 놀기만 할 것 같은 이미지지만 생각보다 철저한 자기객관화가 된 노력파 가수다.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선택해왔다. 누구나 탐낼법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캐스팅을 거듭 거절했듯이 말이다.

#포미닛 현아

원더걸스의 꼬리표가 단단히도 매달려 있었던 현아에게 포미닛으로의 새 출발은 큰 부담이었을 듯 했다. 심지어는 팀이 ‘현아 걸그룹’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포미닛만의 캐릭터를 담은 ‘핫이슈’, ‘뮤직’ 등을 연달아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랐다.
물론 이 안에서 현아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팀을 견인하는 퍼포머로 화려하게 떠올랐고 포미닛은 해체 직전까지 ‘이름이 뭐예요’, ‘미쳐’, ‘싫어’ 등 선명한 팀 색깔을 어필하며 에너지를 자랑하는 걸그룹으로 활약해왔다.

#트러블메이커 현아

현아에게 또 한 번의 대박을 터트려준 프로젝트 활동이다. (구)비스트 장현승과 함께 커플 호흡을 맞췄던 트러블메이커는 1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프로젝트 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웬만한 정규 팀들의 성적을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하며 현아에게 섹시퀸 왕관을 씌워줬다.

#솔로 현아

물론 가장 중요한 게 솔로 활동이다. 이효리, 보아 이후 독보적인 여성 솔로 가수의 공백이 길어진 사이 수많은 걸그룹 원톱들이 솔로 출격에 나섰는데 그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섹시퀸 타이틀을 거머쥔 게 바로 현아다.
운이라고만 보기엔 성적이 꾸준히 잘났다. 적절한 콘셉트 설정과 뛰어난 곡 소화력으로 첫 솔로곡 ‘체인지’부터 ‘버블팝’, ‘아이스크림’, ‘빨개요’, ‘잘나가서 그래’까지 다 잘됐다. 과감한 콘셉트였기에 구설수도 많았지만 일관성 있게 캐릭터를 고수했는데 결국은 성공할 운이었나보다.
하다못해 그냥 출연한 남의 뮤직비디오마저 ‘강남스타일’이었고, 싸이 열풍 덕분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 발매한 ‘오빤 딱 내 스타일’은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 이은 역대 유튜브 K팝 뮤직비디오 조회 수 3위에 해당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6억 4천 600만 뷰다. 이 정도면 뭘 해도 다 터지는 사기캐릭터인건가 싶다.
그렇다면 현아 뮤직비디오 역대 조회 수 베스트5는 어떤 작품일까?
(2016년 7월 25일 기준)
'오빤 딱 내 스타일' 646,166,256회
'버블팝' 112,894,683회
'아이스크림' 87,986,977회
'미쳐' 66,354,949회
'트러블메이커' 65,005,416회
늘 중요한 앨범이었지만 현아는 이제 또 한 번 중요한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컴백은 포미닛이 공식적으로 해체한 뒤의 첫 솔로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진 돌아갈 팀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혼자서 하는 새로운 시작이니 마음가짐이 새로울 법도 하다.
수동적인 섹시가 아닌 당당하고 도발적인 자신만의 매력으로 매번 새로운 볼거리를 주는 현아였기에 이번 컴백 역시 대중의 기대가 크다.
“현아가 그 동안 섹시라는 큰 콘셉트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는데 이번 컴백은 가장 현아다운 변신이라고 생각됩니다. 신곡 ‘어때?’는 재킷, 뮤비, 무대에서 각각 180도 달라지는 현아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곡입니다. 활동 10년 차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막강해지는 섹시퀸 현아의 내공을 많이많이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다음달 1일 0시에 공개되는 신곡 ‘어때?’는 우리가 기대해왔던 현아의 카리스마가 더 더 더 진하게 담긴 곡이다. 물론 저번 같은 섹시는 아니다. 이번엔 순수함과 관능적 매력이 공존하는 무려 ‘퓨어 섹시’라고 하니 이 이질적인 표현이 현아를 만나 어떻게 표현될 지가 관전 포인트다.
