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u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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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시험지로 덕질하시는 체육쌤 ㅋㅋㅋㅋㅋ

애니가 이렇게 유익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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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재밋죠
나저시험푼사람 저문제낸쌤 멀쩡하게생김
아종낰ㄱㅋㄱ체육샘이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너뭌ㄱㅋ너무웃곀ㅋㄱ
이제 3기도 나오고 있지
혹시 체육선생님?
성덕이시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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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 2000명 검거한 경찰이...
마약 판매조직 타진 위해 잠복수사 하다가 들킬 위험에 의심을 피하려고 딱 한 번 필로폰 투약하고 바로 중독됨 ㅠㅠ 그 후 자살시도 2번에 징역만 5년 6개월을 사셨다고. 아래는 이인범씨가 쓰신 글임 - 전경수단장님! 마약 때문에 내 인생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저는 1989년 부산시경에 무도경찰로 입문하였습니다.  초임 형사로  제일 처음 다룬 사건이 바로 마약범을 검거 하는 것이 주된임무였습니다.  이것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것입니다. 그당시 보사부나 검찰 마약부에서 마약사범 검거 주력을 하였으나 경찰은 그다지 ...하지만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 되면서 민생침해 사범 검거로 인해 나는 내 전문 분야인 마약 수사관으로 더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1993년도 대구 일대 마약판매책 ㅇㅇㅇ를 검거하면서 하루만에 16명을 잡는 바람에 특진의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부산시경 산하에서 마약범 잡는 귀신 " 이인범"으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1997년 검찰 마약부에 1년간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것이 화근이 되었습다. 그해 5월 대구일대 마약판매책 ㅇㅇㅇ 과  마약 100그램 거래가 있다는 검사의 지휘에 의해  나는 위장 매수자로 (매수자 대신)  대구 두류공원에 몇명의 수사관들과 그를 검거키 위해 갔었습니다. 그당시 그는 마약사건으로 수배5건이 되어 있었고 5년동안 피해 다닐정도로 눈치와 조심성이 있는 치밀한 자입니다.  약속장소에서 약 1시간정도 기다렸는데 그는 내 주변을 돌면서 작업사실 관계를 인지 확인할수 있었지만  그전에 나는 어떤 의심이 갈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이내 그와 접선을 할수 있었습니다. 대구 두류공원앞소재 내가 서있는 노상에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섰습니다." 부산에서 오셨죠?" 라며 말하며 조수석에 타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를 검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마약 100 그램을 소지 하지 않고 왔을수 있다고 보고 차분하게 대처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 자리 에서 약100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수사관들이 잠복을 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 그런데  내생각과는 달리 빗나갔습니다. 나를 태운 차는 빠른 속력으로 어디론가 갔는데 그곳은 내가 전혀 모른곳입니다.  골목안 에 있는 모텔 이었습니다. 그는 그모텔을 잘 아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와 나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잠시후 그는 마약투약을 하면서 나에게 한잔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당황하여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 여기 대구에 나혼자 온것이 아니고 돈 2000 만원을 던진 선배분과 같이 왔으니 후배인 내가 한잔하면 도리가 아닌것같다" 라며 말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심 나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전혀 마약 투약하는 사람같이 안보였고 이것 때문에 여기 모텔에 확인키 위해 나를 데리고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약투약을 사양하자 그는 일어나면서 거래는 없는 것으로 하자는것입니다. 일종의 협박성 발언입니다. "순간 내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혼선이 왔습니다"... "여기서 그를 그냥 잡는다면.... 마약 100 그램은 압수 할수 없다..." 단순투약으로  검거 하는 것이 된다".  생각의 교차 상태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이러한 순간은 형사로서는  누구나 자존심 걸린 위기가  아닐수  없을것입니다. 그래 나는 결심 했다. 딱 한번한다고 뭐 달라지는것이 있겠냐 라고 생각후 그에게 내팔을 내 밀었습니다. "주사를 잘놓지 못해  ,,," 말이다. 마약을 투약하는순간 .....  긴장된 상태에서도 그 느낌은 최고 였다. 이를 확인한 그는 다시 나와서 내가 있던 두류공원앞 노상까지 데리고 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것이다. 5분쯤 지나자 그는 자신의 운전석 방석 밑에서 10 그램 짜리 마약 10 개를 내어 나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들고 있던 현금 2000 만원은 뒷 자리로 놓고...순간 나는 약간의 시간을 끌려고 했다.나를 찾아나간 수사관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마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도 하고 또 정확한 물량인지도 확인 했습니다. 