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brielBarb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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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가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는 이유

이번 여름에도 박주호 선수는 이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5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음에도 박주호 선수는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네이버 라디오인 풋볼앤토크에서 박문성 위원이 직접 박주호 선수에게 들은 내용을 밝힌 부분입니다.
박주호는 도르트문트 이적 당시 고려했던 사항이 주전 출전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도르트문트에서 10경기 내외로 뛰면 족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도르트문트 말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에서도 오퍼가 들어왔는데 거절하고 도르트문트를 선택했다고 하네요.
도르트문트에 가서 주전으로 뛰고 팀을 바꿔 놓는 것을 목표로 한게 아니라 은퇴 이 후에 삶을 위해 여러가지 경험을 하려고 빅클럽인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강팀이 어떻게 훈련을 하고 운영되는지 알고 싶었다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선수 은퇴 이 후의 삶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황인거죠.
출처 풋볼앤토크 라디오
이번 시즌도 본인이 뛰는 자리에 추가로 선수가 영입됐지만 남은걸 보면 아직 배우고 경험할 것이 더 많은 모양입니다.
국가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될 순 있지만 개인으로 보자면 축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네요.
1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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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뜻이잇네..박주영도 그럼?
박주영 어지간하게 까라 아직도 박주영 타령이고 ㅡㅡ
@ddaekajy 난 박주영 안깐다. 그가 런던 한일전때 넣은 골은 한국역사상 가장 위대한골이었다.
사실 박주영에게 뭐라고 할만한 게 있나? 어이가 없다. 진짜 실력이 없는데 아스날 갔었고 대표팀 됐냐고... 아니잖아. 죄인 수준으로 뭐라고 하는거 보면 진짜 국적 포기하고 싶을거 같다. 진짜 이제 신분 공개로 댓글달게 했으면 좋겠다.
멋지다.난 팀선수가 누구줄도 모르고 도르트문트 좋아함.대박팀~이런 심지 굳은친구가 시간 지나면 크게됨
오늘 짱개랑 한 경기를 보고 있자니 주호가 넘 필요해 지금 주호 니 발바닥 때만도 못한 애들이 수비보고 있다고!!!
모든 선수가 뛰는 시간과 비례하는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도르트문트에서 배운 강팀의 전술과 훈련법이 나중에 새팀을 찾을 때가 되면 큰 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빅클럽에 온 이상 쉽게 나가거나 해선 뭔가 아깝잖아요. 남아있는 동안 배울 수 있는건 배우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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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코리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상당합니다. 국대 축구를 00년부터 보기 시작한 본 에디터가 약 17년간 본 국대 스쿼드 중 가장 강했던 TOP 6를 선정해보았습니다. 'KOT가 선정한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TOP 6' P.S: 사실상 성인팀에 가까운 올림픽 대표팀도 포함했습니다. 6위. 2007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핌 베어벡 성적: 아시안컵 3위 의의: 한국축구에 4백 장착 아시안컵 3위에 그친 팀이 지난 17년간의 대표팀 중 6위에 선정된다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쿠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감독 등 유수의 외국인 수장들이 거쳐갔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4백 수비가 제대로 정착되어있지 못했는데요. 이 대회를 통해 4백 수비가 정착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경기력이 발암이었다는 점은 논외로 하구요. MVP: 이운재 (토너먼트 무실점 및 승부차기 2승 1패) 5위.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감독: 김호곤 성적: 올림픽 8강 의의: 세계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엿보다 평가전 내내 강했던 파라과이를 만나 허무하게 8강에서 떨어진데다, 본선 4경기에서 8실점으로 수비라인이 무너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 8전 8승 12득점 무실점으로 쾌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기존 와일드카드인 송종국, 김남일의 부상하차 및 박지성 차출 실패 등이 겹쳤지만,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이전에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MVP: 조재진 (4경기 2득점) 이천수 (4경기 2득점) 4위. 2015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 성적: 아시안컵 준우승 의의: 27년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도 실패했고, '늪축구'라고 포장하긴 했지만 경기력도 별로였죠. 사실 2011 아시안컵 대표팀의 경기력이 더 나았다고 보여지나, 프로는 결과로 말합니다. 대회 전부터 이동국, 김신욱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대회를 치르면서 이명주의 폼 저하 및 이청용, 구자철의 부상 이탈로 애를 먹었지만 꾸역꾸역 승리하며 결승전까지 갔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 2골로 승리한 점은 백미였다죠? MVP: 김진현 (5경기 무실점) 3위.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 홍명보 성적: 동메달 의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 병역면제라는 동기부여가 주어질 경우,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드러난 대회였습니다. 