사진 =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캡처, 뉴스에이드DB, 원더걸스· 현아 앨범 재킷
강효진기자 bestest@news-ade.com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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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연예인 드문거 같아요 멋있네요
현아는 누가 데려가나
@mirangmoon1 공감. 너무 좋아요
얘를보면 끼는 타고 난다는 말이 실감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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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재까지 약 20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 제대 이후 한국에 사는게 재미가 없어서 일본으로 건너가셨다고 하셨는데, 왜 하필 일본을 가게 되신 건가요? 양) 일단 가깝고 얼굴에 이방인 티가 잘 안 나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게 됐습니다. A) 언어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로 처음엔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양)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한 번은 자전거보관소에 쭉 세워진 자전거를 막 발로 차고 그랬어요. 경찰 신고를 받고 파출소에 갔는데 순경이 와서 훈계를 하면 권총을 뺏어버릴 정도로 함부로 행동 한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세월이 지나니까 없어지더라고요. A) 도일 직후부터 2006년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전기 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사진을 공부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도쿄 공예대학은 오랜 전통과 함께 일본 내에서도 사진교육의 주력 학교로 입학 자체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입학하게 되었고 어떻게 10년이란 시간 동안 사진을 공부 하시게 됐나요? 양) 처음엔 사진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어학교는 비자가 2년밖에 되지 않으니까 비자 문제도 해결할 겸 원서만 내면 입학을 허가해주는 전문학교에 다니게 됐죠. 그게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사진학교였어요. 그런데 수업을 들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어 공예 대학교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게도 합격해 대학원까지 마치게 됐습니다. A) 10년이라는 시간이 상당히 긴 시간인데요. 그 시간 동안 학비라든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굉장히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계속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나요? 양) 학생 때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의외로 장학금 제도도 있고 상금도 많이 타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지금보다 학생때가 돈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그 때야 계속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죠. A) 지난 2005년에는 코토부키초의 일용직 노동자와 노숙자 ‘곤타’씨를 비롯한 3-4개의 테마를 작품으로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창간한 잡지 ‘데이스 재팬(Days Japan)’에서 주관하는 일본 국내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들을 사진에 담게 되셨나요? 양) 같은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그런 분들을 보면 저랑 비슷한, 뭐라 해야하죠? 느낌이 비슷해요. A) 동질감이라든가 어떤 유대감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양) 네. 나는 항상 그걸 냄새라고 표현해요. A) 이런 작업 과정에서는 실제 노숙도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이에 대한 에피소드와 곤타 씨는 어떠한 사람인지 말씀해 주세요. 양) 에피소드 많았죠. 예를 들어 추운 겨울 날이 되면 곤타가 내 옆에 자고, 모르는 사람도 같이 자곤 했는데 추우니까 막 서로 몸이 딱 붙어서 자잖아요. 그러면 이 같은 것도 막 옮고, 가려워서 힘들기도 하고.. 날씨가 훤하게 밝을 때까지도 둘이 껴안고 자는 일도 있었어요. 그리고 곤타는 지방 출신의 홈리스인데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셨나봐요. 도쿄에 14살에 올라왔는데 일하던 공장이 도산하는바람에 그때부터 홈리스 생활을 하게 됐죠. 곤타랑은 2-3년 동안은 거의 일주일에 2-3일은 같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원래 나라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보호 시설에 있었어요. 그 곳에서는 한 달에 한 150만원정도 나오거든요. 그런데 중간에서 소개하는 업자들이 다 떼어먹고 결국 얼마 남지 않게 되요. 그런 문제도 있고, 그 시설은 겨울에도 따뜻하고 좋긴하지만 곤타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통행금지도 있고 행동에 제한이 있으니까. 자기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더라고요. A) 곤타씨를 촬영할 때 어떤 점이 가장 재미있거나 인상깊었나요? 양) 처음엔 옆에서 보고 있는데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뭐 어쨌든 계속 찍긴 찍고 있었어요. 사실 정리해서 책으로 낼 마음까지는 크게 없었죠. 그렇게 계속해서 찍고 있는데, 어느 날은 곤타가 빠찡코 앞에서 자고 있었어요. 밤이 지나고 가게 오픈 시간이 되니 가게 직원들이 나와서 곤타를 쫓아내더라구요. 날씨 환해졌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라는 식으로 쫓아내니까 곤타가 일어나면서 짧은 시를 하나 짓더라구요. 뜻이 뭐냐면 ‘자는 것이 좋은데 바보 같은 세상 사람들은 왜 일어나서 일을 하려고 하나?’