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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순결 팝니다"...돈 때문에 '처녀성' 판매하는 여대생

러시아의 한 여대생이 유학비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순결을 경매에 내놨습니다.
영국 일간 메트로에 따르면, 러시아에 사는 20세 여대생 아리아나는 최근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그녀는 "약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고 싶다"며 "단기간에 돈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다 순결을 팔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아리아나는 "순결이 경매에 낙찰되고 나면 부모님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온라인 매춘 사이트에 올라온 그녀의 처녀성 경매 시작가는 13만500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억 8600만원입니다.
1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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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뭐라고 할 건데?? "가난하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될까요?"??? 본인 순결하다고 착각하나 보네.. 순결을 잘못 알고 있거나. 역겨워.
발상이 순결하지 못해!!!!!!!! 지금까지 어케 얼로 한거여 그럼!??!
남자는 여자의 순결한 몸을 원하기 보다는 그냥 내여자는 순결했으면 하는걸 원하죠.
내가 돈이 많다면 1억 6000만원에 낙찰하고 "순결은 됬으니 대학 질다녀서 부모님에게 효도해라" 하고싶다
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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