뭐,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당시 선수들의 폼은 절정에 이르렀죠. 홍명보 감독 특유의 (전술 유동성이 없는) 4-2-3-1의 명암 중 암보다는 명이 드러났던 시기였습니다. 나름의 의리축구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대회였다고 평합니다. MVP: 구자철 (주장 + 6경기 출전) 2위.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 허정무 성적: 16강 의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대회 직전에 센터백인 곽태휘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지역예선에서 팀을 캐리했던 이근호가 폼 저하로 탈락. 설상가상으로 베테랑 골키퍼 이운재도 노쇠화가 뚜렷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추스려 사상 첫 원정 16강 신화를 만들어낸 허정무 감독의 역량은 평가절하하기 힘듭니다. 사실 저 스쿼드로 16강에서 그친 점은 아쉽긴하지만, 순수 전력만 보면 어쩌면 2002 한일 월드컵 이상이라고 보여집니다. MVP: 박지성 (4경기 1골) 기성용 (4경기 2도움) 이정수 (4경기 2골) 1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성적: 4강 의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 아시아 국가 역사상 첫 4강 진출 아시아 선수 역사상 첫 개인 타이틀 수상 (홍명보의 브론즈볼 수상) 이 대표팀을 글자 몇 줄로 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실례일 것 같습니다. 제 유년시절을 수놓았고, 축구로 벌어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해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죠. 이런 대표팀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MVP: 히딩크 감독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KFA 관계자 전원 + 히딩크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전원 + 23인 엔트리 선수 전원 좋아요와 댓글은 본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된다능..ㅎㅎ 데헷 :)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슛토리] 한국 축구, 한국 스포츠 언론의 추악한 민낯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한동안 바쁘다가 이제서야 글을 올리네요. 제가 일하던 사무실이 '확장이전'!!!을 했기 때문에! 그 동안 바빴습니다... '아니 확장이전을 했는데, 왜 님이 바쁨? 이삿짐센터가 해 주지 않음?' 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삿짐센터가 이사철이라서 전부 예약이 차 있어서... 제가 옮겼습니당... 아버지랑 아버지 친구분들이랑... 제 친구들이랑... 정말 뒤지는 줄... 책장 옮기다가 남은 수명 저승으로 배송할 뻔... 그래도 넓은 곳에서 넓은 책상을 갖고, 새 의자에 앉아 있으니 기부니가 참 조크등요..? 아무튼! 오늘 다룰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이며,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빠르게 시작해볼게요! ------------------------------------------ 안녕 친구들! 오늘 다룰 이야기는 정말 무거운 이야기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해외축구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즐겨 왔던 친구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사람이 있지. 바로. 이 성 모 기자님. 한국 해외축구 팬들에게는 '갓성모'로 불리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던 기자님이었어. 이 분이 한국 축구팬들에게 받는 지지는 어마어마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은 '참 기자' 중 한 분이지. 네이버 스포츠 뉴스에서 거의 최초로 축구기사에 '움짤' 을 넣은 걸로 유명하고, 축구에 관한 열정과 지식이 어지간한 해설위원보다 낫다고 평가받는 사람이야. 기자들 중에서는 단연 원탑이고. 실제로 다른 기자들이 해외축구 소식을 전할 때, 유럽 현지 언론에서 쓴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에 '전달'하는 수준이라면, 이 분은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직접 기자석에서 경기를 보고, 분석하고, 선수들과 인터뷰 및 구단 관계자들과 소통해 생생한 정보를 기사로 쓰는 분이지. 외국어에도 능통해서 선수, 감독 및 구단 관계자들과 막힘 없이 인터뷰도 가능하고, 한국에 나오는 많은 축구 관련 자서전, 서적 등을 번역기도 해. '누구보다 ㅇㅇ 전문가가 되고싶다' 라는 책 시리즈도 만드시고, 아르센 벵거 전 아스날 감독, 안드레아 피를로 현 유벤투스 감독,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등. 수많은 선수 및 감독들의 자서전도 번역했어. 축구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정말 어마어마한 기자님이야. 이성모 기자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당시 토트넘의 감독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직접 애도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 구단 관계자, 선수, 감독이 기자에게 거부감이 없다는 건 그 기자가 정말로 옳은 정보만은 전달하며 열심히 발로 뛰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사실 나는 가장 존경하는 기자님이라서, 꾸준히 DM으로 이성모 기자님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기자님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지원서도 몇 번 넣어봤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지... 그 때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봤는데, 감사하게도 기자님께서 직접 축구에 관련된 책을 택배로 보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던 기억이 나.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성모 기자님께 피드백을 받고, 도움을 받았어. 축구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는 분이지. 그런데, 지금 이성모 기자님은 법적 분쟁에 휘말려서 기사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야. 누구와 법적 분쟁이냐고? 