더 이상 지체 할수 없기에 그  차안에서 나는 그를 검거 하려고 목을 잡려고 하는 순간 그는 문을 열고 도망치려 하자 다시 온 그 수사관들에게 검거 되었습니다. 그당시 차 드렁크에서 80 그램의 마약이 더 압수 되므로 총180 그램을 압수하는 큰 공적을 올린것입니다. . 나는 부산에 따로 내려 왔습니다. 내가 수사관인것을  알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수사관들은 내가 마약투약을 한지도 모릅니다. 필로폰의 맛을 아는 지금이었다면 국가에서 훈장을 준다고 해도 그럴리야 있었겠습니까 . 그 당시로서는  내가 투약하는것이 위장된 매수자로 물건을 압수할수 있다는 희생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물건을 확보하기 위한  완전한 수사라는  한 순간이 내인생을 몰락 시킨 동기였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가장 위대한 형사, 아니면 가장 어리썩은 형사 둘 중하나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물건을 압수해야 수사의 목적 달성이라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순간의 실수 였습니다. 역으로  나도  그들과 동등한  중독이라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필로폰! 필로폰!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 을때는 이렇게 심한 고통을 주는 물질인지 정말 모랐습니다. 필로폰  마약이 아닙니다. 독극물입니다.  3일간의 휴가를받고 부산에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긴장이 풀려서 인지 마약의 첫 느낌을 다시 ...세상에 이렇게 좋은지...그당시  단 한번의 마약투약으로, 그것도 내의지와 관계없이 접한 마약으로 내인생의 두갈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공직에서 파면후  네번의 마약투약 사건구속으로 옥살이 5년6개월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건 내 몸뚱아리뿐, 지난날의 아픔 기억과 상처 투성이뿐입니다. 이것이 나의 마약과의 인연입니다. ...정말 숨기고 싶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것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전경수 단장님! 이제 제 소망이 있다면 단약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용기와 사기를  불어 넣어주는 의존증극복지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더이상 나와같이 고통밭은 사람들이 없도록 마약의 무서움에 대한 메세지를 여기 저기 보내는 전도사 역활 입니다.  더이상 나같이 마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단약에 꼭 성공 하시길 빕니다. 저 역시도... (출처) 씁쓸하네요 마약은 진짜 무서운 거임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도라에몽 아빠 에피소드 레전드.jpg
아빠가 밤늦게 들어왔는데 술떡이 됨 술 취해서 난동 피우는 아빠 그 덕에 깬 도라에몽과 진구 진구 :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엄마 : 어머 깨웠구나. 여보 제발 정신 차려요~ 애들이 보고 있잖아요! 술 버릇이 심해지는 아빠 엄마 : 이제 나도 몰라요!  엄마 : 너희도 다시 올라가서 자. 빨리! 도라에몽: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진구 : 응... 아빠 일어나 봐요.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아빠 : 에잉 시끄러워! 애 주제에 어른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도라에몽 : 이제 어쩌지? 진구 : 아 그래! 어리다고 뭐라고 하셨으니 더 큰 어른을 부르자! 아빠의 엄마. 할머니를 보면 아무 말도 못 하실 거 아냐! (노진구의 할머니는 진구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도라에몽 : 그렇네! 아빠를 (타임머신으로) 옮기자 과거로 아빠 배달 완료! 진구: 할머니를 불러오자! 진구: 근데 뭐라고 말씀드리지..? 진구 : 할머니... 저 그게요... 할머니 : 진구냐? 날 보러 또 와줬구나 진구 : ...! 기억하고 계셨군요 할머니 : 우리 손주를 어떻게 잊을꼬 진구 : 할머니!!!! 도라에몽 : 진구야~ 진구 : 아, 맞다! 진구 :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실은, 아빠도 같이 왔어요. 할머니 : 뭐? 네 아빠도 같이 왔다고? 진구 : 엄청 취하셔서 난리도 아니에요! 진구 : 봐요~! 할머니가 마구 혼내주세요! 할머니 : 석구야~ 어서 일어나거라 아빠 : 너 누구야!  아빠 : 난 이 집에 가장 이란 말이.. 어? 아빠 : ? 아빠 : 어머니 어째서.. 할머니 : 조금 야단을 쳐야겠다 싶어서 할머니 : 잘 지내는거 같구나 아빠: 그럼요! 할머니 : 우리 아들 잘하고 있니? 아빠 : 당연하죠~! 난 한 가정에 가장이라고요! 할머니 : 그렇구나~ 하지만... 할머니 : 뭐든지 다 혼자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아빠 : 엄마!!!!!! 할머니 : 아이고 우리 아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울음이 터지셨나 아빠 : 부장님이요...! 엄청 못된 부장님인데 날 매일 못살게 굴어요! 할머니 :  그랬어? 힘들었겠구나 진구: 아빠?! 도라에몽: 조금만 있게 해드리자 도라에몽 : 어른은 좀 불쌍한 거 같아 진구 : 그건 왜? 도라에몽 : 그야, 자기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많이 의지하고 어리광 부릴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진구 : 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 도라에몽 : 아빠도 분명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거야. 그래도 매일 힘을 내시는 거지 진구: 응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울다 지쳐 잠든 아빠 다시 현재로 돌아온 후. 다음날 아침 아빠: 고마워요. 어제는 미안했어요. 취해버린 바람에... 엄마: 괜찮아요~ 아빠 : 오랜만에 어머니 꿈을 꿨어요 옛 생각이 나더군요... 아빠: 그럼 갔다 올게요! 다시 돌아온 아빠 아이들은 공감 못하는데, 어른들이 보고 울었다는 에피소드.
