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corn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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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 OST 세계로 푹 빠져볼까요?

1. Summer
1999년에 개봉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메인 테마곡으로, 영화 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국내에서 꽤 유명한 곡이지요.
연주 내내 울리는 스타카토의 톡톡 튀는 매력적인 느낌 덕분에 여름날의 소나기 같은 상콤한 청량감이 전해지는 느낌이네요.
2. 인생의 회전목마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과 소피가 함께 하늘을 걷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공중산책'과 같은 구성의 음악이에요. 정말 동화 속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몽환적이지요.
기무라 타구야가 연기한 하울의 목소리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더더욱 심쿵했던 아련함이;;;
3. The Bygone Days
팝콘 언니가 매우매우 애정하는 영화 <붉은 돼지>의 OST인 '지난 날'이란 곡이에요. 재즈풍의 피아노 연주와 그루브 넘치는 트럼본, 색소폰 솔로를 듣다보면 시나브로 로맨틱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어두컴컴한 bar에서 독한 술 한 잔 앞에두고 라이브로 듣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4. 벼랑 위의 포뇨
노래 자체도 귀엽고, 99년생(당시 10살) 노조미의 몸짓 하나하나와 목소리도 귀엽고, 무엇보다 옆에서 인형 흔드는 아저씨도 귀엽네요;;;
웅장한 곡부터 이런 상콤한 동요까지 모두 커버 가능한 히사이시 조 오라버니는 정말...
5. One Summer's Day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반, 자동차를 타고 이사할 집으로 가는 도중에 흘러나온 곡으로, 울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OST로 꼽힌다고도 하네요.
히사이시 조는 곡이 어렵지 않음에도 우아하면서도 감동적인 느낌을 주는지라 더 끌리는 듯 해요.
6. Mononoke Princess
영화 <원령공주>의 메인 테마곡으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죠. 애잔하면서도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신비한 느낌의 선율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던 우리의 아시타카 도련님은 잘 살고 계실려나요.
7. 바람의 전설
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주제곡입니다.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다가 팀파니가 '두둥'하며 바이올린 합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수십번 리플레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찾아보니 이 영화가 만들어진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어머나...
8. A Waltz of Sleigh
히사이시 조는 스튜디오 지브리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요, 이 중 국내 영화나 드라마 OST도 참여를 했었답니다. 그 중 <웰컴 투 동막골>의 '썰매 왈츠'는 신비로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동시에 주는 명곡이지요.
물론 영화도 꿀재미 보장요ㅎㅎㅎ
9. Always with me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노래 '언제나 몇 번이라도' 입니다. 참고로 이 곡은 히사이시조가 아닌 'Kimura Yui'가 작곡한 곡입니다. 곡이 너무나 좋아서 넣어 보았어요^^
잘 들어보시면 여가수의 호흡이 짧은 느낌이 드는데요, 과거에 사고로 성대를 다쳐서 그렇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청아하고 이쁘게 노래하며 잔잔한 여운을 건네주네요.
10. 이웃집 토토로
중독성 있고 발랄한 멜로디로 인해 들을 때 마다 늘 기운이 넘치는 곡이지요. 이 노래를 실내공연장에서 200명의 오케스트라와 800명의 합창단이 함께하니 그 웅대함으로 인한 감동은 상상 이상일 것 같아요.
마지막에 지브리의 두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가 함께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지 못 할 장면이었어요.
2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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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시댄스 지브리 세트 앨범도 추천합니다
긴 여운이 남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분의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했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ㅎㅎㅎ
복귀해주세요 ㅠㅠㅠㅠㅠ
태왕사신기
공부할 때 즐겨듣던 음악들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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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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