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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들고 독도 방문한 리지! 근데 이게 논란이라네요?

안녕하세요 빙글빙글님들^^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저도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점심 먹고 들어왔는데요 애프터스쿨 리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말씀드려볼까하구요!
20대 중반을 지나며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에 독도를 방문했다는 리지! 정말 예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은가 보더라구요;
SNS에 온갖 욕설도 올라오고 인신공격성 댓글도 엄청나게 올라온다고 하네요;; 정말 기사들 좀 보니까 입에 담기 힘든 말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는듯ㅡㅡ^
사실 제가 엄청난 애국자도 아니고 나라 욕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라 정말 안 좋은 말을 듣고 있는 리지가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ㅜㅜ
조금이나마 리지에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빙글에서라도 외쳐보렵니다! 독도는 우리땅! 우리땅!
빙글빙글님들 리지에 응원 부탁드리구요 그나마 오늘은 덜 더운 것 같은데 오후도 마무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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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하는 인지도 높은 연예인들이 태극기 들고 독도사진 한번 올리면 독도우리땅인거 한방에 알텐데.'라고 생각한적있는데 리지가 이뤄줌... 사이다!👍
멋있다!! 우리나라 그 어떤 여자들보다 개념있고 멋있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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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거늘 어딜 헛소리 찍찍 하고 지랄발광이여 아것들이
멋집니다. 자랑스럽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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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문 대통령에 "말씀 듣고 충격의 도가니"
문 대통령,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연출진 청와대 불러 오찬 "어려움 겪는 우리 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줬고, 용기를 줬다" "특별히 자랑스럽다...영화산업 융성위해 지원 아끼지 않겠다" 격려 文 "제 아내가 준비한 짜파구리도" 농담주고 받으며 화기애애 봉준호 "대통령님 말 조리있게 하셔 충격에 빠졌다…어떻게 하는거에요?" 묻기도 봉준호 감독이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제작진에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려움 겪는 우리 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줬고, 용기를 줬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 봉 감독 등 연출진 20여명을 초대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축하했다. 이날 식사 메뉴에는 영화에 나와 화제를 모은 라면요리 '짜파구리'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영화 기생충이 새계 최고 영화제라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를 얻고, 그리고 또 그 영예의 주인공 되신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를 비롯한 출연진 스텝, 제작사 모두의 성취에 정말 진심으로 축하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오스카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최고 영화제이지만 우리 봉 감독이 핵심 찔렀다시피 로컬 영화제라는 비판이 있었다"며 "우리 기생충이 워낙 빼어나고 봉 감독이 워낙 탁월해서 비영어권 영화라는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최고 영화,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우리 문화 예술이 어느 특정한 일부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우수하고 세계적이란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며 방탄소년단과 한국드라마의 예를 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축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봉준호 감독(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물론 아직까지 문화 예술 산업 분야가 다 저변이 아주 풍부하다거나 두텁다거나 그렇게 말할 순 없을 것"이라며 문화예술계의 불평등 문제를 짚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문화 예술계도 기생충 영화가 보여준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며 "특히 제작현장이나 배급 상영 유통구조에서도 여전히 붙평등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나는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식에 깊이 공감한다"며 "그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을 최고의 국정목표로 삼는데 그게 반대도 많이 있고 속시원하게 금방금방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매우 애가 탄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영화 산업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표준 근로시간제, 주 52시간 등이 지켜지도록, 그점에서도 봉 감독과 제작사가 솔선수범 준수해주었는데 경의를 표하고 그게 선한 의지만 되지 않고 제도화 되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영화 유통 구조에서 있어도 독과점을 막을 스크린 상한제가 빨리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 마디로 영화 산업 융성을 위해 영화 아카데미 지원을 늘리고 확실히 지원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그러나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제 아내가 우리 봉 감독 비롯해 여러분에게 헌정하는 '짜파구리'가 맛보기로 포함돼 있다"며 "함께 유쾌한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봉준호 감독의 선물을 받고 있다. 