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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읽남의 오르되브르] '매트릭스' 재개봉…2199년에 더 가까워진 현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1999년.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며, 더 극한 표현을 빌려온다면 무려 한 세기 전이다. 그때 개봉한 '매트릭스'를 스크린에서 4K의 고화질 영상으로 재개봉한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한 편에서는 설렘이, 또 한 편에서는 우려가 반반씩 고개를 쳐들었다.
큰 스크린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액션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란 설렘. 그리고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이 걸리는 스크린에서 봤을 때, 낡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은퇴한 슈퍼스타가 다시 복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을까. 이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꼭 그랬다.
한 세기 전의 세련됨
우려와 달리 '매트릭스'는 여전히 좋았으며, 현재 상영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세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이 영화 앞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열광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4K라는 고화질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테크놀로지가 주는 굉장한 선물이다. 워쇼스키 형제(현재 자매)가 세계관을 얼마나 치밀하게 정립하고 구현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세계에 어울리는 액션을 얼마나 잘 녹여놨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동양 무술과 불릿 타임(총알까지 포착할 수 있는 슬로우 모션) 등의 액션 및 효과는 만화적이고(혹은 게임) 투박하다. 조금만 잘못 표현했어도 유치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던 시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적절한 연출 덕에 이 액션 및 효과는 '매트릭스'라는 디지털 공간·캐릭터와 함께 영화의 톤 앤 매너에 잘 녹아들었다.
그래서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17년 전 게임(ex: 포트리스2, 스타크래프트 등)을 지금 보면 낡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혹은 17년 전 머리 스타일을 봐도 그런 걸 느낀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세월을 타지 않는다. 17년이란 시간은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큰 균열을 주지 못했다.
사실 처음엔 이 영화에 관한 좋은 기억이 객관적 관람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신중했었다. 하지만 영화만큼 유명한 음악이 흐르고, 그 유명한 타임 불릿 효과로 화면이 느려질 때, 오히려 빨라지는 심박 수를 느끼며 확신했다. 역시 좋은데?
그녀들이 형제였을 때
'매트릭스'엔 낯선 자막이 하나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이라는 자막.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한 거 맞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7년 동안 변화가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성전환수술을 했고, 남매를 거쳐 지금은 자매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며, 규정하기도 힘든 일이다.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다만, 조심스레 '매트릭스' 3부작과 이후의 영화를 비교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이들은 매트릭스 이후 '스피드 레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그리고 '센스8'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들이 그녀들이 된 이후, '매트릭스' 때부터 보여준 장기인 독특한 세계관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어나가면서, 좀 더 섬세한 감성을 담으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관객과는 멀어진 면이 없진 않지만) 규정, 표준화된 것들로부터 탈주하려는 면도 보여줬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할리우드 주류 스토리 라인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이고 복잡한 영화였다. 때문에 '매트릭스'를 기대한 관객에게 거대한 혼란을 던져줬고, 흥행에서도 큰 재미를 못 봤다. 이후 '주피터 어센딩'으로 돌아왔지만, 영화의 작품성, 완성도와는 별개로 여전히 대중과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매트릭스' 3부작이 대중성을 가진 것이 우연이었던 걸까. 아니면, 흥행 이후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영화에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이 걷는 인생의 진로와 영화적 변화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걸까. 앞으로의 한 걸음걸음이 그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17년이면 충분했던 디스토피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에 있던 시기에 '매트릭스'가 보여준 미래는 디스토피아였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삶이라는 암울한 세상. 17년이 흐른 지금도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속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말했다. '인류는 21세기 초 모두가 경탄하면서 AI의 탄생을 한 마음으로 환영했었지.' 지금 우리 시대에 던지는 말이라 해도 잘 어울린다. 17년 만에 AI는 친숙한 기술이 되었고,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며 그 분야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고 있다.
재미있게도 이런 AI의 발달을 가장 많이 우려하는 분야가 영화라는 점이다. 기계와 연애를 하는 '그녀', 기계가 치안을 담당하는 '채피' 등 AI가 일상화되었을 때 있을 수 있는 새로운 현실과 그 문제점은 영화가 먼저 보여준다. 미래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경계하는 건 영화의 몫이 되어버렸다.
매시간 스마트 기기에 시야를 차단당한 삶. 인체의 에너지보다 휴대폰 배터리에 더 집착하는 세대. 공공장소에서 디지털 세계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와이파이와 콘센트 플러그를 찾는 시대. 이런 디지털 의존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매트릭스'는 하나의 예언서가 되는 걸까. 아니면, 이미 우리는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진입한 걸까. 170년 뒤, '매트릭스'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 시대에 이 영화를 볼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글] 영읽남 from 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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