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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

시간은 칼 같아서 닿으면 손이 베이는 종이처럼 분명한 선과 선으로 산 자들의 하루를 나누고 죽은 이들의 마지막 결승지점을 가른다. 이 가늘고 긴 선은 겨우 1초의 속도로 나아가지만 멈추지 않는 뚝심으로 세상의 기준이 되었고, 순간을 유일하게 만드는 비결이 되었다.

1984년의 9월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2017년의 9월도 한 번 뿐일 것이다. 나이를 세고 달력을 들여다보면 초조해지는 것은 내 시계의 끝을 모르는데 꽤 많은 세월을 이미 써먹어버렸고 나머지 시간이 어디로 흐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반팔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 닿는, 바람의 온도 뿐. 햇살은 아직도 여름인데 바람은 어제 불던 그 바람이 아닐 때, '어느덧 가을'이란 감탄사가 흘러간 시간을 향한 무기력한 탄식처럼 터져 나왔다.

'어느덧 가을' '어느새 월요일' '어느새 추석...'

바람 가득 넣은 튜브가 매달려 있던 마트 천장에는 추석 맞이 빅세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제대로 된 물놀이 한번 못해봤다는 아쉬움이 뒷북 치듯 밀려왔다. 시간의 성실함을 깨우친 게으른 자는 한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세월은 한번도 덧없이 흐른 적이 없다. 내가 덧없이 살았을 뿐.

내 나이 서른둘. 분명 십 년 전 꿈꾸었던 그 모습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십 대에 꿈을 이루고 돈 걱정에 연연하지 않으며 남은 시간을 순탄히 살아가는데, 서른 넘도록 이룬 것이 없는 나는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하고 초조하기만 하다. 그나마 내 자존감의 한 자락 끈이 되어주던 피부도 예전 같지 않다. 내 얼굴을 유심히 보고는 '피부는 좋은데 탄력에 신경 쓰셔야 겠다'며 안티에이징 제품을 권하는 매장 언니들이 하나, 둘 늘었다. 단순한 상술만은 아닌 것이 내가 봐도 이십 대 애들의 그 차오르는 탄력과 내 피부는 엄연히 다른 질감이다.

영화에서 갑작스레 씬이 바뀌면서 젊었던 주인공이 할머니가 된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 남 일이지만 참 싫었는데 나의 일이 되면 그 잔혹한 리얼리티를 영화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늙은 내 모습은 상상 이상, 아니 상상 이하의 것일 텐데... 어느 날 맞이할 마흔과 오십, 미래의 '어느 날'을 생각하면 암담해져서 그 막막함을 잊기 위해 레티놀이 들어간 고가의 크림이나 에센스를 덜컥 사버리고는 했다.

피부와 맞바꾼 세월을, 부끄럽지 않게 늙었노라고 자부하려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매년 맞는 생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부채감이 늘어가는 서른 둘. 시간은 공짜로 자리를 임대해주고 어느 날 갑자기 일수를 받으러 온 업자처럼 어이없이 굴 때가 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라고 항의하면 시간은 이렇게 말하겠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니.”

피부를 늙게 만드는 건조한 바람이 찾아왔다. 가을맞이 기념으로 오일 하나 주문했는데 입소문대로 보습력이 좋았으면 한다. 냉정한 시간 앞에서, 이 모든 구매가 뻘짓일지라도 일분 일초와 사투를 벌이는 결연한 심정으로 오일을 쳐바를 것이다. 그것이 늙어가는 자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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