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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IMF 환란과 월가의 금융위기
IMF 환란은 IMF라는 국제기구에 농락당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2008년에 터진 월가의 금융위기 때 IMF가 취한 조치와 너무나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금융위기인 전란(錢亂)인데도 한국에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환란(換亂)으로 작용하고, 그보다 훨씬 악성인 월가의 전란은 오히려 ‘돈잔치’로 끝났다.
IMF를 움직이는 월가의 이중잣대로 인한 것이었다.지난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1945년 12월 설립된 IMF는 고금리와 재정긴축을 특징으로 하는 단기 국제금융기관이다.
말이 좋아 국제금융기관이지 내막을 보면 고리대금 사채업자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월가 투기금융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손을 내밀며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전쟁은 꼭 총칼 등의 무기로만 치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으로 무장한 전쟁(錢爭)이 더 무섭다.
IMF의 뒤에는 월가의 투기금융 자본이 있고, 그들은 워싱턴을 움직여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모두 이를 간과했다가 IMF의 기습공격으로 치명상을 입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간신히 목숨을 구한 꼴이었다.
천하대세를 읽지 못하면 유사한 사태가 계속 빚어질 수밖에 없다.
위정자와 기업 CEO의 폭넓은 시야와 천하대세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격안관화의 희생양, 대우
삼성 및 현대와 더불어 3강 체제를 구축하며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존재했던 대우 그룹이 해체된 것도 IMF 환란과 무관할 수 없다.
김우중은 세계경영을 화두로 내걸고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이는 너무 앞선 것이었다. 인도와 폴란드, 체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 잇달아 공장을 세우면서 회사채 15조 원을 쏟아부은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IMF 환란 상황에서 금융감독위원회는 부채비율 200퍼센트를 제시했다.
대우는 이를 맞추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을 다 내놓았다.
이를 구매할 자는 외국 펀드와 국내 대기업 두 곳 밖에 없었다.
두 군데 모두 알짜배기만 인수하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삼십육계》에서 말하는 격안관화 계책이었다.
단순히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의 속망(速亡)에 따른 전리품 수집에 열을 올렸던 셈이다.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천명하며 수수방관했다. 결국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대우는 이내 공중분해되고 말았다.1999년 말 대우 그룹 해체 당시 그룹 재무제표를 조사한 결과 총부채 최대 89조 원, 자산 59조 원으로 추산되었다.
국내외 언론은 ‘인류 역사상 최대 파산’으로 대서특필했다.
분식회계 41조 원, 공적자금 30조 원, 해외도피 25조 원, 사기대출 10조 원. 김우중에게 씌워진 비리혐의다.
그는 졸지에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낙인찍혔다.현재 대우사태를 재조명하는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우 그룹의 해체는 한국의 금융과 주식을 장악해 한국을 경제 식민지로 만들려는 월가의 국제투기금융 세력과 이에 동참한 한국의 정관계와 금융계 및 학계 인사들의 합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가인 필리핀 대학 교수 월든 벨로(Walden Bello)의 주장이 대표적이다.“미국의 경제적 식민지인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안락한 대접을 조건으로 국제투기금융 세력에 국가를 팔아넘기는 행태를 저질렀다.”문민정부 시절 국제투기금융 세력이 국내 금융기관들을 통해 한국기업들에게 과도하게 달러를 빌려 쓰도록 부추긴 뒤 외환위기를 조장해 한국의 재벌과 은행들을 약탈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아편전쟁을 유대자본의 영국 ‘시티 오브 런던’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한 《화폐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실제로 월든 벨로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대우 그룹의 현금유동성이 어려워진 근본 원인을 전적으로 국제투기금융 세력과 이에 예속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대우가 과도한 차입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분식회계와 공적자금 투입, 해외자금 도피, 사기대출 등은 대우 그룹 해체의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과 이듬해의 세계적 통신회사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례가 보여주듯이 당시 관행적으로 분식회계를 하지 않은 기업이 거의 없었다.
5조 원이면 된다는 공적자금을 30조 원으로 늘려서 투입한 장본인도 당시 국민의 정부였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해외도피 25조 원도 영국소재 국제투기금융 세력의 농간일 공산이 크다고 본다.