봉 감독은 각본집과 스토리북을 선물했다.(사진=연합뉴스) 이에 봉 감독도 "영광스럽고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바로 옆에서 대통령님 길게 말씀하는 걸 보면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저나 송강호 선배, 최우식씨 다 스피치라면 한 스피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지금 작품 축하부터 한국대중문화를 거쳐 영화 산업 전반, 그리고 또 짜파구리에 이르기까지 말씀하신 게 거의 시나리오 두 페이지"라며 문 대통령의 말솜씨를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봉 감독의 말에 크게 웃었다. 봉 감독은 "분명히 암기하신 것 같진 않고, 평소 체화된 어떤 이슈에 대한 주제의식이 있기에 줄줄줄 풀어내신 것 같다"며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라고 묻기도 했다. 봉 감독은 "조리있게 정연한 논리 흐름과 완벽한 어휘 선택하시면서 기승전결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며 저는 글쓰는 사람으로서 충격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감탄했다. 끝으로 봉 감독은 "오랜만에 보는 스텝도 있고,우리조차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며 "그런데 영광스럽게 청와대에서 이렇게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좋은 자리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3
게르의 밤은 밤 하늘의 은하수 만큼이나 화려했다. 내부에 나무를 때우는 난로는 장작을 넣었을 땐 반팔에도 땀이날 정도로 더웠지만, 금방 사그라들고 냉기가 게르 안에 퍼진다. 침낭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잠도 제대로 못잤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난로에는 장작도 들어가지만 말린 말똥도 연료로서 태워진다. 태워지면서 은밀하고 묵직 쿱쿱한 냄새는 따스함과 맞바꾼 공정거래였다. 다음날 아침, 길의 윤곽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달리고 달려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한 때는 물에 잠겨있었다고 하고, 몽골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층층이 쌓인 지층이 융기 해서 마치 누군가가 땅에 크레파스로 줄을 그어놓은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원시원한 모습과 계곡 사이로 내려가는 길은 다른 세계..까지는 아니고 다른 동네로 이어져 있는 숨겨진 지름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바닥에 내려가는 길 내내 미끄러짐에 주의해야 했지만 그만큼 내려올 가치가 있었다. 매일 하루 한번씩 작은 마을에 들러 먹을것과 함께 씻기 위한 생수도 구매했다. 오늘 숙소는 현지 유목민의 게르를 빌려 물나오는곳은 커녕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5명이 마시고 씻을물로 8리터 구매했다. 아예 대용량으로 4리터씩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밤에 별을 보며 함께 먹을 살라미도 하나 구매했다. 몽골이 고기가 저렴해서 주식이 고기인것 같다. 모든 메뉴들이 고기를 덮고 나온다. 대신 양고기의 냄새는 벗어날 수 없다. 돼지고기는 가격이 비싸 주로 양고기로 나온다. 나도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고기러버 지만 여기서 만큼은 채소가 더 좋았다. 마치, 치킨만 계속 먹다가 콜라 한 모금 마신것 같은 개운함이다.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은면 그자리에 세워준다. 문제는 너무 평평하게 뻗은 초원인데 모두의 배려와 함께 우산이 필수품이다. 있어도 야트막한 언덕과 낮은 짧은 풀밖에 없다. 불안불안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대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 묘하게 기분좋다 쭉 뻗은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전 숙소에 도착하진 못했지만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의 모습에 모두가 아무말없이 멈춰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평선에 걸쳐있는 태양과 주변이 노을로 온통 붉게 물든 모습이 지평선 저 너머가 온통 맹열하게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기세가 푸른 하늘마저 새카맣게 태워버려 밤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푸르공에서 내리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북두칠성! 누군가 밤하늘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led등을 달아놓은 줄 알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눈으로 보면서도 진짜인지 의심을 했다. 두번째 밤하늘의 별빛을 받기 위해 게르에 짐을 풀자마자 위스키 한 병과 살라미를 주섬주섬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현지 유목민의 게르라 주변에 아무도 없고 우리만 있었다. 대지의 중심이 된 색바랜 동심의 생각이 들에 괜히 들떴다. 10년도 더 지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보정도 하지 못했지만 눈에만 담아가기 아까워 셔터를 눌러댔다 돌아가면 사진 보정 하는 것 부터 배워야겠다. 너무 날로 두기엔 아까운 사진들인 것 같다
#감성 #힐링 #제주여행
