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30: 수행자(修行者)들 중에는, ‘내 마음이 대어천지(大於天地)’라는 말을 즐겨 쓰며, 자신은 우주와 같은 거대한 존재이며 모르는 게 없고, 생로병사를 초월하여 영생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말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어천지라는 말은, 더 크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은 정형(正形)이 없기 때문에 크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다 작다, 넓다 좁다, 높다 낮다 등의 상대적(相對的)이고 관념적 표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관점에서는 상대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주를 크게도 보고, 어떤 사람은 우주를 작게도 보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는 수행자들에 비해서 저는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앎이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그거 하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모른다 하는 것만 알 뿐”입니다.
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앎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저는 진짜 그 어떠한 앎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입니다.
어떤 정형적인 앎이 없는데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그러니 빨리빨리 자각을 심화(深化)시키세요.
자기 자신은 무형의 대 자유의지라 하는 것을, 이 정형과 형태를 가진 ‘나’가 아니다 하는 것을 말입니다.
자유의지가 무얼 필요로 합니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형태와 정형을 가진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육체(肉體)에 생로병사가 있는 겁니다.
무형(無形)의 대 자유의지에 생로병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로병사를 해결했다, 초월했다고 말하는 성자나 선사들은 ‘생로병사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왜냐? 자기 자신에게는 생로병사가 없는데 생로병사에 무슨 관심을 기울입니까?
생로병사는 육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러한 이해 속에 ‘생로병사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 진짜 생로병사를 초월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게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생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무형의 대 자유의지라 하는 것을 빨리 자각하셔야 되는 겁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격산견연 조지시화(隔山見煙 早知是火) 격장견각 변지시우(隔檣見角 便知是牛)”,
이 말이 가리키는 바는 바로 지혜를 일컫는 말입니다.
먼 산에 연기가 피어 오르면 불이 났다는 것을 알 것이며, 담장너머에 뿔이 보이면 당연히 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생각이 있으면 당연히 생각의 주인이 있다 하는 것을 알 것이며, 그림자가 있으면 당연히 빛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 강을 넘고 산을 건너서, 담장까지 넘어서 굳이 확인을 하려고 할까요?
그렇듯이 ‘육신적인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비 육신적인 나’가 있는 것이고, 이 육신적인 나가 지금 있다는 것은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비 육신적인 나만이 절대적인 나가 아니고, 그것으로부터 또한 자유롭기 때문에 이 육신적인 나를 선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나는 육신적인 나와 이 비 육신적인 나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러면 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뭐냐?
육신적인 나와 이 비 육신적인 나, 그리고 이 둘로부터도 자유로운 이 ‘나’는 결국 제가 설명을 하고 표현을 했지만, 자유로서 대 자유로서 “일체(一體)”입니다.
여기에 대한 확고한 자각이 들어오면 이 육신적인 나도 비 육신적인 나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가 있고, 더 나아가서 최종적으로 그 ‘대 자유’를 내가 그대로 승계(承繼)할 수 있어요.
이때는 내가 관점이 자유로워지게 되며, 더불어 관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자유자재(自由自在)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존재의 형태는 형태 있음과 형태 없음으로 달리하지만 다 자유롭습니다.
존재의 형태를 달리할 수 있는 것은 또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자유자재라 하는 것도 나의 정체성을 가리키며,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靈)과 육(肉),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본체의 일부입니다.
그것을 나눠서 보면 개체가 되지만 그것을 일체로 보면 본체입니다.
자유라는 말을 쓴 이유가 어떠한 정형도 없다,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육신적인 나’라는 것은 정말로 자기 본래의 모습에 비하면 미미하기 그지없는 단편적인 나입니다.
그 미미한 단편적인 나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본래 입장에서 보면 다 미미한 일들이잖아요.
그래서 생로병사라 하는 그것 자체가 그렇게 미미한 일입니다.
생로병사라 하는 자체가 미미한데, 생로병사를 해결할 것도 없는 겁니다.
생로병사에 관심을 둘 것이 없는 것이죠.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곧 생로병사를 초월(超越)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