기자님이 뭘 잘못했냐고?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해. (이 글은 이성모 기자님께 메시지로 허락을 받고 올리는 글이야. 누구든 어디든 마음껏 퍼나르고 옮겨도 되니,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았으면 해.) 어느 날. 이성모 기자님의 페이스북에 하나의 게시물이 올라왔어. 간단하게 글을 요약하자면, 손흥민이 100호 골을 넣은 날. B라는 통신원이 영국 현지에서 손흥민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올렸어. 하지만 이성모 기자님은 그 현장에 있었고, B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어. 허위로 기사를 작성한 거지. 그렇지만 B의 사기 행위는 이 뿐만이 아니었어. - 자신이 가지 않았음에도 현장에서 취재한 것처럼 기사를 내는 행위 - 스포츠 브랜드 행사 초청 자리에 무단으로 자신의 지인을 참석시켜 축구계 스타플레이어와 만나게 하는 행위 - 빅매치 때 한국 기자진들에게 할당된 기자석에 대학생이자 자신의 단체 일원인 일반인을 무단으로 들어가게 해 정작 취재를 해야 할 기자들이 들어가지 못했던 일 - 방금 경기를 마치고 나온 손흥민 선수를 자신들의 지인(어르신이라고 부르는)들에게 마음대로 데리고 가 인사시키는 행위(토트넘 관계자들이 그 당시 '저 사람이 쏘니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라고 물어보며 황당해했다고 함) - 외신 기자들은 물론 토트넘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공동 취재 구역에서, 본인의 지인들이 부탁한 손흥민 선수 유니폼을 들고 와 사인을 받아 나눠주고, 이런 행위를 SNS등에서 마치 선심 쓰듯 홍보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행위 - 영국 축구 관계자에게 “대한민국 대표팀 OO선수가 내 조카다”라며 거짓말을 했던 행위(해당 관계자에게 이것이 사실이냐며 제보가 들어왔고, 확인 결과 팩트가 아닌 것으로 밝혀짐) - 본인 이외의 타 언론사에서 본인과 가까운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시도할시, 본인을 거친 후에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뒤에서 조정하는 행위 (본인은 이 인터뷰를 '허락했다' 라고 말함) 정말 쓰면서도 어이가 없네. 어떻게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세상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을까? 그것도 3년 동안이나. 이성모 기자님도 처음에 이런 행위들을 목격했을 때는 B에게 '절대로 거짓말하지 마라' 라고 경고했다고 해. 이성모 기자님은 '기자'라는 직업은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하고 정직한 정보 전달'이라는 본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여러 번 기사 및 유투브, SNS를 통해 내비쳤기 때문에, B의 저런 행태들에 더욱 화가 났을 거야. 아울러 기자님은 3년 동안 저런 행태들을 지켜보면서 그 때 바로 폭로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오히려 대중들에게 사과를 했지. 그렇다면 이 B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선수들, 관계자들을 무시하고 귀족처럼 행동할 수 있었나? 바로 이 사람. 이미 많은 커뮤니티 및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밝혔고, 이성모 기자님도 거론한 사람이야. 대체 어떤 힘이 있고 어떻게 인맥이 닿아있는 지 모르겠지만, 해외축구계에서 거의 '천룡인'에 가까운 힘을 내는 사람이야. 여러 사이트에서 나온 추측들 중에는 '목사'라는 지위가 한 몫 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엄청난 인맥과 부를 축적해 그걸로 움직인다고 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팩트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여러 링크들을 타고 들어가서 사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보는 게 더 빠를 거라 생각해서 링크 첨부해! https://bad-mouth.net/2020/02/19/info12/ https://badmouth2.net/2020/10/07/info7/ 내가 즐겨보던 페이지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다뤘어. 정리가 잘 된 글이니 읽어보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 https://youtu.be/FiJTO7czv5s 이 영상도 마찬가지. 내가 이 글에서 내 생각대로 글을 쓰지 않고, 관련 자료들을 첨부한 이유는. 나는 이성모 기자님을 존경하고, 이성모 기자님의 팬이야. 이성모 기자님이 '골닷컴'에 입사했을 때, 음악을 배우고 있던 내가 '골닷컴'에 입사지원서를 넣었을 정도로. 심지어 대학교 졸업 논문도 기자님의 기사와 번역한 책들을 갖고 썼을 정도야.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직접 쓴 글에는 '감정'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나는 내 글을 읽는 빙글러들이 '이번 사건'만큼은 정확한 팩트를 기반으로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고, 부조리와 불합리에 용기있게 홀로 맞선 어느 정직한 기자님에게 힘을 실어 주기를 바라. 정직하고 정확한 양질의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려고, '돈'보다는 '신념'을 위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기사를 쓰고, 유럽 각 국의 경기장을 발로 뛰면서 활동하는 이런 기자님이 '돈'과 '권력'에 무너진다면, 과연 이 대한민국 언론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은 언론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그나마 엠스플 뉴스만이 적극적으로 사실을 알리려 하고 있고, 나머지는 무시하거나 쉬쉬하는 분위기지.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실이 그래. 일을 하지 못하고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은 '천룡인'인 김상열 목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진실'을 밝혀 준 이성모 기자님이야. 아이러니하면서 정말 화가 나. 이 글을 보는 모든 친구들. 한 번만 관심을 가져주고 귀 기울여 줘. 그리고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알려 줘. 부탁이야. 축구를 좋아한다면, 손흥민, 박지성, 이강인 등 수많은 한국 선수들을 보고 한 번이라도 즐거웠다면. 우리 나라 최고의 기자님 중 한 분인 이성모 기자님이 다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게 관심 가져줘. https://youtu.be/A6IhuIYPvkk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기자님이 올린 글과 영상을 첨부하면서, 오늘의 [슛토리]. 여기서 마칠게. -------------------------------------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양질의 기사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참된 기자 중 한 명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로 펜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다음에는 좀 더 가볍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optimic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버풀만큼 존중받아 마땅한 도르트문트
