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blu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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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형체

시선이 바꿔야 나비로 보여요 처음부터 벌레는 없었답니다 지금도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꺼에요 경험 했던 과거에서.기억에서. 배움에서 벌레로 보이고 벌레로 느끼며 벌레로 판단 한 것 뿐이예요 내면을 들여다 보기 전 내면을 관찰 하기 전 상처 입은 과거의 자아 먼저 자아의 시선에 따라... 악한것도 더러운것도 무서운 것도 없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나도 깨끗 하게 태어 났거든요 이세상에 나쁜 내면은 없어요 못난 현실이 있을 뿐이지 자아의 색안경 색안경을 끼고 들여다 보면 다른 색깔 로 보여요 자아에게 색안경을 끼워준 고정관념이 미워지는 하루 입니다 벌레 는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 벌레가 나비 일수도 있는데.... 악마가 하느님 일수도 있고 귀신이 부처님 일수도 있는데... 어른이 아이 일수도 있고 아이가 어른 일수도 있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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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집 개
가족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슬픔에 빠진 사람은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어 초상집의 개들은 잘 얻어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 그래서 초췌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다니거나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초상집의 개’ 같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 누구보다 뛰어난 이상과 지혜를 갖춘 공자는 군자로서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 싶었지만 전국시대로 혼잡한 세상은 아직 공자의 위대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 결국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이리저리 배회하던 공자는 정나라라는 곳에서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중 공자를 보았다는 한 노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 “말을 들으니 동쪽 성문에 계시는 분이 자네들이 찾는 스승인 것 같네. 생긴 것은 성인과 같이 풍채 좋고 잘생겼는데 무척 피곤해 보이는 몸에 너무도 마른 것이 꼭 초상집 개처럼 초라해 보이더군.” ​ 노인의 말을 듣고 동쪽 성문에서 공자를 찾은 제자들은 노인의 말을 공자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박한 평가를 들은 공자는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 “성인같이 생겼다는 말은 과찬이고 맞지 않지만, 초상집 개와 같다는 말은 지금 내 모습과 맞는 것 같구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일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 하지만 그 ‘때’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면 일을 일으킨다. – 관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몸이 허약해져 병에 걸리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우리 곁에서 함께 지켜봐 줬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우리가 늙어서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구나.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의 옛 시절의 모습을 너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늙어서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다오.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잠시 빌려다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너무 화내지 말아 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될 테니 말이다. 비록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녀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그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힘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 차례입니다. 그분들이 항상 그랬듯,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도 마땅히 모든 것을 감싸줘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부모가 사랑해 주면 기뻐하여 잊지 말고, 부모가 미워하시더라도 송구스러이 생각하여 원망하지 않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부드러이 말씀드리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 증자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최종 S의 비밀 - 살인의 추억] 박두만에게는, 응시할 자격이 있었을까
- 드러난 진실들을 쥐고서 최종 숏으로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영화는 ‘척’의 예술이다. 인물들은 카메라의 시선에 상시 붙들려 있지만, 짐짓 이를 모른 ‘척’ 촬영 현장만이 세계의 오롯한 전부인 양 꾸며댄다. 어쩌면 누가 더 시치미를 잘 떼느냐는 시합. 그렇게 ‘척’이 쌓이면,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단일 체계, 즉 처음과 끝을 간직한 유사-현실 덩어리가 된다. 이 독립성과 완결성이야말로 건드려선 안 될, 이야기의 본질이 아닐까. 이야기는 외부에서 널리 보이고 읽히되 절대 간섭받거나 변경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훔쳐보고, (현실과) 겹쳐보고, (원본의 수정 없이) 이리저리 만지작거릴 ‘거리’가 이야기인 셈. 이때 관객의 자리는 프레임 바깥에 깔려있으며, 러닝 타임 내내 안으로 건너올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문이 열릴 때가 있다.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봄으로써 인물과 관객을 대면케 하는 것이다. 대개 훔쳐보기라는 근본 규칙을 깨야 할 만큼 간곡한, 어떤 신호를 프레임 바깥으로 내보내고 싶은 경우다. 