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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재입장이 힘든 이유를 알아보자
공항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공항에선 수하물 찾고선 나갈때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시간을 잠시 돌려 1999년대로 가보자 이사람의 이름은 니시자와 유지 흔한 항덕이었지만, 사정이 안되서 철도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안되어 자살할 결심으로 회사를 나가게 되지만, 실패하게 되어 히키코모리가 된다 히키코모리였던 당시 그가 주로 했던게임은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였다 그는 1000회 이상 무사고 비행을 했으며 도쿄의 레인보우 브릿지를 통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게 히키생활을 하던 와중 항덕이었던 니시자와는 어느날 하네다 공항 단면도를 보다가 경비시스템의 사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1층에서 수하물을 찾고 2층으로 올라가 환승을 할때, 검문을 받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개쩌는 보안 취약점을 발견한 니시자와는 관련회사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하여 이 보안 취약점을 이력서와 함께 보내서 자신을 경비원으로 취직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오우! 그렇게 해서 재입장이 불가능 해진거구나! 만일 그랬으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겠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좀더 각박했어 관련회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니시자와의 편지를 그냥 무시해버렸던거야 칙쇼...감히 무시를 해? 좋아. 날 무시한 댓가를 톡톡히 치러주겠어!!!! 그렇게 그는 범죄의 길로 빠지게 된다... 1999년 7월 23일 오전 6시 45분 니시자와는 하네다공항에서 오사카의 이타미공항에 가는 티켓을 사게 된다 니시자와는 또 하나의 보안취약점을 이용하는데 기내 수하물을 맡기면 X레이 검색대에 들어가지만 위탁 수하물은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가방에 칼을 넣고 공항을 떠나게 된다 8시 50분 그는 다시 이타미공항에서 하네다공항에 가는 비행기를 타게된다 또 다시 가방을 위탁수하물에 맡겨 검문에 당하지 않고 흉기를 넣고 하네다공항으로 오게된다 10시 7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그는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ANA 61편을 목표로 행동에 돌입하기로 한다 우선  위탁 수화물을 찾은 후 화장실로 가서 가방은 휴지통에 버리고 칼은 작은 가방에 넣고 약간의 변장을 한다 그리고 그는 내렸던 1층을 다시 역주행해서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올라갔던 그는 X레이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 흉기를 반입한 채 목표물인 ANA 61편에 탑승하게 된다 이륙 2분후 칼로 승무원을 위협하여 기장실을 열라고 협박했다 기장도 바보는 아니었는지라 조종실로 들어오기전에 하이잭당한 사실을 관제소에 알렸다 이후 니시자와는 비행기를 요코스카쪽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원래 이 비행기는 훗카이도로 가는지라 기존에 보이면 안되는 후지산이 보여 승객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이후 요코스카를 통과하자 이즈오시마 섬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다음 요구는 아주 미친짓이었는데 10000피트에서 비행하던 항공기를 3000피트로 비행하라고 지시한다 참고로 3000피트는 900m이며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가 828m니까 얼마나 낮게 나는지 대충 짐작이 갈거다 얼마나 낮게 날았던지 근처 아마추어 야구장에서도 비행기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도를 낮추고 부기장을 내쫓고 문을 걸어잠근 후 니시자와는 꿈에 그리던 비행기 조종을 시도한다 실제로 전문용어까지 쓰면서 했다고 함 그러나 비행기는 니시자와 뜻대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왜그랬을까? 사실 비행기는 기장과 부기장 두개가 서로 연동되어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그니까 어느 한쪽이 안움직이고 버틴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이다 즉, 기장이 니시자와가 개짓거리를 할까봐 조종간을 꽉 붙잡고 있었던것! 실로 영웅적인 행동이 아닐수가 없다 결국 원인을 알아낸 니시자와는 기장에게 컨트롤을 넘기라고 했으나... 당시 납치된 ANA 61편 기장 : 좆까 난 승객을 지켜야해 너같은 병신에겐 맡길수없어 결국 빡친 니시자와는 기장의 목을 칼로 찔러서 살해해버린다 그렇게 더이상 장애물이 없는 니시자와는 11시 55분 혼자서 단독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비행기가 힘을 많이 잃어버려 주택가로 급강하 하게 된다! 이대로라면 수천 수만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 경보음이 쉴새없이 울려대고 자동항법장치까지 꺼지자 보다 못한 부기장과 기타 사람들이 이래죽나 저래죽나 하는 심정으로 문을 박살내고 니시자와를 끌어낸다 웃기게도 이 고생을 하고 니시자와가 수동으로 비행한 시간은 단 2분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승객중에 있던 파일럿과 부기장이 가까스로 고도를 상승시켜 비행기를 안정시킨다 몇분만 늦었어도 하치오지 주택가에 떨어져 천문학적인 피해가 날뻔한 위험천만한 사태였다 12시 14분 비행기는 다시 하네다공항으로 회항하여 무사히 착륙한다 니시자와는 곧바로 붙잡혔지만, 칼에찔린 기장은 골든타임을 놓쳐 끝내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사망한 기장과 부기장은 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한 것을 인정받아 민간항공사에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폴라리스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니시자와는 2005년 항소없이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범행 전에도 공항에 전화를 걸어 보안취약점에 대해서 조치해달라고 했던 점 그리고 범행동기가 요미우리 신문에 까발려지게 되면서 하네다 공항은 개쪽을 당하면서 공항 전체의 보안을 재검토를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공항에선 내린후에 다시 역방향으로 재입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항에 쓰인 경고문의 대부분은 피로 쓰여진거다 (출처) 아니 근데 어이없네 아무도 몰랐던 (또는 신경쓰지 않았던) 취약점을 적어서 낸 이력서를 무시하다니 하다못해 그 취약점 개선도 안하다니
건강한 가정의 9가지 특징