메마른 나의 감성, 제주에서 채워보기! 앉아만 있어도, 혹은 바라만 보아도 절로 힐링이 되는 제주 명소들을 모아 봤어요~ 작은 가방에 카메라 하나만 챙겨서 떠나보는 제주 감성 여행! 같이 떠나볼까요? 금능 해변에 있는 파라토도스 오션뷰카페는 3층으로 이루어진 곳이에요! 1층부터 3층까지 바다 쪽 벽면이 모두 통유리라 유리창 너머로 금능 해변이 보여서 앉아서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곳이에요~!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생기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도두 무지개 해안도로! 기존의 노란 방호벽이 알록달록한 무지개 옷을 입은 이후로는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되었답니다~ TV 프로그램에도 나온 적 있는 카페 마노르블랑은 계절마다 바뀌는 거대한 규모의 정원으로 유명하지만 카페 내부에 예쁜 티팟 세트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에요~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카페! 서귀포 치유의 숲은 길을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정말 말 그대로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숲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있고, 해설자분도 계셔서 숲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답니다~ 단! 예약 후 방문이 가능하니 꼭 예약을 하고 가시는 걸 추천할게요~ 외관이 너무나 독특한 카페 더 콘테나는 귤색 콘테나를 크게 만들어 둔 모습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앞을 지나가던 분들도 멈춰서 홀린듯이 외관을 찍고 간답니다 ㅎㅎ 귤 수확철에 방문시엔 귤밭 체험도 할 수 있어요~! ▶ 2020년 3월 3일 제주길잡이 유튜브에서 3,000만원을 쏩니다! 궁금하시다면 ↓ 놀러오세요~
인간미가 느껴지는 조선왕들의 일화 (꿀잼 시간순삭)
왕이라는게 진짜 준니 하드코어하구나.. 를 느낀 일화들 잼나는 것도 있고 안타깝고 씅나는 내용도 있고 재밌어서 퍼옴 ㅇㅇ 어진을 찾을 수 없는 왕들은 걍 뭐 대충,,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태종 1. 직업정신 투철한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 거수 일 투족을 다 기록해서 태종이 걷다 헛발질한 것도 적었다. 태종이 그건 제발 지워달라, 창피하다 애원까지 했는데도 사관은 끝까지 '왕이 길을 걷다 헛발질하다. 헛발질한 것을 적지 말라고 말한 것은 적지 말라 명하셨다' 라고 적었다. 2. 하도 사관이 쫓아다녀서 못 쫓아오게 멀리까지 사냥을 나갔는데 사관이 거기까지 말 타고 쫓아와 사냥기록을 적었다고 한다. 3. 태종은 아들 양녕대군이 너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자 속이 상해 밤새 울어 목이 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양녕대군의 아들인 이혜는 아버지인 양녕대군보다 더 많은 사고를 쳐 양녕대군의 속을 썩혔고 결국 왕자의 아들의 직위인 '군'의 작위를 깎여 서산군에서 서산윤으로 강등당했다. 결국 이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자살시도를 하였고 이틀 뒤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혜는 사람을 때려 죽이라고 시키기도 하였고 직접 사람을 죽이기도 하였으며 남의 첩을 빼앗기도 하고 시전에서 종친들과 패싸움을 하였고 과격한 놀이판을 벌이다 놀이 중 사람이 죽어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실록에서는 이혜가 망가진 원인을 사랑했던 첩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난 후에 울화병이 생겨 이리 되었다고 한다.) 4.태종은 운명론자가 아닌 현실론자였는데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어느날은 우연히 하급관리 두명의 토론을 듣게 되었다. 한명은 부귀영화는 모두 임금에게서 나오는것이라고 하였고 도 한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실론자였던 태종은 부귀영화가 임금에게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한품계를 올려주려 하려고 그 관리에게 '지금 가는 아무개에게 한 품계를 올려주도록 하시오'라는 종이를 세종에게 전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관리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운명론자인 관리에게 대신 종이를 전해주라 하였고 결국은 그 관리가 진급을 하였다. 5. 조선왕들중 가장 많은 자식을 가진 왕으로 12남 17녀, 29명의 자식을 가졌다. 세종 1. 세종대왕은 좋아하던 후궁에게 신하들 몰래 따로 불러서 말없이 귤 하나를 쑥- 내밀어 준 얘기도 있다. (그 당시 귤이 귀한 것이었다.) 2. 친경한다고, 소 끌고 밭 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배고픔을 못 견뎌, 밭 갈던 소를 때려잡아서 국 끓여 먹은 적도... 3. 명재상 황희는 청백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임금이 사람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너무도 기분 나쁘게 점검하는 바람에 ‘내참 더러워서 뇌물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케이스다. 4. 훈민정음 반포식을 축하하는 잔치 행사에는 집현전 학사 절반이 참석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와 임금의 요구사항에 시달리다 못 견뎌 병석에 누운 탓이었다. 성군의 캐치프레이즈는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였다. 5. 세종은 부하들을 휘몰아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아침 조회 격인 새벽 4시 상참에서부터 과업 달성이 부진한 부하들을 닦달하였다. 밤낮으로 시달리다 못한 김종서의 경우 임금 곁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 스스로 궁궐을 떠나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을 개척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섰다. 정인지는 임금이 너무 독촉하고 소위 ‘갈궈 대는’ 바람에 모친 3년 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려 했으나, 임금은 법령까지 바꿔서 그를 다시 붙잡아다 오히려 일을 더 시켰다. 6. 