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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느 미군의 수기
(미 육군 7사단 본부중대 리차드 카펜터(Richard L. Carpenter) 소위의 수기에서 발췌) 우리는 1953년 5월 1일 김포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미 7사단 본부에서 개인화기와 장비를 지급 받고 전선에 투입될 준비를 했다. 우리가 배치 받은 곳은 한국군 수도사단(맹호부대)가 장악한 금화에서 금성까지 이어지는 3개 섹터로 나누어진 금성 돌출지역(분지)이었다. 대부분은 한국군이었지만 미군도 있었고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6월 10일 우리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우리는 공군에게서 건설용 철판을 빌려 벙커를 보강했다. 풀이 좀 자라나면 관측에 방해되기 때문에 한국군 병사들이 모두 제거했다. 6월 20일, 중공군이 152밀리 자주포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군 벙커 관측소에도 포탄이 떨어졌고 한국군 하프트랙 승무원들도 40밀리 보포스로 대응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2명과 한국군 몇 명이 전사했다.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은 여름 공세를 시작하였다. 철의능선에 있던 한국군 수도사단 모든 벙커에 중공군의 포격이 밤새 쏟아져 내렸고 일부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려해서 한국군 부사관들이 제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국군 벙커에 사상자가 늘어났자, 영어가 가능했던 한국군 대대장 '김 중령'이 찾아와 미군들을 투입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들은 각자 벙커에 들어가 한국군들에게 커피와 빵을 나눠주었다. 김중령은 '미군이 우리와 함께하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라고 연설하여 병사들을 안정시켰다.  중공군은 포격이 끝나자 벙커를 점령하기 위해 접근해왔다. 그들을 향해 우리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중공군들은 정말 개미떼 같이 많았다. 중공군은 자신들의 앞서가던 대열이 무너지면 뒤에 있던 후속 대열이 몰려오는 식으로 전진을 반복했다. 100발들이 탄벨트는 링크를 연결해 수백발을 쉬지도 않고 계속 쐈다. 총열이 뜨겁게 과열되었지만 식힐 틈 조차 없었다. 전투는 4시간 동안 이어졌고 결국 중공군은 와해되었다. 7월 15일 오전 9시, 중공군은 나팔과 함성을 지르며 동쪽 벙커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국군과 미군이 섞인 혼성부대는 중공군이 400야드까지 접근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유효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기관총을 일제히 발포하였다. 중공군이 너무 많아서 기관총 총알 1발당 적 1명이 쓰러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중공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도 계속 전진했다. 적이 약 100미터까지 근접하자 한국군 병사들의 개인화기도 불을 뿜기 시작했고 마침내 중공군들이 아군 참호까지 들이닥쳤고 우리는 대검과 야전삽을 꺼내서 휘둘렀다.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공군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미군과 한국군 의무병들은 힘을 합쳐 부상자들을 돌봤다. 밤이 되자 전장에 버려진 중공군 부상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전투가 끝나고 아무리 무전기 주파수를 돌려도 응답이 없자 통신망이 단절된 걸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후방과 연락이 닿기위해 무전을 시도하였다. 아무 주파수나 맞춘 뒤 제발 들어주길 바라며 포병대를 불러댔다, 다음날 아침 장교들과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중 중공군의 포탄이 지휘소에 떨어졌고 지휘소에 있던 미군과 한국군 몇명이 사망하였다. 아마 적은 우리의 레이더 안테나를 보고 쏜 것 같다. 곧바로 아군 8인치 자주포 대대의 대응포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거점으로 보이는 곳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탄약고에 명중한듯 했다. 아군의 지원이 시작되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중공군은 새벽에 다시 몰려왔다. 박격포로 조명탄을 쏘면 관측장교가 고폭탄 효력사를 요청했다. 중공군도 박격포로 대응사격을 했으나 정확도가 낮아서 멀리 떨어지거나 같은 중공군들까지 피해를 입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통신이 두절되자 관측반은 무전으로 근처에 아무 포병부대나 응답이 닿기를 바랬다. 전투병력이 부족하여 행정병들도 총을 쐈고 경상자들까지 동원하여 인원을 채웠다. 열두 명 정도의 중공군이 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김중령이 직접 권총을 꺼내 지휘벙커 근처까지 다가온 중공군 두명을 사살했다. 나머지도 아군의 집중사격에 전멸했다. 7월 17일, 아침이 되자 널부러진 중공군 시체들을 모은 후 쌓아서 방벽으로 사용했다. 무전으로 날씨가 개면 곧바로 공중지원이 올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나와서 보니 벙커도 많이 부서져있고 밖에 세워둔 하프트랙도 중공군의 포탄을 맞아 박살이 났다. 