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인상, 이것 참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도 그렇지만, 이는 영화에도 적용된다. 영화 제목은 예비 관객들과 가장 처음 마주하는, 영화의 얼굴과도 같다. 제목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흥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목은 영화 전체를 품고 있는 것과 동시에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때문에 영화 제목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 개봉 직전까지 빈 칸으로 남겨진다.

# 관객으로 인해
영화 제목 변경의 주체는 가지각색이지만, 그 이유는 한 가지로 공통된다. 모두 관객을 위한 배려다. 이 같은 배려가 고스란히 영화 제목으로 옮겨진, 아주 특별한 케이스는 ‘럭키’다.
우지다 켄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이 원작인 ‘럭키’의 원제는 ‘키 오브 라이프’다. 그리고 이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된 블라인드 시사회 이후 ‘럭키’로 다시 태어났다. 관객이 참여한 영화로 의미를 더했다.
“이계벽 감독이 제작보고회나 인터뷰 때 말했듯 블라인드 시사회 진행 후 ‘럭키(Luck, Key)’라는 제목을 선택하게 됐다. 이렇게 모니터링 시사 때마다 매번 관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다. 여기에 제목과 관련된 문항이 포함됐다. 제목은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 관객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영화 관계자 A)

# 배우로 인해
배우가 영화 제목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아수라’다. 잘 알려졌다시피 ‘아수라’의 출생지는 황정민의 혼잣말, “아수라판이네”다. 그의 한 마디는 김성수 감독의 뇌리에 남아 가제 ‘반성’과 ‘지옥’을 제쳤다.
“처음에는 ‘아수라’에 ‘반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영화제작사 사나이픽처스 대표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냐고 했다. 느와르 영화인데 뭘 반성 하냐면서 말이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썼다고 했더니 제목을 ‘지옥’이라고 짓자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황정민의 ‘완전 아수라판이네’라는 말이 인상 깊어서 아수라에 대한 뜻을 찾아봤고, 결국 제목은 ‘아수라’가 됐다.” (김성수 감독)

하정우가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아 화제가 됐던 ‘허삼관’도 마찬가지다. ‘허삼관’은 위화 작가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다. 때문에 ‘허삼관’은 ‘허삼관 매혈기’로 소개됐었다. 그러나 개봉 직전 ‘매혈기’는 삭제됐다. 이는 하정우의 영향력이 작용한 부분이다.
“가족애라는 큰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따라서 어울리지 않는 단어, ‘매혈기’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하정우 감독 그리고 배급사의 상의 하에 결정됐다.” (영화 관계자 B)

# 사회 분위기로 인해
개봉 시기의 사회 분위기가 영화 제목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했다. ‘최악의 하루’와 ‘끝까지 간다’가 대표적인 예다. ‘최악의 하루’는 지난 4월 개최된 전주국제영화제 당시 ‘최악의 여자’로 불렸다. 그리고 지난 8월 25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제목이 변경됐다. ‘최악의 하루’로 말이다. 최근 여성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내부적으로 회의를 가졌다. ‘최악의 하루’가 영화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또한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오해 할 수 있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영화 관계자 C)
“‘최악의 여자’라는 제목이 캐릭터에 대한 선입견을 줘 메시지 전달에 방해가 될 거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최악의 하루는 있을 수 있는데, 최악의 여자는 약간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 여자가 최악인 게 아니라, 그냥 최악의 하루를 보낸 여자일 뿐인데 말이다. ‘최악의 하루’로 바꿨기에 더 다양한 관객의 유입이 가능했다고 본다.” (영화 관계자 D)

‘끝까지 간다’의 원래 제목은 ‘무덤까지 간다’였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애도에 동참하기 위해 제목을 변경했다. ‘끝까지 간다’는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진행 예정이었던 쇼케이스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상 열려고 했던 쇼케이스를 취소했다. 그때는 ‘끝까지 간다’ 뿐 아니라 다른 작품, 공연 등 모든 분야가 행사를 축소하던 시기였다. 영화 제목 변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영화 관계자 E)
사진 = ‘럭키’, ‘아수라’, ‘허삼관’, ‘최악의 하루’, ‘끝까지 간다’ 스틸
김은지 기자 hhh50@news-a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