양녕대군이 평안도를 유람하게 되어 세종은 형인 양녕대군에게 ‘제발 여색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몰래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하기를 “만일 양녕대군이 기생을 가까이하거든 즉시 그 기생을 역마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내라” 라고 하였다. 양녕은 세종과의 약속도 있고 하여 가는곳마다 기생의 수청을 물리치고 근신하였으나, 그가 평안북도 정주에 이르렀을 때 그만 양녕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세의 미인이 나타났다. 양녕은 그날로 동침하고 귀신도 모르리라 자신했다. 그래서 시를 지어 하룻밤 풋사랑을 읊기를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사람의 베게를 들여다 보진 못할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라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정주수령은 이 기생을 역마에 태워서 서울로 보냈다. 세종이 기생에게 명하기를 “너는 양녕대군이 읊은 시를 노래로 불러 익혀두라” 하였다. 양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유유히 서울로 돌아와 세종을 알현하였다. 세종: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신신 당부한 말씀을 잘 지켜주셨는지요? 양녕: 물론입니다. 어찌 어명을 어기겠습니까? 한 번도 여색을 가까이 한 일 없습니다. 세종: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제가 형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자 가무를 준비하였습니다. 양녕은 기생이 나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니 자신이 지은 시구가 아닌가. 깜짝 놀란 양녕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세종을 웃으며 뜰에 내려와 형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그날 밤 그 기생을 양녕댁에 보냈다. 7.양녕대군과 세종은 원래 우애가 깊지 않았다. 태종은 양녕과 효령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유독 충녕, 즉 세종을 편애 하였다. 게다가 세종은 알려진것과 같이 머리가 아주 좋았고 공부를 좋아했다. 태종이 충녕에게 나중에 '너는 할일이 없으니 놀아라'라고 하며 글씨,그림, 비파등을 마련해준 때가 있었다. 그 때 양녕은 충녕에게 비파를 배우며 서로 친해졌고 다른 면에서 보면 자신의 경쟁자였던 충녕이 공부를 포기 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것이다. 그 후로는 양녕대군도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비파, 글씨 등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다시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양녕에게 많은 충고를 하였다. 양녕은 열등감으로 인해 방황하였고 다시 비행에 빠져들게 되어, 결국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자리는 세종이 차지하게 됬다. 8. 나라에 큰 일이 있어,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이었다. 태종은 특별히 세종에게는 삼시 세끼 고기를 챙겨먹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충녕(세종)이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종 1.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운장과 같은 풍모를 냈었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궁을 정리하는데 타다 남은 왕의 어진이 한 장 나왔다. 수염이 길고, 풍채도 당당하여 신하들은 인종의 어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은 수염이 길다는 말만 듣고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어진을 조사하다가 보니 어진 구석에 문종대왕의 어진이라는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2. 학식, 외모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건강 세조 1. 술 먹고 신하 팔 꼬집고 신하한테 '너도 나 꼬집어라' 라고 시키자 신하는 세조를 꼬집었다. 그 뒤 자기 혼자 열 받아서 혼내주려다 그냥 넘어갔다. +세조의 팔을 꼬집은 것은 신숙주다. 정확히 말하면 꼬집은 게 아니라 팔씨름하다가 세조의 팔을 두 손으로 넘겼다. 그래서 세조가 신숙주 죽이려고 했다가, 술 취한 것을 감안하여 넘어갔다. 2. 세조는 후궁이 단 한 명뿐이고 평생 중전인 정희왕후와 금슬이 좋았는데, 국사를 논할 때도, 국가의 모든 행사에도 꼭 정희왕후를 대동했으며 사냥을 할 때도 둘이 나란히 말을 타고 사냥에 나갔다. 3. 신숙주가 영의정었을 때 구치관이라는 사람이 좌의정이 됐다. 이때 세조가 신숙주하고 구치관을 불러서 "내 오늘 경들에게 질문을 할 테니 대답을 잘 못하면 벌을 줄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조가 "신 정승!"하고 부르니까 신숙주가 대답했는데 세조가 "나는 새로 된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벌주를 먹였다. 그리고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니 그리고는 "나는 옛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구치관한테도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 다시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이번에는 신숙주가 대답했다. 근데 이번에는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 못하는구료" 하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서 또 "신 정승!"하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는데 구치관한테도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은 잘못 대답하였소" 하고 벌주를 먹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신 정승! 구 정승!" 