레이더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잘 돌아간다.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서로 수염이 길게 자라있고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제 물은 얼마 없고 씨레이션은 하루에 수통 반컵 정도를 분배해서 먹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후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항공기들이 지나갔다. 항공기에 그려진 하얀색 별(미 공군)을 보자 소리쳤다. “우리 거다!” 한국군 병사들도 벙커에서 나와 기쁜 마음에 소리치고 아군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부사관이 무전기를 들고 나와 공군 조종사와 교신했고 우리 아군 벙커의 위치를 식별시켜 주고 적에게 공격을 유도했다. 공군이 투하한 네이팜탄이 중공군 진지에 터지면서 사람 머리칼 타는 냄새가 산들바람을 통해 맡아졌다. 계속해서 폭격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조종사들이 목표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연기가 심해져서 레이더병들이 때릴 만한 곳을 찍어주었다. 항공기들은 그날 내내 하늘에서 맴돌며 우리를 구원했다.  정오에 한국군이 중공군을 몰아내고 능선 북쪽을 점령했고 철의 능선은 아군의 손에 넘어왔다. 수 많은 중공군 시체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어서 시체를 밟고 다닐 지경이었다. 시체를 정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눅눅하고 더운 날씨라 중공군 시체에 파리떼가 꼬였다. 우린 중공군 시체를 한 군데 모아서 쌓아놓고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인간의 지방과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19일은 조용했고 간간히 저격만 날아왔다. 무전기를 통해 다음 날 아군 증원병력이 도착한다고 통보받았다. 20일 새벽 5시 30분, 안개 속에서 미군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졌고 한국군 6사단에 특별 배속된 미군중대였다. 이제 생존한 병력과 장비를 꾸려 이동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저녁이 되자 트럭과 지프가 도착했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거의 3개월만에 처음으로 찬물로 첫 샤워를 했다. 찬물도 사치스러웠다. 면도도 하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신선한 우유와 계란도 있었고 목구멍에 밀어넣으며 허겁지겁 먹으며 그 장면을 보고 선임하사도 웃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났다.  27일 새벽, 라디오를 통해 휴전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김포 비행장 옆의 주둔지에서 대기하면서 귀국할 항공편을 기다렸고, 8월 첫 주에 미국 오클라호마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전쟁은 끝났다. (1953년 7월 14일 금성전투 전개도) 금성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000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반면 중공군은 27,000명가량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공군의 화천지역 진출이 저지되었다. (카펜터 소위는 이후 주 서독미군으로 배치받아 그 곳에서 근무했고 1965년에 군에서 전역하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의 부대원 28명중 절반이 금성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한국군 대대장이었던 '김중령'에 대해서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살아남은 전우들을 찾고 싶어했으나, 부대에 있던 신형레이더의 기밀유지 때문에 동료들의 소식을 알 방도가 없었다. 그는 평생 전우들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출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하고... 중국 니들 진짜........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 요즈음 코로나에 면역력이 그 어느때 보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면역력이 높으면 다른 여러 가지 병을 물리칠 수 있게 되는데요. 그래서 평소에 면역력 높이는 건강관리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면역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면역력 높이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요. 오늘 마냥좋은글에서는 면역력 높이는 최고의 방법을 자세하게 정리해서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1. 일단 푹 주무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잠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잠은 남는 시간이 아니라 심신을 정비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필수 시간이다 사람은 하루 7~8시간 자는 것이 최적이며 전염병이 돌 때는 조금이라도 더 자서 기력을 보충해야 한다 밤에 못 잤다면 낮에 20분 낮잠을 자는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꿀잠을 위해서는 자기 전에 목욕, 독서를 하든지 조명을 일정하게 하든 자신만의 준비 기간을 갖는 것이 좋다 2. 