라는 내용이었어요. 이거 재미있다 싶어서 곤타가 시를 쓸 때마다 달라고 해서 모아놨어요. 이후로 만날 때 마다 계속 시를 써서 주더라고요. 근데 그 내용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하고 곤타의 시를 같이 엮어서 한 콘테스트에 냈는데 대상을 받아서 책을 공짜로 내줬어요. 그게 제 첫 번째 포토북이에요. A) 그럼 곤타씨는 지금도 계속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요? 양) 아뇨, 곤타는 안타깝게도 지금 당뇨병에 걸려서 보호시설 안으로 들어갔어요. A)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은 하고 있나요? 양) 네. 계속 연락 하고 있어요. 전화도 계속 오고. A) 다큐멘터리 사진은 설정된 모습이 아니기에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가 정말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은 촬영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이미지를 남기셨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양)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오늘 누군가를 찍어야겠다, 예를 들어 곤타를 찍겠다 마음을 먹으면 하루 종일 계속 따라다녀요. 대화를 하든 안 하든. 뭐 물론 대화 하면서 놀 때도 있고…. 자기 볼 일 보고 있으면 옆에서 그냥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야 할 순간이 보일 때마다 셔터를 눌렀어요. 딱 느낌이 오잖아요? 얼굴 표정이 재밌다거나, 특이한 행동을 한다거나…. A)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우리나라 조직 폭력배, 일본의 야쿠자 집단을 담은 사진집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친구들 덕분에 다소 수월하게 접근 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어떻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촬영을 하셨나요? 양) 야쿠자를 처음 찍게 된 신주쿠 가부키초, 그 곳이 예전에는 가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아주 위험한 동네였어요. 그런데 저에겐 그 동네가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거리에 담배 버리는 사람도 있고, 깡통 차는 사람도 있고. 너무 편했어요. 그래서 가부키초를 혼자 나름대로 찍기 시작했는데, 야쿠자들이 한 서너명이서 걸어오는데 너무 찍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아무리제가 겁이 없다 해도 망설여지더라고요. 못 찍었어요. 말도 못 붙이고…. 그렇게 그냥 집에 갔는데 잠을 못 잘 정도로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꼭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다시 가부키초를 찾아갔죠. 또 그 야쿠자들을 만났는데, 내가 여기서 한 대 맞더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가서 말을 걸었어요. 나는 사진 전공하는 학생인데 한 번만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무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고, 찍으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급하게 학교로 뛰어가서 암실에서 인화해서 갖다 줬어요. 그랬더니 마음에 들었나 봐요. 잘 찍는다고 하면서 우리 사무실로 놀러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놀러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죠. 야쿠자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거리도 많은데요. 예를 들어, 잘린 손가락은 버립니까? 물어보면 안 버린대요. 그럼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싱크대 열어보면 손가락이 있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고…. 점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야쿠자들의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가 사진을 찍게 됐죠. 일본 사람들이야 야쿠자를 보면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데, 오히려 저는 외국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A)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양) 뭐 싸우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어요. 제가 인상이 워낙 안 좋아서 그런가(웃음). 그런데 한 번은 경찰하고 트러블이 있었는데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필름을 버려야 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죠…. A)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굉장히 자극적인데요. 이에 반해 사랑하는 이(사모님)를 담은 사진집 ‘사쿠라’ 시리즈는 굉장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워서 조금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양) 보통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사랑한다는 말 안 하잖아요? 이 시리즈는 제가 3년에 한 번씩 아내에게 하는 애정표현이에요. A) 그렇다면 사쿠라 시리즈는 보통 3년의 주기를 가지고 진행하시나요? 양) 정확히 3년의 주기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3년에 한 번씩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A) 작가님의 사진의 특징은 방금 이야기한 사쿠라 시리즈도 그렇고, 이번 전시인 청춘길일도 그렇고 보통 주변의 일반적인 인물을 통해 영감을 받아 작업을 진행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주제로부터 영감을 얻으시나요? 양) 축제 같은걸 하면 포장마차가 쭉 들어서잖아요? 