하고 부르니까 둘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임금이 부르는데 신하가 대답을 안하는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고 한다. 성종 성종은 후추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후추 씨앗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결국 후추는 구하지 못 하고 주변국에 성종이 후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 계속해서 조공으로 후추가 들어오는 바람에 창고에 후추가 가득히 쌓여, 예쁜 비단 주머니에 담아 조정 관리들에게 다 하사하였다. 연산군 1. 성종과 연산군이 오랜만에 밖에 바람 쐬러 나와서 성종이 ‘융아, 좋지 않으냐?’ 하니 연산군이 소떼를 보며 ‘아바마마 저 송아지도 어미 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미가 없습니까’ 라고 말했다. 2. 또 다른 야사에서는 연산이 동궁이었을 때 어느 날 성종에게 거리에서 나가 놀고 싶다고 하여 성종이 허락하였다. 저녁에 동궁이 궁궐로 돌아오자 성종이 “오늘은 밖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고 묻자 연산은 “구경할만한 것을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 소가 울면 송아지도 따라 우니 그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여 성종이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짐. 3. 공부하는 걸 엄청 싫어하여, 왕자를 훈육하는 학자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매일 꾸중 듣고 야단맞아,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두 죽여버렸다. 4. 춤을 잘 췄다고 한다. 5. 모후인 폐비 윤씨와 고려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공서에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수집하게 한 일도 있었다. 6. 엄청난 꽃미남이었다고 한다. ++ 보너스 연산군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 연산군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고 폭군의 모습을 다소 보인점은 사실이지만, 몇가지 왜곡된 사실들이 있다. 1.연산군은 궁궐 담장 아래 백척 내에 있는 민가들을 철거하여 쫓아냈다. - 하지만 이것은 원래 불법주택들이였다. 선왕, 후궁들의 모습이 민간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법도에 의한 것들이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오히려 봄까지 기다려주고 주택의 등급을 나눠 무명을 보상으로 주고 대토 와 거주지까지 마련해 주었다 2.궁을 짓기 위해 열한 고을의 백성들을 내쫓았다 - 백성들을 내쫓은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는 500여호에 불과했고 열한고을은 사관이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쓴것이다. 또 지나가는 자는 죽여서 시신을 구경시키는 형을 내린다고 했으나 무덤이 있는 자들에게 명절 출입을 허가했으며 불법주택에도 보상을 해준 연산군이 보상을 안해줬을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궁은 큰집 50칸으로 몇몇 사대부들의 99칸 집들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3.연산군은 음란했다. -연산군이 비구니를 간음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은 기생의 출입도 소문이 두려워 꺼렸던 인물인데 늙은 비구니를 몽둥이로 쫓고 젊은 비구니들을 간음했다는것은 말이 맞이 않는다. -연산군이 여성 음악인들을 혼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에게 그들을 예술가들였을뿐이며 오히려 여성 음악인들은 사대부들에겐 첩을 들이는 통로였다. 사대부들은 연산군에게 연산군이 남성음악인들만 잔치때 내려주자 불만을 갖고 여성음악인들 을 내려달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좋은 왕으로 묘사되는 성종은 16남 21녀를 가졌으나 그의 아들 연산군은 4남3녀만을 두었다. - 연산군이 백모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강간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임신을하고 약을 먹고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를 추측해보면 그 때는 이미 쉰세살에서 쉰다섯으로 당시에 그나이엔 잉태가 불가능했다. 4.정치는 하지않고 사냥을 즐겼다 -연산군은 군사력 강화를 원했던 왕이다. 연산군 5년 여진족이 백성들을 사로잡자 연산군은 정벌에 나서려 했으나 그때마다 신하들은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노비들이 부역에 나가는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냥은 군사력 강화를 위했던것이고 이것이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 결과가 임진왜란이다. 5.폐비 윤씨사건으로 폭군이 되었다 -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연관인들의 처형은 신하들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였기도 하다. 그러나 훈구파를 무너트렸으면 사림을 불러들였어야 하는데 사림들조차 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를 보호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연산군은 백성들에게는 폭군은 아니였지만 모든 사대부들에게는 적이였다. 그 결과 사관들에 의해 폭군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기록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믿어지고 있다. 명종 1.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 있거라 하고 노래 잘 부르는 내관이랑 둘이서 내관은 노래 부르게 하고 명종은 그에 맞게 춤추며 2인조 가수 못지 않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 꾀병 부려서 총애하는 내관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3. 위의 내관은 동일인물로 남자이다. 4. 