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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서 뜬 보통사람들의 축제 ‘비드콘’

앤소니 퀸탈(14세, 뉴햄프셔주)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요즘 팬들 덕분에 반항적인 생각을 덜하게 됐다.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앤소니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컨퍼런스인 비드콘(VidCon)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매니저이자 홍보담당자인 아버지가 자신을 계속 따라다녔던 것. 앤소니는 도망쳤다. 군중 사이로 요리조리 피하고 에스켈레이터를 오르내렸다. 그를 쫓던 아버지 데이빗 퀸탈은 “운동화 벗어”라고 외쳤다. 앤소니의 십대 소녀 팬들이 그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요청할 때면 어른들은 그를 쳐다봤다. 어떤 팬은 책가방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고,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으며, 몇몇은 몸을 흔들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유투브에서 성공하려면? 개개인에게 어필하는 것이 좋다. 유투브에 자신의 영상을 올린 수천 명의 ‘제작자(creator)’들은 틈새시장에 어필하는 재능이나 소수의 팬으로 유명세를 타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 달, 올해 네 번째로 개최되는 비드콘에 참가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 중에는 린지 스터링도 포함되 있었다. 그녀는 2010년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탈락한 힙합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다. 스터링은 열성팬들을 위해 비드콘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다. 닉 피테라는 팬들로 에어 싸여 있었다. 피테라는 고음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노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피테라는 2007년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인어공주’에 나온 노래 ‘파트 오브 유어 월드’를 부른 영상을 올렸다. 영상을 본 이들은 그의 스타일로 해석한 인어공주 주제가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피테라는 “아무도 이 노래가 진짜 내가 부른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가성을 활용해 부른 노래는 립싱크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 영상을 올렸다. 이번에는 ‘알라딘’의 주제가인 ‘어 홀 뉴 월드’를 불렀다. 이번에는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 부분을 모두 혼자서 불렀다. 그 이후 그는 여러 명이 부른 노래를 혼자 부른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영상을 올리면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12년에 올린 ‘레 미제라블’에서는 열 명 이상의 역할을 혼자 소화해 37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앤소니는 10분이 채 되지 않는 비디오 블로깅(비로깅, ‘vlogging’)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최근 주제에는 린지 로한(좋은 주제), 학교(나쁜 주제), 컨버스 운동화 깨끗이 세탁하기(중요한 주제)가 포함돼 있다. 그는 4년 전에 컴퓨터를 장만하면서 부터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퀸탈은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아들이 영상을 찍는데 열중해왔다”고 말햇다. 비드콘의 공동창업자인 존 그린은 비드콘 참가자가 2010년에 1,500 명에서 1만1,000 명으로 늘어났으며 굳이 주류산업인 영화나 TV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구글 유튜브에만 머물러도 성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팬들이 줄 선 사인회와 더불어 패널들을 대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유튜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내 몸값은 얼마나 될까?)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행사장 계단을 걸어올라가던 참가자들은 경량 카메라 삼각대를 자신들 앞에 세우고 걸어가면서 자신만의 리얼리티 쇼를 찍기 시작했다. 