그것도 야쿠자들이 하는 건데, 요즘엔 거기에 있는 일반인들과 야쿠자들을 찍고 있어요. A) 작가님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말레이시아, 콩고, 필리핀을 배경으로 촬영하신 사진도 보았는데, 그 곳엔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양) 그곳엔 사진 찍으러 간 게 아니라 다른 일, 진짜 노동을 하러 갔어요. 일본인들은 정글이나 위험한 환경을 무서워해서 갈 사람이 없기에 제가 가게 됐어요. 그래서 일 하지 않는 시간에 틈틈이 사진을 찍게 된거죠. A) 콩고는 흔히 가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닌데,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양) 깜짝 놀랐어요. 처음 가자마자 입국 심사를 하는데 사람이 없는 거에요. 한참 기다리면 그제서야 공항 관계자가 나와서 돈을 달라고 요구해요. 돈이 없다고 하면 또 한참을 기다리고, 조금 주면 또 다른 게이트로 데려가서 또 돈을 요구하고,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공항을 벗어났는데 너무 편안한 거에요. 사람들도 자유로워 보이고. 이 사람들 진짜 편하게 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A)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예술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감동적인 예술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여건 및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 하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일본 도쿄의 ‘젠 포토 갤러리’, 프랑스 파리의 ‘인 바트윈 아트 갤러리’ 소속작가이긴 하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생계로 일본에서 일용직 노무자로 생활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란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양) 희열이죠. 힘들어도 그냥 맘에 드는 사진 하나씩 찍으면 모든 힘든 일들이 다 날아가버려요. 하얗게. A) 혹시 앞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이외에도 다른 영역으로도 범주를 넓혀가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양) 네. 이제는 싸움에서 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아직은 그래도 일하는 거 보면 일본 젊은 사람들 보다는 잘하거든요. 아직 에너지가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좀 더 찍고, 나중에 체력이 달리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죠. A) 국내에서도 작가님을 좀 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앞으로 국내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양) 일단 이번 전시가 끝나면 아무 전시 스케줄이 없으니까 일본으로 돌아가 막노동을 다시 해야죠. 그러면서 사진도 계속 찍고. 그러다 또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요. 원래는 한국에서 전시를 할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걸 듣고, 느끼면서 한국에서도 작업을 많이 해야되겠다고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도 뭔가를 같이 해보자 했을 때 일본 작품밖에 없으면 얘기가 안된다고 그런식으로 조언도 해주더라구요. 사실 그런거 신경 안쓰고 나 혼자 하고싶은거 하려고 했는데 조금은 생각도 해봐야 하겠더라구요.(웃음) 결혼도 했고. A) 모 인터뷰에서 앞으로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한국에서도 “고향, 엿장수를 찍고 싶다”고 하셨던 내용을 봤는데, 꼭 엿장수를 찍고 싶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양) 어릴 때 엿을 한 번 사먹으려면 돈이 있나요? 그래서 들판에 가면 비료 포대 있죠? 그걸 열 장을 가져가야만 엿을 조금 떼줘요. 그렇게 어렵게 구한 엿이여서 그런지 엿이라는 게 굉장히 애틋한 간식이고 저에게는 큰 추억이 된 거죠. A) 사진작가 양승우를 한 문장으로 정의 또는 정리 할 수 있을까요? 양) ‘영화’요. 저는 그냥 영화 편집 하듯이하면서 지금까지 사진을 해왔거든요. 혼자 할 수 있는 영화인거죠. 물론 진짜 영화는 혼자는 제작할 수 없지만 사진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담고 모든 내용을 직접 구성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영화라 할 수 있는거죠. A)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및 어떠한 작가로 남고 싶은지 ASAP Journal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양) 작가라고 불려지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대우해주는 이런 건 불편해요. 그냥 저 친구 또 사진 찍네? 또는 ‘찍새’ 그런 식으로 편하고 격식 없이…. 예쁘게 포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처럼 양승우 작가는 꾸밈 없고, 가감 없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거칠고 투박한 그의 사진 이면에는 좀 더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이 녹아 있으며, 원초적인 욕구와 감정이 포장되지 않은 상태의 ‘날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날 것, 단편적인 면만 본다면 불편하고 껄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날 것은 오히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주 처음의 모습이 보이기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사진이라는 끈을 놓지 못한다는 그의 단호한 어조에서는 그의 사진 세계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데요. 다가올 시리즈에서는 또 어떠한 사진들로 우리에게 영감을 줄 지 기대가 됩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양승우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청춘길일’을 비롯한 더 많은 사진 작품은 양승우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해보세요.
