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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땅’ VR 콘텐츠 시장에 맨손으로 뛰어든 젊은 PD들

몇해 전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세계여행 하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가보고 싶은 명소를 위성사진 서비스인 구글어스로 클릭하며 집에 앉아 세계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는 게 이 디지털 탐험의 매력. 그러나 이 손가락 세계 탐험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들여다 보고싶은 곳을 아무리 클릭해봐도 결국 움직이는 건 그 손가락 뿐이라는 것. 구글 어스는 동영상이 아닌 사진 서비스이기 때문에 현장의 생동감을 오롯이 담아내는 덴 한계가 있었다. 만약 굉음을 내며 수직낙하하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놀라운 표정 변화를 한 화면으로 볼 수 있다면? 디지털 여행자는 더욱 더 생생한 탐험에 몰입할 수 있을테다. 실감나는 가상 체험에 대한 인간의 이같은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시장에 맨손으로 뛰어든 젊은 PD들이 있다. 7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360도 동영상을 활용한 VR 콘텐츠 제작 기업 팀와스드(Teamwasd)를 만났다.
(왼쪽부터 팀와스드의 임건영 대표∙김형근 인턴∙양서윤∙이승기∙박진병∙이현철 PD) 팀와스드는 지난해 방송제작사 두런미디어의 임건영(44) 대표, 박진병(36) 팀장, 이현철(32)∙이승기(30)∙양서윤(27) PD가 모여 만든 360도 VR 영상 전문 제작 업체다. 온라인 게임의 앞∙왼∙뒤∙오른쪽 방향키인 W , A, S , D 를 조합해 기업 이름을 지었다. 현재 VR 콘텐츠 제작 시장이 과거에 3D 영상을 주로 제작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과 달리 팀와스드는 2D 방송에 전문성을 보유한 현직 PD들로 구성돼 있다. 360도 VR 영상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 PD들은 잘 만들던 방송 프로그램을 접어두고 맨땅에 헤딩 하듯 뛰어들었을까.

VR시장의 플랑크톤 360도 동영상 콘텐츠

360도 VR 동영상은 요즘 가장 핫한 영상 콘텐츠 형식 가운데 하나다. 이용자가 마우스나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면 360도 전 방향을 시청할 수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굉음섞인 수직낙하와 이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들의 얼굴 변화를 집에 앉아 체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디지털 여행 뿐 아니라 광고,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방송, 컨퍼런스 등 360도 동영상의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다보니 유튜브와 페이스북, 아프리카TV 등 국내·외 영상 유통 플랫폼 업체들은 서둘러 360도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했다. 삼성전자·LG전자·고프로 등 주요 카메라 제작 업체들도 360도 전용 카메라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360도 동영상이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가상현실(VR) 시장에 핵심 영양분을 공급하는 플랑크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팀와스드가 VR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마음 먹은 건 이 같은 트렌드의 흐름을 발빠르게 읽은 덕분이다. 저희는 영상을 다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화 흐름에 민감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저희도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 영상 트렌드의 흐름을 봤을 때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작년에 팀와스드를 꾸리게 됐죠. (임 대표)

360도 동영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어떤 콘텐츠든 가장 먼저 꼼꼼한 기획 단계를 거쳐야 한다. 360도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360도가 다 담기는데 현장 가서 카메라만 세워두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지만 팀와스드의 생각은 다르다.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VR 콘텐츠가 여행지 풍경 스케치 같은 것들인데 이런 콘텐츠는 딱히 기획이나 연출이 없더라도 벌어지는 상황만 잡아내면 되는 거거든요. (반면) 저희는 아무래도 기획과 연출에 능한 PD들이다보니 영상에 반드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하다못해 풍경을 찍더라도 기승전결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죠. 이런 기획들이 저희만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박 팀장)