스트레스 관리 하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스트레스는 매일 관리 하셔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안 풀면 계속 쌓이게 되어, 조금만 불안이나 걱정에도 폭발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는 면역력의 천적 취미생활을 하거나 야외로 나가서 사람이 드문 곳에서 삶의 균형을 맞춰라 사람이 드문 곳에서 자연을 음미하며 깊이 숨 쉬는 것도 좋다 3. 자주 움직이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자주 움직여서 활동량을 늘려보세요 적절하게 쉬라는 말이 활동량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많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745운동 방법 아시나요? 1주일에 5일 이상 30~45분 운동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로 홈트가 요즈음 유행입니다. 사람이 적은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걷거나 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일에 끌려 다니거나 스마트폰 TV애 매몰되지 마세요. 일정 기간 정신적... 역설적으로 요즘 ... 등에서는 매시간... 알려주는 ... 본인 스스로가 적극... 찾아서 ... 우리는 너무 과열되면.... 5.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현대인은 영양 불균형 상태라고 합니다. 육류, 생선과 어패류, 두부와 콩요리 닭고기, 채소, 과일 등을 골고루 먹는것이 좋습니다 패스트푸드는 무조건 끊으세요 염증반응을 일으켜 면역계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제 때 식사를 챙겨드시지 못하시면, 친환경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드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직접 유기농으로 농장을 경영하는 친환경제품이 건강에도 좋습니다. 현명하게 고르시기 바랍니다. 6. 오늘부터 담배, 술 다 끊으세요. 면역력 단숨에 올리는 꿀팁 6가지 어차피 끊을 것이라면, 오늘 당장 끊는 것이 좋습니다. 흡연은 면역계를 직접 손상시키고 면역력을 돕는 영양소를 파괴한다고 합니다. 담배 연기에 섞인 침방울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전파되기도 한다 과음은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뇌를 억제시켜 방역수칙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술집은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가능한 피하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소중한 자료인 이 글을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시면 어떨까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마냥좋은글과 교류하며 함께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신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마냥! 좋은글..... 엔돌핀 충전소^^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잉꼬 부부의 성 100배 즐기는 방법 8가지 https://bit.ly/3hPt5LR 복부 지방과 치열하게 싸워주는 9가지 음식 https://bit.ly/3hPt5LR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건강에 나쁜생선 9가지 https://bit.ly/3hPt5LR 부자 되는 꿈 해몽 10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성욕을 높여주는 11가지 기운찬 정력 음식들 https://bit.ly/3hPt5LR 100세까지 왕성하게 성관계 지속하는 방법 https://bit.ly/3hPt5LR 다시 데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음식 7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노인의 성관계 최적의 횟수, 일주일에 몇 번?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건강정보 #건강상식 #건강관리 #건강음식 #건강식품 #건강유의 #건강식사 #건강비법 #백세건강비결 #100세건강비결 #백세건강비밀 #100세건강비밀 #장수하는방법 #장수비결 #장수비밀 #건강하게장수하는방법 #건강하게사는법 #잘사는법 #행복해지는법
ep)31.📜화해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클로에...?" 옆에서 드레이코가 눈물 자국을 보인 채로 날 바라봤다. "나..왜 이렇게 된거야?" 그때, 폼푸리 부인이 오며 말했다. "클로에, 너 쓰러졌었어. 말포이가 너를 업고 늦은 시간에 왔었단다. 지금은 좀 어떠니?" 머리쪽에 커다란 밴드가 붙어있었다. 나는 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 근데 여기 밴드는.." "너 업혀왔을때 머리에 크게 상처가 나 있었단다. 피가 많이 흘렀었어. 다행히 지금은 피가 멈추고 회복되는 중이란다. 아, 그리고 이제 그만 가봐도 좋단다. 스트레스랑 과로가 조금 심해서 쓰러진거니까 건강 관리 잘 하고, 알겠지 클로에?" "네, 고맙습니다. 부인." 