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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속의 ‘수포자’들을 깨우는 방법

인공지능 수학 교육 플랫폼으로 개인화 된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노리’


학창 시절. ’수학 시험’ 때면 나타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혹은 왕자’들을 목격한 적이 있을테다. 보통 중학교에서부터 조금씩 출몰하는데, 반에 한 두명 씩 시험 시작과 동시에 OMR 카드에 정답을 ‘그리고는’ 책상에 엎어지는 게 특징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많게는 학급의 절반 이상이 수학 시험 시간 내내 수면 상태에 빠지는 기이한 현상을 연출하기도 한다.
‘수포자(수학포기자)’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면서 교육부는 지난 2012년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지난해엔 이를 확장한 ’제2차 수학교육 종합계획’을 내놨다. 딱딱한 수학에 쉽고 재밌는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배움을 즐기는’ 교육, ‘실생활과 연관된’ 교육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 혹은 왕자의 숫자는 줄어들 줄 모른다. 지난해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 실시한 수학교육 인식 조사 결과 우리나라 초∙중∙고생 가운데 48%가 넘는 학생들이 여전히 ‘수포자’라고 답했다. 고등학생 수포자는 60%에 달했고 이미 초등학생 때 수학을 포기한 학생도 36.5%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수학 점수를 포기하는 것이 곧 ‘좋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수포자’가 된 이유가 단지 수학이 재미없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이렇듯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는 현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 나선 기업이 있다. 인공지능 수학 교육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 ‘노리(Knowre)’가 그 주인공이다. “디지털 교육이 수학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노리의 김서준(33) 부대표를 만나 수학 교육의 미래를 함께 그려봤다.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통한 교육의 ‘개인화’가 답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내용이 어렵고 배울 양이 많아 수학이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 앞선 조사에서 ‘수학이 어렵다’고 답한 학생은 중학생이 50.5%, 고등학생이 73.5%에 달한다. 그렇다면 난이도를 낮추고 학습량을 줄이면 '수포자’가 사라질까.
비영리 교육단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찬승 대표는 그의 칼럼 '수포자의 잘못된 원인분석이 잘못된 해법을 부른다’에서 “수포자 발생원인과 수학의 난이도, 학습량 등과의 관계는 통념과 달리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수학을 ‘어렵다’라고 느끼는 이유가 절대적인 학습 난도의 고충에서 비롯됐다기 보단 "내용의 이해에 필요한 사전지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학습자의 정보처리 속도에 비해 교사의 설명이나 수업진도가 더 빨라 인지 과부하가 일어"나는 등 잘못된 수업 방식 혹은 체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수포자’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학생들의 사전지식 정도와 이해 속도에 따라 개별 수학 교육을 제공하는 방안이 될테다. 노리의 다섯 공동 창업자들이 ‘개인화(personalization) 된 수학 교육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계기도 같은 맥락에서다.
“2008년부터 서울 대치동에서 5년 동안 수학 학원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 명의 학생에게 똑같은 콘텐츠로 칠판 강의를 할 수밖에 없다 보니 학원에서도 낙오되는 학생이 생기더라고요. 잘하는 학생들에게도 더 좋은 강의를 해줄 수가 없고요. 그때 ‘개인화’ 된 교육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학생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맞춤별 교육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 한 명이 학생 한 명을 가르치는 개인 과외. 그러나 통계청의 ‘2015년 사교육비 조사결과’를 보면 일반 교과목 개인과외를 받는 학생은 10.6%에 불과하며 이들의 월평균 과외비는 32만원이 넘는다. 실현 가능성을 논할 필요도 없는 공교육을 차치하고 사교육 시장에서도 개인 과외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그림의 떡인 셈이다.
김 부대표는 “개인화 된 수학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결국 디지털 콘텐츠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 2012년 5월 인공지능 수학 교육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 ‘노리’가 탄생했다.
노리는 과외 선생님이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방식을 컴퓨터가 최대한 흉내내 대화형으로 수학공부를 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짧은 동영상 강의로 필요한 개념을 먼저 잡아주고 학생이 수학문제를 풀기 시작하면 노리의 소프트웨어가 그 과정을 분석해 다음 학습을 돕는다. 컴퓨터 속 선생님이 목소리로 말도 걸고 사람의 손으로 글을 써 설명해주는 형식의 영상도 삽입돼 있다.
“만약 학생이 문제를 틀리면 노리의 공식 선생님인 ‘닥터 더그’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단계별로 도와줘요. 전체 문제 중에서도 어떤 부분을 몰라서 틀렸는지 정확히 파악해 더 작은 문제로 쪼개주는 등 부분별로 지도해 주는 거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주 틀리거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개인화 된 복습과제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능도 있어요.”
노리는 한국에서 설립된 기업이지만 미국 진출을 먼저 한 특이 케이스. 2013년부터 미국 학교들에 웹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태블릿으로 수학을 공부한다는 게 너무 낯선 상황이었어요. 인터넷 강의는 많았어도 ‘어떻게 컴퓨터로 수학을 풀어?’란 인식이 대부분이었죠. 반면 미국은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많이 쓰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한명 한명 지도해줄 수 없기 때문에 공교육에 디지털 디바이스와 콘텐츠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었거든요.”
미국에 ‘노리’를 론칭한 지 3년. 현지 선생님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보는 평가 시험이 있는데 저희 제품을 사용한 곳이 가장 수학 성적이 높은 학교로 뽑혔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디지털 콘텐츠’가 답이라는 저희 생각이 옳은 방향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 뿌듯했죠.”
노리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9월. 미국과 달리 디지털 기기 보급이 활성화 돼 있지 않은 공교육 시장 대신 사교육 시장에 먼저 진출해 교육 회사 ‘대교’와 EBS에서 공동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아무래도 종이에 쓰면서 문제를 푸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필기가 가능한) 태블릿 서비스를 미국보다 먼저 시작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학원에서조차 낙오되던 학생들도 성적이 오르거나 수학에 흥미를 붙이는 경우도 많았고요. 어떤 학생은 수학시간에 항상 졸렸었는데 잠이 확 깼다고 하더라고요. 수학 교육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종이책이 해줄 수 없는 디지털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죠.”

공교육의 미래 ‘디지털 수업’

개인화 된 디지털 교육이 수학 교육의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면 미국처럼 한국도 이를 공교육으로 확대할 수는 없을까. 교육부는 이미 지난 2007년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디지털 교과서를 모든 학교에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의 역기능 우려와 예산 문제 때문에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해졌다.
정부는 일부 학교에서만 시범 사용중인 디지털교과서를 오는 2018년 3월부터 모든 초·중학교로 확대하는 '디지털교과서 국검정 구분안'을 지난 6월 다시 행정예고하며 여론 수렴에 들어갔다. 지난해 시범 사용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마트 기기 중독이나 시력저하 같은 역효과 가능성은 확인되지 않은 반면 교사와 학생들의 만족도와 교육 효과는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분석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기부여를 해주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사회성을 길러주는 일은 오직 선생님만 할 수 있죠. 지금 학교의 문제는 선생님들이 칠판 강의를 하고 시험문제 내고 채점하고 공문을 써내느라 정작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봐요. 인공지능 교육 플랫폼을 통해 선생님이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게 저희 노리의 목표에요.” /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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