(360도 동영상은 치열한 기획 단계를 거친 후 카메라 여러 대를 엮어 촬영이 이루어진다 사진 제공: 팀와스드) 아이템 선정과 아이디어 회의 등을 거치고 나면 실제 촬영에 들어간다. 360도 영상을 만들기 위해선 여러 대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대부분 고프로(GoPro)나 레드(RED) 사의 카메라를 사방을 바라보게 배치해 영상을 찍는다. 카메라 한 대에 렌즈가 여러 개 달린 360도 영상용 카메라가 시중에 나오고 있지만 이것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360도로 보이게 늘려야 하고, 이 때문에 해상도가 떨어져 전문가용으로는 적합치 않다. 박 팀장은 현재 VR 기술을 과도기라고 표현했다. 현재 수준의 촬영 장비나 소프트웨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특히 DSLR이 아니라 고프로로 촬영을 해야 하다보니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죠. 올해 말 쯤이면 시장에서 원하는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들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촬영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시행착오를 굉장히 많이 겪었어요. 2D 촬영과 다르기도 하고 (VR 촬영과 관련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거든요. 교육기관이나 인력양성 과정이 없었으니까. 어떤 업체에서는 기술 배우는데 하루에 150만원씩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끼리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무작정 현장에 나가서 촬영도 많이 해 보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면서 하나하나 배웠던 거죠.(임 대표) 360도 동영상은 촬영 뿐 아니라 편집작업도 일반 2D 영상보다 복잡하다. 먼저 각각의 카메라에 담긴 서로 다른 각도의 영상을 하나로 이어 붙여주는 스티칭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공간이 왜곡돼 보이는 이음매가 생기는데 360도 영상 편집 툴로 왜곡 현상을 바로 잡아주는 추가 작업도 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자막이나 사진, 2D 영상, 3D 그래픽 등을 추가하면 영상이 완성된다.
(후반작업은 각각의 영상들을 이어붙이는 스티칭 작업(위)과 공간 왜곡을 최소화하는 작업(아래)을 거친다) 360도 영상 편집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기존 2D 영상의 경우 계산된 앵글과 화면전환 등을 통해 제작자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반면 360도 영상은 시청자가 언제든 다른 시점으로 화면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360도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시청자가 어디를 보고있든 스토리를 따라올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어려웠어요. 더군다나 저희는 방송국 출신이기 때문에 원래 가지고 있던 편집 프레임을 깨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런데 360도 영상은 시청자가 같은 콘텐츠를 반복해서 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더라고요.(임 대표)
VR 전담 팀을 꾸린 지 1년. 죽었다 생각하고 1년만 부딪혀보자며 시작했던 팀와스드는 이제 새로운 시도로 유명한 전문 업체가 됐다. 지난 해엔 충청남도와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된 백제 역사유적지구를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기술과 접목해 360도 동영상으로 제작했고, 지난 20대 총선에선 한 국회의원 후보자 개소식을 이례적으로 VR 영상으로 담아내 주목을 받았다. 현재 VR 시장은 기획과 연출에 특화된 사람들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는 아이디어와 기획, 연출의 힘을 믿어요. 결국엔 이런 것들이 누가 살아남느냐에 있어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박 팀장)

미완의 가상현실 세계, 완성의 키워드는 킬러 콘텐츠

아직 미완의 영역인 가상현실 시장은 급격히 발전하며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영국의 투자은행(IB) 디지캐피털은 4년 후 세계 VR 시장이 지금보다 30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VR 콘텐츠 시장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봐요. 사용자의 눈높이와 기대치는 철기에 와 있는데 장비나 기술은 청동기 수준인 거죠. 기술 혁신이 이뤄져 수요와 공급의 수준이 맞춰지면 시장이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계산에 밝은 미국이나 중국, 인도에서 VR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와 연구가 이뤄지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분명히 돈이 될 거고 뛰어들어 볼만 한 시장이에요.(박 팀장) 글로벌 시장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VR 콘텐츠 사업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360도 영상을 미래 성장 사업이라 판단,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특히 S사의 경우 3,2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펀드를 조성, 그 가운데 상당 금액을 VR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지난 2월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카메라 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과 플랫폼 사업에도 4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정부 또한 이달 초 VR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4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연 매출 10억 원 이상의 VR 전문 기업 50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과거 8,000억원 가량 쏟아부은 3D TV 육성사업에서 실패의 쓴맛을 봤다. 