나는 양호실을 나와 슬리데린이 아닌 후플푸프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비록 언니 오빠들은 모두 졸업했지만, 그래도 지금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들과 공간은 후플푸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드레이코는 내 뒤를 계속 따라왔다. 나는 걷다말고 뒤 돌아보며 말했다. "왜 자꾸 따라오는건데? 나 지금 기숙사 가는거 아닌거 너도 알잖아." "맞아, 알아. 그리고 네가 후플푸프로 가고 있다는것도 알아." "근데 왜 자꾸 따라오는건데?" 드레이코는 내 옆으로 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 또 쓰러지면 업고가야 할거 아냐. 안 그래?" "장난 치지 마. 나 장난 할 기분 아니야." 드레이코는 내 말을 듣고는 내 손 잡은 채로 퀴디치 경기장으로 갔다. 날이 조금 흐려서인지 퀴디치 경기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드레이코가 입을 열었다. "어제 우리 미룬 얘기 있었잖아. 그거 말해줘야 할것 같아서." "... 들을게, 말해." "너도 어제 봤다시피, 난 죽음을 먹는 자 표식이 있어. 너를 속이려고 한 건 아니야, 난 정말로 네가 위험해질까봐 그랬어. 너는 해리랑 가까운 사이라 위험한데 내가 죽음을 먹는 자라는걸 알면 더 위험해 질 수도 있거든." "그래서.. 날 지키려고 그랬던거야?" 드레이코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드레이코.. 네가 원하는 일이야?" "뭘 말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 그거 하는거, 네가 원해서 그러는 거냐고." "그건..." 드레이코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드레이코를 보며 말했다. "드레이코, 네가 그 일이 좋아서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굳이 뭐라 할 순 없겠지만 네가 원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그 곳에 있으면서 날 지킬 수 있을까?" "..." 나는 양손으로 드레이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굳이 날 지키려고 나에게 숨기려고 하지마. 내 몸 하나는 내가 지켜." 드레이코는 나를 말 없이 안았다. 나도 말 없이 그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우리는 서로를 떼어내며 동시에 말했다. "우리 들어갈까?" "드레이코, 우리 통했네?" "역시 내가 이렇게 내 여자친구랑 잘 맞다니까." "빨리 들어가자." 우리는 그렇게 나름대로 화해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상남자 그 자체의 삶을 살았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
오늘의 주인공은 잘생긴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야  다들 막연하게 X선 발견한 사람 정도로 알고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 상남자 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어린 시절 뢴트겐은 위트레흐트 기술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어. 문제아였기 떄문에 퇴학을 당한것이 아니라 친구가 선생님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낙서를 보고 웃었는데 그 낙서를 누가 그렸는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서 였음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한번 퇴학을 당하면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는 다른 학교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뢴트겐은 끝까지 친구를 밀고하지 않았어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대충 동문으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프리츠 하버, 등등이 있다.> 그래도 뢴트겐은 아주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없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마치게 돼 그리고 졸업하고 6년만에 호켄하임대학 물리학 교수, 10년만에 기센대학 물리연구소 소장직을 얻었어 사소한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던 초 천재 엘리트였던거지  <"크룩스관" 이라고 불리는 고전압의 진공관. 극초기의 입자가속기라고 생각하면 됨>  뢴트겐은 1895년 고전압의 진공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을 금속판에 쏘는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빛이 두꺼운 마분지를 뚫고 나오는것도 모자라 책상 위에 있는 감광지까지 감광시켜 버리는거야  전혀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한것이지 하지만 이것도 마냥 운이 좋았다 라고 할 수는 없는게 실험에 사용했던 음극선관을 발명한 "윌리엄 크룩스"도,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발광현상을 목격했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버렸지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4년뒤에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X선 발견이라는 대업적을 놓친걸 아주 아쉬워 했다고 해 <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고? 