♥건강한 가정의 9가지 특징♥ 1. 많은 대화의 기회 가족 간에 대화, 자발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자주 나눈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교환한다.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을 염려와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안식처로 만들어 보자. 2. 서로 신뢰하고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가정 인간은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인격발달의 중요한 시기는 출생부터 약 3세로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돌봄과 격려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세상이 살만하다는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 어떤 교육기관보다도 더 중요한 덕성을 가정에서 배양할 수 있다. 3. 유머 감각 웃음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웃을 때에 가족들의 심장박동 수는 늘어나고, 경직되었던 근육이 이완되고, 피돌기가 잘 되고, 산소의 공급량을 증가시켜 가족들의 건강이 증진된다. 4. 윤리와 도덕이 있는 가정 부모들이 일관성이 있는 가치관을 가진 가정이 건강하다. 부모의 위선과 가식적인 행위는 자녀들에게 적개심과 반발심을 가지게 한다. 건실한 가정은 도덕적인 삶을 살 때에 이루어진다. 5.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고 개성을 인정해 주는 가정 다른 사람의 의견과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배운다.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정에서 배울 때에 다른 사람들 역시 존중하고 인정해 줄 수 있게 된다. 6. 동일한 전통과 풍습을 공유 긴밀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가정, 모이기에 힘쓰는 가정, 집안의 결혼, 생일, 장례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 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화된다. 이 유대감은 특히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 더없이 필요한 구심점이 된다. 7. 이웃과 인류에 대한 봉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가정 봉사하는 가정은 생활스타일이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 체면과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자신들에게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남들에게 바칠 수 있다. 8. 각각의 책임과 공동책임을 자각하고 감당하는 가정 책임을 완수했다는 느낌은 자부심을 갖게 하고, 자신감을 키워준다. 부모와 자녀 모두 자신감을 가지므로 자기의 효능성을 인정하고 유능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9. 자신들이 가진 문제나 결점을 인정할 줄 알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개방적인 가정 세상에는 문제없는 가정도, 문제없는 사람도 없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시인하고 문제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데 비하여,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문제를 시인하지도 않고 때로는 파악조차 못한다. 엔돌핀 충전소^^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잉꼬 부부의 성 100배 즐기는 방법 8가지 https://bit.ly/38EnBAp 부자 되는 꿈 해몽 10가지 https://bit.ly/3lf4zWg 노인냄새 확실하게 없애는 방법 4가지 https://bit.ly/38ySDcQ 암세포를 골라죽이는 15가지 좋은음식 https://bit.ly/3vFqL0M 노인의 성생활 최적의 횟수는? 일주일에 몇 번? https://bit.ly/3vLlbtE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가장 후회하는 25가지 https://bit.ly/3vJXvWG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건강에 나쁜생선 9가지 https://bit.ly/3ukfaTx 복부 지방과 치열하게 싸워주는 9가지 음식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성욕을 높여주는 11가지 기운찬 정력 음식들 https://bit.ly/3hPt5LR 100세까지 왕성하게 성 사랑 지속하는 방법 https://bit.ly/3hPt5LR 다시 데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음식 7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좋은글 #좋은글귀 #좋은글모음 #영감을주는이야기 #명언모음 #인생명언 #아름다운시 #좋은시 #맞팔해요 #짧고좋은글 #동기부여 #행복한글 #행복해지는법 #가슴에와닿는글귀 #마음에와닿은글귀
당신은 라이엇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인터뷰] 라이엇 게임즈 구기향 총괄 여러분께서는 라이엇 게임즈가 '문화재 환수'라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 겁니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는 그간 총 5건의 문화재 환수에 기여하며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한복과 아리를 활용한 '아리따운 한복전'을 진행해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겨내는데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죠. 자, 다시 한 번 여쭈어보죠. 당신은 라이엇 게임즈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화재를 환수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라이엇 게임즈 구기향 총괄을 만나 그들이 펼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솔직한 감상과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 파트너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 디스이즈게임: '한복 사랑 감사장'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라이엇 구기향 총괄: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저는 해당 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2019년에 BTS와 블리자드가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것 정도가 전부였죠. 반성하면서 조금 더 찾아보니, 한복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린 단체에 주는 상이더라고요. 의미 있는 상인 만큼,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진행했던 '아리따운 한복전'은 결코 저 혼자 이뤄낸 프로젝트가 아니에요.  2012년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 합류하자마자 대표님과 1:1로 회의를 한 주제가 '사회 환원'이었습니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다소 시간과 비용이 들어도 라이어터(직원)와 유저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걸 찾고자 했죠. 라이엇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좋겠다 싶어서...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 중 하나가 '아리따운 한복전'이었어요. 관련 기사: 아리 한복 재해석 전시회 연 라이엇 게임즈, "한복의 날 기념하겠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는 글로벌 콘텐츠에 해당하잖아요. 게다가 챔피언 설계 과정에서 라이어터들이 한복에 관한 조언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가 이렇게 세계적으로도 뛰어난데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보통 젊은 분들은 역사는 어려워하시지만, 게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콘텐츠는 굉장히 친숙하게 느끼시잖아요. 우리가 화자가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다만 저희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파트너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됐습니다. 