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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2: 자각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도 통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이것을 계기로 해서 반드시 자각의 눈을 뜨기 바랍니다.
오늘 들은 것을 가지고 공부에 대해서 깊이 한번 통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무슨 공부를 했냐 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를 심화시키는 일환으로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고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자들께서는 하나 같이 증언하기를 깨달음은 경지(境地)나 능력(能力), 또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화(深化)된 자각의 눈으로 보니까, 내 온전한 정신을 차려서 보니까 나는 이 육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걸쳐, 아니 이 무한의 우주조차도 넘어서서 보편 편재해 있고, 그리고 이 보편성은 유일무이(唯一無二)하기 때문에, 모든 사물에 대해서 그리고 사물간의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서 가장 보편적 허용과 포용과 수용을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더불어서 어떤 조건도 없이요. 그러니 이러함은 어떤 경지나 능력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이 부분은 추후에 더 보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다수의 수행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 육체는 나다, 이 육체에 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경지를 논하고 능력을 논하고, 온갖 수행법에 매료되어 온갖 유위(有爲)를 논하는 것입니다.
한번 보세요.
‘이 육신이 나다, 이 육신에 내가 있다’,
따라서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는 꿈속에서 ‘나’라고 인지하는 주인공일 뿐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고 잠에서 깨어나면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사라지는 단지 꿈속의 배역일 뿐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저는 유위한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지’도 ‘어떤 능력’도 아니며,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며, 그 어디에도 특정한 한 곳에 있을 수가 머물 수가 없으며,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곳에 항상적으로 보편 편재해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것이 제가 어디를 오고 갈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나”의 의식으로 이루어진 내가 꾸는 꿈이라는 것입니다.
이 육신에 내가 없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귀속된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나라는 말입니다. 이해 가세요?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그것’이라고 하잖아요.
결국 시간이든 공간이든 만들어내는 ‘나’이기 때문에, 그 나를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는 답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의문이라는 것은 내가 만든 개념작용이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잖아요.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다’가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각이 심화되면 그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문이 사라지기 때문에 무얼 구할 필요도 없고 답이 필요하지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누구이다, 무엇이다’가 사라지고 그에 따라서 의문도 또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육신에 내가 없다고 하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생로병사에 대한 걱정이 있겠어요?
‘이 육신에 내가 없다’라는 자각을 가진다면 생로병사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겠어요?
아직도 우리가 생로병사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그 만드는 위치에 있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만든 그 세계 속에 자기를 귀속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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