나는 내가 직접 본 것도 못 믿어 > 하지만 뢴트겐의 통찰력은 이 기현상을 그냥 놓치지 않았어 검은 마분지마저 뚫어버리는 미지의 광선이 두꺼운 책도 뚫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미지의 광선은 책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까지 투과해서 뼈 모양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버린거야  나같으면 곧바로 뛰어나가서 온갖 설레발을 다 쳤겠지만 뢴트겐은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조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연구실에서 박혀서 뭔가 잘못된것이 아닌가, 내가 미쳐서 헛 걸 보는게 아닌가 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을 했지 < 나는 내 죽음을 보았다! -안나 베르타 루드비히(뢴트겐 와이프) > 그리고 일주일 후 자기 부인을 조용히 연구실로 불러서 그 의문의 빛에 아내의 손을 찍어봤어  그랬더니 아내의 손 뼈와 반지가 선명하게 감광지에 비춰졌지 그제서야 뢴트겐은 자기가 틀린것이 아니였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해  아내는 저게 죽음을 예고하는 해괴한 장치라고 다신 얼씬도 안했다고 했지만 말이야  <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 설레발 장인 > 반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뢴트겐이 X선이라는 대발견을 하자 빨리 우리도 뭔가 발견해야된다 라는 조급함이 생기고 X선 발견 2년 뒤,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는 X선과는 다른 미지의 광선 N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그리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이게 프랑스 과학자들에게만 발견이 되는거야  < "로버트 W 우드" 최초의 가짜 UFO 사진도 이 양반이 찍었음 > < 오컬트, 유사과학 후두려 패면서 낭만을 없애는 아주 못된 사람임 > 그래서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우드"는 특히 오컬트나 미신에 회의적이었는데 이런 회의론자의 시선에 N선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  원래 장난기가 많아서 남들 골탕먹이는걸 좋아하던 우드는 블랑들로가 납종이가 N선을 차폐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납종이를 끼웠다 뺐다 하면서 N선이 검출되는지 블랑들로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블랑들로는 납종이를 끼우니까 N선이 안보인다고 했고 빼니까 N선이 보인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건 우드의 함정이였음  애초에 프리즘을 빼놨던 거임  납종이를 끼우던 말던 N선이 보이면 안되는것이였지  결국 블랑들로는 은퇴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해   < 사랑니로 고생한 개붕이들은 모두 뢴트겐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  아무튼 뢴트겐은 1901년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하고 X선 발견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 줬어 하지만 뢴트겐은 이런 대발견을 하고도 매우 겸손했는데 X선의 X도 엄청난 뜻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자기도 뭔지 몰라서 X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 오히려 자신의 이름으로 뢴트겐 선이라고 부르는걸 본인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고 하네 < 최초의 노벨 수상자 라기엔 너무나도 검소했던 그의 연구실 >  게다가 뢴트겐은 대중들이 자유롭게 X선을 이용한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등록도 포기했어  조너스 쇼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를 포기하면서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라는 말로 유명한데 쇼크 박사가 태어나기도 전에 뢴트겐은 "이미 존재하는것을 발견했을뿐 X선은 인류의 것이다." 라고 말했었지 거기에 노벨상의 막대한 상금도 전부 다 대학에 기부했고 말년은 위대한 과학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파산 직전의 생활을 하다 77세의 나이로 악성 종양으로 사망했다고 해 1994년에는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111번 원소를 "뢴트게늄"이라 명명했고 오늘날에도 X선 사진은 "뢴트겐 사진" 이라고 불리고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진정한 상남자의 삶 그 자체를 살았던 뢴트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예언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는 연구를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가 확인되면 가능한 빨리 공개할 뿐이다. 우리는 보고자 한다면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시작을 했을 뿐이다.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 빌헬름 뢴트겐 (출처) 내 뺨을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것이 바로 눈물이란 말인가 아아 뢴트겐 오지게 멋있는 사람이여...!