단순히 상을 받았다는 의미보다 정말 저희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잘 전달된 듯해서 무척 기분 좋습니다.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은 많은 이의 호평을 받았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어찌 보면 좋은 일을 한 걸 '인정'받았다는 느낌도 드셨을 것 같아요. 의미가 잘 전달된 진행된 것 같아서 좋죠. 유저분들 외에 다른 분들께서도 해당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으니까요.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 다큐멘터리 조회수가 90만을 넘었더라고요. 게다가 게임을 하지 않는 분들도 소중한 코멘트를 많이 남겨주셨어요. '공예하는 사람인데 이런 가치를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라거나, '한복의 날이 언제인지도 몰랐는데 이제 알았다' 등 감사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온라인 전시였음에도 저희의 메시지를 잘 들어주셨구나 싶었죠.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은 꽤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였잖아요. 기획단계에서 어떻게 준비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2018년 후원 약정을 진행하던 중에 '문화유산 인적 자원'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무형문화재 장인분들 중에 취약종목, 그러니까 상업화가 조금 덜 된 케이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원하고자 했죠. 기술을 지키고 이어가는데 집중하시는 만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그렇게 무형문화재 분들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단순히 금액을 지원하는 걸 넘어서, 국가대표급 금손이신 만큼 함께 가치 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죠. 그런데 저희 게임에 '한복 아리'가 있고 이걸 가장 전통적인 금손분들께서 재현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침선장 구혜자, 금박장 김기호, 화혜장 황해봉, 매듭장 정봉섭 장인께서는 장인께서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저희와 함께하게 됐죠.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뭔가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네요. (웃음) 진행 과정에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다시 프로젝트로 돌아가자면, 침선장께서 리더이신지라 프로젝트를 지휘하셨는데요. 한복을 디자인하고 나면 어울리는 매듭을 찾고 신발도 맞춘 뒤에 특정 위치에 금박을 넣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코로나 이전에 진행된 단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만들어서 롤파크에 전시하면 너무 좋겠다 싶었죠. 무형문화재께서 만들면 한복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어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문가분들께서 작업하시는 과정도 전부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간 진행해온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들었죠. 그런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늘었어요. 결국 오프라인의 위험성을 안고 가느니 나중에 보여드려도 되니까 온라인으로 가보자고 해서 홈페이지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에 더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프로젝트인 만큼, 패션 화보와도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물색하다 보니 보그가 할머님들과 함께 한복 화보를 촬영한 적이 있더라고요. 너무 인상 깊었어요. 한복에 대한 이해가 깊구나 싶어서 연락을 드렸죠. 홈페이지와 화보, 그리고 영상을 통해 일련의 과정을 보여드리는 3단계가 준비된 과정입니다. (웃음) 사실, 게임과 해당 분야 장인분들 간의 만남은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은 아니잖아요. 모시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전문가분들께서는 낯설지만 좋은 일 한다고 봐주시더라고요. 사실 문화재 분야에서는 라이엇 게임즈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쌓여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장인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라이엇 알아?!'라고 홍보도 해주시더라고요. (웃음) 외국계 기업이 문화재 환수를 하는 상황이 독특하셨던 거죠. 낯설지만 들어본 적은 있는 좋은 회사로 봐주신 듯합니다. 보그 같은 경우엔 에디터 중 저희 게임과 회사를 잘 아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문화재 환수를 해온 기업이라는 게 어필됐고,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죠. 열심히 심어놓은 씨앗이 큰일을 한 셈이군요. 맞아요. 파트너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지금은 모두 든든한 우군이세요. 홍보대사 역할도 해주고 계십니다. 사실 2012년 이 일을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려웠어요. 사회 환원을 해보자는 결정은 했지만, 비전문가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죠. 문화재 지킴이부터 한국 유네스코, 서울시까지 다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희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이라... 공기관에서는 회사 이름도 못 알아들으셨어요. 라이'옷'이냐고 하는 분도 많으셨습니다. (웃음) 그래서 되게 구구절절 설명해 드렸던 기억이 나요. 저희는 외국 회사지만, 각 지역의 문화와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고요. 게임도 문화니까, 그 뿌리인 유산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이죠. 하지만 몇 주간 전화를 드려도 저희 의도를 이해 못 하시는 분이 태반이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적도 있었다 의아하네요.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연락한 건데... 문의만 하고 구체화 안 되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그렇게 반응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에이전시 통해서 연락했었지만, 중반부터는 담당자분께 직접 전화를 드리고 오랫동안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자께서 저희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하셨어요. 그분께서는 회사 분위기도 보고, 무슨 생각인지도 파악하려고 하신 거죠. 그날 제가 두 시간 동안 담당자님을 붙잡고 떠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젊은 분들께 화자 될 수 있다고 엄청 어필했어요. 결국 담당자께서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접근법이 맞겠다고 공감해주시더라고요.  