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29살 동갑친구 제시 잡는 김연경
연경신 앞에서 근육으로 허세 부리는 초딩 제시 ? (같잖음) 자꾸 연경신 앞에서 근육으로 허세부리는 초딩 제시를 심드렁하게 말빨만으로 제압하는 연경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하게 인정한 후 새침하게 삐친 초딩 제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제시가 웃겨 죽는 언니들 방송도 아닌데 새벽까지 단 둘이 술마시고 새벽 2시에 민효린 집에 놀러가고 싶을만큼 언니들의 슬램덩크 멤버들의 사이가 많이 가까워 졌나봐요 예쁨받는 효린이♡ 뜬금없이 훅 치고들어오는 예능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만있다 연경신한테 한방 맞은 동갑친구 제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 터지는 언니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생각지도 못한 천적 등장에 당황한 제시와 그저 웃긴 김연경ㅋㅋㅋ 어이구 제시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시한테 누가 이랬던 적이 있었나요ㅠㅠ 센언니 체면 구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한도전에 박명수 vs 정준하가 있다면 언니들의 슬램덩크에는 제시 vs 김연경이 있다!!!! 동갑친구들이 투닥투닥 하는게 진짜 여고생들 노는것 같고 귀여워요♡ ★ 넘사벽 세계여자배구 탑의 힘 ★ 허세쩌는 초딩같은 제시도 귀엽고 그런 제시를 쥐락펴락 하는 연경신도 넘 귀엽네요ㅋㅋㅋㅋ 김연경은 본인 입으로 장난기 많다고 했는데, 예능감도 충만! 강하고, 멋지고, 유머감각도 있고, 섹시해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세일러문>으로 보는 마법소녀들의 비즈니스.jpg
일본에 <반다이>라는 유명한 장난감 겸 게임 회사가 있음 건프라와 다마고치 사업을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기업이라서 건담, 다마고치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음 1990년 초반 일본은 경제 호황 붐이 꺼지고 고도성장의 상징물이었던 메카닉 전대 소년물은 인기가 식어가고 있었음 대부분의 애니 업계에서는 침체기가 찾아왔고, 주인공을 기계에서 끌어 내리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게 내세우는 등 여러 시도를 해가며 고전 중이었음 건담으로 이미 업계 톱을 달리던 반다이도 어떻게 하면 여아 완구 사업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음 경쟁사들은 리카짱, 요술공주 밍키, 요술 공주 샐리 등으로 60년대부터 여아 완구를 꽉 잡고 있었음 그러던 와중, 잡지 연재와 동시에 애니메이션화가 확정이었던 <세일러문>이 눈에 들어옴 제작진 라인업도 토에이 제작사와 아사히 방송사로 과거에슈퍼 센타이 시리즈를 함께 해서 사이도 좋겠다 (* 파워레인저의 토대인 슈퍼 히어로물) 반다이도 이건 돈 된다 싶었는지 자처해서 상당수의 장난감 스폰을 맡음 92년도에 방영 개시하자마자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반응 폭발 세일러문 완구 수요 급증 의기양양하게 <핑크 네일 슬로스>라는 메이크업 장난감을 출시함 당시 모든 장난감 회사가 그러하듯 여자애들 남자애들 좋아하는 장난감은 정해져 있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음 당연히 좋아할 거로 생각했나 봄 투자 대비 더딘 판매율로 다시 회의 들어감 사토 준이치의 인터뷰에 의하면 장갑을 끼는데도 불구하고 스폰서 요청으로 일부러 변신 중에 네일을 올리는 장면을 넣었다고 함 (*구판 애니 1기~2기 제작 감독) 수첩, 콤팩트 등등 여러 완구도 내세웠으나 반다이 눈에는 부진한 실적이었는지 애니 1기부터 제작 중단 말 나옴 그러나 1기 후반부에 신무기문스틱 등장 극중 내내 부진해보이던 세라를 각성시키고 모두에게 마법전사로서의 자질을 인정하게 만듦 기술까지 화려하게 들어가니 실시간 방송 달린 애기들 뒤집어짐 불티나게 잘 팔림 2기 제작 확정 반다이가 문스틱 판매에 매진하면서 토에이도 문스틱 원샷에 정성을 더함 이미지는 멤버들 봉 교차 이 문스틱은 전 시리즈 내내 툭하면 강화해서 효녀 노릇을 제대로 함 그리하여 전성기 동안 '1기 문스틱만' 60만 개를 파는 쾌거를 이룸 딴말인데 원작에서는 1기 문스틱은 싸우던 도중 박살났음 애니판에서는 잃어버린 걸로 했는데 문스틱 판매율을 염려했던 것 같음 달봉 팔이에 제대로 눈을 뜬 반다이 애니 3기 제작에 들어가기 전,타케우치 나오코에게 본인들이 새로운 장난감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을 그려 달라고 요청함 (*세일러문 원작자) 그렇게 탄생한 세일러 마법 아이템 <스파이럴 하트 문 로드> 사이코--! 개미친 사이코다----! 애들뿐만 아니라 성인 여성들, 오타쿠 남성들까지 환장함 일단 시각 자료를 위해 가져옴 그동안 나온 세일러문 무기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을 정도로 대박을 침 타케우치 : 오랜만에 기억나네요. 지금까지 없었던 살짝 진품 같은 형태가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모 왕실의 스틱 같은 것을 이미지로, 호화롭게 더 호화롭게 라고 디자이너 분께 부탁드렸습니다. 