이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콘텐츠가 부족해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3D TV 시장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VR 시장은 분명 3D TV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VR은 집에서 안경쓰고 봐야 하는 3D TV와 달리 스마트폰으로도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 범위 자체가 다르죠.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나 중국처럼 VR 콘텐츠가 돈이 되는 콘텐츠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낌없이 투자 해줬으면 좋겠어요.(임 대표)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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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학기술대학교(총장 강기성)가 주관하는 ‘부산직업교육거점센터’가 1기 교육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교육부의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후진학선도형(Ⅲ유형) 지원 사업으로 다양한 지역 성인학습자에게 맞춤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대학 간 연계 강화를 목적으로 실시한다. 아울러 교육생들의 동기부여와 발전 등을 위해 ‘취약계층 학업지원 장학금’과 ‘학업성취 우수 장학금’을 지원한다. 장학금은 1인 최대 1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교육과정은 △드론사진측량 전문가 양성과정 △드론조종 국가 자격증 취득과정 △소셜마케터 양성과정 △스마트팩토리 코디네이터(운영자) 양성과정 △골목식당 창업과정 △부동산 경·공매기술 전문가과정 △자동차바디 리페어 및 내외장 전문가 과정 △파티쉐 및 블랑제리 양성과정 △바리스타 양성과정까지 총 9개 과정을 개설했다. 지원대상은 김해, 양산을 포함한 부산지역 거주하는 성인학습자로 현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지원이 불가하며, 휴학생은 지원 가능하다. 접수는 오는 23일까지 팩스(051-330-7083), 메일(life@bist.ac.kr), 온라인(http://www.busanlifelong.co.kr) 또는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다. 교육과정 및 자세한 안내는 부산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홈페이지(http://life.bist.ac.kr)를 참조하거나 전화(051-330-7369,7371)로 하면 된다. 강승희 기자 / busaninnews@naver.com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부산직업교육거점센터 #전문대학 #성인학습자 #직업교육 #장학금 #드론 #소셜마케터 #스마트팩토리 #식당창업 #부동산경매 #파티쉐 #바리스타 #양성과정 #부산지역 #휴학생 #평생교육원
[한입뉴스]백색국가서 日 제외, 돼지열병 확산우려, 국제유가 조기 진정세, 올해 2분기 기업 수익성 악화, 이스타항공 비상경영 체제, 해외직구 급성장, D램 13개월 만에 반등, 안심대출 이틀새 2만4017건 신청, 주택청약 가입 5개월래 최대, 저축銀 내년부터 중도상환수수료 차등화
◆백색국가서 日 제외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개정 '전략물자 수출입고시'가 18일 오전 0시부터 시행됨.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존 백색국가인 '가' 지역을 '가의1'과 '가의2'로 세분화하고 일본을 비백색국가 수준의 규제를 받는 '가의2'로 분류하는 개정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18일 관보에 게재하고 시행할 것이라 밝힘. 가의2는 개별수출허가를 신청할 때 신청서, 전략물자판정서, 영업증명서 외에 최종수하인 진술서와 최종사용자 서약서를 추가해 총 5종의 서류를 제출해야 함. 개별수출허가 심사 기간도 기존 5일 이내에서 15일 이내로 변경됨. 포괄수출허가에 해당하는 사용자포괄허가, 품목포괄허가는 심사 기간이 5일 이내에서 15일 이내로 길어지게 됨. ◆돼지열병 확산우려 연천서도 확진 경기도 파주시에 이어 연천군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확진. 농림축산식품부는 18일 연천군 의심 돼지의 시료를 채취해 정밀검사한 결과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확진했다고 18일 밝힘. 경기도 파주의 한 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진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 농식품부는 의심 신고를 접수 후 초동방역팀을 투입해 사람, 가축 및 차량 이동통제, 소독 등 긴급방역 조치함. 확진에 따라 농식품부는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긴급 살처분 등 필요한 방역 조치를 취할 계획. ◆국제유가 조기 진정세 국제유가는 이날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원유 시설의 정상화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17일(현지시간) 다소 하락세. 로이터통신은 사우디의 고위 관리를 인용해 원유시설의 정상화가 2~3주 내에 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함.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이날 오전 배럴당 전날보다 5%(3.15달러) 떨어진 59.76달러에 거래중임.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도 비슷한 시각 배럴당 5.3%(3.68달러) 내린 65.34달러를 기록. ◆올해 2분기 기업 수익성 악화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기업의 2분기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2%로 전년 동기(7.7%) 대비 2.5%포인트 하락함.