남자배우들 25살때 비쥬얼
정우성 73년생/45세  1997년 비트 (25세) 이정재 72/46 1995 모래시계 (24) 송승헌 76/42  2000 가을동화 (25) 고수 77/ 41  2001 피아노 (25) 원빈 77/41  2001 킬러들의 수다 (25) 소지섭 77/41  2002 유리구두 (26) 하정우 78/40   2002 마들렌(25) 공유 79/39  2004 s다이어리 (26) 조승우 80/38  2003 클래식 (24) 강동원 빠른81/38  2004 늑대의 유혹 (25) 조인성 81/37  2004 발리에서 생긴 일 (24) 이동욱 81/37  2005 마이걸 (25) 이준기 82/36   2005 왕의 남자 (24) 현빈 82/36  2005 내 이름은 김삼순 (24) 이제훈,연우진 84/34  2009 친구사이 (26) 송중기 85/33  2009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5) 유아인 86/32   2010 성균관 스캔들 (25) 윤시윤 86/32   2010 제빵왕 김탁구 (25) 이승기 87/31  2011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25)  이민호 87/31  2011 시티헌터 (25) 지창욱 87/31  2011 웃어라 동해야 (25) 주원 87/31   2012 각시탈 (26)  김수현 88/30  2011 드림하이 (25) 김우빈,이종석 89/29   2013 학교2013 (25) 강하늘 90/28   2014 미생 (25) 유승호 93/25   2017 군주 (25) 박보검 93/25   2016 구르미 그린 달빛 (24) 서강준 93/25  2016 치즈 인 더 트랩 (24) 이현우 93/25  2017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25) 남주혁 빠른94/25   2017 역도 요정 김복주 (25)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나인뮤지스의 이 무대, 안 본 사람 없기를
섹시 걸그룹에는 여러 팀들이 있다지만, 대체 불가능한 비주얼로 꼽자면 아마 나인뮤지스가 1등 아닐까 싶다. 평균 신장 170cm가 훌쩍 넘는 훤칠한 기럭지와 조각상 부럽지 않은 몸매, 예쁜 애→예쁜 애→예쁜 애의 순환구조를 만들어주는 미모까지. 여신돌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걸맞은 그룹이 아닐 수 없다. 섹시 퍼포먼스라면 1등 아니면 섭섭할 나인뮤지스의 베스트 퍼포먼스를 꼽아봤다. 이번 주 나인뮤지스A의 출격을 앞두고 미리 예습해보자. 1. ‘돌스’ 실연당한 예쁜 어른 여자 분위기가 무대 전체를 휘감고 있는 노래다. 처연하고 호소력 짙은 멜로디와 길고 예쁜 멤버들의 선이 고운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또한 탈퇴 전 민하에게 ‘나인뮤지스 머리에 꽃 단애’라는 별명을 안겨줬을 만큼 멤버들의 고혹적인 비주얼이 돋보였던 활동이기도 하다. 특히 ‘돌스’ 안무영상은 다이어트를 앞둔 여성들이 들고 있던 음식을 내려놓는데 묘하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암암리에 소문이 나기도 했다. 정규 방송이 아닌 행사 무대에서는 히든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데, 이유애린과 경리의 일명 ‘불장난 댄스’다. 팬들이 촬영한 직캠 자료로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2. ‘건’ ‘빵야빵야’ 쏠 것 같은 강렬한 제목과는 달리 나비처럼 살랑이는 안무가 인상적인 무대다. 길쭉한 팔다리로 펼치는 군무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비주얼을 보여준다. 특히 마네킹 뺨치는 몸매인 만큼 다채로운 무대 코스튬을 보는 재미도 있는데, ‘건’에서는 바니걸 스타일의 머리띠를 착용한 ‘엠카운트다운’ 2013.10.31. 무대를 추천한다. 3. ‘글루’ 나인뮤지스의 9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다. 인원이 많다보니 한 사람씩 대형을 바꾸고 길쭉한 팔다리만 펼쳐도 무대에서는 화려한 장식처럼 보이는 장점이 있다. 특히 사선으로 시작해 절도 있게 대형이 겹쳐지는 오프닝이 눈길을 끈다. 동작들이 아주 빠르게 추는 춤이 아닌데도 시선을 놓기 어려울 만큼 보는 재미가 있다. 4. ‘드라마’ 노래 제목처럼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가진 가사에 맞춘 퍼포먼스가 특징이다. 짝사랑하는 남자와 절친한 친구가 이어질 것 같은 상황에 고뇌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웬만한 걸그룹들에 비해 노출이 심한 복장이 아님에도 눕는 퍼포먼스에서 경고가 들어왔다던 바로 그 무대! ‘이게 뭐가 문제야?’ 하고 자체 재심의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5. ‘성인식’ 많은 걸그룹들이 ‘성인식’ 커버를 했다지만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지난 해 ‘엠카운트다운’에서 보여준 스페셜 스테이지는 새빨간 원피스부터 레드립 메이크업, 흑발, 하이힐, 나른한 보컬까지 완벽한 무대로 화제를 모았다. 나인뮤지스이기에 더 야릇하고 매혹적인 비주얼을 만날 수 있는 무대니 혹시 아직도 못 봤다면 강력 추천한다. 강효진기자 bestest@news-ade.com