아야 : 이 노력을 요즘 어린이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타케우치 : 반다이 쪽 담당자분이 "이렇게 하면 4전 떨어져"라면서 전 단위로 돈 얘기를 하셨던 걸 잊을 수가 없네요.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거지 했더니, 당시 물건을 중국에서 제작하고 있었는데, 제작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담당자가 1엔 이하까지 엄밀하게 교섭하고 있었다나요. 깜짝 놀랐죠. 아야 : 그렇게 해서 이처럼 멋진 물건이 탄생한 것이로군요. 세일러문의 아이템은 전체적으로 어딘가 여성적인 기품이 풍기는 듯한 느낌입니다. 시리즈 후반부로 갈수록 타케우치가 장난감 제작자들과 자주 만나며 의논했다는 건 본인 피셜이기도 함 시각자료를 위해 가져옴 이때의 세일러문 완구는 반다이 전체 장난감 판매 비중 2위를 차지함 1년에 한화로만 4,000억 원 가량 땡겼다 함... (* 1990년 대 후반 매출 기준 1위 건프라, 공동 2위 드래곤볼..) 덕후들이 "나오코는 의무를 마치고 부자가 되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반다이의 여아 완구 개척에 개국공신 역을 함 시각자료를 위해 가져옴 그러나, 원작자 포함해 모든 제작진들이 완구 판매 압박감이 컸었는지 타케우치는 후일담 인터뷰에서 제작진들이 자꾸만 애니메니션과 원작 방향에 손을 대 갈등이 잦았다고 말했고, 장난감 제작자들은 출판과 애니 속도에 맞춰 장난감을 만들어야 하니 힘들었다고 토로했음 세일러문 성공에 힘입어 반다이는 다음 마법소녀물로 <꼬마 마법사 레미>, <프리큐어>의 장난감 제작에 들어감 세일러문은 결국 원작자와 저작권 소송이 있었는지라 눈치 덜 보고 완구 PPL을 껴넣을 수 있는 토에이 오리지널 제작으로 들어간 것 같음 그러나 꼬마 마법사 레미는 토에이와 반다이의 마찰로 인한 제작비 부족으로 4기 종영 (난 도레미 팬이라서 완결났을 때 한동안 우울했음... 역시 대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었음을.....ㅜ) <세일러문>이 요술봉이었다면 <프리큐어>는 비즈 만들기 같은 핸드메이드 완구로 히트침 프리큐어 시리즈는 최장기 여아 장르물로 10년 동안 꾸준히 장난감 연간 판매량 110억 엔을 올림 물론 반다이는 현재 건담과 남아 완구로 더 수익이 크지만, 이로서 여아 남아 완구 팔이 모두 성공함 (이 글 쓰려고 프리큐어 난생 처음 봤는데 애들이 마법봉 안쓰고 주먹으로 승부 봄... 걍 육탄전임.. 여자들의 피땀눈물 가득한 격투기 만화가 보고 싶다? 프리큐어를 보셈...) 이 과정을 쭉 지켜 본 일본문화학자 사이토 쿠미코는 마법소녀물 속 젠더 정체성을 분석한 논문 (* Magic, "Shōjo", and Metamorphosis,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014)에서 이렇게 말함 일부 문장 발췌해옴 직역이라 어색함 [서구의 '장르' 개념이 줄거리와 배경에 따라 마법 소녀를정의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이 범주를 식별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주로 비즈니스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다 [많은 일본 어린이 쇼와 마찬가지로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은 성별로 구분된 장난감을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각 에피소드는 본질적으로소년에게는 25분짜리 상업 마케팅 영웅 시계이고 소녀에게는 마법의 콤팩트이다.] [ 애니메이션에서 겉으로 보기에 권한을 부여받은 소녀 영웅들은 (현실) 소녀들에게 결혼할 때까지 패션, 로맨스, 소비를 추구하고, 결혼하면 좋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집에 머물도록 은밀히 가르친다 ] ===== 국내에 소녀문화 분석 참고 도서로는 <요술봉과 분홍제복>,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가 있음! 해외 오타쿠 블로그 참고하며 쓴 거라 오타쿠적 관점 양해부탁해... 출처
공손찬 백규 (公孫瓚 伯圭) A.D.? ~ 199
삼국지를 워낙에 좋아해서 여기다 시간 들여가며 이런 글까지 쓸 정도다보니 나름 삼국지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여러 자료들을 지금까지 보고 듣고 하다보면 그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떠나 참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 '이 사람은 왜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이 인물은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한걸까' '그는 결국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건가'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오늘 다룰 인물 "공손찬"이다. 아마 게임이건 만화건 애니매이션이건 책이건... 소설인 연의를 읽었건, 정사를 읽었건..