소설) 시간이 멈춘 마을 -6-
(1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32297 (2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36809 (3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40168 (4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45784 (5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59065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죠...? 면목없습니다... 흑... 제가 도저히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서...흑흑... 집안일, 가족일 등등 좀 바빴긴 했지만... 확실히 글을 쓰는 건 너무너무 어렵네요...ㅠㅠ 시간나는 대로 열심히 쓰겠습니당...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10.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마저 흐르는 이 마을의 분위기 때문인지 바퀴가 흙바닥을 긁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가는 동안 보이는 몇몇 집은 모두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개 몇마리가 보였다. 어둑해진 시골길을 뚫고, 아버지의 집 마당에 차를 댔다. "후우..." 공기가 무거운 건지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온 몸을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 무거웠고 좋지만은 않은 이 느낌은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내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듯 했다. 최대한 덤덤한 마음을 먹기 위해 심호흡을 한 후, 손에 어머니의 시계를 찼다. 다섯시 사십분.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시골이라는 곳은 해가 빨리 지는구나. -철컥 나는 손목에 감긴 금속의 차가움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평소처럼 내릴 수도 있었지만, 왠지 내가 내는 소리들이 이 마을을 휘젓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쿵 온 마을을 휘감고 있는 적막 때문인지, suv 차량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란 후, 아버지가 살았던 집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스윽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열리는 현관문을 등 뒤에 놓은 채, 나는 아버지의 작은 방과 마주했다. 티비도, 달력도, 라디오조차 없는 이 방에서, 아버지는 무얼 하며 사셨을까. 방 구석엔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쓰던 책상과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서툴게 깎아 만든 책상이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아버지였으니 이것도 스스로 만들어 쓰셨을 것이다. 책상에는 소설, 의학, 그리고 낚시 책 몇 권이 아버지의 손에 때가 탄 채 놓여 있었다. 저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서 죽음을 앞둔 채 내게 편지를 쓰셨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 울컥했지만, 우선 눈 앞에 있는 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 곳에 올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기성 삼촌에게 시계를 맡기셨을 거고, 분명히 이 곳에 뭔가를 남겨 놓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았다. 아버지의 흔적을 온 몸으로 맞으며 집 안을 헤집었고,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여생을 생각하며 뭔가 아버지의 죽음과 이 마을에 대해 남겨진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잡듯 뒤졌다. 그리고, "왜...?" 나는. "왜 아무것도 없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웠던 아버지의 흔적들만 남아있을 뿐, 그 외에는 여느 평범한 시골집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모르겠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바깥은 고요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옅은 달빛이 작은 방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과 천장에 달린 작은 백열등이 어우러져 조용한 빛을 몸으로 맞으며 방 한가운데 나는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버지가 매일 밤 보던 천장을 보며, 아버지가 매일 등을 맞대던 바닥에 내 등을 기댔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 마을로 들어왔을까.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 가치가 있었을까. 나에게 이 마을로 함께 가자고 하셨었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 정도로 이 마을은 아버지에게 중요한 곳이었을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라고 말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 때. "....어라?" 천장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천장의 낡은 나무 무늬에 교묘하게 가려진 금. 