직책을 떠나 한 명의 한국인, 게이머로써 지켜본 '아리따운 우리 한복'은 어땠다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한복이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입고 싶어도 '내가 너무 과한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가까운 느낌은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이번 과정을 통해 무형문화재 장인 분들의 과정을 보니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유저 입장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저희가 '아리따운 우리 한복' 다큐멘터리 자막을 반나절 뒤에 붙였거든요. 그런데 해외 유저분들께서 '너무 궁금하다, 빨리 설명해달라'는 댓글을 막 다시더라고요. 내심 외국인한테도 한복으로 어필했다 싶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내가 스킨 사서 이런 행사도 진행한 거야!'라고 자랑하시는 분도 많고... 한 명의 게이머로써도 무척 뿌듯했습니다. # "언젠가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첫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 문화재 환수를 시도했을 때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만약 제가 사원이었다면,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직원들이랑 봉사 활동 나간다고 하면 억지로 끌려가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주말이 아니라 워킹데이에 활동을 진행했어요. 물론 해야 할 일이 있거나 관심이 없다면 안 와도 되지만, 좋은 뜻인 만큼 되도록 같이하자고 제안을 했었죠. 그래서인지 참가해주신 라이어터들은 현장 관리소장님이 놀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봉사했어요. 한 번은 비가 온 뒤 낙엽을 쓸러 간 적도 있는데, 너무 많이 모아서 자루에 시체가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모두가 즐거운 마음이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첫해 봉사활동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대표 브랜든 백도 왔었는데... 다들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게 생각나네요. 저희는 사회와 유저분들을 위한 역할을 하자는 마인드가 명확히 세팅되어있어요. 문화를 보호한다는 부분에서도 내부적으로도 설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특히 '게임도 문화인데, 그 뿌리를 보호한다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게 어디 있냐'라는 말에 공감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오래된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 입장에서는 라이엇 게임즈가 좋은 일을 한다'더라' 정도만 인지할 뿐 이 정도로 큰 규모와 금액, 시간을 들이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 더 자랑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유저 분들뿐만 아니라 대중께도 알려야겠다는 고민이 있어서 방법을 논의 중 이긴 해요. 다만, 홍보·마케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 물론 외부에 발표도 하고 기사도 많이 나갔지만, 대대적으로 래핑 버스를 대절하거나 전광판을 활용하진 않았습니다. (웃음) 그럼에도 유저분들께서는 내용을 많이 알아봐 주시고 응원도 해주세요.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희가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은 생각은 듭니다.  비단 유저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는 분께도 전해지면 좋은 나비효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저분들께서는 대체로 저희가 하는 일을 잘 알고 계세요.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편이죠. 다만, 주변에서는 아예 이 프로젝트를 모르거나 라이엇 게임즈를 낯설어하는 분도 많아요. 따라서 아예 저희를 모르는 분께도 '외국 기업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있다'라는 걸 알리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된 뒤, 지금껏 환수에 성공한 문화재가 총 40건인데요. 그중 저희가 다섯 번의 환수에 참여했습니다. 10%가 훨씬 넘는 숫자죠. 사실 이게 기약이 없어요. 경매에 참여해도 떨어질 수도 있고 개인이 팔고 싶다고 해도 협상 중 이탈하는 경우도 잦죠. 따라서 저희의 사례를 잘 알려야만 기업과 민간단체의 움직임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라이엇 게임즈는 꾸준히 '선햔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한편으로는 인게임 콘텐츠로 홍보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방향을 고려해보셨을 것 같은데, 현실화 되지 않은 것 중에 흥미로운 기획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아리는 한국형 챔피언이고, 신바람 탈 샤코 역시 한국의 색깔이 많이 담긴 콘텐츠잖아요. 다만,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글로벌 서비스에 해당하고 모든 유저가 함께하는 게임이다 보니 특정 지역에 헌정하는 식의 콘텐츠는 지향하는 분위기예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건데, 이걸 콘텐츠로 넣으면 누군가에겐 강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선보일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살짝 스포해주신다면 어떨까요? 그간 저희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경복궁, 덕수궁, 성균관 안내판 등 개별 프로젝트로 나열하면 정말 많죠. 그런 것들을 매해 알리고, 진행 과정과 완수되는 시점도 항상 전달 드렸지만 아카이빙해서 볼 수 있는 플랫폼이나 공간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를 잘 제공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확정은 아니지만요.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라이엇 코리아가 꽤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이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회사의 대표가 몇 차례 바뀌었음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게 참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는지 궁금합니다. 탑 매니지먼트의 판단이나 성향에 따라 역할에 대한 고민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저희는 시작부터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를 실제로 구현하면서 저희가 생각해온 부분들을 유저분들도 공감해주시고, 스스로가 주체가 됐다고 생각해주시니 더욱 보람이 느껴졌죠. 문화재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건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만족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이러한 활동을 이어갈수록 저희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도 다양해지는 거고... 대표님들도 그런 부분에서 공감을 많이 해주십니다. 