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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명상 [3분 인문학]

‘고요하라! 그리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
요 말만 들어도 여러분 에고가 진정돼요. 심신이 진정돼요.
요 말을 계속 곱씹으면서 몰입하다 보면,
‘고요하라!’ 할 때, 훅 들어가 버립니다.
아버지랑 딱 만나버려요.
그 때 되면 이 말도 필요 없어요.
묵상에서 관상단계로 넘어가요.
관상은 참나 체험이에요. 참나와 함께 있는 거예요.
재미있는 거는, 가톨릭 하는 분들은 꼭 이렇게 해석하려고 해요.
내가 마음대로 하느님을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게 있어요.
이렇게 명상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만나고 싶을 때에 만나야지,
내가 이렇게 해서 만나는 건 뭔가 아닌 것처럼 생각해요.
그 분들은 뭔가 소극적이에요, 명상에.
적극적으로 이렇게 하면 무조건 아버지 만난다 생각하고 만나야 되는데,
이렇게 하면 하느님이 만나주시면 만나고, 아니면 못 만난다고
생각하고 명상을 해요.
즉, 참나 체험이 참나가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명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거 없죠. 하느님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내려와 계세요.
예수님이 ‘그대 안에 있다.’고 그랬잖아요.
안 만나고 있는 우리 잘못입니다. 안 만나면 여러분 잘못이에요.
마인드를 바꿔야 돼요.
하느님이 이미 와서 우리 내면에 거하고 계신데,
태양이 떠 있는데 안 돌아본 사람 책임이지, 태양이 없다고.
태양이 원하면 우리한테 비춰줍니까?
늘 비춰주고 있고. 태양은 우리가 자기 존재를 느끼고 더 활용하길 바라겠죠.
그러면, 태양의 존재처럼 하느님의 존재도 돌아보면 있는 거고,
안 돌아봐도 이제 늘 하느님의 따사로움을 느끼듯이,
느끼고 살아가면 되죠.
그래서 “하느님 있다 없다, 이거 말 못한다.” 이러면 잘못된 거예요.
그럼 모르면서 믿는 신앙이 돼버려요.
하느님에 대해서 잘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하느님은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가 하느님 힘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이 일도 이해 못하면서,
“하느님은 그 분이 원하시는 때만 우리한테 맘대로 나타나셔.”
이런 식으로 꼭 지도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못마땅해서, 예수님이 그런 말하신 적도 없고,
누가 그런 말해서, 교회 안에 왜 저런 말이 도는지에 대해서.
아마 명상을 해도 참나를 만날 때도 있고,
못 만날 때도 있는 분들이 만들어 낸 말 같아요.
“참나가 정하는 거야,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왜 하느님한테 강요해?”
뭐 이런 식으로. 들으면 그럴싸해요.
그런데 하느님에 대한 이해도가 그 정도면,
예수님처럼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나 있다.”는 말 못합니다,
영원히.
- 홍익학당 윤홍식
(160727 수낮 수련모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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