내시와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던 명종은 몸이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경연을 취소하고 내관들과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5.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명종에게는 손빈이라는 총애하는 환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집과 많은 값비싼것을 하사했으면 원하는것들은 모든지 들어줬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장령을 만났을때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명종으로부터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벼슬길도 막혔다. 명종의 조울증에 관환 일화는 이밖에도 많으며 아침에 파면했다가 저녁에 회복시켜주는 일들도 많았다. 중종 1. 자식 사랑이 남달라서 공주, 옹주랑 왕자들이 오랜만에 문안 오면 눈물을 흘리며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2. 또 중종은 동궁 전에서 불이 나자 맨발로 달려 나와 훗날의 인종을 애타게 부르며 울었다. 3. 또한 효정옹주의 남편(부마)가 바람을 피우고 다니자 철거지악이었던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딸을 꾸짖은 적도 있었다. 결국 효정옹주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 하고 죽자 직접 부마를 잡아와 친국을 하기도 했다. 4.연산군을 폐위할 때, 중종을 보호하려 군사들이 오자 중종은 자기를 잡으러 온줄 알고 놀라서 자결 하려고 했다. 다행히도 그의 부인 신씨가 말려서 중종은 살아서 왕이 되었다. 5. 중종이 연산군 폐위후 왕위에 즉위했을때, 위에서 말한 신씨는 당연히 왕비책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반정때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을 죽였는데 보복이 올줄도 모른다는 이유로 조강지처였던 신씨를 중종은 '조강지처'라는 말 한마디의 저항을 딱 한번 하고는 출궁시켰다. 중종 11년 3월 28일,ㅡ 그는 고려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가 배운 부분은 최충헌 최충수가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는 부분이였다. 최충수는 배필이 있던 태자에게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고 신종을 협박했다. 신종은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며 태자비를 폐출시켰다. 이 부분을 읽으며 중종은 울먹거리며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종 인종은 모후인 장경왕후가 자신을 낳고 7일만에 죽자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손에 자란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어린 인종을 끈임 없이 못살게 굴었다. 하루는 밤에 쥐의 꼬리에 불을 붙이고 인종이 잠을 자고 있는 궁 안에 들여 보냈다. 인종이 창문을 보니 문정왕후가 웃으며 빨리 불이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빈궁만 내보내고 자신은 문정왕후에게 효를 행하기 위해 불 속에서 죽으려 했다. 빈궁과 인종이 어쩔 수 없이 불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그때, 밖에서 중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종은 죽는 것이 문정왕후에게는 효가 되지만 중종에게는 불효가 되므로 곧바로 나왔다. 그 후 인종은 불을 지른 장본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종에게 고하지 않았다. 선조 1.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을 하는데, 의주에서 어느 백성에게 생선이 올려진 상을 접대 받았다. 그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인조가 생선의 이름을 묻자, 백성은 '묵'이라 대답하였다. 선조는 생선의 이름이 그 맛에 비해 별볼일 없다 생각하여 '은어'라 명했다. 나중에 궁에 돌아와 그 생선을 먹었으나.. 맛이 전 같이 않아 '도로 묵'이라 하게 하였는데, 바로 여기서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2.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밀어오는 바람에 의주로 도망하였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명에 혼자 도망가기 위해 망명을 요청하였다. 명은 일국의 왕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찌 그럴 수 있냐며 거절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명에 끊임없이 압록강을 건너겠다고 시위를 했다. 결국 명은 그렇게 오고싶으면 개처럼 네발로 기어서 북경까지 건너오라고 무안을 줬고 선조는 그제서야 망명을 포기했다.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명 지원군이 선조앞에 도착했고 이여송은 선조가 보는 앞에서 조선의 대신들의 싸대기를 후려치면서 어찌 나라를 이지경까지 만들었냐며 타박을 주었으나 선조는 아무말도 못하였다. 광해군 선조가 세자를 가리기 위해 여러 왕자를 시험하였는데 “반찬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이 제일이냐?”라는 질문에 광해군이 “소금이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키려면 소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라고 답하여 그 현명함을 인정받았다. 이에 선조가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느냐?” 라고 묻자, 광해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가장 애통하옵니다” 라고 답하였다. 효종 1.나르시즘에 빠져, 항상 거울을 볼 땐 스스로 만족에 차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2.효종의 얼굴에 난 종기의 치료를 놓고 침으로 피를 빼내어 독기를 제거하자는 신가귀와 그에 반대하는 유후성이 싸웠다. 이에 왕이 가귀의 의견을 취하여 침을 놓았는데, 침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왕이 "이제 정신이 좀 든다. 가귀가 아니면 큰일날 뻔했다"라고 말했는데 침이 혈락(血絡)을 범하여 과다출혈로 사망. 어의 가귀는 조사결과 수전증 있는걸로 밝혀졌다. 현종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이다. 