[친절한 랭킹씨] 1년 동안 7,000억원 벌었다…수입 1위 셀럽은 누구?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수많은 셀러브리티들. 그들의 인지도만큼 벌어들이는 수입의 규모도 매우 클 텐데요. 그중에서도 지난 일 년 동안 가장 많은 돈을 번 셀럽은 누구일까요? 20위부터 1위까지 알아보겠습니다. ※ 출처: 포브스. 2019년 6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세금 및 수수료 지급 전 수입 기준 운동선수, 요리사, 작가, 방송인, 배우,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의 유명인들이 11위~20위 사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20위를 차지한 조나스 브라더스는 한 명이 아니라 형제들인데요. 여러 명이면 반칙 아닌가요? 이어 톱 10입니다. 드웨인 존슨은 영화배우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전체 셀럽 중에서는 10위였습니다. 스포츠스타 중 가장 높은 수입을 얻은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가 3위. 2위는 래퍼 겸 프로듀서 카니예 웨스트가 차지했는데요. 이렇게 쟁쟁한 셀럽들을 모두 제친 1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압도적인 수입으로 1위를 차지한 셀러브리티는 모델 겸 사업가 카일리 제너입니다. 올해 초 자신의 뷰티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스’의 지분 51%를 미국 화장품기업 ‘코티’에 6억 달러를 받고 넘긴 게 1위의 원동력이 됐지요. ---------- 연간 수입 20위 안에 드는 글로벌 유명인을 친절한 랭킹씨가 살펴봤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셀럽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던데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글·구성 : 이석희 기자 seo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당신이 한번도 못봤을 역사 속 사진들 3탄
이번엔 3탄~~~~ (1탄: https://www.vingle.net/posts/1703659 ) (2탄: https://www.vingle.net/posts/1709296 ) 윈스턴 처칠의 젊은 날의 모습, 1895 미..미남이시네융! 에펠탑 페인트칠 중, 1932 헉 ㅠㅠ 완전 무섭 ㅠㅠ 로버트 W. 우드,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이 베를린에서 연 미국 물리학회에 참여하기 위해 첫번째 줄에 앉아있다. 1931 아인슈타인 뒤에 여성분 카메라 보고 웃고 계심ㅋㅋㅋㅋ 노르웨이에 처음으로 등장한 바나나, 1905 오.. 새로운 과일을 접하는건 어떤 느낌일까융? 마운트 러스모어 내셔널 메모리얼을 조각하고 있는 모습, 1930 ??????? 안전장치가 없네요???? 니콜라이 2세가 딸에게 담배를 허용하는 모습 ????????????????????????????????????????? 딱봐도 미성년자인데!!! 영화 7년만의 외출을 촬영하고 있는 마릴린 먼로 앗 많은 사람들이 아는 마릴린 먼로의 유명 사진이 여기서..! 밥 딜런, 믹 재거, 키스 리처드가 믹 재거의 29번째 생일 파티에서 노는 모습 오옷 뭔가 히피히피 ! 빈티지 느낌! 단두대에서의 마지막 공개 처형, 1939 윽 ㅠㅠ 죗값을 받는 모습이긴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모습을 보자니 뭔가 아이러니하네용.. 가스실로 나치에게 끌려가는 헝가리 유대인들의 모습 ㅠㅠㅠ 정말 전쟁은 일어나선 안됩니다! 나머지 탄들 모아보기 : https://www.vingle.net/collections/375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