사회 환원 활동을 위한 라이엇 게임즈의 기조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앞서 말씀드렸던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은 물론이고 코로나 방호복을 지원하는가 하면, 문화재 환수까지 하고 계시잖아요. 선한 영향력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느낌이 큽니다. 만약 한이 없다면 어느 영역까지 도전해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문화유산분야는 민간이 하기에 규모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수십, 수백억이 필요한 것들이 있어요. 제약이 없다면 돈이 없어서 못 하는 부분에 발 벗고 나서는 게 제일 좋겠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문화재환수 같은 영역에 저희 말고 다른 민간 기업이 뛰어드는 사례가 하나만 더 나왔으면 좋겠어요. 좋은 나비효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이머로써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여전히 몇몇 사람들은 게임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라이엇 코리아의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는 게임에 좋은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정말 드라마틱한 영향이 아니라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좋은 인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낯선 분야에 대해서는 기존 고정관념을 따라가기 쉽죠. 예를 들어 '게임하면 비행 청소년이다. 공부도 못하는 프로게이머가 어떻게 먹고사냐. 시커멓고 껌껌한 PC방' 등이 그런 생각에 해당할 겁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분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죠. 또한, '게임회사가 왜 저렇게까지 사회적인 역할을 할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자체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께 라이엇 게임즈가 '게임도 문화고 저희는 문화의 뿌리를 함께하려 합니다'라고 답변을 드리면, 또 너그럽게 봐주세요. 이런 게 쌓이다 보면 게임회사,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꾸려가는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레이어가 씌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좋은 첫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구기향 총괄은 긍정적인 첫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참 좋네요. 저희가 처음에는 회사 이름이 굉장히 조그맣게 표기된 명함을 사용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세가 많으신 기관 분들을 만나면 '리오뜨?'라고 읽는 분도 계셨죠. 이처럼 전혀 게임회사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과도 활동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김소월 시인의 시집이 딱 세 권 있는데요. 두 권은 개인이, 한 권은 배재학당에서 갖고 있어요. 그래서 2, 3년 전에는 전시회도 했었죠. 당연히 배재학당에서는 라이엇 게임즈를 아실 리가 없으니 해당 행사를 통해 저희를 인지하셨고, 다음에도 보자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라이엇 게임즈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인지하게 되신 거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회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시는 거고. '선한 영향력'에 대한 자랑이 담긴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처음엔 단순히 보탬이 됐으면 하는 추상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한해 한해 경험이 쌓이다 보니, 다른 게임이나 단체가 참고할 수 있는 선례를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유저분들께는 자부심을, 다른 누군가에겐 저희를 모방해서 활동하실 수 있게 노력할 예정입니다. 유저분들의 마음을 느꼈던 일화가 있는데요. 저희가 문화재 환수를 하면 공개회를 진행합니다. 사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문화재가 들어온 게 큰 토픽이니까, 보통 헤드라인은 '몇 년간 어딜 떠돌던 뭐가 들어왔다'라고 표기됩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라이엇이 함께했다고 들어가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한 외국계 회사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쉽긴 하지만, 일단 문화재가 들어왔다는 게 더 중요하고 영상을 보면 언뜻 스쳐 지나가니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유저분들께서 해당 기사 댓글에 '라이엇 게임즈가 했다고 왜 안 적냐'라고 댓글을 엄청 달아주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론 저희 목소리도 더 많이 내 볼 생각입니다. 자랑 아닌 자랑을 조금 더 해야겠어요. (웃음) 앞으론 조금 더 다양한 곳에서 '자랑'하는 라이엇 게임즈를 볼 수 있기를 (출처: 라이엇 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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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니 서울도 저녁에 다소 쌀쌀하기는 했지만 캠핑장의 재앙에 가깝던 매서운 바닷바람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이었다. 텐트를 걷기 전 우리 바로 앞의 해변은 이제 막 물이 빠지고 있던 차였고, 개인용 낚싯배가 난파된 듯이 버려져 있었는데, 다가가 보니 배도 상태가 좋은 것이었고, 값비싼 각종 낚시 도구도 여기저기 그대로 흩어져 있었다. 어제 늦은 오후만 해도 없던 것이었다. 대체 이게 뭘까. 심지어 당연히 배의 주인의 것일 백팩도 하나 있었고, 열어 보니 물과 음료수가 손도 대지 않은 채 잔뜩 들어 있었으며, 비닐에 쌓인 멀쩡한 계란 토스트도 두 개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완벽한 난파의 흔적이었다. 사람만 없었다. 대체 이게 뭘까. 이쪽에서 배를 띄우려다 감당할 수 없는 밀물에 우선 배만 버리고 간 것일까. 사실 그것도 이상했다. 이미 바다로 나갔다가 사람은 바다로 빠져버리고 배만 다시 밀려온 건 아닌가 싶은 풍경이었다. 어딘가에 쓰러진 익사체라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체랄 것은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신고라도 해야 할까 싶었지만, 우리는 이틀 동안의 극심한 추위와 고통에 시달려 서둘러 텐트를 걷고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누군가에게라도 다시 발견되겠지. 지난밤에 나는 얕은 몸살기마저 느껴졌고 입맛조차 잃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친구는 내게 좋은 침낭을 내어주고 바람을 막으며 혼자서 텐트 밖을 지켰다. 친구는 그렇게 마지막 밤을 날려 보내기가 조금 아까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건 마치 영락없이 조난 당한 나를 지키는 선한 현지인의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난파선의 주인이 혹시 내가 아닌가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상상. 나는 이것을 시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박의 캠핑. 우리는 꼭 다른 계절에 다녀온 것 같기도 했다.