사기대출 또한 그 당시 한국기업의 관행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말해 김우중은 멋모르고 당시 관행으로 통했던 모든 비리방식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했다가 국제투기금융 세력의 용도폐기 선언을 계기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렸다는 것이 골자다.이헌재가 금과옥조로 내세운 ‘글로벌 스탠더드’가 2008년의 월가 금융대란을 계기로 사실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드러난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부실의 주범으로 칼을 들이댔던 대우 그룹 계열사의 상당수는 현재 고속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이 보유한 대우 그룹 계열사 채권과 주식 등도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정책당국자들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대우 그룹에 좀더 애정을 갖고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기업이 몸을 사리는 고용 없는 성장시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김우중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던진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다.“젊은이는 꿈을 꾸어야 한다. 역사는 꿈꾸는 사람의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 꿈을 키우는 사회, 꿈을 공유하는 민족만이 세계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젊은이의 꿈은 원대해야 한다. 옹졸하고 조잡한 꿈은 젊은이의 몫이 아니다.”“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구호는 오늘날 88만원세대를 자조하는 젊은이에게 커다란 용기와 영감을 줄 만한 뛰어난 메시지에 해당한다.
대우 그룹 해체를 국제투기금융 세력의 음모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지난 1988년 대우가 동베를린에 동구권 지사를 세운 이후에 보여준 눈부신 동구권 진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1993년 3월 김우중은 ‘세계경영’을 선언한 뒤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이해 말 185곳에 불과했던 해외 네트워크는 1998년 말 3배 넘게 늘어났다. (주)대우, 대우자동차와 대우중공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 5,000명, 외국인 종업원 21만 9,000명, 해외법인 396개를 지닌 거대한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등장한 것이 그렇다.
자산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비록 국제투기금융 세력의 자금을 끌어들인 것이기는 했으나 결국 세계경영을 실현한 셈이다.문제는 그 다음이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우의 역할은 동구권 국가에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공사를 깔아주는 것으로 소명이 끝났다.
베트남이나 이라크의 재건사업 때처럼 자본은 국제투기금융 세력이 대고 품앗이는 한국의 건설기업이 한 것처럼 동구권에서도 대우 그룹 역할이 끝나면서 폐기처분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를 장악한 국제투기금융 세력이 대우에 대한 용도폐기 처분이 내리면서 한국의 관료들은 그 뒤치다꺼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대우 그룹의 110억 달러에 달하는 해외투자는 IMF 환란 이후 심각한 현금유동성 위기를 몰고 왔다.
1999년에 들어와 (주)대우의 수영만 부지 매각, 대우조선 매각, 김우중의 개인재산 1조 3,000억 원을 포함 10조 원의 담보 제공 등이 잇따랐다.
결국 이해 8월 국제투기금융 세력이 조종을 받은 채권단은 김우중의 개인재산까지 모두 빼앗고 난 뒤 대우 그룹 12개 주력 계열사를 공중분해시켰다.
이는 일차적으로 김우중 자신이 ‘세계경영’ 구호에 자아도취된 나머지 겁 없이 국제투기금융의 빚을 끌어들인 데 있다.
문민정부가 클린턴마저 한국에 외환부족 사태의 우려를 통지했는데도 “한국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해 걱정할 게 없다”고 호언하다 IMF 사태를 초래한 것과 닮았다.
이들이 대우 그룹 해체를 IMF 환란의 도래와 같은 맥락에서 읽는 이유다.
유비무환의 필요성
고금을 막론하고 국제관계에서는 자애심에 따른 일방적인 선린우호(善隣友好)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방비한 뒤에야 선린우호도 존재한다. 동양의 역대 병서가 하나같이 유비무환을 역설한 이유다. 《사마법》 〈인본〉에 나오는 ‘천하수안(天下雖安), 망전필위(忘戰必危)’ 구절이 이를 웅변한다.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IMF 환란을 자초한 장본인은 슬로건 정치로 일관한
김영삼과 한국의 경제 관료들이었다.
‘세계화’ 운운하며 외환시장의 빗장을 모두 푼 것이 화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동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재연했던 셈이다.
박정희가 지난 1978년 ‘천하수인, 망전필위’를 신년휘호로 내놓으면서 해외 투기자금의 유입을 철저히 봉쇄했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무인출신인 그는 이율곡이 역설한 ‘10만 양병설’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국제투기금융 세력은 문민정부가 빗장을 활짝 열자 곧바로 돈가방을 들고 찾아와 달러를 마구 빌려 쓰게 했다.