유튜브 스타덤에 오른 이들은 뒷계단으로 가면서 워키토키를 착용하고 십대 소녀들에게 사진을 찍지말라고 당부하는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참석자들 대다수는 오웬이나 엘리옷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미네소타에서 온 17세 쌍둥이 형제인 이들은 자신들의 사진이 박힌 명함 250장을 들고 올 해 처음으로 비드콘에 참가했다. 오웬은 “남자이고 쌍둥이면서 십대라는 점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튜브 유명인사가 아니라고 인정한 첫 인물들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엘리엇은 “사람들이 우리를 유명인으로 봐 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 유명세 근처에 가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들도 있다. 그레이스 헬빅의 엄마 테레사는 가끔 딸이 운영하는 ‘데일리그레이스’에 등장해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11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 미국에서 물건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나 27세인 딸의 출생과 관련된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사인과 사진 촬영을 위해 행사에 참석했다. 그레이스의 양아버지인 빌 맥기니스는 사인회 부스 뒷편에 서있었다. 그는 그레이스의 영상에 여간해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블로그에 내 발이 보이면, 시청자들은 그 발이 누구 발인지 알고 싶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앤소니의 부친은 처음에는 그의 비디오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영상을 보게 됐을 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자신의 아들이 그토록 활발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는 “50년 전이었다면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자신만 간직하고 일기나 비망록을 쓰는데 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앤소니의 목소리가 변성기를 거칠 무렵, 그가 궤변을 늘어놓는 영상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LA 소재 디지털연예기획사인 풀스크린(Fullscreen)의 이목을 끌었다. 올 초 풀스크린은 앤소니를 LA로 불러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풀스크린은 앤소니의 영상을 통해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앤소니의 여과되지 않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인해 광고를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그가 매주 올리는 영상을 유료화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이 콘퍼런스 기간 동안 학교에 가지는 않지만 앤소니는 여전히 자신의 매니저가 준 숙제를 해야했다. 사인회 부스에 최소 30분 전에는 와야하고 댄스 경연 비디오를 업로드하고 식사를 챙겨야 하는 등의 숙제 말이다. 한시간쯤 지나자 스텝이 그에게 과일을 내왔다. 물론 동시접속자 수가 가장 많은 동영상 사이트 출연진이 연예기획사의 이목을 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투브가 탄생시킨 최고의 행운아 중 한명인 폴 바스퀘즈는 집중공세에 시달렸다. 2010년에 올린 영상 때문인데 이 영상에서 그는 요세미티국립공원 근처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쌍무지개를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한 나머지 흐느껴 울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3,700만을 기록하며 대히트를 쳤다. 관련 상품 판매와 토크쇼 출연, 뮤지컬 리믹스 등이 잇따랐다. 이 정도의 성공은 비드콘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꿈꾸는 것이지만, 바스퀴즈는 광고게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신의 섭리에 광고를 올릴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앤소니의 부모는 유투브에서 버는 수익을 저축하고 있다. 대학등록금으로 쓰려는 것이다. 앤소니의 장래희망은 무엇일까? “당연히 배우죠.” **영상보기** http://goo.gl/m2K6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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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아시아 제일가는 마약 제조국과 아시아 마약 카르텔