달빛과 전등 빛 중 하나만 없어도 보이지 않을 금이었다. "저건..." 상당히 인위적인 금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덮어놓은 듯한 금이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흔적이었다. "잠깐만...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아주 오래 전이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아버지가 매 주 주말 낚시대를 닦으시던 그 쯤,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쯤이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친구들과 비밀기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밤마다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기지를 만들어 놀다 잠들곤 했다. "아들. 비밀기지가 그렇게 좋아?" "응! 아무도 모르는 비밀기지를 만들 거에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께서 가끔 들어와 함께 있으셨고, 깜깜한 이불 속에서 랜턴을 들고 놀던 나를 웃으며 쳐다보셨다. "나중에 멋진 비밀기지가 생기면, 아빠도 끼워줄 거지?" "네! 아빠도 나랑 비밀요원 해요!" 그 후 어느 날부터 아버지께서는 인부들과 몇 번의 주말을 보내셨다. 주말 내내 아버지는 인부들과 뭔가를 만들고, 붙이고, 뚫고, 다듬으셨고, 작지도 크지도 않던 주택에서 우리 세 식구는 한동안 안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아들! 이리 와 봐!" 공사가 다 끝난 후, 아버지는 나를 작은 책상 앞으로 불렀다. 나무로 만든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었다. "이건 아빠가 주는 선물!" "우와! 아빠가 만든 거에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럼! 아들 주려고 아빠가 직접 만들었지!" "나중에 비밀기지에 놓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려야지! 아빠! 고마워요!" "안 돼. 이 책상은 비밀기지에 놓을 수 없어." 아버지는 웃으며 계속 말했다. "어..? 왜요 아빠?" 아버지는 책상 밑부분을 만졌다. 잠시 책상을 만지던 아버지의 손이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고, 작은 책상에서 더 작은 서랍이 튀어나왔다. "이 책상에는 비밀이 숨어있으니까." 서랍 안에는 작은 열쇠가 들어있었다. 얇고 길쭉한 열쇠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이 열쇠가, 아빠가 주는 진짜 선물이지."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벽으로 향했다. 벽에는 못보던 작은 사다리가 달려 있었고, 아버지는 까치발을 한 채 손을 뻗어 천장 무늬 사이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철컥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자, 열쇠는 작은 손잡이가 되었고, 아버지는 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우..우와!" "짠! 아빠가 만든 비밀기지!" 아버지가 인부들과 작업했던 그 공사는 집에 다락방을 증축하는 공사였고, 그렇게 아버지와 나, 그리고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비밀기지가 생겼다. 아직 어려서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그 공간. 아버지는 항상 나와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가 비밀기지를 꾸몄고, 내가 조금 더 커서 혼자서 그 곳을 올라갈 수 있게 됐을 때는 아늑한 다락방이자 아버지와 함께 가던 낚시용품들의 보관함이 되었다. "그랬었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의 책상을 만져봤다. 이 곳 저 곳을 더듬자. -달칵 작은 서랍이 튀어나왔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의 품에서 뛸 듯이 기뻐했던 그 열쇠가, 작은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철컥 천장은 작은 금속음을 내며 열렸고, 작은 공간이 천장을 뚫고 나타났다. "언제 또 이런 걸 만드셨대... 재주도 좋으셔..." 여전히 아버지는 과거를 추억하고 있었다. 내가 욕을 뱉고 연을 끊었어도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추억들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흑... 흐읍..." 이 마을이 주는 끝없는 적막 속에서, 나는 몰래 숨죽인 채 눈물을 닦아냈다. 빠르게 슬픔을 걷어냈다. 아직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내가 많이 큰 탓인지, 이 방이 작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책상을 딛고 올라가 까치발을 하고 나니 어렵지 않게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어릴 적 봤던 다락방보다는 훨씬 작은 공간이었다. 겨우 짐 몇개 들어갈 정도의 공간. 아무래도 이 집 구조상 큰 방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모를 공간이 필요했거나..." 그렇게 작은 공간을 둘러보던 그 때. "...어?" 작은 공간에 뭔가가 있었다. "상자...?" 먼지 속에서 상자를 꺼내 방바닥에 앉았다. 상자는 얇은 나무판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어느정도 무게가 있었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마을 안, 그 안에 있는 작은 집 작은 방에서 묵직한 상자 뚜껑을 열었다. "허억!"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상자 안에는 옷이 들어있었다. 빨갛게 피칠갑이 된 옷 한 벌이.