유로파 리그 8강 2차전 리버풀 v 도르트문트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4:3 스코어도 경기력도 드라마틱 했지만 이런 경기보다 더 주목받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도르트문트의 팬들입니다. 지난 1차전 도르트문트 홈경기에서 돌문 팬들은 리버풀 팬들과 함께 You Will Never Walk alone을 함께 불렀습니다. 흔히 떼창이라고 하죠. 많은 유럽 축구 팀들의 서포터들이 YNWA를 응원가로 부르고 있지만 유독 이 곡은 리버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응원가를 원정경기의 팬들이 함께 불러주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현지시각 14일) 리버풀 홈에서 2차전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원정온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특별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4월 15일은 리버풀 팬들에겐 비극적인 날입니다. 힐스보로 참사, 1989년 4월 15일 힐스보로 참사로 리버풀 팬 96명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힐스보로 참사 추모일 바로 전 날,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꽃을 놓아주고 마음을 다해 그들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특별한 추모행사, 도르트문트 팬들은 힐스보로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가두행진을 하며 YNWA를 불렀고 곧 리버풀 팬들까지 합세해 이들은 또 다시 이 유명한 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도르트문트 팬들이 보여준 행동들은 모든 축구팬들이 리스펙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팬들을 가진 축구팀 도르트문트, 정말 멋지지 않나요?
[슛토리] 아프리카의 '검은 예수'
2005년 11월.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남북으로 나뉘어 전쟁 중이었다. 정부군이 점령한 코트디부아르 남쪽, 반군이 깃발을 꽂은 북쪽. 분단된 나라에서는 수없이 총성이 울리며 동포들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넣었고, 한 나라의 국민들끼리 동족상잔을 이어가며 비극적인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지쳐가던 그 때,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한 남자는 동료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강적들을 꺾으며 월드컵 본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내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주고, 전쟁을 멈추자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해 세계인의 '축제'에 참가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을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은, 수단 대표팀을 3-1로 이기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그는 선수단을 촬영하는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붉어진 눈시울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호소했다. 사랑하는 코트디부아르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합시다. 그리고. 제발 월드컵 본선이 진행되는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주세요. 그리고 그의 진심과 눈물이 섞인 호소를 TV로 지켜본 반군과 정부군은 정말로 1주일 동안 전쟁을 멈추게 됐고, 코트디부아르에는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휴전이 진행되던 2007년, 극적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코트디부아르는 길었던 내전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웃으며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모두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는 '검은 예수' 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슛토리] 오늘의 주인공.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가졌던 완성형 스트라이커. 실력만큼 인성도 월드 클래스였던 남자.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아프리카의 '검은 예수' 디디에 드록바(Didier Drogba) 안녕 친구들! 오늘은 정말 유명한 선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아마 축구 좀 좋아한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가 이 선수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해. 심지어 축구를 잘 몰라도 이 선수의 이름을 들어본 친구들도 많을거야. 특히 이 선수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FC의 팬들에게 드록바는 거의 신과도 같은 위치에 있어(드---멘) 전성기 때 드록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완벽형 스트라이커'야. 흑인 특유의 유연성 + 피지컬과 189cm의 키와 점프력에서 나오는 제공권, 빠른 스피드. 