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특히 삼국지연의를 읽은 분들은 더더욱 공손찬을 좋아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데, 일단 연의에서의 그는 워낙 초반부에 등장하고 별 다른 임팩트도 없는, 드래곤볼을 예로 들자면 손오공이 어린 시절에 등장해서 잠깐 오공을 애먹이지만 얼마 못 가서 즈려밟히는 '타오파이파이' 정도의 취급... (혹시 누군지 모르면 포털사이트 검색 Go) 그나마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를 즐기는 분들이 보다 고난도의 천하통일에 도전할 때나 선택할 인물. 하지만 역사 속에서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엑스트라급은 아니였음을 오늘 글을 통해 밝혀 보겠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나오듯 실제로도 당대의 이름 높던 학자인 '노식'의 문하에서 유비와 함께 공부한 동문이고 그 때의 인연으로 유비가 공손찬이 막장테크 타기 전까지 공손찬의 객장으로 있기도 했다. 이쪽도 생전의 라이벌이던 원소처럼 적자가 아니지만 얼자였던 원소보다는 사알짝 나은 '서자'였는데 뭐 우리가 보기에는 도찐개찐... 어쨌건 집안도 원소의 원가에는 댈 바 아니긴 해도 나름 괜찮은 집안의 은수저출신. 공손찬의 집안은 대대로 유주일대의 태수를 지내던 가문이였는데, 원소네가 일전 원소칼럼에서 소개했듯 중앙정부 고위관직자 집안이라면 공손가문은 군수집안쯤? 이걸 보고 혹자는 'ㅋㅋㅋ군수 나부랭ㅋㅋ'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여러분들이 군수를 몰라 하는 소리다. 군수는 3급 공무원이며 군으로 치면 준장(★)에 준하는 정말 높은 자리다. 아무튼 저런 집안 출신이지만 서자인 관계로 지분을 이어받지 못한 Mr.공손은 첫 사회생활을 유주의 말단관리로 시작하는데, 이 때 맡은 업무는 각종 공문서를 필사, 즉 베껴 쓰는 일이였다. 당시는 복사기도 없고 이메일, 팩스 뭐 그런거 다 없으니 공무에 있어 이리저리 나가고 들어오는 문서들을 누군가 직접 보고 필사를 했는데, 그 일을 했다. 인간복사기로서 공손찬은 꽤 유능하여 문서들을 취합 후 요점을 추려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하여, 그가 정리한 문서는 누가 봐도 업무현안이 눈에 잘 들어왔는데, 게다가 공손찬은 말도 조리있게 잘 했고 인물도 좋은데다 "목소리도 좋았다"고 한다. 이런 점들이 소문나며 어느 태수가 그를 점 찍어 사위삼고, 그 후 그를 노식에게 유학시키는 등 이때부터 공손찬의 포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헌데 어느 날 저 공손찬의 장인되는 태수가 비리죄목으로 파직당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저 당시가 워낙 나라꼴 개판이라 털어 먼지 안나는 태수가 몇이나 있겠냐만... 저 때는 매관매직도 흔했는데 이를테면 A : 저 이거 받으시고 저 벼슬 좀 ㅎㅎ 고위관리 : 오~ 1억전?!! 뭐 하고 싶은데? A : 영릉태수요! >_< 고위관리 : 콜! 조또마떼! (영릉태수 공석 시 발탁, 헌데 기존 태수 재직인 경우...) 고위관리 : 영릉태수 이놈개새끼, 2억전 세금 바쳐. 영릉태수 : 아.... (2억전 입금 시 유임 및 A에게는 다른 자리 물색! 미입금시....) 영릉태수 : 제가 2억전이 어디 있어요... 고위관리 : 넌 디졌어 (뭐가 되건 털어 난 먼지로 파직 또는 처벌, 그 자리에 A) 저런 경우가 적잖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당시 이런저런 지방의 한 자리를 했던 이들은 위로 올려 보낼 세금(명목의 뇌물)을 채우고자, 또 저런 썩은 정부 휘하에서 일하다보니 본인도 썩어 대체로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하는 일이 다반사. 아무튼, 공손찬의 장인인 태수 '유기'(유표아들 아님)가 당시 일남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본인 또한 자기를 알아보고 키워준 은혜를 갚고자 유배가는 장인을 따라가기로 하고 살아 돌아오진 못할거란 생각에 본인의 "셀프 장례식"을 올리고 유배길을 따라나서는데... 위의 저 유배지 일남, 바로 지금의 베트남이다... 지금 아무 세계지도나 펴고 당시의 유주라 불리던 중국의 베이징 동북부 아무곳이나 찍고 거기서 베트남까지의 거리를 찍어보면 ㅎㄷㄷ... 심지어 그 당시의 베트남은 '오지 Of The 오지'였으며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던 유배령이였거늘, 공손찬은 은혜와 의리로 그곳을 죽는 각오로 따랐던 것. 다행히 유배 가는 도중 뭔 일인지 또 사면이 되는 덕에 공손찬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사면되지 못했다면 대단한 의리남아인 공손찬을 삼국지 게임에서 선택 못할 뻔.-_-;; 고향으로 돌아와 그전의 평판 덕에 다시 벼슬길에 오른 공손찬은 그때부터 포텐이 만개하며 당시 유주 인근의 소수민족들 중 가장 세력 크던 "오환족"의 학살자로 이름 얻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오환족들의 분노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이 실로 잔인했는데, 공손찬은 단순히 '접경지역의 이민족을 축출한다' 이상의.. 