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뿐 아니라 매출액 대비 세전 순이익률도 5.3%로 전년 동기(7.7%)보다 2.4%포인트 하락함. 1분기 영업이익률(5.3%) 및 세전 순이익률(5.8%)과 비교해서도 수익성도 악화됨.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2분기 9.5%에서 올해 2분기 5.5%로 떨어져 감소 폭이 컸다. 같은 기간 비제조업은 영업이익률이 5.0%에서 4.8%로 하락 중. 성장성 지표도 부진했다. 2분기 매출액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1.1%로 1분기(-2.4%)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하락세를 나타냄. ◆이스타항공 비상경영 체제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16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사내게시판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전달함. 최 사장은 담화문에서 "최근 당사는 대내외 항공시장 여건 악화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현재까지 누적 적자만 수백억원으로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회사의 존립이 심각히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함. 또 최 사장은 "우선 오늘(16일)부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위기극복 경영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며 "위기극복을 위한 대응 TF팀을 구성, 단계별로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고 TF팀을 중심으로 상황별·분야별로 준비된 대응방안을 전사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밝힘. ◆해외직구 급성장 해외직구가 최근 3년 새 건수 기준 연평균 36.1%씩 급성장 추세. 올해 상반기 해외직구 건수는 2120만건. 작년 상반기보다 42% 증가함. 미국산 건강기능식품과 중국산 전자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 중국으로부터의 직구 건수가 전년 대비 2배 상승함. 이런 증가율에 힘입어 중국으로부터의 직구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함. 일본과 미국의 비중은 감소. 올해 해외직구 액수는 20억 달러를 돌파해 2년 만에 3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 ◆D램 13개월 만에 반등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8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D램 수출가격의 반등함. 8월 D램 수출물가지수는 64.30으로 전월대비 2.9% 상승.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 만에 상승세. 환율 효과 등으로 D램이 포함된 반도체 수출물가지수도 전월대비 2.9%(계약통화기준 0.1%) 상승해 3개월 만에 반등. 한은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멈췄다고 보면 된다"며 "7월에 일부 수출규제로 생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 일부 업체 공급량 감산을 하면서 가격이 올랐다. 일본 수출규제 때문만은 아니다"고 밝힘. ◆안심전환대출 이틀새 2만4017건 신청 금융위원회와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신청 둘째날인 17일 오후 4시 현재 2조8331억원, 2만4017건이 신청됨. 첫날 신청금액이 7222건, 8337억원으로 집계돼 2015년 1차 안심전환대출 당시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음. 권오훈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부장은 "2015년에는 선착순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오는 29일까지 신청을 받다보니 차이가 있다"며 "주택금융공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콜센터로 신청문의가 몰리면서 신청속도가 느려졌을 뿐, 시스템을 개선하고 일부 서류를 사후 수령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시간당 처리속도가 늘고 있다"고 밝힘. ◆주택청약 가입 5개월래 최대 18일 금융결제원 청약통장 가입현황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주택청약 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337만9670명으로 집계. 이는 7월 2326만8991명보다 11만679명이 늘어난 수치. 지난 3월(13만2016명) 이후 5개월 만에 신규 가입자 수는 10만명을 다시 넘어섬. 지역별로는 경기·인천이 743만179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584만2811명으로 기록. 기타 지방 533만8419명, 5대 광역시 476만8261명임. 증가폭도 늘어나 6월 4만4829명이었던 주택청약 종합저축 신규 가입자 수는 7월 2배 이상 증가한 9만932명을 기록했고, 8월엔 이보다 21.7%가 더 늘어남. ◆저축銀, 내년부터 중도상환수수료 차등화 17일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 추진현황 및 향후 계획' 마련함. 그동안 저축은행은 변동금리·고정금리대출 등 대출 종류별로 금융사가 입는 손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수료율을 적용했음. 이에 금감원과 저축은행중앙회는 내년부터 최대 2% 안에서 대출 종류에 따라 중도상환수수료율을 차등화하기로 결정. 수수료 부과기간도 은행과 같은 수준인 최대 3년으로 개선할 예정. 금감원과 저축은행중앙회는 또 상품설명서 등에 중도상환수수료율과 부과 기간을 대출자가 직접 기재하도록 함. 업권 전체 중도상환수수료 절감액은 연간 40억원으로 추정됨.