여기에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패스와 연계, 위치선정까지 뛰어난 그야말로 만능 공격수였어. https://youtu.be/T-BCZmQ8WU0 (드록바의 베스트 골을 모아놓은 영상) 드록바라는 선수가 첼시에서 세운 업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데, 첼시는 드록바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4회, 리그 컵 우승 3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커뮤니티실드 우승 2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고, 드록바는 첼시에서 381경기 164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 첼시라는 팀의 최전성기에 핵심으로 활약했던,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이지. 이런 드록바는 조국인 코트디부아르를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도 유명해. 그는 내전이 진행되는 중 잉글랜드에서 '조국과 국민은 고통 속에 있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될까?' 라는 고민을 항상 했다고 해. 그리고 그가 결심한 것이 생방송에서 호소하는 것이었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 그리고 내전이 종료된 직후, 그의 연봉 중 절반이었던 한화 약 60억원으로 조국을 위해 코트디부아르에 병원을 설립하고, 4,000명에 달하는 전쟁 난민들을 후원하기 시작했어. 또한 2009년 펩시콜라 CF를 촬영하고 출연료로 받은 약 54억원을 자신의 고향인 아비장의 종합병원 건립 기금으로 내놓았고, UN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어. 그의 아내 또한 드록바와 함께 선행을 하기로 유명해. 스캔들 및 여자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 드록바 부부는 코트디부아르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의 의료시설 부족 및 낙후된 의료체계에 관심을 갖고 재단을 설립해 꾸준히 의료지원을 하고 있어. 또한 에이즈퇴치운동 등 공공 보건에 관련된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인기가 높다고 해. 심지어 드록바의 어머니조차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때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러 온 서포터들을 위해 현지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서포터들에게 전달하며 감사함을 표했어. 서포터들은 대표팀의 주장의 어머니라서가 아닌, 워낙 인품이 훌륭하신 분이라서 유명하다고 얘기했다고 해. 정말 그 엄마에 그 아들... 우리나라로 치면 손흥민 선수 어머니께서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게 음식을 돌린 정도...일까? 드록바의 사진을 들고 마치 신처럼 숭배하는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의 모습이 보여? 드록바가 입국할 때면 사람들은 환호를 하며 그에게 다가가 왕관을 씌워주고, 망토를 전달한다고 해. (대략 이런 느낌...?) 어떤 외신 기자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만약 드록바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국민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 어차피 당선될 건데 돈 아깝게 투표는 왜 해야 하죠? 이렇듯,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신과도 같은 위치에 서있는 남자야. 물론 그가 조국을 위해 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국민들이 이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랬던 그는 어느 날 돌연 중국 리그로 이적해버렸는데, 노쇠화로 인해 피지컬적인 부분이 떨어졌어도 충분히 유럽에서 통할 능력을 가진 그였기에 많은 팬들이 의아해했었어.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조국은 아직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나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갈게 기다려!) 라고... 아아...드---멘... 참고로 중국 리그는 다른 곳보다 많은 연봉을 보장하지만, 리그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삶의 질 또한 낮아지기 때문에 정상급 선수들은 기피하는 곳이야. 그의 선행은 아프리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그가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 선행을 베풀었어. 선수 말년 그는 터키 갈라타사라이라는 팀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터키에서 광산 폭발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가 일어났었어. 선수들은 팀과 함께 십시일반 모금을 해 위로금을 전달했었고, 드록바도 아낌없이 모금에 동참했어. 그런데 그 후, 익명의 기부자가 한화 약 14억원에 달하는 큰 돈을 기부했다는 거야. 그런 큰 돈을 한 번에 기부할 사람이 몇 되지 않았기에 추리는 것은 쉬웠고, 그 인물은 드록바로 밝혀졌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드---멘...) 익명의 기부자가 드록바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일로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라며 아낌없는 프로 선행러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조국이 고통받고 있다며 자신의 재단인 '드록바 자선재단'을 이용해 자신의 병원을 개방해서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코로나와 싸워나갈 수 있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고 해. 드록바는 이렇게 얘기했었어.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봤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 준 순간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 이 말 한마디에 그의 인품이나 애국심,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 여전히 선행을 멈추지 않는 남자.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 남편이자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남자. 코트디부아르와 아프리카의 영웅 '검은 예수' 흔히들 축구를 전쟁으로 비유하곤 하지. 하지만 이 세상엔 축구로 전쟁을 끝낸 남자도 존재한다는 거. 전쟁을 멈춘 남자. 디디에 드록바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