몹시 뒤틀린 인종관을 갖고 오환족은 모조리 박멸하여 그 씨를 말려야 한다는 한족중심의 인종차별론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오환족의 투항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으며, 애어른이나 남녀노소없이 오환은 물론, 그 2세나 3세의 혼혈에게조차 가차 없었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반 후한 백성들의 원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오환 및 그 일대 소수민족에 대한 홀로코스트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한족 우월주의가 당연시되던 여타 한족의 입장에서조차 이해를 얻기 힘들만큼 극심했다. 강족들을 토벌하기도 했으나, 그들과 결탁하기도 했던 동탁, 마등, 한수, 마초 등등이나 흑산적 및 오환족들과는 밀당을 통해 견제와 화친을 번갈던 원소나 조조, 무릉만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훗날의 유비 등 아무리 소수민족을 오랑캐 취급하며 천대했던 당시라도 무조건 다 싸잡아 죽인다기보다는 필요시에는 협력대상으로 봤던 경우도 많았거늘... 공손찬은 이들에 대해 철저한 배척 및 멸종을 도모했고 당연히 오환들도 공손찬에 대한 항복 역시 항전의 끝과 다름없는 죽음뿐이란 것을 알고는 최소한 싸우다 죽자는 결론을 택하며 후한 백성들 역시 오환족들의 침략 또는 병사로 차출되는 등의 피해가 나날이 늘어갔다. 심지어 공손찬은 소수민족들과의 전투에서는 앞장서서 무쌍난무를 찍었고 결국 그의 군사적 재능과 이 오환족 제노사이드가 결합하여 후한의 동북부지역은 어쨌건 가장 소수민족의 평탄화가 잘 된 지역이 된다... 종종 연의 내에 등장하던 공손찬의 "백마장사"라는 닉네임과 그에 따른 업적이 이 소수민족 학살로 얻어진 것이다. 결국 어찌보면 단순히 치안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가치관에 따른 삐뚤어진 행태의 결과. 이러던 어느 날, 유주자사(쉽게 말해 우리의 도지사 개념)로 한실종친이자 인망 높고 덕이 있기로 소문난 "유우"가 부임해오며 공손찬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는데... 유우는 군사일변도의 공손찬 플랜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을 표출하며 막대한 군비지출을 최소화하고 그 여유분 + 중앙 재정지원을 그간 숱한 전투에 황폐화된 농지개간 및 유랑민들의 정착지원 등의 복지와 지하자원 개발로 인한 산업다각화 및 재정확대, 오환과의 화친 및 교류와 교역의 증대를 통한 경제구조 변혁 등 다분야에 걸쳐 진짜 유주를 위한 각종 계획들을 내세워 추진했는데.. 공손찬은 위에 언급한 자신의 뒤틀린 인종관 + 그런 위기감 조성을 통한 군비확장 및 국방비 사유로 자신의 세력과 야망을 키우던 터에 유우의 저런 정책들은 일절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우와 공손찬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공손찬이라면 치를 떨던 오환들도 유우측으로 투항 및 교섭을 시도했다. 이미 드높던 덕망이 이 때 더 높아지며 백성들의 칭송이 줄 이어, 후에 반동탁 전선 측의 맹주인 원소가 그를 새 천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 그런 원소가 주도하던 '반동탁 연합에도 불참'한다. 하여간 이때부터 유우와 공손찬은 거의 각자노선을 걸으며 갈라선다. 이후 공손찬은 잠시 오환족 박멸을 미뤄두고 하북을 휘젓기 시작하는데, 삼국지연의에는 묘사가 안되나 공손찬의 용병술, 군지휘능력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이들 중 가히 TOP10에 들만한 수준이다. 일단 먼저 말한 오환족 박멸 역시 마찬가지로, 원소나 조조같은 강자들이 오환이나 선비족, 흉노같은 북방 소수민족들을 괜히 회유하고 화친하려 든 게 아니다. 그만큼 버거웠던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허나 공손찬은 이런 이들을 거의 지워버리다시피 했으며, 191년에는 비록 훈련없는 오합지졸이라고는 하나 무려 30만(삼국지 특유의 뻥이 아닌 역사기록에 의함)의 황건적 잔당이... 현 대한국군의 절반 가량의 저 대병력이 유주에 침공하자, 겨우 고작 2만의 병력만으로 저들을 궤멸에 가깝게 타격한다. 솔직히 저 열 다섯 배의 전력차는 진짜 황건적이 모두 맨손이였어도 버거울 지경이거늘.. 공손찬은 해냈다. 심지어 유우와의 대립이 극에 달에 결국 공손찬의 군사행동에 수시로 겐세이 놓던 유우와 공손찬은 다이를 붙게 되며 이때도 무려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고작 겨우 "100명"만 선발해 지휘부까지 뛰쳐 들어가 와해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렇듯 당시의 공손찬은 원소가 제대로 득세 전까지는 당시 전 중국을 통틀어도 맞상대로 당해낼 재간이 없던 최강의 세력이였다. 공손찬군은 병력 수는 물론, 각종 장비와 물자도 상당히 최신이였으며 유독 기병대에 집착을 했던 공손찬의 고집 때문에 전 중국에서 가장 많고 잘 훈련된 기마군단을 거느리고 있기도 했다. 비록 우리가 알만한 네임드 장수나 모사는 없었으나 공손찬은 오로지 자신의 무력과 지휘력 및 전술능력으로 커버업 하고도 남았으며 기마군단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평야지역이 넓던 유주와 요동 일대의 정복자가 되어 심지어 당시의 원소조차 공손찬의 이름을 들으면 쫄지 않을 수가 없던 상황.