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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나눠준 남성 따라 마라톤 완주한 유기견

물과 음식을 나눠준 한 마라토너를 따라 250km를 완주한 유기견이 화제다.
영국 일간 미러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마라토너가 유기견과 함께 250km 마라톤 결승선에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마라토너 디온 레오나르도는 지난 6월 중국에서 열린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울트라 마라톤은 중국 고비사막의 250km를 가로지르는 대회다. 올해는 101명의 마라토너가 이 대회에 참여했다.
디온은 티얀 샨 산맥 코스를 지나던 중 버려진 유기견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유기견은 더운 날씨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디온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 유기견에게 가지고 있던 물과 음식을 나눠줬다.
이때부터 유기견은 디온의 옆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디온은 “강아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며 “고비와 함께 강을 건너기도 하고 물과 음식도 나눠먹었다” 고 말했다.
디온은 강아지에게 ‘고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디온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순간에도 ‘고비’는 옆자리를 지켰다.
그는 “고비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스타트 라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마을은 3마일~5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다”며 “녀석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녀석을 데려가 함께 살 생각이다”고 말했다.
마라톤 대회의 행사 관계자는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고비는 우리의 마스코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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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내옆으로 오더니 나를 떠나지 않았다"
훈훈. 운명은 진짜 있는것 같아요
아름다운 동물을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런게 인연 운명이라면 운명
배신이 난무하는 사람들보다 백배 천배 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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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8년차 누드모델 하영은씨의 충격 고백... “내가 누구를 사랑하지 못했던 이유”
Fact ▲2016년 오늘날에도 누드모델이라는 직업은 낯설고 생소하다. ▲1988년부터 28년 간 이 생경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든 하영은(48) 대표다. ▲누드모델이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광고없는언론 팩트올 여기자가 7월 30일 토요일, 누드드로잉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인사동 ‘갤러리M’에서 하영은 대표를 만났다. ▲육체가 아닌, 그녀의 내면 이야기를 전한다. View 하영은(48) 대표는 대한민국 ‘공개 누드모델 1호’라 불린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88년, 20세 때부터 누드모델을 하기 시작했다. 28세 때인 1996년에는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온 삶보다 누드모델로서 살아온 세월이 더욱 긴 셈이다. 누드드로잉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M’에서 7월28일 토요일 오후, 그녀를 만났다.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쎈 언니’였다. 화려한 옷을 입거나 화장을 진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보통’이 아닌 듯 느껴졌다. 스무살 때 처음 500명 앞에서 옷 벗어… “하늘이 노랬다” 하영은 대표는 1988년, 20세 때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옷을 벗었다. 광주에서 여상을 졸업한 뒤 상경, 평일에는 건설회사 경리로 일하고 주말에는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종로 2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어요. 돈까스도 팔고, 함박 스테이크도 팔고, 후식으로 커피도 나오는 그런 경양식집이었죠. 그곳에 드나들던 어떤 사진작가의 제안으로, 처음 누드모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작업 당시의 심경을 물었다. 그녀는 “압박과 강압 그 자체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500명 정도 되는 사진작가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어요. ‘죽어도 못 벗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그만두면 이 경비를 제가 다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몇 달치 월급을 다 털어도 못 갚을 그런 돈이었죠.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고 무대로 올랐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하늘이 노랗다’라는 말이 어떤 건지......” 하영은 대표는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들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그냥 카메라 셔터 소리가 수천 번 났고, 요즘처럼 햇볕이 엄청 뜨거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아요.” 돈이 없어서… ‘하늘이 노랗게’ 보였던 일을 마치고 그녀가 받은 돈은 10만원. 당시 건설회사 경리로 받았던 월급이 15만원 가량이었던 것에 비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녀는 1992년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모델 일을 병행했다. 이후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전업 누드모델의 길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첫 작업의 힘든 기억을 안고, 계속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 대표에게 당시 누드모델의 어떤 매력 때문에 계속 누드모델을 했던 건지 물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매력이요?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한 거죠”라고 했다. “당시 서울에 올라와 몇 달 정도 언니랑 형부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언니 형편도 어려웠고, 그 집이 단칸방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래 살 수도 없었죠. 