‘정치9단’ 김영삼은 평생을 독재와 싸운 사람이다. 경제를 알 리 없다.
강경식을 비롯한 관료들이 더 문제였다.
IMF 환란 사태가 터지기 직전 한국은행의 금고가 바닥났다는 것은 국가경제가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되었는지를 방증한다.
결국 김영삼이 IMF에 황급히 도움을 요청하자 IMF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혹한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골자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한국금융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외국계 자본에 완전 개방한다.
둘째, 재벌의 족벌운영을 막기 위해 대기업의 경영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일대 쇄신을 꾀한다.
셋째, 국가가 수출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금융기관을 좌지우지하는 관치경제를 혁파한다. 하나같이 한국경제의 자치권을 국제투기금융 세력에 넘기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는 대우 그룹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IMF 환란 이후 금리가 연 30퍼센트로 뛰면서 차입을 통한 세계경영을 주도한 대우 그룹은 이자를 부담할 길이 없어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IMF 환란을 자초한 문민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IMF의 조정에 놀아난 국민의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대우 그룹 해체의 책임을 이헌재에게만 물을 수 없는 이유다.당시 한국의 조치는 말레이시아 전 수상이자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박사 출신 마하티의 행보와 대비된다.
IMF를 조정하는 월가 투기자본의 흑막을 훤히 꿰고 있던 그는 단 한 푼 들이지 않고 오직 경제명령 발동 하나만으로 간단히 위기를 극복했다.
IMF가 주문한 엄격한 국제금융 시스템 및 시장개방을 거부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앞세운 덕분이었다.
그는 변동환율제를 고정환율제로 바꾼 뒤 외환과 주식 거래를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제명령을 발동했다.
이는 IMF의 처방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국제자유시장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IMF로부터 ‘최고의 장학생’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던 김대중은 1998년 10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마하티에게 ‘한 수’를 넌지시 가르쳐주었다.“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만 아시아에 몰아닥친 이번 환란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마하티가 쓴웃음을 지으며 반박했다.“위기의 주범은 제어할 수 없는 국제 투기자본입니다!”결국 말레이시아는 그의 해법에 따라 무난히 환란을 극복해 금과옥조처럼 유행하던 세계화에 경종을 울렸다.
그가 이후 미국 등 서방세계가 주도하는 세계화와 9·11 이후의 대 테러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독설을 퍼붓는 것도 이때의 자신감이 밑바탕이 된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도 마하티를 좇아 서양자본 카르텔의 음모라며 재빨리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이에 반해 ‘IMF 장학생’의 답안지는 한국경제에 끼친 내상이 너무 커 사실 ‘IMF 환란 극복’이라는 찬사가 무색하다.
선진국의 그 어느 나라도 국영은행 내지 주요 은행의 지분을 50퍼센트 이상 외국자본에 넘긴 나라는 없다.
한국의 상황이 그렇다. 삼성의 지분구조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50퍼센트 안팎을 오간다.
한국기업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국제투기금융 그룹의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우 그룹의 해체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다.실제로 과거 국내기업들은 번 돈으로 국내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돈이 잘 돌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장악한 이후에는 엄청난 배당금을 배당하지 않으면 경영권을 위협하는 일이 빚어졌다.
천문학적인 배당금으로 인해 국내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자사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방어하기에 바쁘다.
오랫동안 한국의 독자적인 기업이론과 모델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조동성도 유사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5년에 펴낸 《김우중》에서 이같이 말했다.“김우중의 세계경영 방식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경영 방식이다.
만일 그가 5년만 더 그의 방식대로 국제경영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선진국 중심의 이론을 대체해 후진국과 개도국 경영자들에게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줄 이론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지금 대우조선과 대우건설 등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후진국과 개도국 경영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우 모델의 실종은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아 있는 것은 ‘삼성 모델’과 ‘현대기아차 모델’ 등이다.
현재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대우 모델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경제전쟁의 선봉장으로서 우리의 역사문화에 부응하는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그것만이 무경십서의 원류에 해당하는 《관자》가 역설한 ‘부국강병을 통한 문화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IMF 환란과 월가의 금융위기 (무경십서, 2012. 9. 28., 역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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