[펌] 냉혹한 호랑이 사냥의 세계
야생동물 중에서 제일 인간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동물이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호랭이들이다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는 지역이면 모를까 호랑이가 살았던 지역이면 웬만하면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 육성되기 마련이다 원조 헬조선은 예전부터 호환으로 존나게 유명한 동네였다 중국에서도 가정맹어호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호랑이를 무서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은 평야가 많지 조선은 집에서 나와서 열발자국 걸어가면 산나오는 헬산지국가다. 이런 환경에서 호랭이들은 닭물어가고 말물어가고 소물어가다가 끝내는 인간까지 물어갔다 호랑이 때문에 마을 몇 개가 전멸할 정도로 지랄맞게 괴롭힘을 당하니까 아예 호랑이 잡는 전문특수부대까지 생겼을 정도다 유명한 착호갑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새끼들은 출동할 때도 왕 허락 받을 필요가 없는 초정예 특수부대였다 당장 호랭이들 튀어나와서 애미애비애새끼 물어가는데 왕 허락을 언제 받어  착호갑사 말고도 민간에서 호랑이 잡는 전문 사냥꾼들이 있었다. 엄청나게 위험하긴 하지만 호랑이가죽이 초고가 레어템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잡으면 인생역전이 가능하니 호랑이 나타났다하면 갑사한테 알리는 대신 마을사람들끼리 모여서 레이드를 가기도 했다 호랭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는데 호랭이들이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한 건 조선의 인구증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려고 인간들은 온 산에다 불을 싸지르고 화전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이따구로 숲이 줄어들기 시작하니까 호랭이들은 쫄쫄 굶다가 인간들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아무튼 조선 호랑이는 조선 왕조 500년 내내 헬조선 인간들이랑 치고박고 싸우다가 일제강점기때 일본한테 전멸당한다 호랑이고 뭐고 소총탄 맞으면 꼼짝못해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기 때문에 호랑이 가죽 벗겨가려고 아주 눈뒤집고 잡아댔다 그래도 조선보다 호랑이가 오래 살아남았네 그럼 호랑이 사냥은 어떻게 할까 이건 조선 이상으로 호랑이한테 고통받은 호구국가 인도에서 1926년에 찍은 사진이다 저 수많은 인간들 전부가 호랑이 한 마리 잡으려고 동원된 고기방패들이다 거기다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뒤에 잘 보면 코끼리들이 수십마리가 서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인도식 호랑이 사냥은 존-나 큰 대구경 라이플을 들고 존-나 큰 코끼리를 타고 존-나 많은 쫄따구들을 데리고 레이드를 가는 개치사한 물량공세였다 주로 영국계 돈많은 사냥꾼들이 이 지랄하면서 호랑이 잡고 마초성을 뽐냈다 수십명씩 하인 데리고 다니면서 코끼리 위에 올라타면서 총만 쏴갈기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다 하인들은 총보다는 호랑이 흔적을 추격하는 길잡이 역할을 맡거나 시끄러운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퍼져서 호랑이를 킬포인트로 몰아갔고 막타를 먹이는건 백인 사냥꾼의 역할이다 총도 하인이 장전해서 건네준다. 본인은 쏘는 거 말곤 아무것도 안 한다. 물론 무조건 안전한 건 아니고 호랭이 새끼는 코끼리 키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으니까 아무튼 크던 작전 호랑이를 상대로는 물량 다굴이 일반적인 사냥법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상남자 러시아 새끼들은 저딴 쫄보들이랑은 달랐다 '위대한 왕'에서도 묘사된 러시아식 호랑이 사냥법은 인도나 조선 찌질이들이랑은 다르게 딱 3명만 데리고 간다 필요한 준비물은 호랑이를 찾아낼 댕댕이 몇 마리랑 튼튼한 줄이 전부다 댕댕이는 직접 싸움에 참여 안 한다 그냥 탐색만 한다. 짤에서도 댕댕이는 응원만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심지어 총도 안 썼다 총에 맞으면 호랑이 가죽 상하니까. 그러니까 러시아 새끼들은 맨손으로 호랭이를 생포했다는 것이다. 한명은 목 뒤를 누르고 다른 한 명은 뒷발을 잡고 다른 한 명은 앞발을 잡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펀치를 휘두르면 존나 두껍게 입은 털옷으로 막아내면서 버틴다 그러다가 호랭이가 지치면 입에 재갈을 물고 끌고가는 것이다 구라가 아니라 이거 실제 역사에도 기록된 사냥법이다 러시아 호랑이가 딴 동네보다 작고 약하면 이해라도 가겠는데 러시아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도 제일 떡대가 큰 미친놈들이다 빨갱이는 강하구나