따로 나와 살기 위해서 혼자 얻은 집이 미아리 달동네였어요. 그 언덕 골목골목을 오를 때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너는 어느 술집 애니?” 누드모델을 하며 돈은 벌었지만 여성으로서 수치심이 느껴지는 ‘더러운’ 경험을 셀 수 없이 겪었다고 한다. 하영은 대표는 “그때는 작업을 하러 나가기만 하면 성희롱, 성추행을 겪었다”면서 “‘섹시하게 생겼다’거나 은밀한 신체부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어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어요. 그때는 누드모델이라고 하면 당연히 술집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작업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너는 어디 술집에 나가는 애니’라고 물을 때였으니까요.” 1996년 6월, 하영은 대표가 직접 나서서 한국누드모델협회를 만든 것도 “더 이상 이런 일들을 누드모델 혼자서 감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협회를 만들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언론에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하 대표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직업’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이전까지는 가족들도 몰랐습니다. 말할 수가 없었어요. 신문과 TV를 보고 언니, 오빠들이 알게 되면서 난리가 났었죠. 오빠는 저랑 연을 끊겠다고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1년 정도 후에는 다시 예전처럼 지냈죠.” 아직도 90세 노모는 ‘직업’ 몰라… 하지만 현재 살아계신 90세 노모는 아직까지 하영은 대표가 누드모델을 한다는 것을 모르신다고 한다. 하 대표는 “몇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제 직업에 대해) 모르고 계셨어요”라면서 “엄마가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마음 편히 가시게 해드려야죠”라며 웃어보였다. 그 웃음 끝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있는 듯했다. 하영은 대표는 협회를 꾸려나가면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불어를 공부했다. 전공을 불어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여상에 다닐 때 불어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서 그때 불어를 잘했거든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협회 일에 모델 일까지 하다 보니 졸업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했다. 40대 후반… 누드모델로는 ‘어중간한’ 나이 그녀는 40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계속 누드모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요즘에는 사진보다 그림 작업 위주로 하고 있다. “지금 제 나이가 어중간해요. 20대의 젊고 팽팽한 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주름이 많이 져서 세월을 담고 있는 몸도 아니잖아요. 사진작가들은 주로 젊은 몸을 원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화가들과의 작업이 더 많은 편이에요.” 그녀는 작가에게 어떤 모델일까? 3년 전쯤부터 하영은 대표와 함께 작업해왔다는 조성미 작가는 “작가를 설레게 하는 모델”이라고 표현했다. 조 작가는 “하 대표는 다른 모델과 확실히 다르다”면서 “빨리 그림으로 담고 싶고, 작업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모델”이라고 말했다. 하 대표는 “선배 모델이나 동료들처럼 결혼하고 애 낳고 살았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비혼이다. “3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서로 결혼은 하지 않고 연애만 하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이유 그녀는 남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당연히 있었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은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잖아요. 안해 본 사람은 모르는 그런 세계니까...”라고 말하더니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이내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 힘겹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슴 깊이 혼자 간직하며 견뎌왔던 이야기였다. “스무살 때 직장 상사한테 강간을 심하게 당했었어요. 그때 안죽어서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신고를 하고, 피해 사실에 대해 주변에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남자랑 손만 잡아도 손가락질을 받던 때였으니까요. 강간 당했다고 하면,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도 여자가 욕먹던 때였죠. 강간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할 시간도, 상황도 아니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남자를 잘 만나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도 없어" 그래서 하 대표는 그동안 “남자를 만났다가도 몇 달 못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고 나면 오랫동안 또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현재 하 대표는 그때의 상처가 많이 치유된 상태라고 했다. 그녀는 혼자 감당해오던 상처를 남자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서, 끔찍했던 기억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녀에게 “누드모델을 바라보는 시선, 선입견 등과 관련해 바뀌었으면 하는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기자가 예상했던 답과는 전혀 다르게 말했다. “나는 누가 내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런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누드모델을 성적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 ‘누드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달라’고 하는 것이 좀 웃기는 얘기 같애요. 모델이 다 벗고 있는데 성적으로 보지 말라니,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요? 누드모델을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없어요. 단, 누드모델을 직업으로 봐 달라는 것 뿐입니다.” 광고없는 언론 팩트올은 기자들이 만든 첫 비영리언론입니다.