50살 바라보는 남친이 별걸 다 하고싶다네요
자기도 스타벅스에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실은 냉커피라고 했음)쪽쪽 빨며 놋북으로 막 바쁜척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 아침 댓바람부터 주말 늦잠도 못 자고 끌려와 있습니다. ㅜㅜ 며칠전부터 하도 조르길래 주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스타벅스에 밀레 등산복 입고 오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꺼라고 되도 않는 까지 했는데 기가 죽어 포기할 줄 알았더니 어제 저녁에 백화점 문 닫기전에 얼른 가서 옷 골라달라고 ㅜㅜㅜㅜ 아니.....이 아저씨야..... 뭔 스타벅스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도 아니고 아니고 옷장만까지 해서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어이없어 했더니 자기도 말 안되는거 아는데 저한테 밀레 등산복 얘기를 듣고 나니 정말 평소 자기 스타일이 딱 아저씨 스탈였다는걸 절실히 깨달았다며 옷 고르는거 꼭 좀 도와달라고 어찌나 간절히 부탁하는지 할 수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저희 바로 앞에 서있는 아가씨 몸매가 진짜 후덜덜했어요 평소엔 그런 아가씨들 보일때마다 남친에게 시선처리 똑바로 하라고 바로 경고 날렸는데 이건 뭐 여자인 제가 봐도 너무 어마어마한 몸매인데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쿨한 척이라도 하자 싶어 남친에게 "어차피 당신은 이번 생에서는 저런 여자 못 델꼬 다니니 다음 생을 기약해요" 라고 했더니 "아니. 난 다음 생에 꼭 저런 여자로 태어나서 세상 남자 다 꼬셔버릴꺼야" 라길래 공공장소에서 그만 남친 등짝을 쳤네요  남성복 코너 가려하니 여기 아니라며 캐주얼층으로 끌고가 딕키스의 레글란 소매 티셔츠를 몸에 대보며 산뜻하지? 세련됐지? 이러는데 지금 나의 사랑을 시험해보는거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려다 겨우 참았어요. 어차피 딕키스엔 맞는 사이즈가 없다는걸 알았거든요 겨우 막달 임산부만한 배를 가려줄 티셔츠 한 장 사고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안쓰러운 마음도 들데요. 오늘 아침 7시반부터 새 옷 입고 제 집 앞에 찾아와 빨리 내려오라고 어찌나 전화를 해대는지 저 지금 몹시 졸립고 피곤해요 ㅜㅜ 이게 뭐라고 그리 해보고 싶었냐고 물으니 얼마전 스타벅스에서 일 약속이 생겨 낮에 갔다가 충격 받았답니다. 놋북이며 태블릿 피씨들 들고와 이어폰 끼고 뭔가 자기 세상에 빠져 있는듯한 젊은 애들을 보니 고1때부터 10년 동안 매일 신문 돌리고 방학마다 막노동을 해도 너무 힘들었던 자기의 대학생활이 갑자기 떠올라 서글퍼졌는데 아직도 매일 새벽에 출근해 전쟁 같은 업무를 치루는 시간에 밖에는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싶어 서럽더랍니다. 대학때 친구들이 테이블마다 전화기 있다는 압구정 카페 다니는 것도 그렇게 궁금하고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걸 한번도 못해봤다고 ㅠㅠ 놋북 펴놓고 뭔가 몹시 열중해서 하길래 슬쩍 들여다보니 주간업무일지 밀린거 작성하고 있네요 ㅋㅋ 쩜전에 여기 커피 더 달라면 더 줘요? 라고 두리번 거리며 묻길래 그냥 조용히가서 한 잔 더 사다줬어요. 제꺼 보더니 자기도 회원 가입해서 핸펀에 스벅 어플 넣어달라네요 ㅋㅋ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고단한 나이에 만난 인연이어서 그런가..... 피곤과 술에 쩔어있는 아저씨의 모습만 보다가 오늘은 왠지 애잔하고 안쓰럽네요. 평소에 햄버거를 어떻게 만들어야 수제냐고 궁금해하던데  나온김에 점심에 수제햄버거라도 사주면 놀래자빠지겠져 ㅋ 두분 다 사십대라고 하시는데 너모 기여우시네여ㅠㅠ
콜럼버스의 이름
주말 특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당연히 무슨 얘기가 나올지 짐작이 가능하다. 콜럼버스라는 이름 자체는 영어식 표기이므로, 실제 이름은 좀 달랐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생전에 잉글랜드 혹은 영어권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으므로, 그런 이름을 본인은 들어본 적 없었을 테고 말이다.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제노바이므로 제노바식 사투리로 말하자면 크리스토파 코롬보(Cristoffa Corombo)이다. 하지만 당시 쓰이던 이탈리아어 표기 방식(참조 1)으로 쓰자면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이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였고, 떠오르는 강대국이 하나 있었으니, 오늘날 카탈루니아를 이루고 있는 아라곤 왕국이다. 당연히 카탈루니아어를 사용하니, 여기서 콜럼버스의 이름은 크리스토포르 콜롬(Cristòfor Colom)으로 바뀐다. 여기서 선원으로 일하던 콜럼버스는 동방 무역을 한창 시작하고 있던 포르투갈에 관심을 갖는다. 급진적인 아이디어(서쪽으로 간다!)를 받아들일 만한, 아무래도 당시 유럽에서 원양 항로 전문 국가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로 향한 콜럼버스의 이름이 이제는 크리스토바웅 콜롱부(Cristóvão Colombo)로 바뀐다. 그러나 이게 웬 걸, 포르투갈은 콜롬버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희망봉을 통한 항로를 개척해 놓았기 때문에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원양 항로 전문 국가답게 포르투갈은 서쪽으로 인도에 갈 수 있다는 콜롬버스의 계산이 틀렸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 포르투갈과 경쟁하던 다른 나라로 가는 편이 합리적이다. 콜럼버스는 카스티야 왕국으로 간다. 오늘날 스페인의 본캐가 바로 여기 카스티야이고, 우리가 흔히 아는 스페인어가 바로 카스테야노(카스티야의 언어)이다. 당시 막 국왕이 된 이사벨라는 대서양을 알카소카스(Alcáçocas) 조약(1479)을 통해 포르투갈과 양분하고 레콘키스타를 마쳤으며 아라곤 왕국과 결혼을 통해 합병까지 했었다. 자, 지금부터는 카스테야노,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스페인어로 불러야 한다. 콜럼버스의 이름은 이제 크리스토발 콜론(Cristóbal Colón)으로 바뀐다. 이미 여러 곳을 선점한 포르투갈과 경쟁을 위해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신대륙을 발견해버렸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사벨라 여왕은 당시 국제법 해석의 기준이었던 바티칸도 장악해 놓은 상태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드라마로 더 유명한(…) 보르자 가문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아라곤 왕국 출신인지라, 이사벨라의 편이었다. 여기서 탄생한 조약이 바로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조약(1494), 전세계를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양분한 바로 그 조약이다. 알카소카스가 포르투갈어이고 토르데시야스가 스페인어로 바뀐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 봅시다. ㅇ 고향(이탈리아) : 크리스토파 코롬보(Cristoffa Corombo) 및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이다 ㅇ 아라곤(카탈루니아) : 크리스토포르 콜롬(Cristòfor Colom) ㅇ 포르투갈 : 크리스토바웅 콜롱부(Cristóvão Colombo) ㅇ 카스티아(스페인) : 크리스토발 콜론(Cristóbal Colón) 크리스토퍼에 들어가 있는 f 발음이 v로, 결국은 b로 변화했다. f와 v, b가 상호 호환되는(?) 