봄이 오는 소리
♣ 봄이 오는 소리 ♣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게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유리창을 맑게 닭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 이해인 시인 - 소중한 자료인 이 글을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시면 어떨까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마냥좋은글과 교류하며 함께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신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마냥! 좋은글..... 꽁짜로 책 요약해주는 곳 무료 책 핵심 내용들 정리! 하루 10분, 한 권 책 읽기 세상의 모든 북 다이제스트 https://bit.ly/3ieIQMz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잉꼬 부부의 성 100배 즐기는 방법 8가지 https://bit.ly/3hPt5LR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건강에 나쁜생선 9가지 https://bit.ly/3hPt5LR 복부 지방과 치열하게 싸워주는 9가지 음식 https://bit.ly/3hPt5LR 부자 되는 꿈 해몽 10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성욕을 높여주는 11가지 기운찬 정력 음식들 https://bit.ly/3hPt5LR 100세까지 왕성하게 성관계 지속하는 방법 https://bit.ly/3hPt5LR 다시 데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음식 7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노인의 성관계 최적의 횟수, 일주일에 몇 번?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좋은글 #좋은글귀 #좋은글모음 #영감을주는이야기 #명언모음 #인생명언 #아름다운시 #좋은시 #맞팔해요 #짧고좋은글 #동기부여 #행복한글 #행복해지는법 #가슴에와닿는글귀 #마음에와닿은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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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인들과 평론가를 만났지만, 난 또 취해버렸지. 심지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이런. 핸드폰을 몇 번째 잃어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찾을 수 없겠지. 구글을 통해 위치 추적, 동선 파악을 모두 해보았더니 어제 우리가 모인 그 일대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택시에 두고 내린 건 아니다. 누군가가 습득을 하기는 한 건지, 아니면 길바닥 어딘가에서 혼자 고이 누워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전화를 걸면 신호는 가는데 받지는 않는다. 이런, 이런. 어제 만난 평론가는 내 시집의 해설의 써준 이다. 그는 나보다 어리지만, 그리고 상당히 귀여운 면모가 있지만, 아주 예리하고 단단한 평론을 쓴다. 그가 내 시집에 글을 보태주기로 정해졌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마음도 숨김없이 전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와인 한 병을 샀고, 사는 김에 함께 마실 와인도 두 병 더 샀다. 어제 우리를 초대한 시인은 집에 이미 맥주를 준비해놨기 때문에, 술이 섞였고, 그 덕에 취해버렸지. 시적 고민이나 문단의 세태 등 깊은 얘기들이 오갔고, 나는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이들의 문학적 고집이 좋았다. 나는 시로부터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나는 시에 취하지는 못하고, 술에만 잔뜩 취해버렸다. 아 참, 고양이 ‘밤’이도 함께였다.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듯 나는 밤이에게 츄르를 먹였다. 까만 고양이 밤이는 털이 고왔고, 그 윤기가 흡사 말 같기도 했다. 밤이는 귀엽고, 나는 취해버렸지. 아,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해. 남의 핸드폰을 습득했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대체 왜 이러한가. 내가 잃어버리고 남 탓하기. 내가 지금 두려운 것은, 내 핸드폰 안에 지금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뭔가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리고 난 취해버렸지. 역시 술이 웬수다. 아니다. 마신 놈이 웬수지 술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근데 내일도 술 약속. 이번 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시 쓰는 사람들이다. 내일 만나는 사람들은 시인들은 아니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이다. 그중 한 사람은 사실 아직 등단을 안 했을 뿐, 어지간한 시인들보다 시를 잘 쓴다. 그 친구의 시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내 취향을 저격한다. 그에게도 말했지만, 그는 아마 잡문을 써도 시적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태생적으로 시가 내재된 사람들. 또 한 사람은 시에 대한 열정이 상당한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언젠가 교수님이 보여준 어떤 좋은 시를 읽고 그 앞에서 펑펑 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도 다른 의미로 그 안에 이미 시인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친구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좋은 시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취했나? 그렇지, 취해버렸지. 나는 취해버렸다. 내일을 마지막으로, 술 약속은 당분간 없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