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갖고 서출의 그가 오로지 맨주먹으로 하북을 주름잡으며 소수민족과 한족 통틀어 무적으로 이름을 날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서서히 그에게는 그림자가 들고 있었으니...... 1. 과격함. 그의 정복 및 전투방식은 심히 거칠고 잔인했다. 소수민족들 상대로는 항복 or 항전 여부 무관하게 모조리 죽였으며 사로 잡힌 이들은 곱게 죽이지도 않고 온갖 모질고 잔인한 방법을 통해 죽였으며, 그렇다고 관할지내의 백성들에게 선심을 베푼 것도 아니다. 공손찬의 병사들은 유주일대의 그 어떤 도적떼보다 약탈과 겁탈이 잦다고 악명이 떨쳐져 있었다. 2. 몰인정. 그는 부하들에게도, 병사들에게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도, 다른 군주들에게도, 당연히 적세력에게도... 오직 자기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성취에 소모되는 도구 또는 그에 방해되는 장애물로만 여겼다. 응당 그런 사람냄새 나지 않는 그에게 인재가 몰릴 리 없고 있는 인재조차 떠나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공손찬은 그 부덕함으로 조운, 전예 및 유비 등의 특급인재들을 얻고도 놓친다. 그가 성공가도를 달릴 때야 그렇다셈쳐도 그가 위기를 맞자, 그의 휘하세력들은 이탈에 가속이 붙어 더욱 비참한 몰락을 부채질 하는 계기가 된다. 3. 고집. 그는 말 했듯이 '서자'였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실력, 운으로 성공을 쟁취했는데, 동서고금 막론하고 이런 이들은 자신이 옳고 맞다 여기는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그도 모자라 남을 무시하는 경향도 강하고 이런 부류들이 대개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독단적인 아집부리기다. 공손찬 역시 이를 극복하지 못한체, 오로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고집대로만 처리했다. 역시 이런 이들 아래로는 자신의 뜻과 재주를 펼칠 수 없기에 인재가 모이거나 성장할 수 없다... 4. 별종. 공손찬은 각종 다양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였음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물론, 삼국지속 영웅들이 응당 평범한 이들이 아님은 맞으나, 공손찬은 좀 희한한 면이 많은 이였다. 유별나던 인종차별적 면모도 그렇거니와, 장인어른의 유배지를 따라가며 굳이 자신의 장례를 스스로 치른 점, 게다가 공손찬은 놀랍게도 참모나 책사에 점술인, 상인, 건축가 등등.. 일절 군사, 행정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을 단지 자신과 코드 맞고 복종하며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채용했다.... 저런 여러 큰 결점들 탓에... 그 놀랍고 빛나는 군사적 재능을 토대로 후한의 동북일대를 독차지 하고도 결국 당시로서 자신보다 모로 보나 뒤쳐지고 모자르던 원소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만다. 당시 원소는 객관적 전력으로는 공손찬에 댈 바가 아닌 걸 파악했기에 정면승부를 피하고 공손찬의 전력을 싸우지 않고 약화시키는 전법을 쓰는데, 예전 원소의 칼럼에서 말했듯 원소는 정치정략의 고수였는데 이를 십분 활용! 인심을 잃은 공손찬의 영지였던 유주일대를 비롯, 여기저기 사람을 보내 공손찬의 직간접적 세력권이던 요동, 기주 북부일대, 청주와 병주 등에 공손찬에 대한 네거티브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린다. 공손찬을 적대시하는 이들 및 세력들을 적극 포섭했으며, 공손찬에게서 전향해 오는 인재들은 더욱 크게 포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공손찬의 세력권에는 그간 공손찬의 폭정 탓에 더욱 그에 대한 비방과 괴담이 날개를 달고 퍼졌으며 공손찬을 따르던 적잖은 이들이 타세력으로 전향 및 하야하는 등 이탈자들이 줄을 이었다. 공손찬세력의 레임덕은 곧 군기강해이로도 이어져 군자금 및 관련 장비나 물자의 횡령도 횡행했으며 일부 장수들은 군마를 빼돌려 파는 일도 생겨났고 병사들도 더욱 백성들을 심히 약탈하게 되었으며 나날이 공손찬의 세력은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저물어가던 공손찬... 이런 와해작업이 무르익었다 판단한 원소군의 총공세에 공손찬세력은 언제 그리 강했냐는 듯 무너져 내렸으며, 그 강하다는 공손찬군의 기마군단 역시 이에 대한 자부심에 변화없던 전술 탓에.. 대기마군단용 요격전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원소군에 의해 박살나고 만다. 세가 기울자 공손찬은 수 많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노역에 동원해 지은 최강의 방어요새인 "역경"으로 피신.. 여기에서 짱 박힌 체, 히키코모리처럼 허송세월을 보낸다. 이 부분 또한 실로 안타까운게, 이 역경은 당시의 냉병기로만 무장된 재래전력으로는 사실상 수년 이상의 시간으로도 함락이 쉽지 않은 요새였고, 기세가 꺾여 그럴 뿐 적잖은 병력과 그 병력들이 수 년간 먹을 식량도 비축되어 있었으며 내부에 둔전이 가능할 정도의 농토도 있는 등. 