발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 끝의 b가 붙거나 떨어지거나 했음이 보인다. 콜럼버스를 프랑스어로 표기할 때 크리스토프 콜롱(Christophe Colomb)인데, 끝의 b가 묵음처리된 이유가 바로 이런 변화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콜럼버스”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영어식으로 읽기는 했지만, 사실 그의 라틴어 이름이 크리스토포루스 콜롬부스(Christophorus Columbus)이다. 그리스도를 품은 비둘기(콜롬부스)가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될지는 콜럼버스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 참조 1.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의 언어라 르네상스 이후로 거의 표준 이탈리아어처럼 됐기 때문에, 토스카나어(dialetto toscano)로 쓴 표기이다. 단테와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물이 바로 이 토스카나어로 작성됐다. 2. 짤방은 위키피디어에서 가져왔는데, 이탈리아의 판화가 Aliprando Caprioli의 작품을 복제한 것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있는 콜럼버스… 라틴어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https://es.wikipedia.org/wiki/Crist%C3%B3bal_Col%C3%B3n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늘차다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달인 #능수능란하다 #숙달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늘차다'입니다. 이 말을 두고 말집(사전)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능란하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하고 '늘찬 일솜씨'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 (솜씨가) 아주 익숙하고 재빠르다'고 풀이를 해 놓고 "김 씨는 일솜씨가 늘차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일을 금세 해 버리더라고."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저는 '능란하다'가 '익숙하고 솜씨가 있다'는 뜻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일 따위가 손에 익다'는 뜻이니 '늘차다'를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숙달된 조교'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숙달된 조교'를 '늘찬 조교' 라고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 '숙달하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익숙하게 통달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고 '통달하다'는 ' 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하다.'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게 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달인'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달인'을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통달하다'를 가지고 말하자면 '통달한 사람'이 되니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늘차다'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달인'을 '늘찬 사람' 또는 '늘찬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말집(사전)에서 '능수능란하다', '달인'이라는 말을 풀이할 때 '늘차다'라는 토박이말을 가지고 풀이를 하고 '능란하다', '숙달하다', '통달하다'와 비슷한 말에도 '늘차다'를 넣어 주면 모르는 사람들도 찾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열아흐레 한날(2021년 4월 19일 월요일) 바람 바람
ep)3.👩🏻기대되는 당일
크리스마스 무도회 당일 아침이다. 많은 학생들이 분주했다. 나는 조금 긴장되었지만 애써 여유로운 척 하며 새벽에 도착한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내 드레스는 흰색에 허리부분엔 검은 색 리본이 묶여있었다. 깔끔하고 짧지 않은 길이의 드레스였다. "깔끔하고 예쁘네." 그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서둘러 화장을 끝내고 드레이코 말포이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드레이코는 다들 옷을 갈아입고 꾸미기 바쁜 와중에, 교복을 입고 태연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드레이코, 넌 옷 안갈아 입어?" "곧 갈아입을거야." 드레이코는 나를 흘긋 쳐다보고는 말했다. "예쁘네." "아 진짜? 이번에 진짜 신경 많.." "드레스 예쁘다고." "그럼 나는?" "야, 나가 있어. 옷 갈아입을거야." "대답 안해주기냐? 알았어, 나가 있을게." 누가 드레이코 아니랄까봐, 항상 이런식이라니까. 여자친구한테 잘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는 드레이코 방의 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어 한창 들떠있는 다른 학생들을 바라봤다. 나는 그 학생들을 보며 괜히 손에 움켜지고 있던 반지 두개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드레이코는 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은 또 다른 방식으로 깐 머리와, 상의는 흰색 하의는 검은 색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네. 옷이 주인이 찾았네. 뭐 하긴 네가 안 어울리는 옷이 어딨겠니." 그리고 나는 반지를 건넸다. "이건 내 선물. 생각해보니까 우리 사이에 이런게 하나도 없더라고." 드레이코는 반지를 집어 손에 끼우며 말했다. "초록색이네." 나도 내 손에 반지를 끼며 말했다. "항상 끼고 있어야 해. 알겠지?" "알았어."
움짤) 스압) 나약하면 죽던 시절.gif