숙종 1.신하들이 따뜻한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자 온돌을 빼버리고 얼음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2.관우의 팬이였다고 한다. 인조 1.소현세자는 손톱밑이 시커멓게 변하고 얼굴은 검게 변하며 죽었다. 전혀 확인되지 않은 병이었다. 독살이라는 소문은 퍼져나갔지만 인조는 이것에 대한 조사를 피하려 했으며 어의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2.자신의 몸과 봉림대군의 몸이 아프자, 소현세자의 아내가 저주를 내려서 아프다고 하여 사약을 내리고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소현세자를 죽일 때 11살과 6살이던 아들들도 다 죽이고 임신했던 세자빈까지 죽였다. 영조 1.연애소설을 좋아하여 가끔 자신의 글에서도 소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검하여 백성들에게 사치를 금하라는 뜻으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2. 영조의 어진에 나와있는 쌍꺼풀지고 길쭉한 눈과 오뚝한 코에 조그마한 입술은 조선의 남성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미인상이었다. 왕실에서는 이런 외모를 천하다 하여 기피하였으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양반 사대부가 출신이 아닌 무수리 출신에서 정1품 빈까지 신분상승 한 것을 감안할 때, 숙빈 최씨는 굉장한 미인이지 않았을까. 3. 영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연잉군이었던 시절, 달성 서씨 집안의 규수(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이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영조가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 면 서 칭찬을 하자, 연잉군부인이 무심코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했더니 영조가 그날로 부인을 소박하며 그 다음부터는 멀리하였다. 아마, 무수리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발을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4.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간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지 않자,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식이 어찌 아버지의 존함이 쓰인 방석을 깔고 앉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또 ‘고개 중에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드냐’ 묻자, 강원도에서 온 규수가 대관령고개라 답하고 경상도에서 온 규수가 추풍령고개라 답하였다. 헌데 김규수는 보릿고개라 대답하였다. 보릿고개라!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세끼, 아니 두 끼, 심지어 한끼를 채우기가 그 얼마나 난감한가. 이것이 보릿고개인데 김규수가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라 하니 얼마나 명답인가! 다음으로 꽃 중에 제일인 꽃을 묻자, 김규수는 목화 꽃이 제일이라 답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목화 꽃이 다른 꽃들보다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핀 연후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면에서는 다른 꽃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한 꽃이니, 바로 목화가 백성의 옷감이 되어서 예절도 지키고 품격도 살리고 추울 때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정조 1. 정조가 말하길,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 했으나 오래도록 계속 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2. 연애소설을 비롯한 소설을 무척 싫어하여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서고에 있던 모든 소설을 불태웠다. 또한 숙직을 하던 규장각 학자들이 몰래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들켜서 정조에게 혼이 났고 벼슬을 삭탈했다. 그들은 정조에게 다시는 소설을 안 보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벼슬길을 다시 열어주었다. 3. 영조는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정조는 개인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서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금주령을 없앴다. 4.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 끈임 없이 시키며, 숙제를 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망신을 주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신하에게 술을 강요하여 기절할 때까지 마시게 하고, 활을 못 쏘는 신하에게 끊임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5. 술을 무진장 좋아하여, 정약용에게 필통에 술 한가 득 부어 원샷! 하기를 강요하여 정약용은 술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필통에 술 붓기라면, 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 거와 맞먹는다고 한다. 6. 정조 20년, 이정용이라는 유생이 술에취해 늦은밤 궁궐 담장 아래에서 잠에 들었다 잡혀간적이 있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했던 정조는 요즘 유생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술을 좋아한다고 칭찬을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생들이 숙박하던 잡촌과 집춘영은 벽을 맞대고 있으니 이정용은 잡촌에서 잤던거라는 궤변을 펼쳐서 오히려 상까지 주어서 보냈다. 헌종 1. 