메스 암페타민이라는 마약이 있어 종주국 : 일본 증상 : 강력한 환각, 각성 특징 : 만들기 쉽다 존나 쉽다 개개개개개 쉽다 메스암페타민은 일본 의사가 1893년 감기약을 개발하다가 발견했어 성분이 감기약과 유사하다보니 아편 대마 코카인 등 원재료 중요한 다른 마약에 비해 화학지식만 있으면 쉽게 만들수 있음 울나라에서도 걍 고딩 이과생이 저거 만들었다가 걸려서 난리난적 있더라고 이 성분을 주목한 일본의 다이닛폰 제약은 메스암페타민을 첨가한 피로회복제를 만들어 대대적인 광고를 했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건너간 히로뽕은 시험공부 중인 학생이나 장거리 주행하는 트럭운전기사들을 중심으로 남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독현상에 대한 심각한 보고가 없었고, 위험성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히로폰 익숙하지? 맞아 흔히 우리나라에서 히로뽕, 필로폰으로 불리는 그 마약이야 이 히로뽕이 대대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바로 전쟁시기야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추축국 가리지 않고 많은 군인들이 마약을 했어 왜냐? 피로를 빨리 회복시켜주고, 더 용감하게 잘 싸우게 해주거든 각성제 효과로 죄책감이나 피로감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감춰주거나 원하는 환각을 보여주니까 당연히 만들기 쉬운 메스 암페타민, 히로뽕도 많이 사용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히로뽕은 연합국이던 추축국이던 거의 모든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보급됐다. 야간행군 때 졸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고, 한편으로 병사들의 겁을 없애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각 군의 지휘관들은 중요한 보급물자 중 하나로 이 메스암페타민을 수만정씩 보유하고, 병사들의 사기와 내구력 향상 등의 목적으로 정기 지급했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종주국인 일본은 특히 말할 것도 없었지 특히 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심각한 난전, 악전고투를 겪던 일본 군인들의 필수품이었음 가미카제에 탔던 병사들도 히로뽕을 투여한 채 자살테러를 감행했고 그 전쟁의 결과는 우리도 다 아는 빵 그렇게 전쟁은 한순간에 끝났고 일본에세 남은건 패배와 반쯤 박살난 국토 그리고 군창고에 쌓인 수많은 히로뽕이었어 사실 메스 암페타민은 화학 실험으로 만들어지는 마약이야=제조하는 화학 기술자가 따로 군대에 고용돼 있었다는 거임 근데 일본 패망 후 갑자기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하던 기술자들이 한번에 실업자가 된거야 굶어 죽을수는 없잖아? 그래서 기술자들은 군인을 위해 제조하던 메스암페타민을 민간에 팔기 시작했지 이미 메스암페타민이 첨가된 피로회복제가 팔리는 판에 군대에서 쓰이던 순수 메스암페타민까지 등장한거야 그러자 일본에는 이미 메스암페타민에 중독된 군인들 뿐 아니라 민간에도 많은 중독자가 발생에 큰 문제가 생겼고 1945년 패전 후에는 구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필로폰 재고가 암시장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본 전역에 마약 중독자가 속출했다. 일본은 1951년까지 각성제 유통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965년에는 ‘제2차 각성제 남용기’가 도래했다. 전쟁 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재건에 열을 올리는 노동자, 밤낮없이 활동하는 연예인과 그 뒤에 암약하는 야쿠자들의 손을 타고 각성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마약으로 자리 잡았다.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6&t_num=13608109 1951년 일본 정부가 금지약물로 지정해서 제조, 판매를 금지했어 어 정부가 잘했네 그..으렇긴 그런데... 2022년으로 점프해볼까?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하드드럭+일부 소프드드럭이 불법이야 강력하게 마약을 단속하고 있고 마약 단속반은 거의 특부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근데 미국에서..마약을 안해?? 존!!!!나 하잖아 미국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상이상으로 많음 가끔 길거리 걷는것도 무서움!!! 그것도 무시무시한 마약 갱단이 붙어서 하지 물론 미국의 마약 중독이 단순히 마약 금지때문만은 아니고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마약을 금지한다고 마약이 뚝 끊기는건 아니란거지 오히려 불법화되고 위험해지니까 폭력 조직들이 개입해 일본도 야쿠자가 메스암페타민 사업에 뛰어들었어 당연히 마약산업은 각종 불법+검은돈이 몰리는 산업이 됐음 일본 정부도 굉장히 강경해서 대대적인 체포 작전으로 5만명 넘게 체포하기도 했어 그야말로 일본판 마약과의 전쟁이었음 심지어 1960년대에는 마약 제조자에게 최대 사형까지 구형하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이렇게 마약관련 법이 강해지자 마약업자+야쿠자들은 눈을 돌리기 시작했음 잠깐 2022년으로 다시 점프해볼께 미국이 마약을 많이 한다고 했잖아 그럼 이 마약은 어디서 올까? 