캐논 디자인을 바꾼 루이지 콜라니 떠나다
뭔가 부족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카메라 메이커 캐논의 T시리즈가 그랬다. 당시 T80은 미놀타α7000에 완패하면서 한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뭔가 획기적인 제품이 필요했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한 것이 전문가용 수동카메라 T90이었다. 종전까지 캐논 카메라 디자인은 사내 작업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1986년 탄생한 T90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캐논은 외부 인력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산업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와 콜라보를 했다. 콜라니의 독특한 곡선형 디자인을 제품에 접목시킨 것이다. 콜라니는 카메라 손잡이 부분을 둥글게 처리해 사용성과 기능의 조작성을 높였다. 이는 불룩한 손잡이가 달린 카메라의 원조가 되었다. T90은 견고하기도 했다. 사진기자들은 이런 T90을 ‘탱크’라고 불렀다. 이렇게 캐논의 디자인을 바꾼 남자 루이지 콜라니가 16일(현지시각)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심한 질병 이외에는 자세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콜라니는 평소 자연을 닮은 곡선을 즐겨 사용했다. 이런 콜라니의 방식을 ‘바이오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뾰족한 모서리를 싫어했던 콜라니는 “나의 디자인 세계는 둥글다”(My world is round)고 강조해 왔다. 그런 그는 2017년 12월 한국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회 겸 간담회도 가졌다. 간담회 도중 돌연 자신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를 불러 캐논 카메라를 뺏어들고는 “이게 콜라니 스타일”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한 콜라니는 산업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금까지 자동차, 항공기, 가구, 주방기구, 의류, 안경 등 4000여 점의 작품을 스케치로 남겼다. 콜라니는 생전 “자신의 서랍에 있던 작품 70%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콜라니의 별세를 전한 매체들은 캐논 디자인에 공헌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 통신사 dpa는 “콜라니가 디자인한 캐논 T90 카메라는 가장 큰 성공 중 하나이며 일본 브랜드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Colani’s design of the Canon T90 camera was one of his biggest successes and strongly influenced the Japanese brand’s designs)고 보도했다. 사진전문 매체 코스모포토는 SLR의 형태를 바꾼 디자이너(designer who changed the shape of the SLR)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86년 나온 그의 Canon SLR 제품은 카메라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 중 하나”라고 했다. 이 매체는 “T90의 매끈한 프레임은 다른 캐논 SLR과 EOS 디지털카메라에 영향을 미쳤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8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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