중국판에서 내용이 완벽하게 바뀐 어느 명작 영화 결말.....JPG
1999년 영화 "파이트 클럽" 은 개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유명해지며 지금은 저항의 상징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명작 중 하나로 뽑힘 영화의 결말에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손을 잡으며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빌딩들을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바라보며 끝나는데 영화 전체가 마초주의적으로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면서 영화의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감 그런데 중국 텐센트 VOD 서비스에 있는 파이트 클럽에는 결말부분이 완전히 잘려나가고 "타일러의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알게 된 경찰들이 모든 범죄자를 체포하고 폭발을 막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타일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2012년에 퇴원했다" 라는 화면으로 끝남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정반대의 결말이 됨 현재 중국 텐센트는 결말 관련해서 언급을 거부한 상태 출처ㅣ도탁스 vod가 저렇게 정식으로 제공되는 건 제작사랑 배급사에서 허용을 한거 아닌가요 ? 원작자가 저런 결말을 허락한 건지 . . <파이트 클럽>안에 담긴 의미가 모두 뒤틀리고 사라져 버리는데 T_T 이걸 대체 왜 . . 아예 서비스를 하지 말지 . . 에휴 - 관련 기사도 찾아왔는데 참 이해가 안되네요
오정연이 알바하는 카페에 찾아온 남자 손님이 주고간 편지
To 오정연님! 안녕하세요 저는 37살된 서울 강서구에 거주중인 남성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기까지 많이 망설였는데요. 용기내어 편지를 써봅니다. 저는 사실 오정연님을 잘 몰라요. 아나운서시고 방송인인건 알지만 출연하신 방송을 본 것도 거의 없고 팬도 아니고 그냥 무관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여. 이번 라디오스타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보고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때 잘나가던 영업사원 이었지만 작년 9월부터 우울, 불안, 무기력, 대인기피에 시달리고 있어요. 번아웃증후군인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인지 아니면 병원 치료로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수개월간 돈만 까먹으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1월부터는 심리상담도 받으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되질 않고 있어요. 한때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실적을 올리기도 했고 열정적이고 성실하단 말을 들으며 살아왔는데 남들 시선이 두렵고 창피하기도 해서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있어요. 저는 몸 좀 움직이고 잡념도 없앨겸 배달 알바라도 하고 싶은데 “월 천만원씩 벌던 니가 그런걸 왜 해?” 라고 주변에서 속닥거릴거 같아 용기를 못내고 있습니다. 전 돈을 적게 벌더라도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잠시 하고 싶은 일, 그냥 하고 싶은 일... 알바든 뭐든 조그만 행복을 주는 그런걸 하고 싶은데 두려웠어요. 주변의 시선이... 라디오 스타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탑 아나운서도 저렇게 알바를 하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용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정연 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알바를 하고 계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멋져보였어요. 처음으로 오정연님 인스타도 들어가보고 많은 위로와 긍정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고 뭐라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들어요. 일상도 무너지고 수면패턴도 망가졌는지 아침 일찍 정연님 뵈러갈 생각에 너무 설레네요. 이 편지는 감사함을 담기도 했지만 어쩌면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적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정연님 정말 감사하구여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 많이 보여주세요. 항상 웅원하며 팬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라는걸 써본적이 없어서 내용도 글씨도 엉망이네요. 2018. 1. 31 -팬- ㅠㅠㅠ 서로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된 것 같아여 넘나 훈훈,, 두분 모두 더더 잘되시길!!!! 그리고 혹시나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있을 빙글러들 있따면,, 위로가 되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