그중에서도 <살인의 추억>(2003)의 최종 숏은 효력이 너무나도 강렬해 신호 보내기의 롤모델로 불리는 게 마땅할 정도. 송강호(박두만 역)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파르르 떨며, 한쪽 눈을 살짝 찌그린 채, 카메라(관객)를 쏘아본다. ‘정의사회 구현’을 간판으로 내건 나라, 그 ‘짝퉁’으로서의 평화적 구조를 무대 삼은 범인. 거기서 비롯된 울분을 박두만의 마지막 얼굴에 응축해놓은 봉준호 감독은, “범인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리라 생각해서” 이런 엔딩을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봉준호라면, 이 펄럭거리는 숏이 스크린을 찢고 나와 진범을 휘감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 열린 문은 닫을 수 없다. 관객을 바라봄으로써 영화와 실재 사이에 심리적이되 실질적인 다리 하나를 놓은 셈. 애초에 특정 사건을 직접 끌어안은 영화의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다시 현실로. 그런데 이 현실에 천지개벽할 변화가 생겼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고, 애먼 사람 하나가 20년간 잡혀있었다. ㅇ 10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사건’, 14차에 걸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공식 명명(2019년 12월) ㅇ 윤 모 씨,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죄 없이’ 복역 후 2009년 가석방(현재 재심 진행 중) 이 정도라면 영화 역시 한 번은 ‘새로 고침’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영화로, 인식의 다리를 다시 건너보자. 물론 이 시점에서 봐도 숏들의 배치와 호흡은 경이롭다만, 떼 내기 어려운 의문점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최종 숏이 클로즈업한 얼굴, 그 신호 보내기라는 막중한 임무를, 과연 박두만이 짊어져도 되느냐는 것. 요컨대 ‘자격’에 관한 물음 말이다. - 윤 씨, △불법 체포·감금 △가혹행위 △고문 △훈련된 자백 녹음 등 강압 수사에 못 이겨 (8차 사건) 허위 자백 - 윤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데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 확인 - 경찰, 이밖에 양손이 줄넘기로 묶인 초등학생(8)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숨겨 ‘단순실종 처리’…형사계장과 형사 1명에 대해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 혐의 적용 - 화성 8차 사건 말고도 억울한 사연 '‘수두룩’(연합뉴스. 2019년 10월) 이토록 잔혹한 폭압과 위법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을 중심으로 충실히 재현됐다.(5월 18일 재심 첫 공판에서 영화의 이 부분 일부가 상영됐다) 그는 손수 발자국을 찍어 증거를 생산했고, 이 타이밍이다 싶으면 고갯짓으로 조용구에게 (용의자를) 군홧발로 짓밟으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무능과 조작으로 ‘잘려나간’ 상사와, 폭력의 증거로서 결국 다리가 ‘잘려나간’ 용구와 달리 영화 끝까지 살아남는다. 자연스럽게. 무능과 폭력에 한 다리씩 걸친, 한통속 혹은 중심임에도. 이는 영화가 박두만 안에 시대의 후진성과, 진범을 잡고자 하는 절절한 욕구를 동시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넉살부터 처절함까지 양 극단을 횡단할 줄 아는 송강호의 표정이 그걸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살이 불어터지도록’ 종일 목욕탕에 들어앉아 남들의 ‘그곳’이나 보고 다닐 때, 강변에서 링거를 맞으며 지치고 고단한 내·외면을 풍경으로 드러낼 때, 유력 용의자(또는 영화를 보고 있을 범인)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며 냉소할 때, 우리는, 미흡했지만, 악의는 없는, 투박한 진심을 본다. 이건 아마도 당시 형사들의 갖가지 결을 두루 섭렵해야 하는, 극의 중심에 놓이도록 설계된 인물로서의 필연적 ‘복합성’일지도 모르겠다. 용구도 서태윤도 맡을 수 없는 자리. 그렇게 박두만은 후졌지만 호감은 가는, 이런저런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허용되는 캐릭터가 됐다. 물론 이 영화적 장치는 충분히 수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숏에 이르러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깊이의 얼굴-응시마저 창조케 했다. 이후로 한참이 흐른 2019년, 31년간 은폐된 시신의 존재가 떠올랐다. 8살 아이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껌뻑거림들. 진정하고 초점을 다시 잡아보자. 이제 후진 시스템과 후진 사람들은 한결 더 도드라져 보인다. 재차 ‘투박한 진심’까지 가려면 전처럼 ‘악의는 없는’ 따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식어가 필요한데, 현실이 그걸 허락할 것 같지는 않다. 왜? 눈을 닦고 보니 그들의 목표는 진범 찾기가 아닌 자기 자리 보존이었으니까. 악의가 없기는커녕 흘러넘칠 지경이다. 이렇게나 맹렬한 보신(保身)주의라니, 이러면 한나 아렌트의 저 유명한 ‘진부한 악’ 이상 가는 지위를 부여해드려야 마땅하다. 상상력이 모자란, 그저 시대의 부속품이 아닌, 이를테면 시스템의 설계자 같은. 물론 박두만은 특정 형사 한 명이라기보다는 형사들 면면의 집합체에 가깝다. 하지만 정육각형에 가까웠던 특성 중, 적어도 ‘선의(善意)’ 항목은 새로 드러난 사실들에 찔려 움푹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최종 숏의 강렬함이 그 선의로 마감된 박두만의 캐릭터성에 크게 빚졌음을 상기해보자. 이제 나는 그에게 분노자로서의 지위가, 외화면을 쏘아볼 송신자의 자격이 더는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어울리는 곳은 프레임 바깥, 응시를 받아야 할 자리, 즉 범인의 근처 어딘가일 뿐이다. <살인의 추억>은 여전한 걸작이다. 단, 특정 사건과 동기화됐다는 영화적 특성상 현실과의 호흡을 위해 세포를 지속해서 열어두고 있을 뿐. 시대의 맥을 그토록 잘 짚었는데, 지금 보니 그 땅 위에 진범의 것 외에도 악랄함이 층층으로 쌓인 형국. 상상의 달인 봉준호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앞으로 악행의 구조는 점점 더 디테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단, 딱 보면 감이 온다던 그들은, 공소시효가 소멸돼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춘재도 마찬가지. 밥도 잘 먹고 다니겠지.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들. 하수구 안에는, 야산에는, 구겨져버린 여성들이 아직도 있다. 8살 아이를 포함한.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다.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