이 헌종이 그렇게 미남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여색을 즐기는 왕 때문에 궁궐 내 용모가 예쁘다고 하는 궁녀들은 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한다. (덕분에 후궁첩지도 아무나 내리지 못했음. 딸을 낳은 궁인 김씨도 첩지를 받지 못했다.) 왕 자체가 너무 미남이라 젊은 궁인들이 참 많이 유혹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진 잦은 성관계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직전에는 피가래까지 토하며 고생하다가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궁녀들이 유혹을 할 정도였으니 엄청난 미남이 아니었나 한다. 2. 헌종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프게 여겨 한 신하에게 늘 물었는데, “진전에 모신 수용이 오히려 매우 닮으신 전하의 용안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니 헌종이 거울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고종 1. 고종 황제가 행차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저런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2. 명성황후가 죽고 나서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끼던 후궁이 있었는데 명성황후가 부리던 상궁이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그녀를 곁에 둔 이유가 못생겨서 고종이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곁에 두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는 명성황후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3.당시 1887년대, 전신(전보총국)의 등장과 함께 최초 궁궐에 가설된 전화를 경험한 고종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음을 들을 수 있군" 이 생각에 고종은 상당한 고액의 전화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 홍릉에 설치한다. 그 곳은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민씨)의 무덤. 전화의 설치가 끝난 직후 고종은 아침마다 그 곳으로 통화를 걸어 말을했다. "여보, 어제는 춥지 않았소?"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를 걸어 죽은 민씨에게 안부를 전했고 매일아침 울었다고 한다. "아무리 멀리떨어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저승까지는 못 하는구나." 그럼에도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하는 그 날에도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집안에 갇혀 굶어 죽어 가는 우한의 반려동물들
중국은 신종 코로나(COVID-19) 확진자 7만 명, 사망자가 1천700명을 넘어서며 중국 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23일 우한을 오가는 대중교통을 폐쇄하고 우한 지역을 격리조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격리와 폐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이 홀로 집안에 남겨져 있는 반려동물의 수가 최소 2만 마리에서 최대 5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집안에 갇혀있는 반려동물은 2주가 지나면 모두 굶어 죽습니다. 우한에 남겨진 반려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열 군데 이상의 동물구조단체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습니다. 구조 대원들은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구조하고 있습니다. 거칠고 과격한 방법이지만 아파트 대부분이 잠겨있고, 문을 딸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습니다. 실명을 밝히기를 꺼린 익명의 구조 대원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폐쇄 조치 이후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집안에 들어가면 이미 많은 개와 고양이가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있습니다." 구조대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건 눈앞에 보이는 동물을 섣불리 구조할 수 없을 때입니다. "주거침입 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린 허가받은 집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조대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반려동물을 구해달라고 요청한 보호자의 집에만 창문을 깨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조 대원들은 구할 수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구하지 못하는 동물을 볼 때마다 수많은 죄책감과 선택의 갈림길에 빠지곤 합니다. "갑작스러운 격리로 문이 잠기지 않은 아파트도 종종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녀석들을 구조할 수가 없어요.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구조대는 허가받지 않은 집으로 들어갈 경우 자칫 죄를 뒤집어쓸 수 있어, 섣불리 구조에 나서지 못합니다. 좁은 틈으로 물과 먹을 것만 챙겨주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선 만큼 이런 일이 반복되거나 이미 죽어버린 동물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약 2,000마리의 반려동물이 구조되었으며, 구조된 고양이는 우한 내에 있는 보호소나 보호자 지인의 집으로 이송됩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전 세계 네티즌들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난다' '몸조심하고 최대한 많은 동물을 구해달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현재 이들의 구조작업과 서비스는 페이스북 @Compassion For Animal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