1961년, 머리카락을 가발 공장에 팔기 위해 줄을 선 여성들의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같이 온 어머니가 달래고 있다.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2년 경상남도의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삼베를 말리는 주민의 모습과 초가집들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 1962년, 모내기가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 1963년, 평범한 남해 어촌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고무신이 닳을까봐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21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신생아 5명 중 몸이 약한 1명은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4년, 한국전력 직원들이 경상북도 영양군에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역사적으로 늘상 문제가 되었던 쥐떼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가 완공되었다. 산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마르크스, 엥겔스 자본론에 대한 비판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아버지들과, 갓난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교복을 입은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삽을 들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거액을 들여 초빙한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일렬로 도열한 한국 관료들의 90도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이다. 1965년, 한국은 방글라데시를 2달러 차이로 처음으로 제쳤다.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입고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파독 간호사들 이륙 준비를 하는 여객기. 공항에 모인 시민들과 가족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착용하고 출발 전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6.25 참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6.25 참전)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6.25 참전)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대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파병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 여사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파병 장병들을 위해 쓴 환송사가 방송되었다. '조국 떠나 만릿길 온 겨레의 마음이 그대들의 방패가 되리 아세아 (아시아)의 최정예 우리 국군 가는 길 오직 승리뿐이다.' 베트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수송 열차가 지나는 역, 마을 어귀마다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해병 청룡부대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세 대위: "월맹 정규군 (북베트남 정규군)이 밀림에서 미군도 위협할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고, 국군 장병들에 대해서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산악에서 단련된 소부대 전술, 체력과 같은 신체능력, 실제 전투에서의 호전성은 우리 병사들이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두렵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않습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맹호' '환송' '이겨서 돌아오라'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항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1인당 국민소득 110달러의 농업국가, 38세의 사령관이 20대 초반의 병사들과 전선으로 향하던 날. 성대한 위문공연도, 거창한 위문품도 없었지만 국민들은 장병들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자' 식목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국민들과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가을날, 고등학생들이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유도 대결을 펼치고 있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도 삼척시에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 생활 체육으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씨름이 소개되었다. 씨름 대회를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 국군 장성들이 베트남 전선을 방문했다.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주월 맹호부대 병사들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웃지않는 한국 해병들' - 미국 UPI 통신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연대 병력과 (호치민 휘하의 월맹군 제2사단 1연대)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미군의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생 생도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 서울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복싱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철권' 김기수 (당시 27세)가 도전자 프레디 리틀 (미국)과 15라운드까지 맞붙고 있다. 이를 악물고 덤비는 김기수의 분위기에 밀리는 프레디 리틀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김기수(당시 27세)의 기념촬영 1968년, 부산시 풍경 1968년, 서울의 모습 하늘에서 본 1968년 서울 첫 개통한 아현고가의 모습.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고 있다. 1969년, 한강철교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다. 작업에 열중하는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반도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모습. 부족한 중장비 대신 인부들이 달라붙어 바위를 깨고 길을 닦고 있다. 1969년, 나룻배까지 동원되어 경부고속도로 낙동강 방면 공사에 쓰일 석재를 운반하고 있다. 1969년 연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포항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허허벌판인 영일만의 모습 1970년 1월 1일, 영일만 앞바다에 떠오르는 일출  삼천만이 힘을 합치면 역사는 바뀐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한국 평균 나이 22.9세 시절 (출처) 길고 많지만 흥미로워서 가져와봤습니다 재밌네 ㅋ 평균 나이 22.9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