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una
500+ Views

M-KISS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진화와 변화의 궤적을 전해드리는 노주석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남산은 본래의 남산이 아닙니다. 남산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기 그리고 산업화과정을 겪으면서 가장 극심한 파괴와 훼손의 상처를 입은 역사의 산증인인데요. 특히 일제 강점기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일본은 남산과 남산주변 지금의 충무로 일대를 식민통치의 핵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의 남산 잠식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는데요. 1898년 예장동에 경성신사를 세우더니, 1904년에는 필동에 조선통감부, 헌병대사령부, 일본인 거류지 등을 착착 구축했습니다. 1908년에는 무려 30만 평에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 신궁을 세웠지요. 그들은 사대문 안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조선신궁을 세워 조선 사람의 혼을 뺏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이 잠식한 땅은 지금 남산공원의 3분의 1이 넘는데요. 이때 남산의 역사성과 생태계의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산에 일본의 잔재는 또 있는데요. 여러분 남산을 산책하시다가 “왜 이렇게 벚나무가 많지?”하고 생각하신 적 없으신가요? 흔히 벚꽃 하면 매년 대대적인 축제가 열리는 여의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개체수로 따지면 서울에서 벚나무가 가장 많은 곳은 남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남산은 벚나무 천지가 됐을까요? 벚나무 식재의 역사를 살펴보면 남산도서관에서 서울타워에 이르는 벚꽃터널은 100여 년 전 일제에 의해 조성됐습니다. 일본인들은 1897년 지금의 숭의여자대학 자리에 왜성대공원, 1908년에는 옛 남산 분수대와 지금의 케이블카 승강장 남측 지점에 한양공원을 각각 조성했는데요. 일본산 벚나무를 대거 옮겨 심는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죠. 1935년 3월 27일자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일제는 장충단에 벚나무 1만2500그루도 심었는데요. 장충단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때 순직한 호위군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현충원입니다. 그런 곳에 벚나무를 심고,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제사지내는 박문사를 지어 공원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죠. 이 벚나무들이 야금야금 퍼져서 남산을 뒤덮었고, 그 과정에서 남산의 터줏대감 격인 굽은 소나무가 절반 이상 사라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남산의 벚나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벚꽃은 언젠가부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봄꽃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역사인식으로 무조건 벚나무를 배척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벚나무를 유독 남산에 대대적으로 심은 이유만큼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산은 또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섭니다.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남산 아래에는 거대한 ‘해방촌’이 형성되었죠. 이승만 정권시절 남산에는 이대통령의 초대형 동상과 우남정이 세워졌다가 허물어졌고,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선정돼 기공식까지 치러졌지만, 백지화되는 촌극도 벌어졌지요. 1960년대와 1970년대 남산은 통치이념에 의한 지배이데올로기의 경연장이 되어 어린이회관과 자유센터, 타워호텔, 외인아파트 등이 마구 들어서 경관과 생태계를 해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 안보경쟁의 산물인 ‘서울 요새화 계획’이 남산에 남긴 생채기도 컸는데요. 사실 지금의 1, 2호터널은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주목적이라기보다 북한의 공습을 대비한 것입니다. 서울시민 30만-4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또 북한에서 보내는 전파를 차단할 목적으로 송수신탑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서울타워입니다. 남산의 풍광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느새 남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이제 탈개발, 탈권위주의 시대를 맞은 남산은 단순한 복원을 뛰어넘어 사회적, 문화적 공공성을 찾는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닻을 올린 ‘남산제모습찾기사업’과 ‘남산 르네상스’에 이어 남산 정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소나무도 1만8300그루를 새로 심어 2015년까지 총 4만 9300그루, 남산 숲의 17.7%를 차지하고 있지요. 이렇게 갖은 상처로 얼룩졌던 남산의 얼굴이 많이 밝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고난과 역경을 고스란히 받아냈던 남산, 굴곡진 역사 속에서 남산이 겪어야 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어쩌면 남산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남산의 정체성 회복과 치유에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용약관 저작권정책 개인정보취급방침 고객지원 02-2143-8507 / mkiss@sericeo.org
Comment
Suggested
Re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