미국? ㄴㄴ 미국 아래있는 멕시코부터 더 아래있는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 제조되서 유통돼 그래서 그 국가들은 마약카르텔에 국가가 잠식되어 있는 수준이고 미국내 단속이 엄격하고 빡세질수록 마약 산업은 돈이 되는 산업이 됨과 동시에 근처 다른 곳에서 제조하려고 하는거야 그리고 미국이 단속 빡세질수록 그 카르텔에 마약상과 마약카르텔 갱들은 더 활개치고 시민들은 더 괴로워하지 OEM이라고 알지?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따지자면 미국의 마약은 멕시코와 중남미 국가에서 OEM 생산하여 판매되는거라고 봐야해 다시 1960년대로 가서 마약 제조업자들과 야쿠자들에게 메스암페타민 산업은 너무나 ~ 돈이 되는 산업이지만 자칫하다간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산업임 이때 얘네 선택을 고르시오 1. 회개하고 새삶을 산다? 2. 죽기를 각오하고 계속 만든다? 둘다 놉 3. 가까운 곳에 생산 기지를 만든다 돈도 되고 안전하고 개굿! 자 이제 눈치챘겠지 일본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좆같게도 우리나라야ㅋㅋ 그것도 제일 가까운 곳은 제2의 도시 부산 일본과 가깝고 항구라 해상교통도 편리하니까 맞아 일본에 유통할 마약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조하기 시작해어 이때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마약왕인데 안봐서 뭐라 말을 못하겠다 아무튼 스토리라인이 일본에 마약 파는 내용이더라구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한 제재가 별로 없고 큰 문제를 일으킨적도 없었어 소프트드럭이라는 대마도 시골 어르신들이 종종 키워서 사용했었고 은근히 피는 사람도 흔했으니까 그런 헛점을 이용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야쿠자 세력 및 마약 상들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그 아래 일하는 사람들도 점차 기술을 배우고 마약 장사에 참여하기 시작해 그리고 한국 조폭들의 큰 자금줄이 됐지 당시 한국에 뭐 4대 마약왕이니 마약 거물이니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걍..아오안이라 더 안찾아봄..알빠쓰레빠 방식은 이래 대만에서 원료를 사온다->부산에서 만든다->일본에서 판다 어 따지자면..가공무역?..을 가장한 카르텔이지 뭐 저기에 개입되는건 일본의 야쿠자/한국의 조폭들이었고 폭력 조직과 각종 불법이권의 돈줄이 되어준게 바로 마약이었거든 그렇게 60년대~70년대까지 일본 히로뽕 생산량의 80%를 한국, 부산이 차지헀어 그것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히로뽕보다 한국 히로뽕이 유독 질이 좋아서 일본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 참...어떻게 마약도 굳이굳이 더 잘만드네..재능낭비? 그렇게 1970년대까지 부산 지하경제는 히로뽕이 장악했고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왔어 그렇지만 히로뽕 중독자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었지 물량을 죄다 일본에 팔았거든 왜냐면 우리나라사람들은 가난했고 돈을 버느라 바쁘지 돈주고 비싼 마약을 살 여유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1980년대들어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해 1. 돈이 되니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 기술(???)이 발전했다 =양질의 히로뽕 생산량이 늘었다 + 2. 일본에서 코리안 마약 카르텔을 눈치채고 대대적으로 한국산 수입품을 단속했다 =대부분 일본에 수출되지 못하고 부산에 물량이 남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히로뽕 물량이 촤악 풀렸지 실제 우리나라에서 다른나라와 다르게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의 마약이 바로 히로뽕임 왜 오죽하면 SON of 정희, BROTHER of 근혜인 박지만 (=약쟁쓰)도 가장 많이 걸린게 히로뽕이겠어 헐 우리나라도 그럼 완전 약쟁이 나라 된거아냐? 놉 다행이 우리나라는 마약이 퍼지는 속도보다 정치 경제 사회 변화가 개빠른 나라였고 마약이 우리나라를 장악하기전 마약을 여러 선진적 체계가 빠르게 자리잡았어 단속반이 생기고, 마약단속법이 생기고 인식이 바뀌고 등 더불어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건비, 물류비, 물가 모든게 상승하다보니 계속 OEM을 하기엔 단가가 안맞았지 어쨌든 마약 산업(?)도 돈벌려고 하는건데 울나라에서 만들면 더이상 돈이 안되는거야 마이너스 수준임 걍 평범한 합법 공산품도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가격이 비싸지는데 하물며 마약은.. 