거의 이 역경이란 요새는 당시의 건축토목술의 정점을 찍는 요새로 만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월마리아같은 거대장벽에 둘러쌓인 궁극의 방어요새였던 것. 아무튼 공손찬은 이 요새에 거북이처럼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았다. 원소군의 입장에서도 공손찬의 장기전은 반갑지 않았다. 어쨌건 자신의 본거지를 비우고 나온 원정이 길어지면 자신의 거점을 호시탐탐 노리던 조조나 흑산적들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병참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섣불리 퇴각하다 역경내에서 별 다른 손실없이 진치던 공손찬군이 쏟아져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기 때문. 그런 이유들로 심지어 원소는 오히려 공손찬에게 먼저 화친을 제의하기도 했으나, 싸울 생각도 없었으면서도 공손찬은 제 고집에 화친에는 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대치가 계속 된 와중... 안그래도 희한한 괴짜 공손찬은 정신이상에 가까운 기행을 보이는데, 역경루라는 역경내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서 지내던 공손찬은 그 누각에 두터운 철문을 달아 안에서 잠그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7세 이하의 아이만을 드나들게 하였으며 각종 서류와 공문서들과 식료품과 생필품도 이런 아이들이 셔틀을 맡았고 급한 보고사항은 밖에서 누각으로 소리치면 공손찬의 대답을 다시 누각내의 시종들이 소리쳐 대답하는 심히 박ㄹ혜스러운 행태를 보이기 시작.... 게다가 잠깐 밖으로 군사를 출격시켜 긴 대치에 루즈해있던 원소군을 기습하다 포위 당하자, 어서 구원병을 보내자는 부하들의 요청에, '저들을 구하면 모두 구원병을 믿고 열심히 싸우지 않을거다'라며 그들의 전멸을 방관한다... 이를 계기로 안그래도 저물어 가던 공손찬의 세력은 급속도로 와해되며 탈영병과 이탈자들이 늘어갔고 제 아무리 우주방어요새라도 농성병력이 없다면 함락은 시간문제.... 끝내 원소군이 방어를 뚫고 내부로 진입하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효웅 중의 하나던 공손찬은 가족들을 모두 죽인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원소는 조정에 보고를 올린다는 표면적 이유, 조조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내면적 이유로 공손찬의 참수된 머리를 보내는데, 당시의 조조와 조정 대신들 모두 공손찬의 패전을 믿지 못하다 그 잘려진 머리를 보고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훗날, 그런 공손찬을 무찌르고 그의 세력을 흡수하여 하북최강의 대세력으로 거듭난 원소가 훨씬 작고 약한 조조에 의해 몰락을 맞을 때 못지 않게 이 때의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했음은 전중국 최고의 이슈였다. 이렇듯,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도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집으로 가득차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불통의 인재는 어떤 끝을 보는지를 공손찬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무에 밝고 행정에 뛰어나며 바른 말이나 쓴소리 하는 전문가들을 배제한 체, 그저 자신과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들을 비선실세로 삼았던 점.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생각만을 일방통보하며 고집과 불통으로 귀를 닫았던 점. 당시 비록 인구가 많진 않았어도 비교적 타지역에 비해 이른 개발덕에 꽤나 자리 잡히고 안정된 터전을 차지하고도 자신의 부덕으로 이를 황폐화시킨 점. 화친과 교류를 했더라면 충분히 윈윈하고 자신의 세를 더욱 키울 수 있던 상대를 오로지 적으로만 삼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대립을 했던 점. 자신의 병사들이 적들 틈에 죽어가고 있음에 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말같잖은 이유로 방관하여 모두 죽도록 방치한 점. 왜곡된 가치관 탓에 주변의 인심을 잃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그로 인해 적잖이 떠나간 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위기에 홀로 외부와 단절하여 틀어박혀 골든타임을 놓친 점. 수 많은 그의 문제점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누군가와 놀랄만치 닮았다. 이렇듯, 자신의 역량과 장점들이 충분히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만 했음에도 이들을 잘못쓰게 되면 그 끝은 비참한 말로뿐이라는 것도.... 누군가와 닮았던 안타까운 영웅 공손찬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