그래서 많은 마약 제조상들이 다른나라로 떠났고 우리나라는 다행이 마약제조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만약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지 못했다면, 사실 거대한 마약카르텔이 나타났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마약 카르텔의 가장 최악의 결과는 현재 멕시코나 남미를 보면 되고 또 아프가니스탄 같은 최빈국+분쟁국가도 부자국가의 마약 OEM으로 먹고 살며 마약카르텔에 갇힌 나라거든 물론 그 흔적은 아직 남아있지만..우리나라 아직도 가장 높은 비율의 마약이 히로뽕임 히로뽕은 투약횟수, 정도에 비해 몸에 끼치는 해가 아주 큰 마약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손도 대지 말자 막간 TMI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엔칸토는 화려한 색감과 신나는 음악이 특징인데 그 밝은 연출 뒤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어 엔칸토의 시작이 바로 콜롬비아 내전이야 주인공 가족은 내전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고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의 큰 영향을 받은 나라고 당연히 콜롬비아 내전도 그 마약과 카르텔의 영향을 받았음 마약왕으로 불리던 나르코스가 콜롬비아 출신이기도 하고 마약과 콜롬비아는 절대로 뗄 수 없지 미국에서도 콜롬비아와 마약을 많이 연관지은 미디어,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본인들도 책임 아주 크다는건 가끔 망각하는 것 같아 ㅋㅋ ㅊㅊ
우러전쟁 이야기 (갈려 나가는 기갑)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흑토 때문에 이질적인 지형을 갖고 있음. 이 이질적인 지형은 우러전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 그것은 바로 라스푸티차라고 불리는 광역 슬로우 디버프임. 기갑의 이동을 제한하는 라스푸티차는 봄과 가을에 발생하고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에도 발생함.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모두 이 라스푸티차라는 페널티에 걸려 있음. 요즘 러시아군이 무리한 공세를 하다 많이 갈려 나가는 중이라 지형 페널티를 받고 갈려 나가는 우러전쟁 기갑에 대해 쓰려고 함. 우러전쟁 기갑은 진흙탕 서핑을 하고 싶지 않으면 길 따라 기동해야 함. 근데 우크라이나 도로는 협소하고 길이 많지 않아 진격로가 제한됨. 제한된 진격로, 좁디좁은 길, 거지 같은 도로. 기갑이 갈려 나가기 딱 좋은 조건임. 박살 난 선두 전차 때문에 잠시 멈춤 러시아 전차. 어버버하다가 결국 포격 엔딩을 맞음. 우러전쟁, 기갑 부대의 진격을 막는 방법. 대전차 지뢰든, 장애물이든 뭔가로 길을 막는다. 길이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기갑 부대를 차근차근 박살 낸다. 원숭이도 할 간단한 방법인데, 이게 계속 통하는 상황임. 그렇다고 도로가 아닌 진흙밭을 통과하는 것도 미친 짓임. 라스푸티차 때문에 굼벵이 속도로 진격하다 쓸려나감. 또 우러전쟁 기갑을 위협하는 문제점이 하나 더 있는데 너무 탁 트인 개활지라는 점임. 이런 전장은 공군이 활약하기 최적의 지형인데 아쉽게도 우크라이나, 러시아나 공군이 없음. 탁 트인 개활지여서 생기는 단점. 드론 정찰에 너무 쉽게 잡히고 조금만 멈춰 있으면 포격 맞아 사망임. 드론 정찰로 러시아 기갑을 찾을 우크라이나 보병대. 대전차 미사일 사격으로 깔끔하게 제거함. 라스푸티차로 인한 슬로우 디버프 & 개활지로 인한 엄폐 불가 때문에 기갑이 매우 취약함.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터져나가고 있음.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황에 맞춰 운영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갈려 나가는 중임. 그리고 러시아제 기갑은 종이 장갑이라고 할 정도로 장갑이 약해서 포격 몇 방에 쉽게 궤멸되는 편임. 궤멸된 기갑부대에 놀라 달아나는 러시아 병사들. 이게 우러전쟁 전선이 교착 상태인 이유임. 기갑이 힘을 쓰기 힘든 조건이 너무 많음. 다만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갈려 나가는 것은 기갑 자체의 문제라긴 보단 전장 상황을 무시한 무지성 작전 탓이 큼. 겨울 라스푸티차 기간에는 존버하고 강추위 시기에만 공세했으면 저런 일 없었음. 기념일 따위의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작전하는 게 문제임.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너무 쉽게 박살 나고 있지만 기갑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무지성 운용이 문제이며 기갑은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 3줄 요약 1. 우크라이나는 기름진 흑토 때문에 라스푸티차가 매우 매우 심함. 2. 제한된 진격로, 거지 같은 지형 때문에 기갑이 무수히 많이 갈려 나감. 3.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진격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궤멸됨.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